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순금은 진토속에서도 변함이 없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1월7일 09시47분    조회:787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금수
칭다오 래서 마포숯불갈비 김금수 사장

  프로필 :

  김금수 (62)

  길림성 서란시 평안진 출신

  25년 식당 경영 경력

  칭다오 래서시 마포숯불갈비 사장

  롯디빵커피숍 경영 사장

  래서조선족번영회 회장

  칭다오조선족기업협회 래서지회 지회장

  


김금수 사장은 "조선족들의 잘사는 모습,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자"며 래서조선족
번영회를 조직해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본사기자

(흑룡강신문=하얼빈)  이수봉 박영만 기자 = 칭다오 래서시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김금수 사장은 농촌에서 농사를 짓다 9식구의 생계를 위해 농사를 포기하고 고향서 식당을 경영했었다. 1985년 그렇게 식당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견지하고 있다. 식당을 경영한 역사만 해도 장장 25년이 된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것은 60이 넘어서도 직접 씽씽 차운전을 하며, 새로운 사업 아이텀도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사장은 머리도 검은 자연색이라며 한번도 염색한적이 없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러면서 "정신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지런한 부자는 하늘도 못막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촌에서 농사를 짓던 김사장 부부는 우로는 노부모를 모시고, 아랫로는 동생 3명, 거기에 아들딸 2명을 거느렸다. 식구가 총 9명이나 되었다. 당시 김사장은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그 마음 뿐이였다. 그래서 1983년 개인도급제를 실시하던해에 '남보다 못지않게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촌민 3명과 함께 오상시 장산향에 가서 신풀이를 했다. 6헥타르 논을 개간했는데 나무뿌리만 몇십차 실어내고 논을 일구었다. 그리고 강물을 양수기로 뽑아올려 농사를 지었다.

  2년 동안 죽도록 고생을 해서 농사를 지었지만 수익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15년 임대했던 논을 처분하고 다시 평안진 고향으로 돌아왔다.

  1985년 김사장은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장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식당을 양도받아 경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밥 한그릇에 20-25전씩 했고, 쇠고기 볶음 한접시에 60전씩 했다. 그래도 막상 해보니 농사 짓기보다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머니머니 해도 식량을 해결할 수 있어 좋았다. 9식구가 먹을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상업쪽으로 열심히 하면 광야의 길이 보일듯 했다.

  김사장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연길로 떠났다. 식당을 1년 경영했는데 장사가 그럭저럭 됐다. 그러나 부모님들과 처자식들 때문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식당을 다시 오픈하려다 한국길이 열려 출국했다.


처음 2년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다. 김사장 아내는 한식집에서 2년 넘게 일했다. 부부가 2년 넘게 모은 한화 4500만원을 몽땅 투자하고, 형제들 돈도 빌려 한화 총 8000만원을 투자해 경기도 여주에 700제곱미터 규모의 식당을 경영했다. 식당이 잘 되자 원 식당주인이 불법체류자라는 약점을 잡고 식당을 도로 내놓으라고 했다. 그래서 3개월후 다른 곳에 가서 식당을 오픈했다.

  "당시 자신은 없었지만 열정으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사장은 "어디가면 어디에 손님이 많았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한국서 몇년간 식당을 경영해 한화 5억원을 벌었다고 한다. 김사장은 성업중이던 식당을 한화 2000만원 웃돈을 더 주고 사겠다는 한국인이 나섰지만 돈으로 사촌간의 정을 살수 없다며 한국인 사촌동생한테 넘기고 귀가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지 않게 하라

  김사장은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고 칭다오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 김사장은 칭다오에서 다소 떨어진 래서시가 자신의 경제 여건에 알맞다는 판단을 하고 래서시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칭다오에 진출할 때 김사장의 나이가 55세였다. 성격이 강하고 화끈하며 세심한 김사장이 한국에서 번돈 360만위안을 몽당 투자해 건물을 사고 식당을 다시 시작한다고 하니 아내도 우려했다.

  주변 사람들은 한해에 10만위안씩 써도 30-40년은 평안하게 살수 있는데 왜 고생을 사서하는 가고 말렸다. 그러나 김사장은 "욕심이 생겨서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김사장은 "내가 건강하고 게다가 경험도 있었기때문에 한번 욕심을 부려보았다"고 말한다. 김사장의 말을 빈다면 담량이 있고 , 투자에 한해서는 아끼지 않는다. 김사장은 "보통 사람들이 처음에는 잘 하다 후에는 방심하는데 계속 꾸준하게 노력해야 된다"며 용두사미는 금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25년동안 앞만 보고 달려 왔다고 덧붙였다.

  김사장은 "손님이 식당을 찾아와서 밥 한공기를 먹어도 내 손님이다. 미워하지 말라. 그 사람이 언제인가 다른 손님들을 데리고 와서 크게 먹을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작은 손님도 밉지 않다"며 "마포집이 생기면서 현지인들에게 고기 먹으면 상추에 싸서 먹는다는 한식문화를 전파했다"며 자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김사장은 아내 박춘선(60)씨가 고생을 많이 했다며 그 이유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고 실토했다.

  김사장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는 속담이 말해주듯이 좀 벌었다고 앉아서 먹기만 하면 '좌식산공'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정신력을 키우라

  김사장은 60이 넘었어도 자신이 직접 운전을 한다고 한다. 운전기사가 있어 뒷좌석에서 앉으면 잠을 자게 된다. 그러면 정신력이 약화된다. 그래서 직접 운전을 한다고 한다. 김사장은 "움직일수 있을 때 건강을 위해 열심히 뛰라"고 건의한다.

  김사장은 "사람이 살아 있으면 바람 잘 날이 없다. 내가 할수 있으면 자꾸 사업을 확장하고 싶다"며 이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했다. 현재 김사장은 600제곱미터의 1-2층 마포갈비집과 260제곱미터 1-2층 롯디빵커피솝을 경영하고 있다. 또한 래서시의 최대 마트안에 롯디빵커피숍 2호점을 며칠전에 오픈했다. 광시 난닝시 한 마트의 점포 2개를 구매했다. 연태에 있는 67헥타르 규모의 산을 공동 출자로 구매해 산에 양로원을 꾸릴 타산이라고 한다.

  김사장은 사업확장에 대해 "익숙한 사업에 손을 대고 익숙하지 않은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고 쐐기를 박았다.

  한편 김사장은 "창업을 생각한다면 우선 창업정신이 있어야하며, 모든 사업은 실질적으로 해야지 거짓말은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화가 높지 않아 다른것은 잘 모르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사장은 "손님들이 만족한 얼굴로 돌아갈 때 주인으로서 만족감을 느낀다"며 " 하루 매출이 오를 때 그것으로 모든 힘든 것을 때려부쳤다"고 말한다. 결국 "정신력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말로 통했다.

  " 잘사는 모습,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자"

  김사장은 "현지인들이 후에 이주해온 조선족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며 "조선족이라는 민족성을 보여주자. 잘 사는 모습,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자"고 말한다. 그러면서 "옛고향을 버리고 왔는데 뭉쳐서 돈을 많이 벌어 다 잘 살아보자"고 덧붙였다.

  김사장은 이런 생각에 래서시의 조선족기업인들을 모아 놓고 상의도 많이 했다. 2012년 국경절때 래서시 조선족기업인들을 중심으로 '래서조선족 번영회'를 설립했다. 이 번영회를 구심점으로 조선족들이 뭉치도록 했으며, 래서시에서 처음으로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족 송년회도 조직했다.

  김사장은 솔선수범으로 조선족번영회를 이끌며, 빈곤한 노인가정을 방문했고, 노인협회에 7000위안을 기부하기도 했다. 김사장은 '화합, 단결, 번영발전을 위하여'를 경영이념으로 내세웠는데 여기서도 민족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엿볼수 있다.

  두툼한 손으로 농사를 짓다 한번 잘 살아보겠다는 의욕만으로 식당경영에 나섰던 김금수 사장은 장장 25년동안 한우물을 파며 '순금은 진토속에서도 변함이 없다' 는 도리를 실천해가고 있다. 김사장은 "그 힘이 어디에서 왔는가"고 물으면 "정신력에서 왔다"고 대답한다.


hljcfb@163.com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전국정협 권정자 위원은  “농촌 민영학교 학생들에게 영양점심 보조금을 지원할데 관한 건의”를 가지고 올해 '양회'에 참가했다.   권정자위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찍 2011년, 국무원 판공청에서는 ‘농촌의무교육 학생들의 영양 개선 계획을 실시할데 관한 의견”을...
  • 2014-03-07
  •   “조화롭고 살기 좋은 화룡시를 건설하려면 조선족인구발전을 위한 강유력한 정책이 따라서야 하며 대대적으로 경제발전을 다그쳐야 할뿐만아니라 농촌이 부유해지도록 힘써 부추기고 고향에 돌아온 혼육적령기촌민들이 고향건설에 용약 뛰여들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화룡시 동성...
  • 2014-03-06
  • 지난 12월 20일, 기자는 중한우호의 전기인물인 한성호박사의 추천으로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 한화중국화평통일촉진련합총회 비서장 한선(韓鮮)녀사를 인터뷰를 했다.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는 2002년 설립되여 지금까지 5대로 기바꿈을 했어도 비서장은 여전히 한선녀사가 굳건히 지켜고있었다. 재한대륙화교, 재한대만화...
  • 2014-03-05
  •   빙판우의 은제비 김경주, 올림픽에 도전한다 “시골 촌뜨기” 국제무대에서 금메달 따내, 몸을 사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훈련한적 없어 세계인의 대축제였던 소치 동계올림픽이 17일간의 열전을 뒤로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동안 내노라하는 쇼트트랙선수들의 은반우 질주를 지켜보면서 문득 “...
  • 2014-03-05
  • 진지한 표정으로 휘호하는 서영근박사 《설문해자 부수형의 고찰》, 《중국조선민족서예사》, 《좋아 길을 나선다오》, 《서예와 예술환경》 등 저서를 출판하고 중국, 한국, 일본에서 개최된 수많은 국제서예교류전에서 대상, 금상, 은상을 수십차 수상한 세계 최초의 서예학 박사 서영근씨가 한국 서정대의 중국어교수직...
  • 2014-03-04
  •   “중국조선족대모임” 허을진대표를 만나 “조선족으로서 조선족을 돕는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19일, 한국 서울 봉천동 사무실에서 중국조선족대모임 허을진대표(49살)가 담담한 어조로 내뱉는 말이다. 부인이자 동포투데이 대표인 정경화양과 함께 한국에서 본격적인 재한조선족돕기에 나서...
  • 2014-02-28
  •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 한성호회장과의 일가견   "중국이 이렇게 빨리 발전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지난 1월 20일 기자는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 중화국제문화교류협회, 한화중국화평통일촉진령합총회, 중국재한동향회련의(친선)총회 한성호회장(박사)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와의 대화는 선약(先約)대로 오는...
  • 2014-02-26
  • 칭다오웨이신쥬얼리유한회사 현판식 열려   (흑룡강신문=하얼빈) 이수봉 기자 = 최근, 칭다오시 청양구에서 칭다오웨이신쥬얼리유한회사(대표 이재삼)가 현판식을 열고 쥬얼리 고가품시장 진출을 선포했다.   흑룡강성 밀산시 출신인 이재삼, 최금화 부부는 “단가와 기술함량이 높은 귀금속 제품만 생산하여 쥬얼...
  • 2014-02-26
  •      박옥선회장, ‘2014 한국을 빛낸 사람들’ 대상 수상   (흑룡강신문=하얼빈) 중국 흑룡강성 가목사시 우수교사 출신이며, 중국동포연합중앙회 여성회장단 박옥선 회장(67년 생)이 ‘2014 한국을 빛낸 사람들’ 시상식에서 ‘2014사회봉사대상’을 수상해 주목을 받고 있다.  ...
  • 2014-02-24
  • 《중국 농촌교육의 기적 기초교육의 시범》만든 녀교장 료녕성 무순경제개발구리석채조선족소학교 교장 김죽화 만나본다 ◆ 유네스코련합회 부주석 저명한 교육가인 도서평: 《리석채조선족소학교는 리론과 실천을 결합한 중국농촌교육의 모범이고 중국농촌교육의 기적이며 중국민족교육의 기치이고 중국기초교육의 시범이...
  • 2014-02-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