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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림기획련재16] 한강의 기슭에 울린 신라사의 종소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6월3일 11시41분    조회:2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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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반도의 삼국승려와 대륙고찰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땅의 이름은 무심코 생긴 게 아니다. 설화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나침반처럼 위치를 나타내며 또 거울처럼 모양을 흉내 낸다.한양(漢陽)은 "놈을 기르다"는 뜻의 한양(漢養)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실은 한강(漢江)의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불린 이름이라고 한다. 산의 남쪽, 물의 북쪽을 '양陽'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한양의 삼각산은 세 봉우리가 흡사 세모꼴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한강(漢江)은 삼각산의 근처에서 장강(長江)에 흘러들고 있다. 장강은 대륙의 제일 긴 강이며, 한강은 장강의 제일 긴 지류이다.

 한강의 동트는 아침.

  "가만,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하고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누구라도 머리를 갸우뚱할 법한다.

  그러나 백번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이 한양은 대륙 중부에 위치한 무한(武漢)의 옛 이름이기 때문이다. 몸뚱이에 '발'이 달려서 대륙에서 반도로 건너간 동명의 지명이라는 것. 실제로 한강은 백제가 이에 앞서 동진(東晉)과 교류하면서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여 중국식으로 고쳐서 부른 강 이름이라고 전한다.

  한인(漢人)은 한(漢)나라 때문에 민족의 이름을 얻었고, 한나라는 유방(劉邦)이 한중왕(漢中王)으로 분봉되면서 얻은 이름이다. 한중(漢中)의 곡지(谷地)는 한족(漢族)의 발원지인데, 그 지명 내원은 한양과 마찬가지로 한수(漢水) 즉 한강과 이어진다.

  그러고 보면 한족의 발원지가 어찌어찌하여 한민족의 삶의 터전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반도의 한양의 지명 역시 한강처럼 대륙보다 뒤늦게 출현했다. 대륙의 한양은 수양제(隋煬帝)가 605년 한진현(漢津縣)을 개명하면서 나타났다. 한진현은 나루 진(津)을 이름에 넣었듯 역시 한양처럼 한강으로 인해 생긴 지명이다. 반도의 한양은 신라 경덕왕(742~764) 때 한양군(漢陽郡)으로 불리면서 비로소 세상에 등극한다.

  경덕왕 하면 솔직히 한양보다 에밀레종을 눈앞에 떠올리게 된다. 에밀레종은 경덕왕이 선왕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아이가 어미를 부르는 소리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종의 제소리를 내게 하기 위해 아이를 쇳물에 던져 넣었으며, 엄마를 찾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종의 소리로 울린다는 것이다. 경주 성문을 여닫을 때면 어김없이 에밀레종을 타종(打鐘)했다고 한다.

  경주는 신라의 천년 수도로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 300㎞ 떨어져 있다.

  재미있는 일이 있다. 서울에서 남쪽으로 수백 리 상거한 고장에서 신라사(新羅寺)의 범종(梵鐘)은 동네방네 소문을 놓고 있었다.

  "가만, 이건 또 뭐지?"하고 누군가 또 고개를 갸우뚱할 법 한다. 하긴 입 밖에 뱉어낸 말을 금방 잊어버리고 경주를 곱씹어 말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또 주석을 하나 달아야 하겠다. 기실 이 서울은 당(唐)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을 말한다. 반도 서울 남쪽의 경주가 아니라 대륙 장안 남쪽의 안강(安康)에 신라사와 범종이 나타나고 있는 것. 당나라 정관(貞觀, 627~649) 연간의 일이니, 신라 경덕왕 때의 에밀레종보다 약 150년 앞서고 있었다.

  이번에는 지명이 아니라 범종에 발이 달리고, 또 반도에서 대륙으로 건너온 것이다.

  안강은 섬서성(陝西省)과 사천성(四川省), 호북성(湖北省)이 접경한 지역의 중심도시이다. 교통망이 발달하여 어느 때든 이동하기 쉽다. 장안 즉 오늘의 서안(西安)에서 열차로 불과 세 시간 정도 걸렸다. 일행은 안강에 도착하기 바삐 한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강공원의 뒷골목, 서울의 '달동네'인가.

  이른 아침의 한강 공원은 우리 일행만 있는 것처럼 조용하고 한적했다. 이웃한 한강대교에도 아직 다니는 차량이 드물었다. 강기슭의 건물에 걸려있는 '한성(漢城)'이라는 이름의 간판이 더구나 유표한 듯 했다. 서울의 옛 한자 이름이 바로 '한성'이 아니던가. 강가에서 산보하는 노인을 만나 영문을 물어보았다.

  "한강에서 생긴 이름인데요, 한강을 끼고 있는 도시니까 '한성'이라고 하는 거지요."

  실은 몇 년 전 한 부동산회사가 '한성'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어찌됐거나 인제는 서민들에게도 안강이자 '한성'이라는 이미지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 했다.

  그럴지라도 안강은 '한성' 즉 서울은 아니었다. 안강은 서진(西晉) 태강(太康) 원년(280), 부근 파산(巴山) 일대의 유민들을 안치하면서 '만년풍락(萬年豐樂), 안녕강태(安寧康泰)'의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안강시를 가로지른 한강대교.

  이 무렵 신라인들은 벌써 남쪽의 복건성(福建省) 용암(龍岩) 지역에 나타나고 있었고 뒤미처 대륙의 연해지역에 여기저기 군락으로 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옛 문헌의 기록으로 볼 때 안강에 나타난 신라인은 유민이나 이주민이 아닌 구법승과 사절이었다.

  당(唐)나라 정관 10년, 신라 승려 자장(慈藏)이 일행을 인솔하여 장안에 온다. 자장은 장안 남쪽의 종남산(終南山)에서 3년 동안 수도, 당태종의 두터운 예우를 받은 이국 승려이다. 그는 귀국한 후 경주의 황룡사(黃龍寺)에 9층 목탑을 세웠으며 제2대 주지로 있었다. 황룡사는 삼국시대의 제일 큰 사찰로 대표적인 왕실사찰이다.

  그만 이야기의 '물곬'이 바뀌었다. 다시 안강으로 돌아가자. 그때 자장의 제자 승실(僧實)이 사절과 함께 안강으로 왔는데, 승실은 동명의 한강을 보자 도무지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사찰을 세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게 해줄 것을 풍왕(酆王)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훗날 사찰 터에서 발굴된 비좌(碑座)의 위치로 볼 때 신라사의 대전은 서남쪽에 자리하고 동북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사찰은 분명히 반도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한강에 신라사를 세웠다는 옛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누군가 일부러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다. "당나라 정관 초, 풍왕이 신라 승려를 위해 (사찰을) 세웠다."고 명(明)나라 때의 지방문헌 《흥안주지(興安州志)》이 밝히고 있다.

  풍왕 이원형(李元亨)은 고조(高祖) 이연(李淵)의 막내아들이다. 정관 연간 이원형은 금주(金州) 자사(刺史)로 임명되었다. 금주는 안강의 옛 별칭이다. 이 금주는 또 반도의 경상남도 김해에도 나타난다.

  승려 자장의 속성(俗姓)이 김씨라고 하니, 그야말로 일장 드라마를 만드는 것 같다.

  정작 기이한 이야기는 신라사에서 나온다. 먼 옛날 한강에 갑자기 홍수가 났다고 현지에 전하고 있다. 홍수는 하루 밤 사이에 안강의 위쪽에 작은 언덕을 만들었고, 한강은 이로 하여 물길을 바꿨다는 것이다. 신라사는 흔적 없이 물에 밀려갔고, 쇠로 만든 큰 종은 마치 가랑잎처럼 모래톱에 둥둥 떠내려갔다.

  그러나 현지에서 구전되는 민요는 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신라사를 허물고 사씨(謝氏) 무덤을 지었네.

  낮에는 천 그루의 참대가 보이지 않고

  밤에는 만 개의 등불이 켜지지 않네."

  사찰을 훼손한 사씨 가문에 불만을 토로한 이 민요는 또 신라사에 참대가 병풍처럼 서있고 불등(佛燈)이 찬란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8백년을 존속한 신라사는 사씨의 손에 의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다는 것이다. 사씨는 명明나라 중반 금주에서 어사(御使)로 있었던 사문(謝文)이라고 하는 관원을 말한다.

  종국적으로 '멸문지화'를 당한 건 신라사만 아니었다. "사문이 사찰을 허물고 조상을 묻었으며, 사찰이 파괴되고 사씨도 가문이 끊어졌다."고 《흥안주지》가 기록하고 있다. 허황한 욕심은 결국 사씨 가문에 화를 부른 것이다. 길지라고 빼앗아 사찰 터에 만든 사씨의 조상 무덤도 현재로선 종적을 찾을 수 없다.

  안강에는 옛 사찰은 일여덟 개 되는 걸로 전하고 있다. 와중에 신라사는 금주의 4대 사찰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신라 성덕대왕 신종神鐘의 이전 모습.

  신라사는 비록 신라 승려가 세웠다고 하지만 나중에 이름난 승려는 안강 출신의 고승 회양(懷讓)이다. 회양은 당경종(唐敬宗) 이담(李湛)에 의해 대혜(大慧) 선사의 시호(諡號)를 받은 고승이다. 회양은 12살 때 신라사에서 출가했으며 한때 신라사에서 수도했다고 한다. "신라사가 주州의 치소 서쪽 6리 되는 곳에 있으며 회양 선사의 암자가 있다"고 《명일통지(明一統志)》가 밝히고 있다.

  솔직히 신라사는 사씨가 훼손할 무렵 벌써 피폐해진 듯하다. 무덤자리로 쓰겠다고 사찰을 밀어버리는 일은 황제라도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사씨는 사찰을 허문 후 종, 불상 등 물품을 강가에 버린 듯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사람들은 종이 '홍수'에 의해 떠내려간 것으로 여긴 것이다.

  신라사의 이 종은 "송(宋)나라 가정(嘉定) 7년(1214)에 만든 종으로 높이가 다섯 자 여섯 치요, 허리의 둘레가 석자 여덟 치이며 무게가 만근이다"고 민국(民國, 1912~1949) 시기에 편찬된 《중속흥안주지(重續興安州志)》가 기록하고 있다.

  《안강현지(安康縣志)》 등 지방문헌의 기술에 따르면 신라사의 종은 성내의 중양궁(重陽宮)에 방치하다가 또 백신묘(百神廟)의 소유로 되는 등 이리저리 자리를 옮긴다. 신라가 망한 후 에밀레종이 한때 천덕꾸러기의 신세가 되었다더니 사찰이 파괴된 후 신라종은 주처(住處)를 잃은 것이다.

 향계동의 삼천문을 지나면 신라종이 있는 도관이 나타난다.

  항일전쟁 시기, 신라사의 종은 옛 성 북문에 이전되어 방공경보 설비로 되었다. 20세기 80년대에는 홍계동(紅溪洞)풍경구에 특별히 종각을 만들어 보관하였다고 한다. 홍계동은 말이 풍경구이지 그보다 도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도교 신화에서 등장하는 여덟 신선의 하나인 여동빈(呂洞賓)이 수련하면서 선단(仙丹)을 굽던 곳이라고 전한다.

  여동빈의 수련장소라고 하는 팔선동(八仙洞) 등 홍계동의 명소는 무려 50개가 넘는다. 그러나 일행은 다른 데는 제쳐놓고 곧바로 종각이 있는 산마루로 직행했다. 하늘로 통하는 사다리라는 의미의 천제(天梯)를 톺아 오르자 종각은 인차 시선에 뛰어들고 있었다.

  종각 관리인은 50대의 아줌마였다. 인기척을 듣고 어느 결에 바람처럼 달려와 종각의 자물쇠를 열어준다.

  홍계동 종각의 종은 대륙의 유일한 신라 성씨의 종이다. 진품은 지난해부터 박물관에 소장되고 홍계동의 종각에 걸려 있는 종은 모조품이었다. 당목(撞木) 역시 옛 '진품'이 아니었다. 밋밋한 망치나 바다의 고래가 아니라 중국의 습관대로 용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종각에 걸려 있는 신라종, 뒤에 도교 설화를 형상한 그림들이 있다.

  범종은 절에서 사람이 모이게 하거나 시각을 알리기 위하여 치는데, 종교적으로는 종소리를 듣는 순간만이라도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종을 한번 치는데 1원인데요, 무척 싸죠?" 관리원 아줌마가 은근히 권하는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신라종은 아주 영험하다고 한다. 명절이면 복을 빌기 위해 종을 치는 사람이 종각 앞에 줄을 설 정도라고 한다.

  "한번이나 열 번이 아니고 108번을 치는 사람도 있어요."

  108번의 타종은 인간의 108개의 번뇌 즉 인간의 모든 번뇌를 없애기 위해 절을 하면서 마음을 내려놓는 불교의 수행법인 108배(拜)와 비슷한 말이다. "강을 건너면 귤나무도 탱자나무가 된다"고 하더니 사찰의 범종은 도관에 온 후 중생의 서원을 들어주는 안식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기실 사찰 자체가 이역에 살고 있는 신라인들의 마음의 안식처요, 구심점이었다. 대륙의 신라인들의 군락마다 부근에 사찰이 등장하고 있었다면 신라사의 부근에는 또 신라인들이 꼭 촌락으로 집거하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한강 신라사 부근에 신라인들이 집단적으로 살고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기록은 지방문헌에 단 한 줄도 남아있지 않는다. 향냄새가 없는 종소리에는 부처의 모습이 없었다."산에 가면 산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서원을 하고 타종을 했다. 웅근 종소리에 귀가 다 먹먹하다. 아, 한강 기슭의 한양에 이 신라종의 소리가 들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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