두 블랙홀이 하나의 블랙홀로 합쳐지는 충돌 직전 상황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한 모습(왼쪽 사진). 이 과정에서 0.15초간 방출된 중력파를 측정해낸 미국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의 고급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LIGO) 실험시설. 캘리포니아공대 LIGO연구소 홈페이지, LIGO 연구그룹 제공
지구를 대신할 새 행성을 찾아 어린 딸을 남겨두고 우주 저편으로 떠난 쿠퍼. 수십년간 우주를 여행하다 딸에게 돌아가기 위해 블랙홀 안으로 들어간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이어주는 지름길 ‘웜홀’을 지나며 성인이 된 딸과 교신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웜홀을 통한 시간여행’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공간은 끌어당기는 힘이 강한 곳에서 휘어지며, 그 힘이 강할수록 휘어짐도 강하다. 블랙홀처럼 엄청난 중력이 작용하면 멀리 떨어진 두 공간이 구부러져 실재보다 훨씬 가깝게 연결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일반상대성이론의 가설 중 하나인 ‘중력파’가 현실에서 처음 관측됐다. 과학계는 “우주를 보는 새로운 창이 열렸다”며 흥분했다. 과학자들은 중력파를 이용하면 초기 우주의 상태부터 별의 탄생과 진화 과정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두 블랙홀의 충돌 첫 관측=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KGWG)은 12일 서울 이비스앰배서더명동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적인 중력파 발견으로 우주를 이해하는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협력단은 5개 대학(서울대 한양대 부산대 인제대 연세대)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국가수리과학연구소 학자 20여명이 모인 연구컨소시엄이다.
협력단장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최초의 중력파가 직접 검출됐고, 두 개의 블랙홀로 이뤄진 쌍성계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한 게 이번 발견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이 1915년 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이듬해 그 존재를 주장한 이래 100년간 검출되지 않았다. 먼 우주에서 발생해 지구에 도달할 때는 파동이 너무 약해지는 데다 지진 등 다른 신호와 구분이 어려웠다.
두 블랙홀이 충돌하고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도 과학자들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 교수는 “극적인 순간의 마지막 0.15초를 관측한 것”이라며 “블랙홀의 증거를 이렇게 명확히 보여준 데이터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블랙홀 충돌은 약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지구가 원시 상태일 때의 충돌이 이제야 전해진 셈이다.
◇새로운 천문학 시대 열렸다=중력파 관측은 지난해 9월 14일 이뤄졌다. 관측 장비 ‘어드밴스드 라이고(
Advanced LIGO)’가 가동을 시작한 지 사흘째였다. 레이저 간섭현상을 이용해 중력파를 찾는 라이고는 미국 워싱턴주 핸포드와 이곳에서 약 3000㎞ 떨어진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에 설치돼 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더 많은 중력파가 관측될 것으로 예상한다. 라이고의 감도가 3배쯤 향상되는 데다 유럽은 올해 하반기부터, 인도와 일본도 수년 내에 관측 장비를 가동한다.
중력파는 전자기파가 볼 수 없는 블랙홀 내부의 정보를 보여준다. 물질의 영향을 받지 않고 퍼져 아주 먼 옛날의 정보도 간직하고 있다. 초기 우주의 모습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인간이 중력을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웜홀 시간여행’이나 영화 ‘스타워즈’의 ‘행성 간 순간 이동’도 현실이 될 수 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오정근 박사는 “전자기를 처음 발견했을 때도 어디에 쓰겠느냐고 했지만 지금 스마트폰 등 무선통신에 이용하고 있다. 지금은 꿈같은 일이어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라이고 프로젝트를 이끈 킵 손 캘리포니아공대 명예교수는 “중력파 관측이 우리를 시간여행에 더 가깝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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