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가 중요한 것은 단지 그것이 실제로 존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력사는 오늘의 내가, 이 사회가, 이 나라가 존재하게 된 그 근원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력사는 과거이자 동시에 미래이기도 하다. 어제가 없는 오늘도, 오늘이 없는 래일도 없기 때문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종종 력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력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그 누군가의 어록이 있듯이 우리 교육 현장에서도 력사교육은 빠지지 않는다. 특히 중국공산당 창건 100돌을 맞으면서 홍색교육활동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하다.
마을의 쾌적한 환경.
25일, 우리 주 홍색당사당성교육기지인 연길시 조양천진 태흥촌은 방문객들로 북적북적 진풍경을 이뤘다.
마을의 력사를 바탕으로, 거기에 전통문화를 곁들여 새롭게 건설된 태흥촌은 살아 숨 쉬는 마을로 거듭났다.
마을입구에 세워진 비석.
원래 연길현 14구 태흥작업구였던 마을은 항일전쟁시기 연길현당위원회가 세워졌던 곳이다. 마을에 세워진 렬사기념비에는 항미원조전쟁에서 이 마을의 30여명이 용감하게 싸우다 희생됐다고 씌여있기도 하다.
중공동만특별위원회 옛터.
마을에서 눈에 띄는 ‘옛집’이 있다. 중공동만특별위원회 옛터를 그대로 복구한 곳이다.
70여년 전, 만주성당위 비서장 료여원이 이곳 태흥촌을 찾아 앞장서서 인민군중들의 항일 투지와 신념에 불을 지핀다. 1930년 10월 10일에 연길현 조양천진 무산촌, 지금의 연길시 조양천진 태동촌에서 중공동만특별위원회를 설립한다. 동만특별위원회는 1937년 가을까지 7년 동안 존재했다. 7년간 동만특별위원회는 선후하여 료여원, 동장영, 위증민 등 3명의 서기를 거치면서 항일유격대,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동북항일련군 제2군을 조직했고 10여개의 근거지를 창설했다. 이는 연변이 여러 민족 인민을 이끌고 반제반봉건투쟁을 진행하는 지도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동만특별위원회가 이끄는 인민군대는 중국공산당이 창건한 가장 이르고 항일시간이 가장 길며 가장 치렬한 투쟁을 벌린 인민항일군대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다. 또한 이들의 역할로 동부 만주지역은 동북 4대 유격구중 하나로 급부상했고 동북항일유격전쟁에서 중요한 력사지위를 차지한다.
중공동만특별위원회혁명력사전시관.
태흥촌을 찾는다면 꼭 들리게 되는 전시관이 있다. 중공동만특별위원회혁명력사전시관이다.
2층 구조로 지어진 전시관은 민족특색으로 지어진 독특한 건축물로 ‘기치’를 주제로 4개 부분을 품고 있는데 중국공산당이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을 이끌고 혁명투쟁을 전개하면서 거둔 풍성한 성과를 전시하고 있다. 더불어 력대 중앙지도자가 동북항일련군의 공헌에 대한 긍정과 우리 지역의 유명 항일영웅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관람객들이 전시관에서 해설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중공동만특별위원회는 중국공산당이 지도하는 중요한 지방당조직중 하나이며 우리 주 경내 첫 주급 당조직이자 주당위의 전신이기도 하다. 반일투쟁의 제1선에서 탄생한 중공동만특별위원회는 우리에게는 잊지 말아야할 중요한 력사의 징표로 다가온다.
력사가 깊은 만큼 태흥촌은 받아안은 영예도 많다. 수많은 영예중 태흥 마을사람들이 으뜸으로 내놓는 게 있다.
항일 로전사이며 태흥작업구의 당서기였던 정도준은 촌민들을 이끌고 생산로동을 틀어쥔 동시에 당중앙과 국무원에서 내린 ‘4해를 없애고 위생을 지킬 데 관한 지시’를 참답게 리행함으로써 1958년 국무원에 가 모택동 주석의 접견을 받고 주은래 총리가 직접 서명하여 발급한 ‘농업 사회주의건설 선진단위’ 영예증서를 받았다. 이는 우리 지역에서 처음으로 받은 ‘사회주의건설 선전단위’ 영예로 아름다운 미담으로 남아 태흥 마을사람들 속에서 몇대째 전해져내려오고 있다.
이제 태흥촌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성장보다는 성숙을, 삶의 량보다는 질을, 삶의 속도보다는 깊이를 채워가는 데 의미를 둔 듯 싶다.
겉잡을 수 없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충격 속에서 ‘력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은 시골의 일상을 홍색교육과 홍색관광, 체험관광에 접목해 도시민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잊혀져가는 력사를 다시 ‘소생’시켜 오랜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 교육현장에서 홀대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력사와 더불어 숨쉬고 있는 태흥촌의 사명감일지도 모른다.
글·사진 신연희 심연 기자
편집디자인 김광석/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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