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최후의 보루》를 다져가는 조련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6월24일 09시24분    조회:404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정영학

-연변장백호랑이팀 키퍼코치 정영학씨

흔히들 축구에서의 꼴키퍼를 《최후의 보루》이자 《팀의 절반》이라 부른다. 무엇이 어찌됐든 실점을 막기 위해서는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도사려야 하고 온 몸을 내던져 막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8일, 연변장백호랑이팀(이하 연변팀)에서 키퍼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정영학씨(42세)를 만났다. 검실검실 얼굴이 타있었다. 불볕더위지만 훈련을 게을리할수 없다고 했다. 팀이 어려울수록 그만큼 키퍼가 받아안는 압력도 따라가는만큼 기량에 금이 안가도록 그들을 잘 조련시키는것이 맡은바 소임이란다.

《키퍼는 특수 포지션입니다. 그만큼 발굴로부터 배양에 이르기까지 가배의 노력이 필요하지요.》

화룡시 서성진이 고향인 정코치는 초중 2학년 때부터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화룡체육학교 축구반에서 기본공을 익히고 이후 룡정체육학교 축구반(1986년)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키퍼훈련을 시작했다. 2년뒤에는 연변주체육운동학교에 입학하면서 리호은감독 휘하에 들어갔고 연변팀의 전임키퍼 유동구를 스승으로 기량을 련마했다. 1990년 년말에는 연변청년팀에, 이어 1993년부터는 연변1팀의 장갑을 꼈다. 1996년까지 연변1팀의 대문을 지켰던 정영학씨는 이듬해에는 할빈란고르팀에서, 그 이듬해에는 광주백운산팀에 임대돼 전성기를 이어갔다. 특히 을급팀이였던 광주백운산팀이 1998년에 갑급팀으로 승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99년에 은퇴한 이후 2000년 길림시체육운동학교를 시작으로 코치생애를 시작한 정영학씨는 연변주체육운동학교(2004년)를 거쳐 2009년부터 현재까지 쭉 연변1팀의 키퍼코치를 담임하고 있다.

《키퍼 포지션은 개인항목이라 볼수 있습니다. 자기표현을 할수 있는 기회가 다른 포지션에 비해 많지만 그만큼 받는 압력도 크지요.》

꼴키퍼는 축구선수중 뛰여다니는 거리가 가장 짧다. 축구장 규격은 가로 90∼120m, 세로 45∼90m다. 그중 꼴키퍼는 길이 7.32m, 높이 2.44m의 꼴대를 중심으로 뛰여다닌다. 꼴키퍼는 이 꼴대의 량쪽 기둥으로부터 각각 16.5m, 그 지점에서 다시 필드를 향해 직각으로 16.5m 뻗어 있는 공간, 즉 벌축구역을 위주로 활동하기때문이다.

잘하면 본전이요 못하면 욕을 먹는것이 키퍼 포지션, 그 욕도 혼자 먹을 때가 많다.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30일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장례를 치르기 바쁘게 팀과 합류했다. 키퍼 조련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정영학코치다.

현재 연변팀에는 윤광, 지문일, 고츰(한족)등 3명의 키퍼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부 연변적 선수들인 이들 가운데 윤광과 지문일은 주력으로, 고츰은 후보로 땀동이를 쏟고 있다고 한다. 정코치는 윤광의 순발력과 안정성, 지문일의 날렵함과 페널티킥 방어능력을 합친다면 국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꼴키퍼 케이스라고 단언한다. 연변팀의 신진키퍼 고츰에게 배정한 표척이자, 정코치의 꿈이기도 하다. 하지만 축구는 혼자만의 운동이 아닌만큼 키퍼의 기량발휘에 비해 《억울하게》 실점할 때도 있다며 팬들의 리해를 바랐다.

지난해 2월 우수한 성적으로 아시아축구련맹에서 발급하는 키퍼코치 자격증을 획득한 정영학씨, 우리의 키퍼들이 《연변의 문》을 더욱 잘 지킬수 있도록 조련시켜 팀이 좋은 성적을 따내는데 버팀목이 되겠다고 약속한다.


길림신문 김룡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류미옥(53살)씨,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줄 모른다.그래서 그녀는 “웃음아줌마”로 소문났다. 그는 연길 예스마일치과병원을 운영하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치과의사이다. 그녀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귀맛 좋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그녀에게 몇년전부터는“노래부르는 치과의사”라는 새...
  • 2013-08-21
  • 석희만은 연변대학 미술학부의 창시자이자 조선족 서양화단을 이끈 선구자의 일원이다. 아울러서 그는 중국현대미술의 변화와 전개라는 력사적인 맥락에서 주목되는 화가이며 미술교육가로 명망이 높다.   석희만은 거의 한세기에 걸친 파란만장한 인생과정에서 격변하는 력사적사건들과 미술사조를 거치면서 중국조선...
  • 2013-08-20
  •   저명한 농민벼재배전문가 최죽송 1964년도에 있은 전국농업회의에서 당시 국무원 총리 주은래는 《중국의 남방에는 벼재배전문가 진영강이 있고 북방에는 벼재배전문가 최죽송이 있다》고 높이 평가한적이 있다. 이때로부터 우리 나라에는 벼재배전문가를 평함에 있어서 《남진북최(南陈北崔)》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 2013-08-19
  • -장춘시 록원구조선족소학교 백정숙교장의 사업담 장춘시 록원구조선족소학교 백정숙교장 우리 민족교육사업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30년을 묵묵히 기여해온 사람, 넓은 흉금과 후더운 사랑으로 사생들을 감화시키며 민족전통문화를 고양하면서 민족특색있는 학교건설을 위해 모든 심혈을 기울여온 사람, 그가 바로 장...
  • 2013-08-19
  •  LIG그룹 손해보험 '글로벌팀' 하광호 팀장   LIG그룹 손해보험 '글로벌팀' 하광호 팀장 (흑룡강신문=서울) 나춘봉 기자= "저의 세대는 대부분 부모님들이 한국에서 피땀을 흘려 뒷바라지를 해주었죠. 한국에 와서야 비로소 부모님들이 겪은 시련과 아픔을 절실히 느꼈어요. 지금도 고된 노동과 차가...
  • 2013-08-19
  •   연변방송음악사상 살아있는 전설, 저명한 작곡가 동희철선생은 《고향산기슭에》 의젓하게 서 계신다. 백발을 이고 지팽이를 짚고선채 유유히 흘러가는 해란강을 굽어 저 멀리 산야를 바라보며 깊은 명상에 잠겨있다. 《고향산기슭에 올라서니 사철푸른 소나무 반겨주고 유유히 해란강은 흘러가누나 아- 사랑스런 산...
  • 2013-08-16
  • 연변민족복장학교 김영희교장 인터뷰   연변민족복장학교 김영희교장.   "한가지 기술을 장악하게 되면 평생직업을 찾은것과 다를바 없다" 이는 연변민족복장학교의 김영희교장이 한 의미심장한 말이다. 연변에서 지정한 연변로무송출분야의 복장양성기지인 연변민족복장학교(교장 김영희)에서는 20여간 1만여명의...
  • 2013-08-14
  • 장춘조선족기업가협회 김용규회장은 성공도 즐거운 일이지만 베푸는것도 즐거운 일이라고 말한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한국 대우중공업 중국지사에 일반사원으로부터 길림성두산공정기계유한회사의 사장(총경리)으로 자기 자리를 굳힌 그는 기업가로서 부를 축적하는데만 뜻을 두지 않았다. 그는 많은 조선족기업가...
  • 2013-08-14
  •   《처녀의 노래》, 《사과배 따는 처녀》, 《베짜기 노래》 등 명곡을 불러 이름을 떨친 가수 방초선은 중국조선족이 배출한 성악가로 널리 알려져있다. 방초선은 중국지역에서뿐만아니라 국외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고있으며 예술단체, 정치분야 등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국가1급 성악가이다. 국무원에서 수...
  • 2013-08-14
  • ㅡ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 심청송리사장의 인생철학 1968년 흑룡강성 녕안현 출생 1991년€1993년 중국대외경제무역대학 통신학습 1994년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 단동분회사 설립(합작) 2002년 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 설립 2005년 길림 집안국제화물운송대리유한회사 설립 2008년 단동시정협위원 2010년 조선 평양에 별심합작...
  • 2013-08-1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