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변도”가 완공되면 한국과 유럽을 잇는 교두보로
1998년 7월 동항 인천간 “동방명주호”의 첫 통항에 발맞추어 단동국제항운유한회사 한국측 대표에 부임된 김정동총경리(51)는 “‘동방명주호’는 단동 인천간 경제문화교류의 교두보”라고 한마디로 개괄하고 “동방명주호”가 개통되여 지금까지 단동과 인천 두 도시의 경제건설에 일으킨 작용과 중한 두나라 문화교류에 기여한 역할에 대해 상세히 소개했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15년간 “동방명주호”를 통한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였다. 인적교류에서 15년간 150여만명이 단동과 인천 두 도시를 오갔다. 매인 교통비를 평균 800원으로 치면 부대적으로 뒤따르는 기타 소비를 제외하고도 약 12억원의 자금이동이 발생했다. 물적교류에서 보따리장사를 통한 정확한 수치는 통계할수 없지만 15년간 75만개의 콘테이너가 오갔다. 한 콘테이너가 발생하는 자금이동을 최저 1만딸라로 계산해도 도합 750만딸라의 자금이동을 가져왔다. 단동과 인천간 “동방명주호”경유 교류에 대해 2011년 CCTV-4채널이 “인천과 단동”이란 제목으로 특별방송을 진행, “동방명주호”의 작용과 통항의의에 대해 충분히 긍정했다.
중한수교전인 1990년 산동 위해항과 인천항의 려객선개통을 계기로 한국 본사의 파견을 받아 위해에 진출하여 중한 수교직전인 1992년까지 사업한 경험이 있는 김정동총경리는 단동시정부도 1990년대초반 단동 인천간 려객선통항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고 피력했다. 당시 한국정부에서 단동시정부의 제의를 받아들여 구체적으로 운영할 한국내 해운회사를 물색했으나 선뜻 응해나서는 회사가 없어 단동, 인천간 개통이 미루어져오다가 1998년“동방명주호”가 개통, 개통 3개월만에 흑자운영에 들어서는 기적을 창조했고 두 도시뿐만아니라 두 나라간의 경제발전에 기여하였다.
김총경리는 단동국제항운유한회사의 더 큰 발전을 위해 2004년 착공하기 시작한 “동변도”의 개통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속마음을 토했다. 그는 “동변도”는 북쪽으로부터 시작하여 중로, 중조 변경선을 따라 가설하게 되는 철도로 총 길이가 1,380킬로메터에 달한다. 북쪽의 흑룡강성 목단강시 수분하를 시점으로 길림성의 도문시, 통화시, 료녕성의 본계시, 단동시, 장하시를 경유하여 최종 대련시에 이르는 “동변도”는 10여개 시, 30여개 현을 아우르기에 “동방명주호”는 한국이 중국경유 유럽을 잇는 교두보역할을 하는 동시에 단동이 물류허브도시로 거듭나는데 일조할것이라고 표했다.
인터넷료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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