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어느 독립운동가들의 마지막 삶 - 홍범도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6월12일 08시01분    조회:133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오직 세월만이 그의 오랜 동지로”

평양에서 크질오르다까지
<만인보>에는 홍범도(1868~1943)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두 편의 시가 같은 제목으로 등장한다.
 
외금강 신계사
사미승 등명(燈明)
 
나뭇짐 벌떡 일어서면
저 비로봉 영랑봉 들도 눈을 껌벅여온다
 
어제의 고아
내일의 혁명가 홍범도의 법명 등명
신계사 앞
신계천 물소리 잠들었다
 
저 청산리
저 씨베리아
저 대륙 아득한 황무지 타슈켄트의 아비였다
< … >
(‘사미승 등명’, 18권)
 
의병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그의 생애는 또 다른 ‘사미승 등명’에서 보다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평안도 후창 후창강 강물소리 힘차다
바람소리 힘차다
아기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는 숨졌다
암죽 먹었다
여덟살에 아버지 숨졌다
열살에 머슴이 되었다
열다섯살에
열일곱살이라 나이 올려
평양 군대에 들어갔다
 
머슴 때는 통소를 불었으나
군대에서는 나팔수였다
총을 잘 쏘았다
명중
또 명중이었다
 
부패상관 두들겨패고 뛰었다
탈영
삯전 삼킨 공장주인 죽이고 뛰었다
쫓기는 살인범
떠돌다
묘향산 보현사 불목하니가 되었다
 
한 뜻있는 비구의 소개로
금강산 신계사로 갔다
지담대사 제자가 되어
법명 등명(燈明)
세상의 등불 되라 했다
 
새 속명도
범도라 받았다
큰뜻을 도모하라 했다
 
신계사 암자 사미니와
눈맞았다
그녀 옥녀와
물 떠놓고
부부가 되어 떠났다
 
큰 운명이 시작되었다
< … >
 
(‘사미승 등명’, 16권)
 
일찍 고아가 되어 머슴, 나팔수, 제지공 등을 거치며 불의한 상관과 공장주인을 두고 보지 못했던 그가, 한때 사미승 등명이 되어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지담 대사를 시봉하며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후 그는 광산 노동자로도 잠시 일했으나 출중한 사격술 덕분에 오랫동안 산포수 생활을 하게 된다. 1907년 함경도 갑산의 산포수들을 중심으로 의병대를 조직해 항일투쟁에 들어선 이후, 전투마다 승승장구해 일본군이 ‘나는(飛) 장군(將軍)’이라 불렀다는 이 전설적인 의병장은, 일본군에 볼모로 잡혀 당당히 맞서던 아내가 고문으로 옥사하고 그 얼마 후 장남마저 전사하는 비극에도 불구하고, 무장투쟁을 지속해 1920년 그 유명한 봉오동전투의 역사를 쓰게 된다.
 
참고로, 봉오동전투에서 빠뜨릴 수 없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는데, 당시 북로독군부 참모장을 맡고 있던 최운산 장군(1885~1945)이다. 중국 옌지(연길·延吉)에서 태어난 그는 1910년 형 최진동, 동생 최치흥과 함께 만주로 이주해 간도 지역의 황무지였던 봉오동을 동포들과 함께 개간하고 '신한촌'(新韓村)을 건설했다. 또한 봉오동사관학교를 설립해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했는데, 그는 자신이 모은 전 재산을 항일무장독립투쟁을 위해 사용함으로써―투쟁기지 건설, 독립군의 식량과 군복, 무기 공급 등―무장부대인 군무도독부, 북로독군부, 북로군정서가 창설될 때에도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무장독립군들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회군, 최운산 형제들의 군무도독부를 통합해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라는 독립군 연합부대를 조직했는데, 봉오동전투의 성공에는 이렇게 철저한 준비가 있었던 셈이다.
 
봉오동전투(1920년 6월6~7일)에 이어 몇 달 뒤 청산리전투(1920년 10월21~26일)에서도 김좌진·최진동부대와 함께 일본군을 격파한 홍범도부대는 일본의 간도대학살(경신참변)로 인해 많은 독립군들처럼 시베리아로 이동해갔고, 1921년 6월27일 러시아령 아무르 주 스바보드늬(‘자유로운’이라는 뜻의 시 이름, 구 알렉세예프스크)에서 이른바 ‘자유시 참변’을 겪게 된다. 적군과 백군이 내전 중이던 소련에서 적군―백군은 일본과 연계되어 있었으므로―을 돕고 단합된 힘으로 대일항전을 전개하기 위해 자유시에 총집결한 독립군 부대들은, 군통수권 장악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상하이파 고려공산당 사이의 갈등에 코민테른과 소련 적군이 개입함으로써 참변을 맞게 된다. 대한독립군단의 소수파인 이르쿠츠크파의 편을 든 소련의 적군은 자유시에 집결한 대한독립군단의 부대들 중 투항하지 않은 독립군들을 대량사살하고 생존자들을 포로로 잡아 수용소에 보내는데, 이는 조선독립군 세력을 와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자유시 참변이 더욱 비통한 이유는, 이 비극이 독립을 위해 일본군과 싸우다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독립군 내부의 갈등, 코민테른 동양비서부와 극동공화국정부의 정책 등이 얽혀 독립군이 사살되고 조직이 파괴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홍범도군대는 이 사건으로 인해 러시아 적군에 편입되었고 홍범도 장군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한다(앞서 소개한 첫 번째 시에 “타슈켄트의 아비”라는 표현이 있어 우즈베키스탄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여천(汝千) 홍범도(洪範圖, 시에서 언급한 새 속명은 範道). 평양에서 태어나 만주로, 시베리아로, 온몸과 마음을 독립운동에 바쳤던 전설의 용장(勇將)은 카자흐스탄의 황무지에서 움막생활을 하다가 1938년 크질오르다(현 키질로르다)로 이주해 고려인극장의 수위로, 광복을 2년 앞두고 마지막 삶을 마감한다. 여천 스스로 원해서 고려인극장의 수위로 근무하였다고 하니, 노녀의 나이에도 마지막까지 동포들 옆에서 그들을 지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한편, 1943년 10월 25일 그가 눈을 감기 전 벗들을 불러 돼지를 잡아 대접했다고 하니, 이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삶이 고난의 연속이었을지언정, 쓸쓸하게만 끝났다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 등을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의 동상.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지역에 있는 이 묘역은 95년에 설립된 ‘홍범도 펀드’가 관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림동 판자촌의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처럼 이름 알려진 독립군 대장이 아니라 그 대장을 따라, 또한 온몸과 온 마음을 던져 싸웠던 수많은 독립군 병사들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들을 대표하여 여기 고은 시인이 소개하는 한 인물, “진짜 애국자”가 있다.
 
나이 90세로 살아 있었다
만주벌판 독립군 전사 이우석
< … >
관악산 밑 어느 구석방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
한번도 빛나는 영예 받아 본 적 없다
 
열여섯살로 독립군 전사가 되어
북로군정서 서일 휘하
블라지보스또끄에서
북간도 여기저기 무기수송 임무를 맡았다
 
전우끼리 서로 바지저고리 나눠입고
사흘 굶어도
밀전병 한 조각도 나눠먹고
청산리 1백여리 긴 골짜기
어랑촌 백운평에서
일본군 나남 14사단 신예병력과 맞서
그는 백병전 전사였다
 
체코총 들고 싸우다가 살아나
전우들 다 죽어갔는데
그는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굵직굵직 주름살 패어나
오직 세월만이 그의 오랜 동지로
서울의 한 빈민굴 구석방
호호 추위에 곱은 손 비비며 살아 있었다
 
이것이 진짜 애국자이고 독립운동가였다
싸운 것 몇천배로 받아먹지 않는
(‘이우석’, 13권)
 
시에서 언급하듯이, 이우석(1896~1994) 선생은 서일(1881~1921) 장군의 북로군정서에서 소속되어 무기 수송 임무를 수행했고, 4중대 4소대 4분대장으로 청산리 전투에 참가했다. 그러나 자유시 참변으로 인해 포로수용소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그는, 이후 포로수용소를 탈출해 만주로 돌아가 다시 독립운동을 하다가 농사를 지으며 해방을 맞게 된다. 1947년 남한으로 귀국한 그는 생계에 시달리며 고단한 삶을 연명해야 했으나, 그를 더욱 괴롭힌 것은 한일협정을 지켜봐야 했다는 점일 것이다. 18년 후 그에게 주어진 보상은 오만천원의 연금으로, 신림동 난곡 철거민촌에서 노부부는 남편의 막노동과 아내의 파출부 일로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그의 고결한 신념과 열정어린 투쟁의 삶은 그가 인생의 마지막에 담담하게 써내려간 수기에 소중히 담겨 있다.
 
만주벌 독립운동가로 마지막 생존자이셨던 선생께서 떠나신 지 이십삼 년, 이우석 옹을 그린 또 다른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민병일 시 이지상 곡)이 들려주는 노래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만주벌판의 독립군 병사들이 우리에게 달려오리라.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
 

ⓒ 맛있는 뉴스토마토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72
  • 더불어민주당 여성위, '류석춘 교수 파면하라'(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류석춘 연세대 교수는 지난 9월 '발전사회학' 강의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했다. (서울=연합뉴스) 권선미 기자 = 수업 도중 일본군 위안부를 성매매에 비유하고, 이에 항의하는 여학생에게 성희롱...
  • 2019-12-27
  •   모안영 순국기념일인 11월 25일, 30여명 심양시 조선족 로인들이 항미원조렬사릉원을 단체로 참배했다.   이들은 또한 민간단체 항미원조렬사감은퇀 제2퇀의 성원들이다. 심양시 화평구 서탑가두 주민구역써비스센터 손열(孙悦) 주임을 단장으로 하는 항미원조렬사감은퇀은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과 항...
  • 2019-11-26
  • [연변]모주석이 리종률에 총을 장려하다 지난 10월 1일, 집에서 수도 북경에서 거행된 새 중국 창건 70돐 맞이 열병식 생중계를 관람하는 룡정시 로투구진 로서촌의 로민병 리종률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보무당당 천안문광장을 지나는 열병대오를 보면서 리종률은 천천히 70년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196...
  • 2019-10-18
  • [70년 기억속의 연변]    이 오래된 흑백사진은 1962년 6월 22일에 촬영한 것으로 변강인민들에 대한 주은래총리의 사랑을 기록했다.   당시 연변에서 시찰중이던 주총리는 주당위 뒤 울안에서 전 주 간부사업회의를 마친 뒤 연변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총리가 연길에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수천명...
  • 2019-10-16
  • 9월18일 "9.18"사변 88돐을 맞아 장춘시 각계 인사들은 장춘위만황궁박물원 동북함락사진렬관에서 선서, 서명 등 다양한 기념활동들을 펼치였다./중신넷 
  • 2019-09-19
  •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차 대전 후 '하켄크로이츠' 사용 불법으로 금지한 獨과 달리 日에선 해상자위대 등 군기로 여전히 사용] /사진=AFP"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이 논의(경기장 내 욱일기 허용)의 초기부터 경기장은 어떠한 정치적 주장의 자리가 돼서는 안된다고 말해왔다. 대회 기간 중 문제가 생겼을 경...
  • 2019-09-14
  •     (흑룡강신문=서울) 우리민족 기원 연구에 대한 국제학술회의(Korean Origins Research International Symposium)가 지난 8월 30일(금)에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이시형, 이하 KF) 글로벌센터세미나실(서울 중구 수하동)에서 개최되었다. 회의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 호주 등 지역의 ...
  • 2019-09-10
  • 日 강제동원 피해자 영상 세계가 호응 / 4분 분량 ‘당신 탓이 아닙니다’ / 일주일 만에 조회 13만건 달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영상의 한 장면.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일본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입장과 목소리를 담은 해외 홍보 영상 ‘당신 탓이 아닙니다(It’s not your&...
  • 2019-09-05
  • 민주당 이석현 의원 "동포사회 영향력 키우려 무리한 해석" 김좌진 장군[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초등학교 교과서에 윤동주 시인이 '재외동포'로 기술된 것을 두고 논란이 발생한 가운데 이를 추진한 재외동포재단(이하 재단)이 윤동주 시인 외에도 김좌진, 홍범도 장군 등 다른 독립운동...
  • 2019-08-22
  • 합니하, 삼원포에서 신흥의 흔적을 찾다(하)          김창영 이제, 일행은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경학사 옛터를 답사할 차례다. 신흥무관학교는 널리 알려졌으나 "경학사" 하면 머리를 갸우뚱 할 사람이 있음직 하여 먼저 "만주 벌판에 뿌린 조국 광복의 씨앗"(박도)이란 글에 소개된 경학사의...
  • 2019-08-06
  • 소녀상 출품된 나고야 아이치트리엔날레 기획전, 사흘만에 중단 소녀상, 2012년 도쿄도립미술관 이어 두번째 철거 日 정부, 전방위 압력…작가·큐레이터들 "일방 통보" 반발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서울=연합뉴스) 다음달 1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
  • 2019-08-03
  • 한국 대전시교육청은 교원 및 교육전문직원 29명을 조직해 23일부터 28일까지 5박 6일간 ‘2019년 교원 력사, 통일 력량강화 연수'를 실시했다.     이번 연수는 '3·1 독립운동' 및 '한국 림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추진되였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독립운동...
  • 2019-07-31
  • 료녕성조선족련의회가 임기교체 후 첫 스타트로 공화국 창립 70주년을 계기로 우리 민족의 발전력사와 예술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전을 기획해 성내 여러 도시에서 순회전을 할 예정이다.  7월 18일,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주년 경축 테마의 '료녕성조선족...
  • 2019-07-19
  • 중국항일투쟁 연고자가족들이 9일 조선 국제친선전람관을 참관하였다.   그들은 전람관에 모신 김일성동지, 김정일동지, 항일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랍상을 우러러 인사를 드렸다.   연고자가족들은 세계 수많은 나라의 당 및 국가, 정부수반들과 저명한 인사들이 보낸 선물들을 감동속에서 돌아보았다. 중국항...
  • 2019-07-16
  •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평화의 소녀상에 침을 뱉는 등 모욕적 행위를 했던 한국인 청년 4명 중 일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사과를 끝내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그동안 고소장 제출을 미뤄왔던 나눔의 집은 지난 10일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호시설 ‘나눔의 집&rsquo...
  • 2019-07-12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1군―위급 군관 최일현(崔一贤, 1906―1939):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 제7퇀 제4련 련장 1906년 8월 17일, 조선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출생했고 1932년에 유격대에 입대했으며 1939년 봄에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 제7퇀 제4련 련장이 되였다. 같은 해 12월 17일, ...
  • 2019-07-11
  •    ‘일대일로’ 건설과 변강민족지구 및 과경민족발전을 주제로 한 중국조선민족사학회 2019년 학술년회가 7월 2일부터 3일까지 이틀간 장춘에 있는 길림건축대학교에서 열렸다. 사학회 정신철&nbs...
  • 2019-07-03
  • 칭다오 조선족단체 팸투어 처음으로 신비의 태항산 답사   칭다오 조선족단체 팸투어 처음으로 신비의 태항산 답사     (흑룡강신문=칭다오)이계옥 특약기자=황산, 태산, 장가계, 화산, 장백산 등 이미 널리 알려진 중국 명산을 다녀온 조선족은 많아도 요즘 새로 부상하는 태항산을 찾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
  • 2019-06-24
  • 동북항일련군 투쟁형세도 ―500명 조선인 장병이 주력인 동북항일련군 2군 6사의 로흑하밀영유적지 “12일, 장백산 지남구에서 동북항일련군의 유일한 밀영 성보를 발견했다”고 17일, 길림성인민정부 뉴스판공실에서 전했다. 12일, 장백산보호개발구 지남구 만강촌 촌민 3명은 산에서 들나물을 캐던중, 지남구 ...
  • 2019-06-18
  • 항일유적지 답사 실기(4)   그 산 그 강은 기억하네 최윤구, 80년만에 고향에 돌아오다                         김창영      리홍광의 석상이 모셔져 있는 신빈현 남산의 렬사릉원에서 주차장까지 내려와보니 시침은 벌써 12시를 넘어서...
  • 2019-06-13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