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군의 K1A 개량형.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여기 조강지처(糟糠之妻ㆍ가난했을 때 고생을 같이 겪은 부인)가 있다. 이 여인은 막 가세가 기울어지려는 집안에 시집왔다. 그의 알뜰살뜰 살림 덕분에 집안은 다시 일어났다. 여인은 수술을 받으면서까지 55년 동안 부인이자 어머니 몫을 다했다. 그런데 집안이 여인을 버리려 한다. 특별한 잘못도 없는데, 더 좋은 부인과 어머니를 바란다는 이유에서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은 초기에 M14와 M16을 동시에 사용했다. 그러나 곧 반동이 세고 무거운 M14을 버리고 가벼우면서도 명중률이 높은 M16으로 갈아탔다. 사진은 월남군과 합동 작전 중인 미군 특수부대원이 M16을 들고 개울을 건너고 있다. [중앙포토]
'막장 드라마'와 같은 스토리에서 '여인'은 AR-15 소총이다. '집안'은 미국 육군. AR-15이 낯설다면 M16이라 바꿔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아말라이트라는 총기 제조사가 개발한 AR-15에 미 육군이 붙인 제식명이 M16다.
'수술'은 M16의 개머리판을 짧게 해 M4로 만든 걸 뜻한다. 미 육군이 제식 소총으로 생각한 M14가 결국 포기한 사실을 '가세가 기울어졌다'고 표현했다. M16는 원래 M14의 대타였다. 베트남전을 거치면서 가볍고 명중율이 높은 M16의 진가가 드러났다.
M16의 원형인 AR-15 광고. [사진 콜트]
그런데 미 육군은 1964년부터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한 M16과 M4를 버리려 하고 있다.
미 육군의 폴 오스트롭스키 중장은 3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차세대 분대화기(NGSW) 사업 일정을 보고했다. NGSW는 미 육군의 M4 소총과 M249 기관총을 각각 신형으로 바꾸는 사업이다. NGSW의 핵심은 5.56㎜ 구경의 탄약을 6.8㎜ 구경으로 키우겠다는 점이다. M4와 M249는 5.56㎜ 구경의 탄약을 쓴다.
미 육군이 NGSW 사업을 발표하면서 제시한 NGSW의 콘셉트 그래픽. 이 디자인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콘셉트의 소총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자료 미 육군]
오스트롭스키 중장은 “지난 1월 총기 제조사들에 사업 공고를 보냈다. 다음 달까지 제조사들로부터 프로토타입(원형)을 받은 뒤 평가를 거쳐 7월까지 소총(NGSW-R)과 기관총(NGSW-AR)에서 각각 3개의 후보군을 뽑겠다”고 말했다. 미 육군은 이후 2020년 4분기 또는 2021년 1분기에 최종 후보를 가린 뒤 2021년 4분기부터 실전배치할 계획이다.
‘새로운 구경의 탄약을 보급하는 게 어렵지 않나’는 질문에 대해 오스트롭스키 중장은 “약간의 도전(challenge)”이라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미 육군은 5.56㎜ 구경 말고 7.62㎜ 구경의 탄약(M60 기관총이나 M240 기관총용)도 보급하고 있다. 6.8㎜가 새로 들어온 건 큰 문제는 아니다. 또 100만명(현역과 예비역, 주방위군 포함)의 육군 전체 병력에 6.8㎜ 소총과 기관총을 주는 게 아니다. 보병이나 근접전을 벌이는 부대에 우선 보급할 예정인데, 이들은 10만명 정도다.”
미 육군은 차세대 소총과 기관총 25만 정과 탄약 1억5000만 발, 각종 부품을 주문할 계획이다.
NGSW의 목표는 까다롭다. 6.8㎜ 구경이라지만 5.56㎜ 구경의 탄약과 무게가 같아야 한다. 전방 손잡이 등 기존 액세서리를 그대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소음ㆍ소염기는 기본이며, 필요할 경우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미 육군 장병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지니어와 함께 홀로렌즈를 끼고 IVAS를 테스트하고 있다. [사진 미 육군]
NGSW의 핵심은 첨단 사격통제(사통) 장비다. 레이저 거리 측정기ㆍ탄토 계산기ㆍ습도 센서 등이 사통 장비와 통합할 것이다. 또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개발한 통합 시각 증강 시스템(IVASㆍIntegrated Visual Augmentation System)과 연동할 수 있어야 한다. IVAS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증강현실 도구인 홀로렌즈를 이용해 보병 병사에게 전장 정보를 제공한다. NGSW의 사통 장비와 IVAS가 결합하면 영화 '아이언맨'의 초기 형태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IVAS 화면을 통해 미 육군 병사가 보게 될 정보들. 미국의 방송사인 CNBC가 그래픽으로 구현했다. [사진 CNBC]
또 차세대 소총은 반자동과 자동 사격이 가능해야 한다. 멜빵은 손쉽게 달거나 뗄 수 있어야 한다. 화생방전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탄창은 차세대 소총과 기관총 모두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요구 조건에 난제가 많기 때문에 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다분하다. 미군은 F-22보다 값싼 스텔스 전투기를 내놓겠다며 F-35를 개발했지만, 시간과 비용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래서 미 육군의 무기 개발 책임자인 엘리엇 캐긴스 대령은 NGSW가 아이폰의 치명성(lethality)을 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 탄약과 달리 탄두가 안에 들어가 있다. [사진 미 육군]
그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엔지니어들이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 터치를 아이폰인 3G로 바꾼 것을 생각해보라”며 “그때 수천 개의 신기술이 첫 아이폰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 기술들이 시스템에 녹아들려면 먼저 플랫폼을 숙성시켜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찬가지로 수백 개의 성능을 NGSW에 넣을 수 있지만, 우선 예전부터 입증한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한 마디로 “아이폰이 그랬듯, 점점 성능을 키우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텍스트론이 지난해 공개한 경기관총. CTA를 사용한다. [사진 텍스트론]
‘초청장(NGSW 사업 공고)’을 받은 5개 제조사 중 텍스트론이 가장 먼저 3월 25일 차세대 소총의 프로토타입인 NGSW-T를 미 육군에 제출했다.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텍스트론은 15년간 개발했다는 탄두내장형 탄약(CTA) 기술을 자사의 프로토타입에 적용했다고 밝혔다. 기존 탄약의 탄두가 탄피의 상단에 있는 것에 비해 CTA는 탄피 안에 탄두가 들어있다. CTA는 탄약의 길이와 부피를 줄일 수 있다.
오스트롭스키 중장은 “현재 M4나 M249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겪은 실전에서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미 육군 장병이 아프가니스탄군과 함께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비니를 쓴 미군이 든 소총이 M4. [사진 미 육군]
M4 연사 장면. [유튜브 Combat Arms Channel 캡처]
그런데도 미 육군은 왜 M16과 M4를 두고 NGSW를 찾을까. 군사 전문지 ‘플래툰’의 홍희범 편집장은 “큰 문제는 없다지만, M4와 M249의 관통력이 약해 살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늘 있었다”며 “앞으로 미 육군이 상대할 수 있는 중국군과 러시아군은 무슬림 테러리스트와 달리 방탄장비를 갖췄기 때문에 5.56㎜ 구경으론 벅찰 것으로 미 육군이 내다본 것”이라고 말했다.
미 육군의 분대 지원화 기관총인 M249. M4. M16 소총과 같은 5.56㎜ 구경의 탄약을 쏜다. [사진 미 육군]
세상에 100% 완벽한 총이 없듯이, M16과 M4에도 고질적인 약점이 있다. 신뢰성 문제다. M16은 총탄을 발사한 뒤 연소 가스로 노리쇠 뭉치를 후퇴시키는 가스직동식이다. 반동이 적은 대신 가스 그을음이 주요 부품에 쌓인다. 그래서 총기 손질을 자주 해야 한다.
또 M16과 M4를 오랫동안 쏘다 보면 재밍(탄 걸림)과 과열로 작동 불량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2008년 7월 13일 아프가니스탄의 와낫 마을에서 탈레반과 교전을 벌인 미 육군 보병 9명이 전사했다. 생존 병사들은 전투 중간 M4의 총탄이 나가지 않았다고 나중에 보고했다. 재밍과 과열 때문이었다.
한때 미 육군의 제식소총이었던 M14. [사진 미 공군]
미 육군의 ACR. 결국 미 육군이 이 사업을 포기했다. [사진 Military Factory]
미 육군은 여러번 차세대 소총 사업을 시작했다. 86년의 선진 전투 소총(ACRㆍAdvance Combat Rife)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소 수십 만정의 소총을 바꾸려면 돈이 많이 든다. 국방 예산이 천조원이라 해서 ‘천조국(千兆國)’이라 불리는 미국으로서도 부담스러웠다. 당장 바꿔야할 만큼 M16과 M4가 나쁘지 않기도 했다.
미 해병대원이 M27을 들고 조준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 미 해병대]
미루고 미뤘던 소총의 교체는 요즘 미군의 지상과제다. 미 해병대는 M27 보병자동소총(IARㆍInfantry Automatic Rifle) 사업을 따로 벌이고 있다. 독일 헤클러&코흐의 HK416으로 M4와 M249 모두를 교체하는 사업이다. HK416은 미 해군의 특수부대 데브그루가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할 때 쓴 총으로 유명하다.
NGSW는 미군 만의 이슈가 아니다. 유사시 미군과 함께 싸울 동맹군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홍희범 편집장은 “가장 골치 아픈 건 유럽 국가들”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상당수 국가들은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이다. 그런데 나토 주요 국가안 영국은 자국제 L85A3를, 프랑스는 독일제 HK416을, 독일은 헤클러&코흐의 G36을 차세대 소총으로 선택했다. 모두 5.56㎜ 구경의 탄약을 쏜다.
K1A 개량형 중에는 개머리판도 바꾼 게 있다. 이철재 기자
K2 소총(아래)의 개머리판과 총열을 교체한 K2C1(위). 전방 손잡이도 달렸다.
미국의 나토 동맹국들은 미국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있다. 53년 나토는 7.62㎜ 구경을 표준탄으로 삼았다. ‘나토탄’ 얘기다. 이에 따라 나토 회원국가들은 자국의 소총의 구경을 조정하거나 설계를 고쳐야만 했다.
미 육군은 57년 나토탄을 사용하는 M14를 제식 소총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M14은 무겁고 길기 때문에 근접전에 불리하였다. 나토탄을 발사하면 반동이 심했다. 미국은 베트남전 때 M14를 버리고 5.56㎜ 구경을 쏘는 M16로 갈아탔다. 그러자 유럽의 나토 동맹국가들은 또 예산을 들여 7.62㎜ 구경에서 5.56㎜ 구경으로 바꿔야만 했다.
영국 육군의 L85A3 소총. [사진 Military Today]
프랑스 육군의 HK416 소총. [사진 프랑스 육군]
독일 육군의 G36 소총. [사진 독일 연방군]
홍희범 편집장은 “유럽 동맹국들은 결국 각자의 소총과 5.56㎜ 구경 탄약을 고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이다. 육군의 주력은 80년대부터 생산한 K1과 K2다. 광학 장비를 달려면 별도의 레일을 껴야 한다. 그런데도 현재 차기 소총 사업을 검토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대신 특수 부대에 K1A 개량형을, 전방 부대를 중심으로 K2C1(K2 소총의 개량형)을 각각 주고 있다. 특전사는 독일제 HK416을 곧 수입한다.
해군 특전단(UDT/SEAL) 대원은 HK-416 등 특수전에 필요한 총기와 부가장비를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영상캡처=강대석 기자]
그런데 미 육군의 NGSW는 이 같은 '땜방'으론 부족하다. 한국군은 미군과 연합사령부 아래에서 싸우기 때문이다. 육군 관계자는 “미 육군의 NGSW 사업을 지켜보고 있다”며 “6.8㎜ 구경의 소총과 기관총이 나오면 우리도 따라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한ㆍ미의 보병이 전투 현장에서 탄약을 같이 쓰는 건 연합방위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 한국군은 6.8㎜ 구경이나 CTA와 같은 신기술보단 미군이 걸어온 광학 장비의 적용과 같은 총기류의 운용 편의성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현호씨는 “다행히 육군에서도 워리어플랫폼을 통해 일명 ‘알총’에서 벗어나 미군처럼 광학 장비를 운용할 수 있도록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서도 “아직도 일부는 국방 규격에 얽매여 사용자 편의성에 지장을 주고 있다. 차기 소총 사업을 진행하기에 앞서 이런 점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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