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성번영을 의미하는 자신의 이름 중간글자 창(昌)자와 아름다운 제품을 의미하는 부인(김미옥) 이름 중간글자 미(美)자를 따다 거기에 목표달성을 의미하는 달(达)자를 합성하여 회사 이름을 창미달(昌美达)로 지었다고 한다.
창미달의 김창호리사장(43세, 사진 )은 성공비결을 묻자 "공상에 빠지지 말고 실천해야 성공한다"며 "인생의 시기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흑룡강성 탕원현 탕왕조선족향 출신인 김씨는 35세에 창업을 시작했다.
가목사대학에서 전자기술을 전공한 김씨는 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이 청도에 밀려들던 1994년에 꿈을 품고 대학문을 나서자 곧장 청도로 진출했다. 그때로부터 청도에 진출한 한 일본전자 기업에 2002년까지 근무, 이렇게 8년동안 한우물만 팠다. 그는 일본기업에 근무하면서 근면, 성실문화가 몸에 배겼다고 말한다.
2002년 업그레드 목적으로 부인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2004년 2월까지 다른 전자업체에 근무했다. 김씨는 일본으로 건너간 리유는 기술과 관리방식을 배우고 인맥을 더 쌓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일본땅에서 근무하면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었는데 독립적으로 창업하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단연 귀국했다" 며 "꺼꾸러지면 다시 못일어난다는 두려움보다 하면 꼭 된다는 자신감이 컸다"고 말한다.
부부 두 사람이 번 돈과 친척, 친구한테서 빌린 돈 20만달러를 종자돈으로 청도 황도개발구에 작은 회사를 설립했다. 초창기에는 밤을 새며 기계설비를 안장하고 시험가공을 했다.
제일 처음 가공을 시작해서 아침 새벽에 샘풀이 나왔는데 그날 아침에 일본 바이어를 만나 첫 오다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그럴듯한 기업으로 자리 매김했지만 초창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일본기업은 참 까다로와요. 처음에는 오다를 조금 주었는데 품질이 보증되는걸 확인하고서는 오다를 늘였어요."
후에 오다가 점차 늘어나면서 기업이 확대됐고 지금 위치한 교남으로 이주했다. 현재는 등록자본이 500만달러, 직원수는 480명으로 늘었다.
창업자질에 대해 김창호리사장은 이렇게 피력했다. 우선 "뭘 하겠는가"하는 목표가 있어야 하며, 다음으로 상응한 지식과 종자돈이 필요하다. 또한 모험정신이 필요하다며 공상에서 벗어나 실천하라고 일침을 놓았다.
"청도 조선족기업의 50%는 회사근무 과정을 거쳐 창업의 길을 걸었다다"며 "오다 보증이 창업의 지름길이다"며 꿈을 갖고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회사 근무에 림하는 태도가 이후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데 밑거름이 된다며 인맥관계 구축을 홀시하지 말라고 귀띔했다.
김씨는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슬로건은 "열심히 하자, 노력하자"라고 밝혔다.
올해 청도조선족기업인협회 회장에 재임하여 3년간 더 봉사해야하는 김창호씨는 사회공헌(기부)에도 앞장서고 있다. 회장단 기부금만 해도 40만원에 이른다.
그는 앞으로 고향을 찾아 불우이웃도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그는 청도 교남시 정협 상무위원으로 활약하며 우리 민족의 대변인 역할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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