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안해로 강해지고 어머니로 위대해진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18일 10시34분    조회:460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방채봉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80)

숨은 작가 방채봉녀사              
           
 
 

연변우전국에서 30년동안 내내 모범이요, 선진사업가로서 열심히 일했고 길림성 우전계통 기술시합에서 1등을 하여 널리 이름을 떨치던 방채봉녀사가 말년에 일약 한국 문학상을 탔다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랄것이다. 실은 그녀는 처녀시절부터 매우 열렬한 문학도였다. 그리하여 문학청년이였던 김철씨와 연분을 맺어 결혼을 했고 그후에도 몇편 문학작품을 쓰기는 했지만 남편 김철씨가 문학계에 너무 빨리 솟아오르는 통에 그가 쓴 작품도 남편이 써주었다고하는 바람에 아예 붓대를 꺾고 사업에만 열중했던것이다. 남편의 그늘에 치워 고개를 못든것은 그녀뿐이 아니였다. 맏아들 김훈이도 첫 출발은 시로 시작했는데 독자들이 아버지가 써주었다고 추측을 하는 바람에 그도 방향을 돌려 소설로 넘어갔던것이다. 그러다가 방채봉녀사는 팔순을 바라보는 만년에 파란만장한 자기의 생애를 회억록으로 썼는데 뜻밖에도 한국에서의 호평을 받아 한국의 문학지 《열린문학》에 련재가 되고 그곳 평심위원회의 일치한 추천으로 문학상을 수여받은것이였다.
 
밤중의 총소리

지난 세기 30년대초반의 어느날, 그녀의 일가가 살고있는 봉림동(연길시 장백향 봉림촌)에 토비들이 쳐들어왔다. 돈과 재물을 략탈해가려는 토비들을 피해 마을사람들은 모두 마을 뒤 논판에 가서 납작 엎드렸다. 그중 갓난아기를 업은 한 어머니도 있었다. 아기가 찬물에 놀라 울면 큰일이였기에 아기를 다시 둘쳐업으려던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업고 온것이 아기가 아니라 베개였던것이다. 어머니는 죽음을 무릅쓰고 총소리나는 마을로 뛰여갔다. 집문을 열로 들어가보니 아기는 구들에서 쌕쌕거리며 자고있었다. 그 아이가 바로 방채봉이였다. 그녀가 혼자 자는 새에 그의 아버지가 토비를 피해 담장을 뛰여넘다가 수류탄에 맞아 쓰러졌다. 이렇게 그녀는 태여나 얼마 안되여 아버지를 잃게 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당시 그의 할아버지는 청산리대첩때 김좌진장군의 군량도감으로 있었던 분이셨고 아버지는 룡정대성중학교를 다니면서 반일활동에 참가했던 분이셨다.
아버지가 비명으로 세상을 하직한후 그의 어머니는 홀로 어린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기가 어려워 재가를 했다가 전염병에 걸려 하늘나라로 훌쩍 떠나셨다. 고아로 된 그녀는 그때로부터 년로한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게 되였다.

외롭게 살아가는 할머니와 철없는 손녀에게 있어서 가난의 그림자는 늘 따라다녔다. 고해의 끝은 어디? 철없는 그녀에겐 도저히 살아나갈 길이 없었다.
 
민며느리로 보내려고

그의 가정형편을 측은하게 생각한 친척아저씨 한분이 할머니를 찾아와 그를 잘 사는 집 민며느리로 보내려고 합의하였다. 어느날 그녀가 집에 돌아와 보니 숱한 사람들이 집에 모여와 국수를 먹고있었다. 영문을 물어보니 신랑감되는 사람이 왔다는것이였다. 그리고 그 집은 낟가리 두개가 있는 잘사는 집이라고했다. 그때 그녀는 다이야몬드에 팔려간 심순애 생각이 나서 국사발을  내동댕이치고 집을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억지로 동여매 가는 날이면 양재물을 먹고 죽겠다고 이웃집에서 돈 20전을 꾸어 양재물을 사서 몸에 지니고 다녔다. 후에 알고보니 그녀가 사온건 양재물이 아니고 만두를 만들 때 쓰는 식용소다였던것이다.
 
보람찬 처녀시절

고난의 동년세월은 광복이 나면서 끝났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광복이 난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계급획분이라는게 있었다. 옛날에 못 사는 사람은 빈농, 고농이요, 잘 사는 사람은 지주, 부농으로 획분하였다. 그때 그녀의 집 성분은 도시 빈민에 속하는데 그녀는 너무도 찢어지게 못산것이 한이 되고 부자가 부러워서 자기 성분을 지주라고 자진해 보고했다. 그래서 그는 하마트면 지주집 손녀로 몰리고 투쟁을 받을번 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어쩔수 없이 웃음이 나온다.

그녀는 조직의 배려에 의해 민주학원도 다녔고 우전국에 배치도 되였다. 그후 조선전쟁이 터졌다. 그녀는 조직의 신임을 받아 연길우전국의 기요교환수가 되였다. 기요교환수는 미국비행기가 어디서 언제 뜨고 어느 방향으로 날아오고있다는것을 군부에 련락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교환수였다. 그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였다. 하여 그녀는 “10년변방모범”으로 당선되였다.

해방전 13살에 우전국 심부름꾼으로 들어가 그에게는 이름대신 “뽀이(심부름꾼)”라는 별명이 붙어있던것이 해방후 모범에까지 당선되니 그녀의 기쁨은 한량없었다.

그녀는 평소에 업무사업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업무에서는 누구한테도 짝지지 않았으며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내들었다. 언젠가 길림성에서 전성 기술시합을 하게 되였는데 그녀는 1등상을 취득하였다. 길림성에서는 그녀의 업무기술을 소개하는 책자를 두권이나 냈고 방채봉을 따라 배우라는 호소를 내리기도 하였다.
 
고생끝에 락이 왔다

그녀는 문화대혁명때 난데없는 조선특무라는 감투를 쓰고 1년동안이나 옥살이를 하였다. 실로 터무니없는 날벼락이였다. 고생끝에 락이 온다는 말과 같이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그녀의 기정은 호시절을 맞았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북경에 간후 남편을 도와 중국소수민족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를 꾸렸고 남편이 북경고려문화경제연구회 회장이 되자 그를 도와 사무국장직을 맡고 많은 활약을 했으며 북경녀성친목회 사무국장, 애심회 전임 회장직을 맡고 수도권 동포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며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그녀의 가정에서는 남편은 주로 “글농사”를 짓고 그녀는 “자식농사”를 지었는데 모두가 성공적이였다. 북경시시정부는 그녀의 가정에 “5호가정”, “남편은 북경영예시민” 칭호를 수여했다.

가문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지니 그녀는 처녀시절의 꿈이 되살아났는지 남편 몰래 자기 일생의 인상깊은 사건들을 글에 담았다.

한국 《열린문학》 발행인 김선박사님과 식사를 하던중 그녀가 자서전이야기를 꺼내니 대뜸 원고를 달라고했다. 원고를 준후 사흘만에 답복이 왔는데 발표하기로 결정했다는것이였다. 그 글이 실린후 국제문화예술협회로부터 그의 자서전 《파란만장한 나의 인생》 이 “허란설헌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왔다. 그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였고 주변 사람들은 물론, 남편, 아들들도 깜짝 놀랐다.

그녀는 수상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녀자는 안해로 강해지고 어머니로서 위대해진다. ”
 
박혜옥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되돌아보는 인생그라프 □ 허길성     청년시절의 허길성   사람들은 길고도 짧은것이 인생이라고 한다. 순간순간과 하루하루가 모여 하나의 트랙이 되는것 또한 인생이라고도 한다. 나 자신을 놓고볼 때 1939년생(고향은 조선 함경북도 길주군 갑산동임)이니까 만으로 올해 75세이다. “젊어서는 희망...
  • 2013-03-07
  • 중국과학원 심양응용생태연구소 김영환부교수 산과 나무를 하늘처럼 떠받드는 사람, 나무의 “웃는” 소리와 “우는” 소리가 무엇인지 깊은 산속의 작은 풀잎의 스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관찰하고 연구하는 그는 중국과학원 심양응용생태연구소에서 삼림생태를 연구하는 김영환부교수(47세)이다...
  • 2013-03-07
  • 학자형 전문가형 일인자 연변대학부속병원(연변병원) 김철호원장 연변대학부속병원(연변병원)의 이 몇년간의 눈부신 활약과 성장에는 다 그럴만한 리유가 있다. 환자와 가족이 100% 만족하는 명품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언제나 온 힘을 쏟아부으며 아름다운 “항행”을 주도하는 “연변병원호” ...
  • 2013-03-06
  •  ‘전국동포산업재해인협회’남명자 총무국장   (흑룡강신문=중국주간) 나춘봉 기자 = 한국에 와 있는 동포들의 숫자가 대략 60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 숫자가 계속 늘고 있다.   대부분 중국동포들은 중국에서 한국말을 배웠다. 하지만 한국말과 글을 안다고 해서 한국의 풍습과 문화까지 다 안다고 할...
  • 2013-03-06
  •   THE NORTH FACE 연변총판대리점 한춘향사장 "경기불황으로 요즘처럼 고객수가 줄어드는것을 피부로 체감하고있는 류통업계는 일찌감치 비상경영중입니다. 그럴수록 더 력동적으로 점포가 움직여야 합니다. 불황이라고 움츠릴게 아니라 오신 고객들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정을 나눠주고 좋은 상품을 제안해 주고..." ...
  • 2013-03-05
  • 흑룡강성병원, 흑룡강성중일우호병원 부원장 김정석의학박사를 찾아 흑룡강성병원이라면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많을것이지만 1800여자리 침대, 3100여명 직원을 갖고있는 이 병원의 실무담당자가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 지난 12월 12일 할빈에서의 첫 취재에서 만난 흑룡강성병원 및 흑룡강...
  • 2013-03-05
  • -길림성 왕청현제5중학교 전철수교장 왕청현제5중학교 교장 전철수 길림성 왕청현제5중학교 전철수교장이 《길림성민족단결진보 선진집단》의 자랑찬 영예를 안고 병풍산 기슭에서 민족단결의 꽃을 아름답게 피워가고 있다. 2008년 11월, 한족학교인 왕청현제3중학교는 교사재건으로 수업할 교실이 없게 되였다. 이에 왕청...
  • 2013-03-05
  • 조선족녀기업가 김석순 당당하다, 멋있다, 우아하다… 김석순회장(48세)을 처음 만나는 순간 떠오르는 느낌은 대략 이렇다. 그는 외모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를 발산한다. 깔끔하게 빗어넘긴 짧은 머리, 조선족녀성으로서는 보기 힘든 170센치메터가 넘는 큰 키 그리고 부드러운듯하면서도 목적의식이...
  • 2013-03-04
  • "중국에 거주하는 재외국민의 자녀가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고 한민족의 일원으로 육성하려면 하루속히 '재외한국학교지원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황찬식(57) 재중국한국인회장은 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와 국회가 재외국민의 교육에 나서줄 것을 촉구하면서 법적&m...
  • 2013-03-01
  • 저명한 조선족물리학자 김광성교수의 외길 인생 자석은 왜 서로 붙을가, 지남침은 왜 항상 남쪽을 가리키지?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봤을 법한 의문들…살아가면서 그 수많은 의문들은 삶에 부대끼며 지나온 길에 하나 둘씩 잃어버린다. 하지만 한 소년은 달랐다. 헐벗고 굶주리던 그 시절에도 그의 호주머니...
  • 2013-02-2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