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나가 번 돈으로 그냥 집을 사고 차를 사고 노름을 즐기다보면 절대 돈이 남아돌지 않게 되지요. 손에 쥔 돈이 없으며 또다시 한국에 가 돈벌이에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냥 보귀한 시간을 이렇게 채바퀴돌듯 보내지 말고 월급을 적게 받더라도 좋은 기술을 배워 자체로 창업자본을 만들어 간다면 경제적 기반은 물론 독립적인 자신을 찾을수 있어 보람된 삶을 영위할수 있다고 봅니다.” 연길만수옥침대회사 총경리 김정훈(59세)은 한국으로 일하려 나간 수많은 사람들과 비슷한 경력을 갖고있지만 뚜렷한 목표를 갖고 18년동안 오로지 옥침대 개발에 몰두하여 사업기반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창업적인 사람이다.
일찍 림업국, 우정국 등 단위에서 일한적있는 김정훈은 1996년 12월에 한국으로 나갈 때에 벌써 꼭 창업아이디어를 얻어 귀국하여 창업의 꿈을 이루겠다는 결심을 세워두었다.
“제가 한국행을 결심한것은 좋은 기술과 좋은 아이디어를 배워 고향에 돌아와 자신의 사업을 이루어보려는것이였습니다.” 금방 한국에 갔을때 그는 일당을 받아가며 여기저기로 자리를 옮겨다니는 생활을 면치못했다. 하지만 모든 정보에 눈을 박아두고있는 어느날 그는 벼룩시장을 통해 모 옥침대회사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였다. 금시 마음이 동한 그는 옥침대전문가로 자청하고 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풍문으로만 들어본 옥침대회사에서 그는 전문가행세를 할수 없었을뿐만아니라 일주일도 못되여 회사에서 쫓겨나다싶이 나왔다.
하지만 옥침대회사에서의 잠깐 동안 있었던 경력은 그에게 보다 좋은 옥침대를 개발하려는 계기를 주었다. 사실 그는 한국에 오기전에 림업국에서 일하면서 가구 짜는 솜씨를 익혔으며 우정국에 있는 동안에는 북경우전대학 연수를 통해 전기, 전자 원리에 대해 좋은 리해를 갖고있었기에 옥침대회사에서 잠간 시간에도 옥침대 제품제조원리를 금방 터득할수 있었다.
“당시 회사의 옥침대는 구식으로 짰고 무거웠으며 짜는 속도도 느렸습니다. 집에 돌아온후 저는 원 규격대로 옥침대를 다시 설계해 더 선진적이고 가볍고 탄탄하고 빨리 제조할수있는 옥침대제품을 개발해냈습니다.” 옥침대제품을 새로 개발한후 그는 다른 옥침대회사에서 공장장으로 취직하여 일하다가 한국인과 동업하여 공장을 꾸리였다. 동업하는동안 그는 또 옥침대 가열판을 개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가열판은 옥침대에 매우 필요한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인체에 해로운 전자파인 정개장과 자개장을 동시에 잡을수 있기때문입니다. 당시 한국의 옥침대제품은 정개장만 잡을수 있을뿐 자개장을 잡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가열판을 옥침대제품에 사용할것을 제의했지만 회사동업자는 이 가열판이 일반 가열판보다 단가가 높다며 접수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기술을 다른 한 회사에 팔았는데 그 회사는 3년동안 가열판을 팔아서 한화 25억원을 벌었습니다. 지금 한국의 옥침대제품은 거의 모두 제가 개발한 가열판을 사용하고있습니다”
1996년부터 2010년까지 14년동안 한국에서 옥침대사업을 해온 그는 2010년 귀국하여 연길에 옥침대회사를 차리고 2011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옥침대사업을 시작했다. 올해 3년철을 잡는 회사는 이미 80여만원의 자금을 투입하여 600여평방메터에 달하는 옥침대공장과 연길북대시장 브랜드구역에 가게도 차렸다. 지금 그의 제품은 전자파 방지 시스템, 정전기 제거 시스템 특허를 소유하고있다.
“옥침대제품은 인체의 면역력을 제고하고 신진대사를 돕고 산후조리도 할수있는 다각적인 공능을 기능을 하고있습니다. 지금 우리 이 고장에서 아직도 옥침대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앞으로 시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옥침대에 대한 료해가 깊어지면 자연 옥침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것이라 보아집니다. .” 꾸준한 옥침대제품개발로 성공적 창업인으로 변신한 김정훈씨는 오늘도 보다 훌륭한 제품을 개발하려는 꿈을 잃지 않고있다.
연변일보 글·사진 현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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