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혼신의 정열을 무대에 바쳐온 로무용예술가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7월17일 14시22분    조회:475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최옥주
연변일보

点击浏览下一页
 

용예술가 최옥주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독서에 흥취를 가지고 세계명작, 명인자서전을 두루 읽었다. 최옥주선생은 15살 어린 나이에 조선무용대가인 최승희처럼 훌륭한 무용가가 되고싶다는 야무진 꿈을 가졌고 책에서 명인들은 자기의 작품을 간직해두더라며 그도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농악무를 추는 사진을 보물함에 넣으면서 앞으로 공연사진들을 차곡차곡 모아두리라고 마음먹었다.

 

예술에 대한 리해

 

옥주선생은 무용창작주제는 자연과 인간의 대화합이라며 무용 "푸른 숲 설레인다"의 창작담을 이야기했다. 그는 작품을 창작할 때면 록음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장백산에 오르기 좋아했다. 1982년 겨울의 어느날 아침, 이도백하수가 흐르는 산속을 걸으면서 수증기때문에 하얀 얼음옷을 껴입은 소나무들을 보면서 흠뻑 매료되였다. 최옥주는 신발앞에 있는 3센치메터도 안되는 솔이 하얀 얼음옷을 입고 바람에 오돌오돌 떨고있는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다가 갑자기 손벽을 쳤다. 그는 당장에서 산에 식수하는 주제의 무용을 창작하리라 마음먹었다. 제목을 "푸른 숲 설레인다"로 정하고 두시간만에 무용의 전반 구상을 끝냈다. 하숙집에 돌아가서도 밤이 깊어가도록 록음기를 켜놓고 무용동작을 설계했다. 자정이 다 되자 집주인이 구들이 꺼질가가 념려돼서인지 문을 빼꼼히 열고 들여다보다가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한 생각에 거울에 비춰보니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고 머리카락도 이마에 찰싹 들러붙은것이 꼭 마치 무용을 하는 무당과 같았다.

옥주선생은 “예술가는 99%의 땀과 1%의 리념이다”고 주장한다. 15살에 연변가무단 무용배우로 선발되였지만 무용기초가 없었던 그는 남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려가면서 기예를 련마했고 47세까지 무용배우로 활약했다. 나중에 무대뒤에서 안무를 하면서도 매 동작을 직접 해보면서 무용의 전반적인 정서흐름을 파악하고 그에 알맞게 무용동작을 배치하여 감정과 음악이 잘 어울리게 했다.

点击浏览下一页

빼놓을수 없는 “춘향전”

 

형무극 “춘향전”은 최옥주선생의 대표작이고 중국조선족의 무극의 공백을 메워준 작품이다. 그러나 “춘향전”의 창작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순수 몸동작과 음악으로 고전명작을 무극으로 새롭게 탄생시킨다는것은 난이도가 아주 큰 작업이였다. 게다가 이름있는 작곡가들마저 작곡에 선뜻 나서주지 않았다. 최옥주선생은 록음테프를 한아름 안아다 자기의 정서에 알맞는 곡을 뽑아 “광한루에서 춘향과 리몽룡이 만나는 장면”의 무용곡 17분을 조합해냈다. 작품의 완성가능성이 보여지자 작품의 정서를 파악한 작곡가들이 무용곡을 써주었다.

장 힘들었던것은 작품창작이 아니였다. 조선족으로서 처음으로 무극을 시도하고 또 5막 8장의 대형무극을 창작하겠다고 제기하자 주변에서는 의심스러운 눈치를 보냈고 심지어 성공하지 못할터이니 아예 시작하지 말라는 반대의 목소리도 적잖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면서 반년간 창작에 몰입했다.

형무극을 선보이려면 대량의 자금이 소요되였다. 최옥주선생은 관련 부문을 찾아다니며 자금을 쟁취했고 전 주적으로 자금모금활동을 벌려 도합 30여만원의 자금을 모았다.

여곡절끝에 대형무극 “춘향전”은 1990년 북경에서 있은 “아세아경기대회 예술축제”페막식공연에 참가해 1등상을 수상하고 많은 매체들에서도 공연소식을 대서특필하였다. 이듬해 대형무극 “춘향전”은 중국예술계의 최고정부상인 제1회 “문화상”대상을 수상했다. 1994년 한국 남원에서 있은 제64회 “춘향제”에서도 “춘향전”은 좋은 평판을 받았고 최옥주선생도 남원축제위원회로부터 문화대상을 받았으며 250그람되는 순금메달을 받았다. 대형무극 “춘향전”은 창작되여서 선후로 60여차례 공연되면서 가는 곳마다 절찬을 받았다.

 

제자양성에 몰입

 

옥주선생은 연변가무단 부단장으로 있다가 1995년에 정년퇴직하고 연변조선족무용연구소 소장을 담당하고 북경에서 무용학교를 운영하면서 무용인재양성에 정력을 몰부었다.

“무용배우는 곱기만 해 되는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신체적조건이 부합돼야 한다. 례하면 두팔의 길이는 상체길이보다 4센치메터가량 길어야 된다. 그래야 무용동작을 할 때 더 아름답다…”

장 좋은 신체조건을 구비한 인재들을 발굴하기 위해 그는 한여름의 땡볕도, 한겨울의 눈바람도 아랑곳없이 동북3성의 농촌학교까지 참빗질하듯 훑었다. 무용학교를 운영하는 16년간 그는 200여명의 무용인재를 양성했다. 현재 양성한 제자 대다수가 국내외의 예술단체에서 활약하고있다. 특히 최옥주선생은 연변가무단에 있는 제자들중 얼마전에 있은 전국소수민족문예회연에 참가해 상을 받은 제자도 있다며 마냥 기뻐했다.

콩당콩닥 뛰는 심장을 다독이며 자기의 첫 무대사진을 간직하면서 훌륭한 무용가의 꿈을 꾸어왔던 15살 소녀는 어느덧 국내외에서 여러차례 공연했고 수많은 정품을 내와 국제무대에 선보인 이름있는 무용예술가로 되였다.

치주 창립 60돐이 되는 뜻깊은 해에 최옥주선생은 자기의 예술인생을 총화하고저 지난 60여년에 걸쳐 수집한 사진 2000장이 수록된 개인화책으로 정리, 출판하기 위해 매일 저녁 12시까지 여념없이 작업하고있다. 화책은 연변의 원로예술가 최옥주선생의 창작경험, 성과물 및 일대기를 기록한 귀중한 사료로 중국조선족무용예술사의 일부분으로 후대에 귀중한 자산으로 남겨질것이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변농악무》와 나의 아버지 하태일 50년대 흥겨운 농악무의 한장면, 앞줄 꽹과리를 손에 들고 앉은 자세로 춤추는 사람이 하태일선생 《연변농악무》는 그 화려하고 다채로운 예술형태로 공연에서 마지막 종목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관중들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력대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있다. 우...
  • 2012-08-05
  • 금융위기 실패 딛고 선 조선족사나이 편집/기자: [ 김웅견습기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2-08-03 09:56:38 ] 클릭: [ ] -연변가신경제무역유한회사 최중철사장을 찾아 최중철(35살)이 연길시 애단로 흠전빌딩에서 한국KCC금강화학공업 장판무역을 시작한것은 2010년 3월이다. KCC 장판은 친환경재료로 제...
  • 2012-08-03
  • -중국프로축구 최년소감독 북경팔희팀 최은랑씨를 만나   19세기 50년대로부터 “축구의 고향”으로 불린 연변은 수많은 축구인재들이 용솟음쳐나왔지만 대다수가 선수로서만 꽃을 피운 축구인들이였다.   특히 1992년 중국축구 프로리그가 개시되면서부터 연변팀 이외의 타팀에서 고삐를 잡은 조선족...
  • 2012-08-02
  • 건군절을 며칠 앞두고 필자는 중국인민해방군 공군대좌 리광남을 만나 함께 식사하고 주숙하는 기회를 만났다. 리광남은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장비부 고급공정사, 전문기술대좌다  리광남(1950년출생)은 1970년에 참군, 1995년 대좌계급을 수여받았다. 그는 선후로 과학연구항목 수십건을 완수하여 1, 2, 3등 공을 각각...
  • 2012-07-30
  • 김숙자 재한동포총연합회 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 "조선족 동포들은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20년 동안 묵묵히 했어요. 한중 수교 후 지금까지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는데, 앞으론 눈치 덜 보고 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내 최대의 조선족 동포단체 재한동포총연합회가 재한다문화총연합회로...
  • 2012-07-27
  • 연변일보   암을 선고받고도 자기의 일터를 꿋꿋이 지켜온 녀성이 있다. 딸로서 엄마로서 또한 수감인원들의 “큰언니”로서 병마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씩씩하고 충실하게 보내는 그가 바로 돈화시간수소의 유일한 녀경찰 김해옥(46세)씨이다. 수감인원 관리사업에 몸 잠가온 9년간 그녀는 녀성 특유의 섬세...
  • 2012-07-27
  •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 3세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한국 증권업계 전산(컴퓨터 관련)인력가운데 유일한 중국인으로 조선족 김성희(33)씨가 현재 대우증권에서 근무하고있다.   최근 몇년 한국증시에 상장하는 중국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한국금융의 중심지 서울 여의도에 중국인 전문인력도 증가하는 추세다.   ...
  • 2012-07-26
  •   -서예학박사 조선족 서영근교수의 잊지못할 “통신학습”   지난 20세기 90년대초 한글서예로는 불모지대와 다름없는 연변에 서예에 심취해서 침식을 잊은 20대의 청년이 있었다. 굶주린 사람이 빵을 먹듯 서예에 대한 집착과 여러 대회에 출품한 작품이 입선되는 등 천부적인 소질로 주위의 이목을...
  • 2012-07-26
  • http://hljxinwen.dbw.cn   2012-07-25 10:16:43             흑룡강성 할빈적 권기민 미국 하버드대 연구원으로 임용   (흑룡강신문=하얼빈) 정봉길 기자 김세영 견습기자 = 흑룡강성 할빈적 권기민(조선족,28세)씨가 올해 미국 하버드대학 물리학부 광학전공 박사과정을 마치고 하버드대...
  • 2012-07-25
  •   공식석상에서 늘 빛갈고운 한복차림이였던것과는 대조적으로 인터뷰시 검은색 블라우스를 입은 함순녀(48세)한테서는 차분한 카리스마가 풍겼다. 현재 연변가무단 부단장이자 연변무용가협회 주석인 함순녀는 오로...
  • 2012-07-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