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고달픈 창업, 시련은 있어도 포기는 없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0월29일 10시09분    조회:865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리동도



연변화하상황균업유한회사 총경리 라동도(50세)씨의 창업의 길은 한마디로  거듭된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였다. 장사길에 나서 사고를 당하여 빼아픈 고통을 받았을 때에도 그는 창업에 대한 열정만은 조금도 꺽이지 않고 실패와 좌절앞에서 굿굿이 일어났다.

라동도씨는 창업에 발을 들여놓게 된 시점부터 남달랐다. “고중을 다닐 때 부주의로 다리가 골절되여 휴학하는 동안 ‘중국청년’ 등 잡지와 창업에 관련된 많은 책을 읽으며 대학에 가지 않아도 출세할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였습니다”

그의 창업의 길은 극히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양계업으로부터 시작되였다. 1983년 고향인 안도현에서 양계업을 시작하자마자 양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몰려 2년후 그만둘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으며 뒤이은 안도 량강지구에서의 포도재배원도 실패로 끝났으며 돈벌이가 쏠쏠하다고 달려든 정보봉사업도 뜻하지 않는 경황을 맞아 접지 않으며 안되였으며 화룡에서 통크게 벌린 의료기판매대리사업도 크게 밑지는것으로 끝났다.

거듭되는 사업실패에서 그는 그 무엇가를 터득하기 시작했다.  1998년 그는 집에 있는 가산을 몽땅 팔어 단돈 700여원을 몸에 지니고 연길에서 과일장사를 벌리기 시작했다. 과일장사를 하면서 그는 늘 시장정보를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산삼장사가 벌이가 괜찮다는 정보를 장악하자 인츰 과일장사를 그만두고 장뇌삼장사를 발을 들여 놓았는데 그런대 장사가 매우 잘 되였다.

장뇌삼장사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한국인들이 상황버섯을 갖고다니는것을 목격하게 되였다. 당시 상황버섯은 연길에서 킬로그람당 3000원~5000원으로 팔렸고 한국에서는 1만원을 호가하던 때였다. 그는 대뜸  예전에 자신이 살던 량강지구에 이런 버섯이 있다는 기억을 더듬어 상황버섯을 개발해보기로 결심하고 상황버섯에 관련된 많은 책을 탐독하면서 직접 각 지로 뛰여다니며 상황버섯에 대한 료해를 깊이했다.

“사실 상황은 여러 가지가 구분됩니다. 모양, 색갈도 저마다 다르지만 당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상황을 모두 뽕나무상황이라고 팔았습니다. 상황이름을 사람들에게 다시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었던것입니다” 그는  직접 여러가지 상황이름을 명명해서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올리며 홍보작전을 펼쳤다.

1998년의  장백산개발을 시작으로 그는 흑룡강 소흥안령, 대흥안령은 물론이고 섬서 진령까지 개발의 폭을 넓혔다. 그의 상황버섯은 2000년부터 일본에 수출되였는데 일본시장에서 제품으로 포장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한국, 미국, 대만, 향항,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널리 소개되여 판매되였다. 2007년 아세아금융위기후에는 다시 국내시장을 개척하여 5년전부터 서장개발에 뛰여들었으며 지난해부터는 신강개발에 착수했다. 요즘  그는  해마다 100여톤의 야생령지와  40톤의 상황버섯,   20~30톤의 기타 버섯들을  국내외에 수출하고있다. 지난해부터는 또 가공공장에 위탁하여 천연야생령지제품도 만들고있는 상황인데는 신강개발이 끝나는대로 로씨야개발을 진행할 타산도 잡고있다.

“저의 버섯산업이 이같이 성공하게 된데는 인터넷경영의 도움도 매우 큰데 인테넷경영은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2003년부터 인터넷경영을 시작한 그는  지금 국내유명사이트는 물론이고 한국사이트에서도 인터넷경영을 활발하게 벌려가고있다.

“무슨 일이나 꾸준히 하다보면 길이 트이게 됩니다. 포기할줄 모르는 정신만 있다면  성공이 결코 멀지 않을것입니다.” 라동도씨는 그동안 너무나도 많아던 쓰라린 실패의 아픔과 성공의 희열을  이같이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변일보 글·사진 현진국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60
  • 료녕풍성공업기술유한회사 박성갑사장     지난 1991년 7월 중남대학 응용물리학부를 졸업한 박성갑사장(1968년생)은 심양유색금속가공공장에 배치받았다. 수년전만해도 국유기업에 배치받으면 철밥통이여서 흐뭇한 느낌이였지만 그때는 국유기업이 구조개편이 한창이라 갓 대학을 졸업한 이 열혈청년의 마음을 ...
  • 2016-12-09
  • "역사유적 발굴 정리는 그 누구도 미루지 못할 책임이다"   연변B.O환경예술미디어회사 리성남회장 기업 수익보다 역사유적 발굴 정리 우선시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특파원=“조국은 속삭이는 어머니”이라는 시어가 있다.그렇듯 조국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
  • 2016-12-06
  • 요리는 경험을 필요로 하고 있다. 기본으로 조리법과 양념에 대한 레시피가 축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막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젊은 층에게 있어서 막연한 것이 아닐 수...
  • 2016-12-01
  • 철령시한라산불고기구이식당 백영식사장   쉽게 시작할수는 있어도 꼭 성공한다고 장담할수 없는것이 음식업이다. 오죽하면 열개중 여섯개는 개업해서 1년내에 문을 닫는다는 말까지 생겨났을가? 철령시한라산불고기구이식당 백영식사장의 창업이야기도 이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있다.   백영식사장은 1998년 철령...
  • 2016-11-29
  • (연해지역 조선족 인물탐방) 광주12 -남아메리카 시장에 손을 댄 조선족 사장 광주 세원 올더웨이 국제물류유한회사 리수림씨  무역에 착수하는 과정에 리수림씨는 무역집산지인 광주에서 물류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이는 광주 세원 올더웨이 국제물류유한회사 리수림씨의 성과물이나 다름없다.  현재 세원...
  • 2016-11-29
  • 무순시석흘천하문화석유한회사 최철영리사장     “아빠트 한채에 2만원 저금만 있었으면…”   1992년 원 단위에 사표를 내고 창업에 나선 최철영(1965년생)씨의 간절한 소원이였다. 그럴만 했다. 1986년 군대에서 제대하고 한 공장에 로동자로 취직했으나 로임이 보잘 것 없었다. 결혼하...
  • 2016-11-23
  • “기업경영도 정치다!” -료녕해제승기계유한회사 박해평동사장 1988년 자그마한 가마니기계제조공장으로부터 시작해 그룹산하에 료녕해제승과학기술유한회사, 심양한보과학기술유한회사,운남견석기계유한회사, 심양복해기계유한회사 등등 십여개의 중견기업을 갖고있는 료녕해제승기계유한회사의 박해평동사장(1...
  • 2016-11-17
  •       김종식 사장 기자가 광주시 조선족 취재에서 김종식 사장을 알선 받게 된것은, 광주에 발을 들여놓은지 20여년이라는 오랜 경력을 갖고 있는 김 사장이 광주시 조선족사회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였다. 김종식 씨가 광주를 찾은 건 지난 90년대 중반이였다. 당시 광주시는 도약식 발전...
  • 2016-11-17
  • [연해지역 조선족 인물탐방 광주편7]  많은 사람들이 사업 성공의 비결은 돈과 아이템, 운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것들은 창업에 대한 가장 큰 오해이고 걸림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야루끼 일식전문점의 리청송(李青松) 사장이다. 그는 성공적인 창업은 돈보다는 열정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젊어...
  • 2016-11-12
  • [연해지역 탐방 광주편 4] 유태국의 상업담 광주시에 위치한 황포군관학교, 중국 현대력사에서 국공량당의 수많은 군사간부를 양성함으로써 국내외 많이 알려진 이 학교는 중국의 첫 신형의 군사정치학교이다. 그리고 황포군관학교를 가지고있는 광주는 중국민주혁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개혁개방과 함께 광주는 이미 국...
  • 2016-10-29
‹처음  이전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