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사신 길 연구로 석사받는 조선족 임문성씨
"명청(明淸)시대 조선 사신을 맞는 중국 통관(通官·통역)은 임진왜란과 병자·정묘호란때 이주한 조선인 후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양국의 정치·문화·과학 등 교류에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했습니다. 저도 양국을 잇는 현대판 통관이 되고 싶습니다."
연행로정(燕行路程·한중 사신길) 연구로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조선족 임문성(45)씨는 27일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양국의 문화에 모두 익숙하다는 점을 살려 중한교류에 작은 역할이나마 하고 싶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사실 임씨는 연행록 연구자들이 중국 현지 답사를 할 때 찾는 전문 가이드(여행 안내원)다. 여행사에 다니던 임씨는 2003년 연행록 전문가인 동국대 김태준 교수팀을 안내하면서 연행로정과 인연을 맺었다.
"수고에 비하면 이익은 나지 않아서 다른 가이드들은 관심이 없었어요. 역사에 관심이 많은 터라 고생을 자처했죠. 없어진 시골길을 찾고, 현지 노인들에게 흔적을 묻고 일제 강점기 지도를 뒤져가며 안내를 했더니 그다음부터 부탁이 계속 들어오더군요."
임씨는 2003년부터 연행로정을 19차례나 걸었다. 중국의 산업화로 점차 사라지는 연행로정을 지켜본 몇 되지 않는 사람 중 하나다. 문헌이 아닌 현장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적은 편이다. 신춘호 한중연행로정답사연구회 대표가 영상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정도다.
임씨는 지난 2010년 돌연 한국행을 택했다. 연행로정을 답사하다보니 현장경험 뿐만 아니라 지식도 쌓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단다.
"학자들은 문헌만 보지 현장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유적이라고 해봐야 돌무더기 몇개, 지명 정도이긴 하지만 한중 교류사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길입니다. 전문적인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국은 연구가 막 시작단계라 한국을 택했죠."
임씨는 2년간 '연행사(燕行使·조선이 청에 보내던 사신의 통칭)들의 요녕(遙寧·중국 동북 3성 중 하나) 지역에 대한 인식변화'를 연구했다. 연행사는 조선이 중국에 보내던 사신의 이름이다. 연행사는 국가현안 해결을 위해 보내졌지만 한중교류의 첨병 역할도 했다.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 신진 학자들은 자제군관 등 명목으로 연행노정에 나섰고 이들이 보고 들은 청의 역사, 문화, 사회, 과학기술, 사상풍속, 풍물 등은 실학파의 사상적 원천이 됐다.
박지원은 1200리에 달하는 요동평야를 본 후 호곡장(好哭場·목 놓아 울기 좋은 곳)이라는 감탄사를 터트렸을 정도다.
넓은 세상을 본 감동을 이같이 표현한 것인데 그는 사행을 다녀온 후 쓴 열하일기에서 조선의 낙후성을 타개하기 위해 청의 선진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론을 펼쳤다.
다음달 귀국하는 임씨는 한국과 중국을 잇는 가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내놨다.
"연행로정은 한중 모두에게 중요한 길입니다. 너무 광범위해서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다시 생계를 구해야할 처지지만 연구와 가이드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서울=뉴시스 이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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