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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진수로《서라벌》에서 《자하문》까지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9월17일 12시49분    조회:6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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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백금식



자하문의 발전에 대해 설명하고있는 백금식회장

중국의 수도 북경에서 한국음식을 널리 알린 한국인이라면 당연 북경 서울자하문음식유한회사 백금식 회장을 꼽는다. 백회장은 처음에 한국의 전통음식점인 《서라벌》을 개업하여 돌풍을 일이켰고, 지금은 《자하문》이라는 한식당으로 서라벌에 못지 않는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는 중한수교 전인 1991년북경에 첫발을 디뎌 어언 21년이란 세월을 북경에서 고군분투한 결과물이 최종적으로 《자하문》을 탄생시킨 것이다. 기자는 북경 망경 남호동구에 위치해 있는 한식당 《자하문》에서 백금식 회장을 만나 대담을 가졌다.

어느 누구보다 한국음식문화 전파 사명감 높았던 백금식 회장

어느 때고 성공인을 만나면 가장 먼저 궁금한 것이 그의 성공담이다. 이날 대담도 예외 없이 첫마디부터 중국에서의 성공과정을 화제로 이루어졌다.

《성공인이라 하기에는 좀 과분한 말씀입니다만, 지금 생각하면 저는 아마 다른 사람보다 사명감이 더 높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우리 우수한 한국음식문화를 중국에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수없이 고민하게 되었지요. 1991년 3월 북경 현지에 직접 와 본 후 결심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심은 그해 5월에 홍콩을 거쳐 북경에 다시 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한식당 개업 준비에 착수하여 9월에 양마청사에 전통 한국음식을 깃발로 내 건 한식당 〈서라벌〉 1호점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북경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한국정부의 몇몇 부문 대표부 주재원과 일부 상사 주재원을 합쳐 100명 정도였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이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가 싶을 정도로 백금식 회장은 무모하리만큼 모험을 걸고 시작한 것이었다.

막상 개업을 해보니 역시나 손님은 가뭄에 콩나듯 했다. 손님을 끌기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며 고민하던 백회장에게 가장 큰 문제는 식재료였다. 당시 한국에서 식재료를 들여오려면 관세가 300%나 되었기에 그런 고비용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고심을 거듭하던 백회장에게 묘수가 떠올랐다. 한식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식재료는 채소인데, 그 채소의 씨앗을 들여와 북경 근교 농민에게 재배를 맡겨, 이른바 계약재배라는 형식으로 상추, 깻잎 등등을 조달하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러나 한국 맛이 나는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은 구할 방법이 없었다. 다시 고민에 빠진 백회장은 하나의 묘안을 생각해내 과감히 실험해보기로 하였다. 그는 중국, 일본, 홍콩 등지에서 된장, 간장류의 품목을 모두 수집하여 각각의 맛을 혼합하여 한국맛과 비슷한 맛의 장류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만들어낸 장류가 한국의 맛을 낼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로 한국맛의 70% 정도 밖에 미치지 못하였다. 백회장은 식당을 찾은 손님들에게 그 제조 과정을 솔직히 설명하며 제대로 된 한국맛과는 좀 거리가 있다고 량해를 구하기도 했다. 그의 진솔한 언행에 대부분의 손님들이 리해를 해주었다.

한편 더 많은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 했다.백회장은 중국인들의 행사장에 찾아가 식당명함을 뿌리며 서툰 중국말이나마 한국식당을 찾아와 달라고 열정을 다하여 홍보하였다. 그러기를 수십차례 반복하였다. 그러한 백회장의 집념어린 노력이 헛되지 않아 썰렁하던 식당에 손님들의 발길이 빈번하게 변하였다. 한때는 사전 예약 없이는 앉을 자리를 찾기도 어려운 호황을 이루었다.

중국에서는 먼저 하나의 브랜드가 흥행하게 되면, 시장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백회장은 알고 있었다. 더욱이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은 더욱 그러했다.한식당 《서라벌》에 관한 소문이 날이 거듭할수록 입에서 입을 통하여 멀리 퍼지면서 북경 지역은 물론 천진,상해 지역의 고객 및 호텔식당에서까지 찾아오는 대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1992년에는 한국에 수익금을 송금하여,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중 최초로 수익금을 송금한 사례로 한국은행에 기록되었다 한다.

 《그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제가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사명감 하나 때문이었습니다.어떤 일이든 중도에 포기한다는 것은 망신스러운 일이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요.》

백금식 회장의 의미 심장한 말이었다.

음식점내에 가야금,장구 등 민속악기가 진렬되여있다

《서라벌》로 한식의 돌풍을 일으켜

어원을 따지면 《서라벌》이란 신라의 옛 이름이다.한국에서는 체인 식당인 《서라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히다. 서울의 《서라벌》 체인본부 회사에서 근무 중이던 백금식 회장이 90년대 초 북경에 올 때만 해도 《서라벌》이란 명칭은 조선족은 물론 중국인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렇게 생소한 이름의 《서라벌》이란 브랜드가 불과 1년 여 기간에 중국에서 돌풍을 일으키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다. 

서라벌이 유명세를 타게 된 발단은 중국의 유명 인사들인  만리(万里) 전임 전국인대상무위원장, 오의(吴仪) 전임 부총리 등이 서라벌을 찾으면서였다. 당시에 북경에서 최고의 한식점으로 알려진 서라벌이 이들의 방문으로 더욱 유명하게 되어 홍콩의 성룡, 홍금보 등 스타들은 물론 한국의 재계 총수들인 이건희 회장, 정주영 회장, 조중훈 회장, 김우중 회장, 최종현 회장 등이 서라벌을 찾아 식사를 하게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손님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서라벌이 대성황을 이루자 중국 내 각지에서 합작으로 서라벌 체인점을 경영하려는 사업가들이 몰려들어 백회장은 더욱 눈코뜰새 없이 분주하게 되었다. 그는 호황일수록 더 냉정하게 철저한 자기 관리에 들어갔다. 찾아온 사람을 만나 상담한 후에는 반드시 현지에 찾아가 고찰하고 여러 가지 여건이 성숙 된 후에야 지점 개업을 허락하였다. 특히 각 분야 전문 인원의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주방, 홀 써빙 직원들이 지켜야 할 예절과 언어까지 직접 교육을 시켰다.

1993년에 북경 연사에 2호점을 개업한 뒤를 이어 장춘, 심양, 천진, 하얼빈, 대련, 상해, 서안 등 전국 20여개 도시에 《서라벌》 체인점이 오픈하였으며, 이를 전기로 중국 각지에 한식 보급이 급속도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지역 서라벌 식당에 가 봐도 영업이 호황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 백금식회장은 가슴이 뿌듯함을 느꼈다. 당시에 이처럼 한식 보급이 파격적으로 성황을 이루게 된 첫 번째 원인은 《중국인들에게 한식의 전통 맛을 살려 그 진수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백금식 회장은 술회하였다.

《물론 관리가 따라줘야 하고 여려 분야의 한류 영향도 충분히 이용해야겠지요. 그 외 식당의 대규모화와 고급화를 추구한 것 모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소비 수준의 초점을 일부 부유층에 맞춘 것도 그 당시에는 적중한 것입니다.》

한때 《서라벌 성공신화를 일궈낸 주인공이었던 백금식 회장은 오늘도 한식당에 찾아와 여유있고 맛있게 한식을 먹는 중국인들을 보면 한없는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 했다.

《자하문》음식점으로 제2차 도약을 실현

 

 

북경의 자하문 본점

《서라벌》 의 뒤를 이어 《자하문》 식당을 오픈하게 된 배경은 어떠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백회장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대체적으로 2000년을 전후로 〈서라벌〉은 자금투입이 결핍하고 관리가 따라 주지 못하는 등의 원인으로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2004년에 정년퇴직하게 되었고, 중국 내 서라벌 체인 규모가 너무 방대하여 일일이 살펴 볼 수 없는 상황이 되다보니 전국 각지의 서라벌 식당이 더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하나하나 문을 닫게 되었지요. 결국 2008년에 한국의 음식점 체인인 〈자하문〉과 손을 잡고 이 식당을 개업하게 되였습니다.》

새로 오픈한 《자하문》은 전에 비하여 몇 가지 면에서 뚜렷한 혁신이 있다고 백회장은 말을 이었다. 우선 요리 종류에서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전에는 기껏해야 30여 가지 메뉴였지만 지금은 150가지 메뉴라 했다. 중국인들이 항상 한식은 너무 단조롭다고 불평을 부리기에 새로운 음식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물론 음식 맛도 한식의 전통 맛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개발하였다. 식당 내부 시설 역시 나름의 개성으로 잘 조화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갖가지 화초와 문화적인 가치를 지닌 물건들이 실물이나 복제물로 전시되어 보다 아늑하고 화기 가득한 분위기를 조성해주었다.

안쪽 객실로 통하는 널찍한 복도에는 한국의 전통 악기인 가야금이 걸려있고 반듯한 벽면에 훈민정음 문자가 눈을 부시게 각인되어 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벽 아래쪽에 전시되어 있는 훈민정음 복제판이다. 식당에 이같은 문화재 실물이나 복제품을 진열해 놓은 목적은 시시각각 우리 문화의 귀중함과 민족의 자긍심을 갖게하기 위한 것이라는 백회장의 말이었다.

현재 《자하문》식당은 북경 외에도 장춘, 청도에도 비슷하게 갖춰져 있어 전에없는 호황을 이루고 있다. 《서라벌》의 뒤를 이어 제2의 도약을 실현한 것이다.

이처럼 중국에서 성공한 백금식 회장은 사회봉사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재중한국인회 제3대 회장, 2006년 세계한인회장대회 공동 의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세계한인유권자총연합회 중국 총회장, 세계한인네트웍network 공동대표,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최근들어 한국에 돌아오라고 강권하는 친구들이 부쩍 많아졌는데, 백금식회장은 이들에게 한국이든 중국이든 모두가 사람 사는 세상이니 정을 붙이기 나름이라고 대꾸했다 한다. 아직도 북경에서의 삶을 고집하고 있는 그였던 것이다. 정을 붙이면 타향도 고향이라는 말이 있듯이 백금식 회장에게는 심혈을 기울여 사업을 성공시키며 정이 든 북경이며, 훌훌 떠나기 아쉬운 북경이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었다. 대담을 마친 백금식 회장은 《북경은 나의 두 번째 고향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남기며 회환의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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