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1939년 광서에서 울려펴진 "아리랑" 이 남긴 여운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1월16일 15시33분    조회:464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16일 오전, 연변군중예술관 회의실에서  "중국조선족아리랑"학술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연변문화예술연구중심의 주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 절강월수외국어대학의 리광인교수의 "항전시기 계림-서안에서의 가극 '아리랑'공연과 그 비교연구", 국가급 무형문화재 "아리랑"타령의 전승인 김남호의 "중국 아리랑'타령'의 꿈", 조선족음악가 김봉관의 "중국조선족민요 '아리랑'에 대하여", 연변대학 예술학원 남희철교수의 "아리랑의 음악구조적특징과 '버리고'의 의미", 평론가 최삼룡의 "연극과 영화에서 '아리랑'" 등 론문이 발표됐다.


리광인교수의 "항전시기 계림-서안에서의 가극 '아리랑'공연과 그 비교연구"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1940년 5월 서안에서 공연된 가극 "아리랑"이 우리 전체 조선민족의 첫 가극인줄로 알았다. 그러나 1939년 3월 광서 계림에서 조선의용군대 제2대 의해 가극 "아리랑"이 공연되였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중국에서의 아리랑연구는 새로운 시점을 가지게 되였다.

이땅에서 살아가는 중국 조선민족의 항일투쟁력사를 헤아려보면 1939년 3월 중국 계림 신화대국장에서 항일의 최전선에 나선 조선의용대 제2대가 자체로 창작한 가극 "아리랑"을 무대에 올렸고 그후 조선의용대 제2대가 자기들 활동지구인 호북 老河口를 망라하여 국민당 제5전구내에서 수차 공연의 막을 올리였음을 보아낼수 있다.

또 다른 아리랑을 공연한 력사적사실을 말한다. 1939년 11월 11일 중경에서 발족된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1940년 5월 22일 서안 남원문실험극장에서 7일을 기한으로 한 항전부대위문공연 첫 공연을 가지기로 하였지만 관중들의 강렬한 요구에 의해 3일을 더 연장하기도 했다.

두 가극 아리랑에 대한 중국인들의 평가는 어떠했을가?
 
계림에서 평가는 다음과 같다.
 아리랑의 선율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아니 아름답기보다는 뭔가 침통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가 묻어나오는 노래였다. 조선민족의 고통을 담은 듯한 아리랑의 선율은 망국민의 한을 노래한 것처럼 들렸다. 아리랑의 선율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당하고 있는 중국인의 상심을 대신 노래하는것처럼 들렸다.

또 다른 평가는 이러했다. 조선의 민요 “아리랑”을 들으면서 마치 조선의 망국을 슬퍼하는듯한 애잔한 선률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면 다시는 고향산천으로 돌아갈수 없고 하염없이 이역을 류량해야 하는데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 중화민족의 충만한 항전의지, 고조된 중한 두 민족 합작정신, 조선의 영용한 아들딸들이 혁명을 위해 흘리는 피가 있는 수십년의 치욕은 금세 씻어질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리랑" 산길은 중한 두 민족을 부흥의 길로 인도하는 탄탄대로로 바뀔것이며 "아리랑"이 선률도 경쾌한 곡조로 바뀌게 될것이다.

서안일보에서는 어떻게 평가했을가?
서안일보는 "놀랄만한 일이다. 신형식의 가극이며 중국 가극계에서 볼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는 주목할만한 형식 실험"이라고 극찬하였다. 또한 한국청년전지공작대으 공연목적이 중국항일운동의 일환이고 공연수입을 전방 장병들의 여름복해결을 위한 의연금모집에 두었기에 반향과 호응이 대단히 뜨거웠다고 찬사를 주었다.

이번 학술세미나에서 중국 아리랑 공연 력사에 한획을 그었던 한유한,김창만, 김영,라운규 등 인물들을 거론하였다. 특히 한유한에 대한 소개가 관심을 끌었다.'팔로군행진곡'의 작곡가 정률성은 중국과 조선은 물론 한국에서도 음악사에 남을 위대한 음악가로 칭송되고있지만 한유한의 이름 석자는 잊혀졌다.대한민국예술원이 개원 50주년을 기념해 14일 마련한 국제예술심포지엄에서 량모춘(梁茂春) 북경 중앙음악학원 교수가 그의이름을 살려내면서 한유한에 대한 연구도 새롭게 시작되였다.

아리랑에 대한 해석을 남녀사이 애정풀이가 아닌 폭 넓은 중국조선족의 한, 넋, 얼에 엉킨 해석으로 학자들은 풀이했다. 
앞으로 아리랑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계속 함으로써 중국조선족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어떤 훌륭한 계기가 되였으면 하는 바램의 장이였다. 
 
 원 연변일보 부주필이였던 장정일은 소감발표를 이렇게 달리했다. "아리랑은 아는 나자신이라는 아이고 리는 리치이라는 리로 랑은 즐거움이라 풀이되는데 아리랑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길을 즐겁다라면서 자아를 실현하는 길을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해설도 있다고 했다."

이날 전문가와 학자, 연변 주내 무형문화재 보호단위와 부분적 성급이상 무형문화재전승인, 문화일군 30여명이 회의에 참가했다.

조글로미디어  김성화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72
  •         조선반도의 삼국승려와 대륙고찰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옛날 옛적의 이야기이다. 해상 교통로를 따라 산동(山東)반도에 상륙한 신라인들은 다시 육상 교통로를 따라 내륙으로 향했다. 바닷가부터 두발로 날마다 백 리 지어 몇백 리를 이어지는 여로에서...
  • 2016-05-10
  •       (흑룡강신문=하얼빈) 정강산(井岡山)의 이름은 강서성 서남부의 산골마을에서 시작된다. 시초에는 마을 주변에 산이 둘린 지세가 우물을 방불케 하고 또 마을에 강이 흐른다고 해서 우물과 강을 합쳐 '정강산촌(井江山村)'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현지인들의 발음에서 물 이름 '강...
  • 2016-04-25
  • 1999년 교수 집서 강탈한 문화재 강도·장물취득 시효 만료됐지만 은닉죄는 경매 출품때 시효 시작   1999년 1월 25일, 대전의 한 대학 한문학 교수 조모씨의 집에 30대로 추정되는 괴한 둘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문화재 13점을 훔쳐 달아났다. 도난품 중에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紀異)편 1책(한 ...
  • 2016-04-22
  •      조선반도의 삼국승려와 대륙고찰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서호(西湖)의 기슭에 이른 후 제일 먼저 만난 건 실은 시인이었다. 호수를 다리처럼 가로타고 남북으로 길게 누운 언제, 그 언제 어귀에 시인 소식(蘇軾)의 조각상이 그 무슨 표지석처럼 우두커니 서있었다. ...
  • 2016-04-21
  • 특별기고-겨레홍군 장정 발자취 따라(3) ■ 리 함 2013년 8월 27일 오전, 영신현성을 떠난 택시는 룡원구다리를 거쳐 계속 삼만개편 현지로 달린다. 삼만개편 현지를 이룬 삼만촌은 영신현서부의 구롱산 북쪽(九陇山北麓), 영신-정강산-련화(莲花)-호남 차릉(茶陵 )4개 현, 시의 교차지에 위치하고있었다. 현성과의 거리가...
  • 2016-04-13
  •        조선반도의 삼국승려와 대륙고찰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산에는 '나무꾼과 선녀'의 설화가 있다. 옛날 옛적에 나무꾼이 사슴의 보은으로 선녀와 부부를 맺게 되었다고 하는 천상 연분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보타산(普陀山)의 산길에는 나무꾼이 ...
  • 2016-03-17
  • (사진설명: 젊은 시절의 전병균) (사진설명: 황포군관학교 옛터) 1926년, 중국에는 대륙을 돌풍처럼 휩쓴 전쟁이 일어난다. 광동의 국민정부가 국민혁명군을 주력으로 삼아 진행한 통일전쟁이었다. 훗날 이 전쟁은 일명 '북벌(北伐) 전쟁'으로 사책의 한 페이지를 기록한다. 북벌전쟁에는 여타의 전사(戰史)처럼 많...
  • 2016-03-12
  • (흑룡강신문=하얼빈) 솔직히 행선지에 가면서 제일 먼저 눈앞에 떠올린 건 원숭이였다. 자칫 '붉은 원숭이의 해' 즉 2016년 병신년(丙申年)에 시작한 첫 답사 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행선지에는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손오공(孫悟空)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손오공은 신괴(神怪) 소설 《서유기(西...
  • 2016-03-04
  •        조선반도의 삼국승려와 대륙고찰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솔직히 뭔가 빗나가는 것 같다. 산이 아니라 식탁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야채 가지(茄子)를 경상도에서 궁중에 진상하였다는 내용은 《춘관통고(春官通考)》(1788) 등 문헌에 기록되어 있...
  • 2016-02-18
  • 실무 주역 서학동 市 부국장 "일본의 '安=테러리스트' 주장, 역사적 자료로 누르고 싶었어요"    안중근기념관 설립을 주도한 조선족 3세인 서학동 하얼빈시 문화국 부국장이 안중근 의사 초상화 앞에서 기념관 내부를 설명하고 있다. /손진석 기자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
  • 2016-01-27
  •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연길시에서 국내외 예술단체들이 공연할때면 어김없이 '연변예술극장'(후에 로동자문화궁으로 개칭,이하 극장으로 약칭)을 리용한다. 그런데 이 극장터가 바로 일제시기에 악명높았던 연길감옥옛터라는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극장 남쪽에는 &...
  • 2016-01-22
  • 중국에서 활동한 항일투사들의 유적 답사기 '역사를 따라 걷다' 2권을 발간한 독립기념관 김주용 선임연구위원. 김주용(46)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위원이 중국 일대 답사를 통해 발굴한 무명 독립운동가의 활동상과 유적지를 소개한 ‘역사를 따라 걷다’2권을 18일 출간했다. 일제강점기 해외독립운동사 ...
  • 2016-01-19
  • 항저우임정청사 0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11기 독립정신답사단이 21일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저우 청사를 둘러보고 있다. / 사진 = 손지은 기자 @sson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11기 독립정신답사단] 중국 내 임시정부 초기 발자취 찾아나선 2400km의 대장정 상하이-자싱-항저우-난징까지 이...
  • 2015-12-30
  • 최고 지도부 참석, 대일 메시지 전달 예정 (난징=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중국이 78년 전 중국 난징(南京)대학살 희생자를 기리는 국가 차원의 추모행사를 올해 두 번째로 거행한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제정된 난징대학살 희생자 국가추모일을 맞아 13일 대학살의 현장인 장쑤(江蘇)성 난징 시내 '난징대...
  • 2015-12-13
  • 국정교과서에 당시 열악한 경제 상황도 설명 교육부, 편찬기준 새누리 보고 정부와 새누리당은 2017년부터 중·고교에서 쓰일 국정 역사 교과서에 ‘5·16 군사정변’이란 용어를 현행처럼 사용하되 당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부분을 함께 서술하기로 했다. 또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
  • 2015-12-11
  • 지난 11월 10일, 서울시 영등포구청에서 공무원들을 상대로 조선족이해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재한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 김정룡소장.   재한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 김정룡소장   (흑룡강신문=하얼빈)나춘봉 서울특파원= “조선족들은 죽기살기로 항일에 나섰다. 그래서 연변에 가면 ‘산마다 진달래요. 마...
  • 2015-12-07
  •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만주와 중국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 우당 이회영 선생의 83주기 추모식이 오는 17일 오후 2시 서울 상동교회에서 열린다고 15일 밝혔다.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추모식에는 이경근 서울보훈지방청장을 비롯한 200여 명이 참석...
  • 2015-11-16
  • 홍범도 장군 항일투쟁사 새롭게 조명…국제적 평가 위한 자리로 마련 “홍범도 장군이 지휘한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은 중국 조선민족사에 휘황찬란한 한 페이지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동북지역의 반일 무장투쟁에도 빛나는 한 페이지를 남겼다.” (사)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이사장 이종찬)가 지난...
  • 2015-10-27
  • 민족출판사 조선어 편집실과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가 공동 주최한 《중국조선족 항일지사 100인》 항전승리 70주년 기념도서 발간식이 2015년10월23일 오후 북경 민족출판사에서 열렸다. 발간식은 중국인민해방군 공군 리광남대좌, 중앙민족대학 강기주교수, 민족출판사 조선어 편집실 박문봉주임, 중앙인민방송국 조선...
  • 2015-10-26
  • [하얼빈 민족운동사학회 학술회의] 中동북지역 항일 투쟁을 주제로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했을 때 재중(在中) 한인(韓人) 2만1000명이 항일투쟁에 참가했고, 그중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한국의 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해 싸우는 동시에 중국에서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했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
  • 2015-10-26
‹처음  이전 5 6 7 8 9 10 11 12 13 14 1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