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서예는 삶의 풍격을 높이는 “멋”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1월27일 14시54분    조회:583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장문선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26)

연변조선족서예가협회 장문선주석과의 인터뷰
 
 
 

연변조선족자치주설립 60주년맞이 서예전과 사회보험컵 서예대전을 앞두고 분망한 일정을 보내고있는 연변서예가협회 장문선주석을 만나 서예에 대한 그의 인생철학을 알아봤다.
 
서예와의 인연
1976년, 참군하여 산동 제남에서 9년동안 군복무시 주변에 한족서예애호가들이 참 많았다. 가끔씩 그들한테서 한수를 배우면서 솜씨를 겨루어보기도 했다. 1984년, 10만명이 참석한 전국 경필서예공모전이 있었는데 자신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 공모에 참가, 헌데 초보인 내가 한족들을 제치고 우수상을 타게 될줄이야. 그때 나는 “하면 된다”는 말의 참뜻을 실감했다.
 
초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지금까지 독학을 통해 서예를 익혔기에 방법상 문제가 많았고 발전이 더디였다. 생활형편이 어려워 마음껏 글씨를 쓸수 없는 처지여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더욱 어려운것은 시간의 쪼들림을 받아야 했다. 공무원인 나는 낮에는 직장에 출근해야 했기에 밤을 패가며 서예를 익힐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한자서예와 한글서예, 미각(미형서각, 微型 刻)에까지 그 령역을 넓혀갔다.
 
서예를 접할 때의 마음가짐은?
컴퓨터가 발달한 현시대 서예애호가들이 많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비록 일부 서예애호가들이 한국에서도 협회를 설립하고 서예의 발전을 위해 한몫 담당하고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감소세를 보이고있다.
현대사회에서 서예는 접하기 힘든 분야이다. 대중문화가 판치는 세상에서 서예는 낯설고 재미없고 어려운 예술로 되였다. 하지만 과거에 서예는 무엇보다도 삶의 품격을 높이는 예술이고 훌륭한 취미생활이였으며 삶에서 깊은 정을 “멋”으로 나눌수 있는 생활문화였다. 지금도 서예는 그런 가능성을 가진 멋진 예술이며 취미활동이고 생활문화라 생각한다. 서예도 다른 쟝르의 예술과 마찬가지로 풍부한 상상력과 연박한 지식, 여러가지 관련예술에 대한 수양을 필요로 한다. 나는 서예를 배우는 과정에서 사람되는 도리를 깨우치게 되였고 서예를 생활의 락으로, 사업의 필수로, 심령의 서사로, 성격의 승화로 간주하고있다.


 

연변서예의 발전을 위해 어떤 일들을?
1997년 “밀림컵” 전주조선족서예전을 시작으로 국경절맞이서예전, 동북3성서예전, 연변녀성서예전, 대명안경컵경필서예전, 원앙컵전주서법전, 고려촌컵전주서법전 등 수십차례의 서예전을 펼쳤고 연변제주도서예교류전, 연변서귀포서예교류전, 중일한서예교류전, 한국 전주경필서법전 등 많은 서예교류전도 펼쳤다. 한편 1990년 9월, 연변조선족서예협회에 들어 각족 행사에 참석했고 2007년에는 연변경필서예협회도 설립했다.  현재 연변조선족서예협회의 회원수는 200여명, 연변경필서예협회 회원수는 300여명에 달한다. 회원들은 상술한 서예전에 참가해 많은 금,  은,  동상을 수상했으며 회원들은 연변무장경찰지대에 가서 서법강화를 진행하기도 했다.
 
서예애호가들에게 전하고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조선족이라고 조선글만 써서는 안된다. 한자를 잘 쓸수 있어야 조선글도 잘 쓸수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네모난 글보다는 물이 흐르듯이 선으로 이어진 예술적이면서도 살아움직이는 글자를 써야 한다. 또한 하루라도 거르지 말고 매일 써야 한다. 잠시라도 손을 놓으면 솜씨가 인츰 굳어져 다시 적응하는데 또 일정한 시간이 소요되기때문이다.
 
향후 꿈이 있다면?
미각예술작품의 시장화를 계획하고있는데 가격대가 만만치 않아 어려움이 크다. 머리칼에 쓴 글씨는 직접 눈으로 볼수 없다. 현미경을 통해야만 볼수 있는데 이를 볼수 있도록 선물용으로 만들어볼가 한다. 또한 연변조선족자치주성립 60주년을 맞으며 돌에 장백산을 새겨넣으려 한다.
여생을 미각이라는 힘든 작업에 몰두하련다. 옛사람과 현대인사이, 전통과 현대사이, 큰것과 작은것사이, 서예와 조각사이, 조각과 미형조각사이에서 보다 특수성을 띤 예술의 길을 모색해냄으로써 이 시대에 조금이나마 공헌하련다.

문인숙 박군걸 기자
 
장문선 략력        
 
1957년생, 연변주상무국직원
연변서예가협회상무부주석
연변조선족서법가협회회장
연변공예미술가협회부주석
연변경필서법가협회명예회장
1983부터 전국 ,길림성,연변 등 지역에서 펼쳐진 서예경연에서100여차 금상, 은상, 동상, 우수상 회득
1998년,한국MBC<기인열전>프로에서 쌀알에 글자새기는 표현을 했다.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류미옥(53살)씨,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줄 모른다.그래서 그녀는 “웃음아줌마”로 소문났다. 그는 연길 예스마일치과병원을 운영하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치과의사이다. 그녀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귀맛 좋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그녀에게 몇년전부터는“노래부르는 치과의사”라는 새...
  • 2013-08-21
  • 석희만은 연변대학 미술학부의 창시자이자 조선족 서양화단을 이끈 선구자의 일원이다. 아울러서 그는 중국현대미술의 변화와 전개라는 력사적인 맥락에서 주목되는 화가이며 미술교육가로 명망이 높다.   석희만은 거의 한세기에 걸친 파란만장한 인생과정에서 격변하는 력사적사건들과 미술사조를 거치면서 중국조선...
  • 2013-08-20
  •   저명한 농민벼재배전문가 최죽송 1964년도에 있은 전국농업회의에서 당시 국무원 총리 주은래는 《중국의 남방에는 벼재배전문가 진영강이 있고 북방에는 벼재배전문가 최죽송이 있다》고 높이 평가한적이 있다. 이때로부터 우리 나라에는 벼재배전문가를 평함에 있어서 《남진북최(南陈北崔)》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 2013-08-19
  • -장춘시 록원구조선족소학교 백정숙교장의 사업담 장춘시 록원구조선족소학교 백정숙교장 우리 민족교육사업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30년을 묵묵히 기여해온 사람, 넓은 흉금과 후더운 사랑으로 사생들을 감화시키며 민족전통문화를 고양하면서 민족특색있는 학교건설을 위해 모든 심혈을 기울여온 사람, 그가 바로 장...
  • 2013-08-19
  •  LIG그룹 손해보험 '글로벌팀' 하광호 팀장   LIG그룹 손해보험 '글로벌팀' 하광호 팀장 (흑룡강신문=서울) 나춘봉 기자= "저의 세대는 대부분 부모님들이 한국에서 피땀을 흘려 뒷바라지를 해주었죠. 한국에 와서야 비로소 부모님들이 겪은 시련과 아픔을 절실히 느꼈어요. 지금도 고된 노동과 차가...
  • 2013-08-19
  •   연변방송음악사상 살아있는 전설, 저명한 작곡가 동희철선생은 《고향산기슭에》 의젓하게 서 계신다. 백발을 이고 지팽이를 짚고선채 유유히 흘러가는 해란강을 굽어 저 멀리 산야를 바라보며 깊은 명상에 잠겨있다. 《고향산기슭에 올라서니 사철푸른 소나무 반겨주고 유유히 해란강은 흘러가누나 아- 사랑스런 산...
  • 2013-08-16
  • 연변민족복장학교 김영희교장 인터뷰   연변민족복장학교 김영희교장.   "한가지 기술을 장악하게 되면 평생직업을 찾은것과 다를바 없다" 이는 연변민족복장학교의 김영희교장이 한 의미심장한 말이다. 연변에서 지정한 연변로무송출분야의 복장양성기지인 연변민족복장학교(교장 김영희)에서는 20여간 1만여명의...
  • 2013-08-14
  • 장춘조선족기업가협회 김용규회장은 성공도 즐거운 일이지만 베푸는것도 즐거운 일이라고 말한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한국 대우중공업 중국지사에 일반사원으로부터 길림성두산공정기계유한회사의 사장(총경리)으로 자기 자리를 굳힌 그는 기업가로서 부를 축적하는데만 뜻을 두지 않았다. 그는 많은 조선족기업가...
  • 2013-08-14
  •   《처녀의 노래》, 《사과배 따는 처녀》, 《베짜기 노래》 등 명곡을 불러 이름을 떨친 가수 방초선은 중국조선족이 배출한 성악가로 널리 알려져있다. 방초선은 중국지역에서뿐만아니라 국외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고있으며 예술단체, 정치분야 등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국가1급 성악가이다. 국무원에서 수...
  • 2013-08-14
  • ㅡ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 심청송리사장의 인생철학 1968년 흑룡강성 녕안현 출생 1991년€1993년 중국대외경제무역대학 통신학습 1994년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 단동분회사 설립(합작) 2002년 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 설립 2005년 길림 집안국제화물운송대리유한회사 설립 2008년 단동시정협위원 2010년 조선 평양에 별심합작...
  • 2013-08-1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