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서성국제무역유한회사 박진희리사장
박진희(朴镇希)프로필
청도서성국제무역유한회사 리사장
북경 성국제무역유한회사 리사장
상해 성국제무역유한회사 리사장
청도한성경제무역유한회사 리사장
청도조선족기업협회 부회장
월드-옥타 연태지회 부리사장
청도서란향우회 회장
중국조선족사학회 리사
15년간 한우물을 파기에 전념하며 중국내 한국식품수입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한 청도서성국제무역유한회사 박진희리사장(42세)은 《천번 생각하기보다 한번 실천하는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성공했으면 그 성공을 카피하라고 말한다.
현재 박리사장은 한국식품을 다종다양하게 수입하던 전략을 바꾸어 한국 빙그레식품만 수입하는걸로 돌아섰다. 한국빙그레 중국총판을 따내 빙그레바나나맛우유, 빙그레아이스크림 2개 품목을 주로 수입하고있다.
빙그레회사는 한국내에서 아이스크림과 랭동식품 생산량 1위를 자랑하는 한국식품업계의 대기업이다. 빙그레바나나우유도 1위를 차지한다. 이런 대기업의 중국총판을 따냈으니 《호랑이한테 날개를 달아준》셈이 됐다.
그외 다른 20개 품목도 수입하여 도매, 판매하고있다. 한달 수입량이 200만딸라, 올해 8월부터 래년 7월까지 총 3000만딸라를 수입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북경, 상해, 심수 등 3곳에 지사를 설립했으며 절강성, 청도, 연태 등 지역에 17개의 직영편의점도 개설했다. 중국 각지의 백화점, 할인매장, 체인점 등에 2만여곳의 거래처가 있다.
10여년전 자전거를 타고 식품배달을 시작했던 박리사장은 오늘날에는 거래액이 2억원에 육박하는 굴지기업의 CEO로 성장했다.
가능성이 보이면 행동에 옮겨라
모든 여건이 다 이루어지기를 기다려서 일을 시작하려면 영원히 변화하는 시장을 따라갈수 없고 결국 아무런 일도 할수 없다. 가능성이 보이면 확실한 준비작업과 함께 실천에 옮겨야 한다.
박진희리사장의 창업도 역시 그러했다. 1994년 군복무를 마치고 장춘무장부에서 2년간 근무하던 그는 1996년 9월 무작정 연태로 진출했다. 한국회사에서 반년 근무하면서 복장, 농산물, 식품 등을 판매했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스스로 경영인이 되는 길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판단한 그는 당시 연태에 청양무역유한회사를 설립하고 한국식품을 취급했다. 처음에는 보따리장사로 한국식품을 들여와 판매했는데 중국내에서 한국식품을 최초로 수입한것으로 기록된다고 박진희리사장은 말한다.
창업초기 그는 자전거를 타고 가게를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식품을 배달했다. 자금이 조금 모아지자 오토바이로 배달했으며 그후로는 트럭과 봉고차로 배달했다.
자전거-오토바이-트럭-봉고차 단계를 거치면서 신용과 신속배달로 시장을 점차 개척해나갔다. 점차 연태지역 소비자들은 한국식품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고 조선족 박씨사나이를 알게 되였다. 매출도 눈덩이처럼 점차 늘어났다.
박사장은 당시 온종일 배달하고나면 육체적으로는 많이 고달팠지만 창업의 성공을 만끽하는 기분은 좋았다고 회고했다.
2004년 사업확장으로 청도로 진출했으며 청도에 새 《둥지》를 틀었다.
시장이 없으면 시장을 만들어라
박진희리사장이 무대로 활용하고있는 연태나 청도의 한국식품시장은 원래 형성돼있던 기존의 시장이 아니다. 그것은 박리사장이 구슬땀을 흘리며 한뙈기한뙈기 일구어낸 자류지밭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도매와 소매를 병행하며 의식적으로 한국식품을 전혀 알지 못하는 현지 중국인들이 한국식품을 소비하도록 시장을 키워나갔다. 그래서 한국식품매장을 오픈하는 회사들이 찾아오면 적극 도와주었다. 그 리유는 한국식품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좋다고 생각한것이다.
매출을 올리려고 욕심을 부린것이 아니라 노하우를 전수하며 상대방을 배려했다. 되도록 같은 금액을 가지고 각종 품목의 상품을 구입하도록 조언했다.
또한 일시 자금이 딸리는 회사들한테는 외상을 주어 일단 매장을 오픈할수 있도록 했으며 판매후 결제하는 방식을 선택할수 있도록 했다.
한편 새로 오픈하는 매장은 직접 찾아가 상품을 진렬하는 비결까지 가르쳐주면서 공생의 길을 모색했다. 상품을 진렬하는데도 학문이 있었다. 현지인들의 평균키에 따른 눈높이, 현지인들이 선호하는 상품을 진렬하는 위치, 현지인들의 소비행위에 따른 색상조화 등 모두 전문지식이 필요했다. 이런 도움과 지원에 힘입어 한국식품매장이 하나둘씩 늘어나게 되였고 결국 그의 회사의 경영실적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내 상품을 가져가는 매장이 살아야 나도 산다》는것이 박리사장의 주장이였다. 말그대로 《강에 물이 있어야 내 집에 고기가 있다》는 공생의 경영철학을 실천한것이다.
성공했으면 그 성공을 카피하라
성공전략은 성공자체에 그치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 관건은 그런 성공을 어떻게 더욱 큰 성공으로 이끌어나가느냐 하는데 있는것이다. 성공은 성공한 사람스스로가 카피를 할수 있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업경영에서 전문가들이 말하는 《곱하기》인것이다.
박진희리사장은 《위기는 어려울 때 나타나는것이 아니라 일이 잘될 때 싹트기 시작하여 어느 순간에 터져나오게 되는것이다. 때문에 사전조치가 항상 필요한것이다》고 말한다.
2000년, 수입물량이 늘어나면서 가장 시급하게 닥친 문제가 창고문제였다. 당시 창고임대료만 해도 한해에 10만원을 웃돌았다. 그래서 연태에 땅을 사서 1320평방메터의 창고와 800평방메터의 4층 사무실건물을 지었다.
또한 청도시 성양구에 땅 6660평방메터를 구입, 1600평방메터되는 랭동, 랭장실을 짓고1000평방메터되는 사무실을 지었다. 물류창고를 확보함으로써 마음이 든든하게 됐다.
박리사장은 도매령역을 확장하는 동시에 2003년부터 마트진출을 시작했으며 2007년부터는 체인점, 편의점을 시작했다. 현재 전국 각지에 17개의 직영편의점을 개설한 상태이다.
사업규모가 늘어나면서 한계를 느낀 박리사장은 우연한 기회에 한국의 거대 컨설팅회사의 회장을 만나게 되였다. 컨설팅회사 회장은 처음에는 중국시장이 국제시장과 비교하면 많이 뒤떨어졌고 만나본 사람들의 의식이 오늘의 시대와 적어도 20년가량 뒤떨어졌다는 결론을 내리고 대 중국 사업에 대해 비전은 내다보고있으면서도 긴박성은 크게 못 느끼고있었다. 그러나 박리사장의 경영철학을 듣고는 합작의 손길을 내밀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박리사장은 컨설팅회사에 한화 8000만원을 지불하고 철저한 컨설팅을 주문했다.
박리사장은 지난해 중국시장에서 성공한 한국빙그레회사와 손을 잡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면서 또 다른 도약을 구상하고있다. 한국의 《오리온》제과에서 중국총판을 건의해왔던것이다.
또 한국 경기도 막걸리(사과+복분자, 우리 술) 중국총판도 계약했다. 올해 년말부터 막걸리사업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막걸리 한병의 청도지역 소매가격은 20원인데 사천성 성도의 소매가격은 28원이며 이미 성도의 한 바이어가 3만 2000병을 주문한 상태이다. 사천성 사람들은 독한 술을 마시는데 최근에는 막걸리를 선호하는 쪽으로 돌아서고있다고 한다. 광주사람들은 원래 약한 술을 선호해 막걸리가 잘 먹혀들고있다고 한다. 광주, 심수 할인매장에 살균막걸리를 진렬하겠다는것이 박리사장의 목표이다.
중국인들에게 막걸리가 《음료》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포장도 바꾸었다. 막걸리가 중국인소비자들의 입맛을 바꿀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박진희리사장의 끊임없는 도전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박리사장의 도전이 보람찬 열매로 풍성하기를 기대해본다.
/흑룡강신문사 리수봉 박영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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