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격투기 세계챔피언 이각수 총장의 "뿔의 인생"과 만나다
여의도에 있는 흑룡강신문사 한국지사 사무실에서 취재를 받고 있는 이각수 씨. / 본사기자
이종격투기 세계챔피언 이 각수 세계종합격투기연맹 사무총장(50세), 1미터 67의 키에 85kg 정도 몸무게. 일본에서 활동하던 세계 챔피언 시절 ‘표범’이란 닉네임이나 얼마 전 동영상으로 본 일본경기장에서의 "이 각수(李珏秀)" 별칭의 이미지와는 완연히 다른 온화한 느낌의 얼굴이었으며 세계종합격투기연맹 사무실에서 느껴 본 무예고수는 부드럽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현역 챔피언 시절 극진(極眞)가라데 창시자 고(故) 최영의 선생을 존경해 여러 차례 찾아가 조언을 구하니 선생은 "승부가 있는 링에서는 맹수가 되더라도 밖에서는 순한 양처럼 살아라"고 했다.
고라꾸엔 홀에서 신화의 세계챔피언 등극
일본 젊은이들 열광의 우상으로 한류 열풍
1990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기장인 일본 고라꾸엔 홀의 경기분석가들은 연일 두 번이나 큰 오판을 해 관객들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3월 31일, 당연한 승자로 점 찍었던 불패의 신화를 엮어 온 미국의 유명한 헤비급 복싱선수 마이크로 타이슨이 첫 패배를 당한 것으로 관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 했다. 그 이튿날인 4월 1일, 라이트헤비급 이종격투기(異種格鬪技,중국어로散打라 함) 세계챔피언 대회에서 승자로 미국선수 지미 빽그런트에게 큰 희망을 걸었던 관객들은 또 한번 큰 낭패에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첫날 마이크로 타이슨의 신화를 깬 복싱선수 이름은 스핑크스, 이튿날 이종격투기 세계챔피언 용마루에서 지미 빽그런트를 무릎 꿇게 한 선수는 바로 이 각수란 한국선수였다. 일본에서의 이종격투기시장이 이 각수 선수의 화려한 경기로 인해 활성화가 되게 되었다.
이종격투기 세계챔피언, 용맹, 젊음, 열망을 대표하는 이 코리아 청년은 순식간 일본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우상으로 떠올랐다. 한일간 미묘한 역사적인 감정스트레스를 무릅쓰고 이각수라는 코리아이미지는 일본 젊은이들의 티셔츠, 엽서, 달력, 공중전화카드, 만화, 책 등 광고물을 타고 급속한 "한류"를 이루며 신속히 파급되었다. 88년부터 일본에서의 5년간 선수생활, 어쩌면 이 각수는 일본 "한류"의 원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프로경기 116전, 107승 9패, 87 ko승"
"세상에 그냥 이루어 지는 것은 없다"
이각수 챔피언의 "프로경기 전적은 116전, 107승, 9패, 87 ko승"이다. 그전에 있었던 태권도, 킥복싱, 합기도 등 아마추어경기까지 하면 500차도 훨씬 넘을 것이다.
이종격투기종목은 고대 로마, 그리스 올림픽종목으로서 20세기 70년대에 들어서 다시 부활 되기 시작, 복싱선수 미국의 알리 등으로 맥을 이어오다가 한국선수 이 각수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활성화 시대를 맞이했다고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이 각수총장은 이종격투기는 머지않아 올림픽경기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어린 시절 청년들에게 매 맞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 태권도를 시작했지요. 훗날 유제도 선수의 시합하는 장면을 보고 운동을 하면 돈을 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그때만해도 스포츠로 가난을 탈출하려는 것이 그의 생각의 전부였다 한다.
"세상에 그냥 이루어 지는 것이란 없지요" 성공비결에 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한번은 멕시코에서 세계경기가 있었는데 당시 고산기후에 적응이 안되고 더구나 도착하자마자 훈련도 없이 이튿날 곧 바로 경기에 나서다 보니 "생각 따로 몸 따로 움직여져 크게 당한 적도 있었다"한다. 그러면서 그는 철저한 자기관리, 피 타는 훈련이지요. 털 끗만한 소홀로 큰 화를 당할 수 있지요. 에누리 없이 노력으로 땀으로 결과가 나오는 법입니다."라고 말했다.
현역시절 그는 매일 10시간이상의 훈련은 필수였다. 30년간의 선수생활을 마친 후 지금은 선수 때처럼 훈련을 하지 않지만 여전히 건강을 위한 하루3시간 단련을 계속하고 있으며, 취미로는 낚시 질을 좋아하는데 이는 순간포착을 위한 마음수련에 도움이 되는 운동이라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실전의 대가
"링에서는 맹수, 밖에서는 순한 양"
이종(異種)격투기는 서로 다른 무술을 익힌 무술가들이 거의 무규칙에 가까운 룰로 싸운다는 투기종목이다. 그래서 이 각수는 여러 무술을 섭렵했다. 세계 모든 무술 중 최고라는 발차기를 얻기 위해 태권도를 익혔고, 꺾고 던지기를 배우는 사이 합기도 8단의 고수가 됐다. 7단의 검도실력에 눈은 바람처럼 빨라졌다. 킥복싱, 복싱과 유도는 또 다른 기술을 가져다 줬다.
지금의 이 각수 씨는 산전수전 다 겪은 실전기(實戰技)의 대가이지만 그도 링에 처음 올랐을 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했다.
상대는 보이질 않았고, 주먹과 발이 어떻게 나가는지도 몰랐다. 이후 여러 차례 무대에 더 오르면서 코칭스태프의 주문이 들리더니, 링 주위 누가 열성 팬 인지까지 눈과 귀에 들어왔다. 담이 커진 까닭이다. 그는 무인의 근본 자질 중 배짱이 으뜸, 다음으로 힘과 파워, 스피드를 순서대로 논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타고 난 무골(武骨)로 칭했다. 체구가 작은 대신 타고난 힘이 장사였다. 거구의 상대에게도 웬만해서는 밀리지 않았다. 힘이 부칠 때는 스피드로 보충한다.
이 각수는 이종격투기 세계타이틀3차 방어전 1회, 단 7초 만에 일본 가라데선수의 무릎 일격에 갈비뼈가 3개나 부러지는 중상을 당하고도 2라운드에서 점프회축으로 상대의 턱을 가격하여 타이틀을 지킨 투사였다.
사무실 실장이 들려준 이야기, 어느 날 직원회식을 마치고 이 총장이 먼저 문밖을 나와서 "먼 산을 바라 보는데" 갑자기 웬 술에 취한 한 청년이 뒤에서 아무 연고 없이 돌연간 주먹으로 그의 오른쪽 볼을 강타 했다. 얼얼하게 "무단강타"를 당한 격투기세계챔피언, 화를 새기느라 한참 동안 "윽윽" 벼르다가 끝내는 그 주정뱅이 청년을 그대로 놓아 주었다 한다. 그 청년이 상대방이 격투기 챔피언인 것을 알았더면 어찌했을까... 링 밖에서는 순한 양처럼 살라….
이 각수총장은 늘 이렇게 말한다. "격투기는 무예이자 스포츠다. 스포츠는 즐기는 것이다." 링밖에서는 조용히…
조선족 여제자 심영희 세계챔피언 일화
한중 교류 활성화로 세계적인 대회 기대
이 각수총장의 제자들 중 유명선수들이 많다. 그 중 세계종합격투기 여자챔피언 조선족 심영희 선수가 돋보인다.
연길태생인 심영희가 한국에 간 것은 1988년도, 목적은 단 돈을 벌어서 잘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격투기와 인연을 맺게 된 과정을 심영희(49세)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식당에서 음식배달을 하던 때인데 한번은 어느 체육관으로 음식배달을 갔다가 격투기챔피언 이 각수(현 세계종합격투기연맹 사무총장)관장의 커다란 사진을 보고 나도 챔피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이 일어섰어요. 식당 심부름꾼이 개념조차 모르는 격투기를 하겠다니 어이가 없었던지 이 각수관장은 할 줄 아는게 뭐냐, 발차기를 한번 해보라고 했습니다. 어릴 때 기계체조를 배운 적 있는지라 발이 머리위로 올라갔어요. 생각이 있으면 해보라는 말에 정말 감사했어요. 그때부터 격투기에 몸담게 되었지요.》
심영희씨는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이종격투기 인생을 시작했다. 2003년 프로무대에 입문한 그는 35경기에 걸친 도전 끝에 2007년 3월 드디어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심영희는 한국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2007년 6월 미국방문을 왔을 때 밀착경호를 맡기도 했으며 그전에 미국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 이 각수씨는 세계종합격투기연맹(WXK) 사무총장으로, 한국 명지대학교 무예합기도 지도교수로도 바쁜 몸이다.
"지금 중국에서도 이종격투기가 무척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요. 2000년도에 중국선수들을 초청해서 시합을 개최한적이 있는데 중국선수들이 기량이 뛰어납니다. 조망간 세계적인 격투기 선수가 배출될 가능성이 많지요. " 이 각수 총장은 한중간 효율적인 인적 교류로 세계종합격투기연맹을 바탕으로 한.중 세계적인 이종격투기대회를 교류하는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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