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행복한 다문화가정
다문화가족의 사랑을 받는 정춘홍씨를 만나
기자가 알아본데 따르면 한국 전역에 208개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설치되여 있는데 인천광역시만도 9개나 된다고 한다. 남동구에는 중국어와 윁남언어 사용자가 제일 많다고 한다.
지난3월23일, 인천광역시 남동구청 다문화복지센터의 소개로 다문화가족인 정춘홍씨를 만나게 되였다. 마침 이날 인천광역시 송영길시장이 남동구청에와 업무보고를 듣는 날이라 다문화가족을 포함한 구민들과 함께 대화모임에 초청된 정춘홍씨는 화사한 옷차림에 성격 또한 활달한 녀성이였다. 초면이지만 자신의 경력에 대해 허물없이 털어놓았다.
그녀의 고향은 중국 길림성 길림시, 2001년에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당시 한국에 몇몇 이모님들이 있기에 무작정 돈을 번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보니 한국말이 통하지 않아 고생이 많았다 한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한식점에 들어갔는데 고객들과 도무지 소통이 안되였다. 음식을 날라 가고 빈 그릇 거두고 씻는 일은 그런대로 눈치를 봐가면서 할수 있었지만 음식이름을 부르고 가져오라고 할 때는 도무지 그 뜻을 몰라 멍청이가 되기 일수였다.그러던 어느 하루 한국 아줌마 한분이 새로 오셨는데 그 아줌마가 얼마나 자상하게 한국말을 배워주는지 하루가 다르게 배워나가기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배운 한국말이 남새중에서 시금치였다고 한다. 그렇게 6개월간 그 아줌마와 함께 일하고 한방에서 자면서 낮에는 식당일을 배우고 밤에는 아줌마를 한국어 교원으로 모시고 우리 말 자모부터 하나하나 배워 나갔다.
한국말에 자신을 갖게 된 그녀는 반년후 상경하여 서울에서 다시 음식점에 취직하였다. 이 음식점은 장소도 좋고 음식도 맛이 있어 손님들이 빌새 없었고 월급수준도 좋은 편이였다고 한다.
원래 계획은 목돈이나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는것이였으나 운명은 그를 한국에 남게 하였다. 2004년 그녀는 고모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였고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어 한국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것이다.
《지금도 그때 말이 통하지않아 고생하던 일을 생각하면 속이 지긋지긋합니다.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거듭 생각하게 되지요. 다문화가족들이 언어장애로 소통이 안되는것을 보면 마치 자기일처럼 생각됩니다. 항상 지난 일을 생각하며 그들을 도와주기에 앞장섭니다.》그녀는 초등학교에서든 유치원에서든 중국어 교원을 원하면 아무 때든 달려갔고 그 외 어느 다문화가족이든 부르면 열성적으로 도와준다고 했다.
2010년부터는 정식으로 인천시 남동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중국어 이중 언어강사를 맡고있다. 그녀는 언어 뿐아니라 같이 일하는 다문화가족들의 애로사항도 잘 도와주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하나의 소원이라면 그때 구리시에서 한국말을 배워주던 그 아줌마를 만나보는것이라 했다. 허나 그렇게 수소문해도 찾을 길 없다며 눈물이 글썽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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