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베이징 동화원의료설비유한책임회사 이사장 남룡)
중약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먼저 첩약을 달이는 약탕관을 눈앞에 떠올리게 된다. 탕액이 약탕관을 넘어나거나 너무 졸여지지 않도록 시시콜콜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고 보면 중약 아니 약탕관은 번거로움과 이어지는 대명사이다.
훗날 "약탕관"으로 소문난 남룡이 "약탕관"에 주목하게 된건 지난 세기 90년대라고 한다. 그때 남룡은 수출입무역 사업차로 한국을 드나들면서 약방에서 이상한 "약탕관"을 만나게 된다. 자동적으로 중약을 달이는 약탕기였다.
"그때 한국의 의료시설에는 모두 약탕기가 갖추어져 있었지만 중국에는 아직도 기계로 약을 달인다는 개념조차 없었죠."
남룡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듯 기쁨을 금할 수 없었다.
오늘의 발전한 한국에서 내일의 발전하는 중국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발달한 의료기구 역시 앞으로 중국에서도 유망한 산업으로 떠오를 수 있지 않을가…
"바로 이거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었지요."
남룡은 마침내 국내에서 아직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약탕기를 만들기로 작심했다. 그는 약탕기의 원리를 알기 위해 약탕기를 사서 직접 뜯어보고 조립을 했다. 이와 함께 두 발로 뛰면서 판매시장을 조사했다. 1998년 5월 그의 연구팀이 연구개발한 약탕기가 처음으로 시중에 판매되었다. 약탕기는 대뜸 약탕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중국 대륙에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2000년 남룡은 등록자금 2천만원으로 베이징 동화원의료설비유한책임회사(이하 동화원으로 략함.)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사진설명: 약탕기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는 남룡 이사장)
동화원은 현재 약탕기 연구개발과 생산판매, A/S( after service)를 결합한 시스템을 구축해 선진적인 기술과 량질의 제품, 전면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약탕기제조선두기업으로 부상했다. 동화원은 국내 외과연구소, 병원, 약방 등 의료기구의 고객 근 4만여명을 확보하고 있고 약탕기업종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70%에 달한다. 2008년 10월에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비준을 거쳐 동화원의 중약약탕기 기술표준이 국가표준으로 확정되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고 2013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SO/TC249제 4차 회의에 참석해 "중약약탕기 국제표준 프로젝트 초안"보고서를 제기했다.
동화원은 베이징시 첨단기술기업으로 발전하면서 "베이징시 민영기업 자주창신40강"(2006), "중관촌 자주창신시범구역, 창신형시범기업"(2009), "중국 최고 발전잠재력 보유 민영기업"(2011) 등 영예를 안았다.
현재 남룡은 약탕기라고 하면 그의 이름을 떠올릴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기실 그는 약탕기는커녕 약탕관 지어 중약과도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이였다. 적어도 10여년전까지만 해도 그러했다.
길림성 연길시에서 태어난 남룡은 1984년 멀리 남방의 광주에서 중산대학 일본어 학부를 졸업하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와 베이징공업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다. 이듬해 그는 당시 대외경제무역부 산하기관인 베이징의 중국철물광산수출입무역 본사에 전근했다. 말 그대로 인생로후가 근심없는 좋은 직장이였다. 그러나 따분한 직장생활에 권태를 느낀 남룡은 그로부터 3년후 급기야 일본유학을 떠난다. 그는 유학기간인 1991년 벌써 일본 요꼬하마에 동승교역주식회사를 설립, 이때부터 기업가로서의 도전적인 삶을 시작한다. 이 회사는 중국인 최초로 중일한 3국 무역을 동시진행한 회사이다. 1992년 귀국한 그는 천진 당고경제기술개발구에 천진동화국제무역회사를 설립하고 중국과 한국, 일본간의 수출입 무역을 진행했다.
"오래동안 무역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겁니다. 단순한 수출입무역보다 뿌리가 있는 실체를 운영해야 기업의 수명을 연장할수 있다고 말입니다."
남룡은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1994년 하북성 장가구에 동화 화학공업광산유한회사를 설립하고 불화수소산 제품을 생산 수출한다. 또 1995년에는 산서성 양천에 동화 제련회사를 설립해 금속규소를 해외에 수출했다.
와중에 1997년 아세아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성장의 가도를 달리고 있던 남룡의 무역회사에는 뜻하지 않게 일대 위기가 들이닥쳤다. 주변의 많은 기업이 줄지어 도산했고 주변의 많은 사업가들이 어디로 갈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저는 위기가 오기전에 먼저 위기를 생각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때문에 중국의 내수시장에 미리 착안하고 새로운 사업항목인 약탕기 제조업을 시작할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룡은 그의 좌우명이 "거안사위, 개혁창신(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則無患)" 등 여덟자라고 말한다. 이 글귀는 옛날 진나라(晋國)의 재상 사마위강(司马魏绛)이 임금 도공(悼公)에게 했던 간언에서 따온 것이다.
"이 간언은 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 기업가들에게 아주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기업이 연간 4억원의 매출액을 창출하고 국내 최대 약탕기 생산기지로 부상하는 쾌거를 이룩했지만 남룡은 여전히 위기의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의 이런 위기의식은 동화원에서 개혁창신의 원동력으로 되고 있다.
(사진설명: 연구개발팀 직원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남룡 이사장)
적자생존의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회사가 생존하려면 연구개발은 필수적이다. 동화원은 연구개발에 거금을 투자하여 다른 회사와 차별화된 제품을 만드는데 힘쓰고 있다.
현재 100여명의 공정사를 두고 있는 동화원은 지속적인 연구개발에 힘을 입어 선후로 30개의 특허를 획득했고 약탕기 포장설비 9개 계열제품을 출시했다. 동화원의료기구가 자체 연구개발한 "10가지 기능을 겸비한 자동약탕기"는 중국 중의약 약탕설비의 생산판매영역에서 최고브랜드 칭호를 수여받았다. 남룡은 국내외 기술적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중의약발전포럼"등 여러 행사에 참석하고 선진적인 약탕기기술을 확보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전통적인 약탕기설비와 약탕기포장설비의 제조에만 안주하지 않고 건강검진의료설비에로 업무를 확대해나갔다. 생활절주가 빠른 현대인의 건강생활을 겨냥해 동화원은 자동혈압기, 체성분분석기, 골밀도검진기, 스트레스분석기 등 제품을 연구개발하고 생산 판매하고 있다. 현재 동화원은 중약약탕기 및 포장설비와 건강체험설비를 주체로 기타 의료설비를 겸비한 다원화 제품전략구조를 형성했다.
(사진설명: 직원 관리상황을 체크하고 있는 남룡 이사장)
스티브 잡스는 "사원교육은 기업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라고 했다. 기업의 탄탄한 실력을 연마하기 위해 남룡은 가장 기초적인 관리인 직원관리에 대한 혁신을 시도했다.
남룡은 한국의 유명한 컨설팅회사 전문가를 초빙하고 혁신사업부를 설치해 직원들의 인성교육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또 TPS일본 토요타생산모식을 도입해 "정리, 정돈, 청소, 청결, 소양을 생활화"하는 5S와 "7대 낭비감소" 등 활동을 조직하고 있다.
사무공간과 복도, 계단 등 곳에서 동화원 기업문화를 반영하는 보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남룡은 "동화원 혁신 10대 기본정신"을 제정해 동화원의 모든 직원들을 독려하고 기능구역에 알맞게 표어를 붙여 노동자들의 근무태도를 개선하고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일련의 혁신활동을 통해 동화원의 직원들의 사유방식과 근무태도, 관리방식이 더욱 과학적이고 규범화되어 업무효율이 한단계 상승했다.
(사진설명: 약탕기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는 남룡 이사장 )
"기업을 경영함에 있어서 마케팅 또한 홀시할 수 없습니다. 마케팅에서도 연구개발과 브랜드가 중요하지요."
일찍 남룡은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 홍보하면서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힘썼다. 기업 무형자산을 구성하는 브랜드는 기업 발전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남룡은 중국국제의료기계박람회, 중의진료설비포럼 및 전시회에 제품을 출시하고 지면과 인터넷 광고 등 방식으로 홍보하면서 제품의 브랜드 마케팅전략에 주력했다. 탄탄한 기술과 생산으로 제품의 질을 보장하고 홍보마케팅에 심혈을 기울여 동화원은 2011년 "11.5중의약 선두브랜드"의 영예를 안았다. 약탕기 업종에서 권위자의 입지를 굳힌 것이다.
"사업에서 제일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는건요, 우리 동하원의 약탕기기술이 업계표준, 국가표준으로 된것입니다." 남룡은 동화원이 쌓아올린 실적을 회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우리 동화원이 약탕기기술의 국제표준까지 만들게 되면 그야말로 회사의 '신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룡의 "욕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현재 의료기계핵심기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료기계업체회사인 지멘스(SIEMENS)의료, GE헬스케어, 필립스 등이 장악하고 있다. 남룡의 또 하나의 목표는 바로 앞으로 동화원의 연구개발수준을 이런 세계적인 유명회사와 견줄 수 있는 지위에 이르게 하는 것. 중의약계의 새로운 신화가 기대되는 순간이였다.
"기업가라면 사회에 재부를 환원할줄 알아야 합니다." 남룡은 그동안 쌓은 부를 남들과 더불어 향유하여야 곱절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사천성 문천 대지진 때 남룡은 20만원 상당의 약탕기를 기부했다. 또 2007년부터 "중의중약중국행"행사에 참가해 천진, 안휘, 운남 등 여러 성시 의료기구에 300만원어치에 달하는 중약약탕기를 기부했다. 약탕기는 이번 행사에서 단연 중의약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고양, 전파하는 명물로 되었으며 이로하여 2007년 위생부와 국가중의약관리국으로부터 "중의중약중국행 걸출공헌상" 영예를 수여받았다.
남룡은 본인이 조선족 기업가라는 신분을 잊지 않았다. 그동안 그는 민족화합과 후대양성사업에 적극적으로 자금후원을 했다. 지난 수년간 자금난으로 거의 중단되었던 베이징조선족운동대회를 적극 지원했고 연변1중 장학재단도 후원하고 있다.
남룡은 민족적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외화벌이에 나선 조선족들의 현주소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도중에 그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한국 등 선진국에서 단순히 돈을 벌기보다도 그 나라의 선진문화를 배우고 사고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항목을 정확하게 판단, 구상하고 강한 정신력으로 과감하게 실행하면 꼭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년기업을 주조하고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남룡은 중의약계의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다.
국제방송
[취재기자: 권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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