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커피처럼 달콤하고 은은한 향기를 주는 시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9월11일 07시46분    조회:632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조룡남

원로시인 조룡남선생을 만나보다

원로시인 조룡남선생

얼마전 원로시인 조룡남선생이 전화왔다.

어떤 국가급문화단체에서 모택동탄신 120돐을 맞으면서 낸 공모에 선생님의 작품이 수록되고 상을 받았는데 신문에 낼수 없겠는가 하는 내용이였다. 올해만해도 선생님이 막언(莫言)과 어깨나란히 달력명인으로 뽑힌 일이며, 책자에 오른 일이며... 여러번 때마다 취재를 해서 기사화한 일이 있었다. 물론 선생님은 이같은 영예들을 대단하게 생각해서 자랑하고싶은 마음에 신문에 내고싶어하는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같은 사실을 알리고 갈수록 멀어져가는 세월의 한자락에 삶의 보람과 기쁨을 느끼기 위한 생각에서였다고 느끼고싶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선생님이 부르면 항상 선생님의 희사를 자기일처럼 기뻐하고 기사화하면서 신문에 실어드려 세월의 풍상고초를 겪으면서 살아온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군 했다. 황차 조선생님은 근 80세에 문턱에 발을 들여놓는 고령의 간암환자이기까지 하니 그 년륜에 마음이 숙연해지고 존경이 마음이 끌리는것은 어쩔수없었다.

선생님은 또 갖은 정치풍파와 생활고를 겪으실대로 겪으시면서 살아온신 풍상고초의 세월이 대중을 우러러 모시게하는 년륜으로 새겨지고 한평생 순수하게 시농사를 지어오면서 주옥같은 시구들로 젊은이들의 마음까지 떨리게 하는 유명한 서정시인이기도 하다.

《연길주부가원 정원에서 동쪽 20메터되는 가죽가공부 옆골목으로 들어와 두번째 아빠트의 첫단원 5층입니다.》

선생님이 알려준 주소를 네비게이션삼아 걸음을 옮기니 5층 베란다문을 열고 손짓하는 짙은 눈섭의 조선생님 모습이 보인다. 가장 꼭대기 건물이였다. 조선생님댁은 지은지 15년이 넘어된다는 구식 스팀아빠트집이였다.

그때는 집지을때 층계넓이마저 넉넉하게 설계한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복도로 걸어 올라가면서 80세고령의 조룡남선생이 이런 층계로 매일 오르내리는 부지런함과 움직임이 바로 장수비결이지는 않을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굴려보았다. 대개 연길시에서 아빠트하면 2~3층집이 가장 선호받는 층수로 욕심내는 사람들도 제일 많다. 가장 나쁜 층수는 당연히 제일 꼭대기에 있는 집이다. 가장 꼭대기집을 들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돈이 없거나 혹은 단위에서 내준 방산일 경우에는 좋은 층에는 배당되지 못하고 간신이 배당은 가능한 최하위급 일군들이다. 조선생님의 일생도 아마 그런것 같다. 한뉘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문예편집이라는 말단 자리에서 직급에 연연하지 않고 시에만 묻혀 살아온 조선생님에게 권력과 금전은 거리가 멀어보인다.

《령감 로친 단 둘이서 사는 집이라 좀 루추하다이…》

거실에 작고 낡은 가죽쏘파가 하나 놓여져있고 그 앞에 낮은 탁자 하나가 커피병이며 약병들이며로 좌판을 벌인듯 거실 한가운데 떡하니 앉아있었다. 오색 색종이를 접어만든 수많은 종이학들이 크고 투병한 병속에 담겨져있는것도 보였다.

《이 종이학들은 내가 아플때 로친이 하나하나 접어서 넣어준것이라오》

선생이 불의의 간암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는 나날동안 선생의 병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종이학에 접어 매일매일 소망을 빌었을 부인의 정성과 지성이 아름다운 부호처럼 남아 빛나는 것이였다.

《커피 좀 타줄가요?》

선생은 이미 준비한듯한 갈아놓은 원두커피가루를 깔때기형 컵에 종이려과막을 씌우고 부엌에 가서 끓기 시작한 물주전자들 들고 돌아왔다.

조심조심 뜨거운 물이 검은 커피가루를 녹이면서 부글부글 거품이 끓고 깔때기에 려과된 거피들이 주르륵 잔을 채운다. 물과 만난 커피가 따뜻하고 유혹적인 향을 방안 가득히 피워올리고있었다.

《선생님 커피를 많이 좋아하시나요?》

《좋아하죠, 원두커피를 가는 기계도 있소, 손으로 가는것과 기계로 가는것 두가지가 있지, 커피에 필요한 프림이며 슈가도 구전하고…》

조선생님은 그러나 요즘은 커피를 이전처럼 맛있게 마실수없어 유감이란다.

의사가 암환자인 조선생에게 자제를 요구했기때문이다. 가끔씩은 마시되 설탕은 엄격히 제한하라는 당부때문에 원두커피만 마시니 오래동안 마셔왔고 길들여졌던 달콤한 커피맛에 반란이 일어 결국 커피와는 점점 멀어져가고있다고 말씀했다.

프림과 설탕대신 우유를 탄 커피를 따로 한잔 만들면서 선생은 또 다른 두잔의 커피도 함께 만들고있었다. 손님인 나와 안방에서 휴식하고있는 부인몫으로 2잔의 커피를 손수 만든것이였다. 조룡남선생의 부인사랑은 80고령인 지금도 여전하시다. 얼마전 취재중 조룡남선생은 본인이 지금까지 병중에도 잘 버텨올수있었고 또 인생의 다사다난했던 험난려정도 악을 쓰고 잘 헤쳐나올수있었던것은 현숙하고 내조적인 안해덕이라고 말씀하시군 하였다. 과거는 특히 선생님의 투병생활가운데서도 엄격한 관리자로 항상 옆에서 선생의 의식주행을 살피고 내조해준 부인이기에 더욱 늘그막 금슬이 좋을수밖에 없으신것 같다.

따뜻한 커피한잔을 타가지고 쉬고있는 부인의 머리맡에 살며시 놓아주며 념려하고 바라봐주는 늘그막 부부정은 누가봐도 오랜 경륜의 깊이를 잴수없는 따뜻한 부부정이지않을수 없다.

조선생님은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기어이 사모님과 함께 나오시는것 같았다.

우리집을 찾은 손님인데 인사라도 드려야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하시는것 같았다. 자식벌되는 기자의 취재에도 례와 덕을 다 갖추는 선생님의 인격에 다시한번 허리굽혀 존경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수 없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70대의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시여 인자하게 웃고 계셨다.

《아들 둘 있는데 하나는 약학을 공부하고 하나는 사학을 전공하고 있다오.》

그러나 두 자제분 모두 한국에서 살고있다. 큰 아들은 한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있어 시름이 놓이는데 작은 아들은 연구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니 아직 35살이 되도록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음력설에 둘째아들이 집에 돌아와 량주모두 즐겁게 설을 쇴지요.》

기다리던 아들이 집에 돌아오면서 가져온 선물은 이뿐만이 아니였다.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책으로 무어 묵직한 책 두권을 부모님에게 선사한것이다. 한국 학술정보지에서 출간한 책이름이 중국사에 관한 론문저서였다.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그동안의 연구가 궁금해 물었더니 아들애가 고고학에서는 한국사학계에서도 인정받고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고구려사에서 과거 고구려가 중앙집권제의 봉건왕조라는 정설을 뒤엎는 주장을 제기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그러한 사실들을 립증할만한 증거들도 속속 연구되여 한국사학회의 중국에서 온 학자에 대한 보는 눈이 달라지고있다는 것이다.

《아들애가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읽던 책들을 죄다 버리기 아까워서 우편으로 집에 보내왔습니다.》 조선생은 거실옆에 붙어있는 서재를 가리켜보였다. 20평방쯤 돼보이는 서재는 온통 책들로 산을 이루고있었다. 특히 책장앞에 키를 넘게 쌓아놓은 책들때문에 책장의 책들도 꺼내보기 힘들다고 했다.

조룡남선생의 서재에는 국내에서 출판된 조선문책들이라면 어느것 하나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구전한데 그러나 그 책들을 찾기는 힘이 들다. 책이 책에 쌓여 책산을 이루니 책이 제구실을 못하는 일이 안타깝다고 선생은 말했다. 이제 아들이 돌아와 자기책을 처리하면 그때에야 그런 책들이 볕을 볼날이 올것이라고 조선생은 무가내한듯 두손을 벌려 보였다. 책들이 150평방메터나 되는 집안의 서재는 물론 침실이며 안방마저 잠식해나가고있지만 조룡남선생은 아직도 지난 80년대 불의의 화재로 잃어버렸다는 옛날 책들을 안타까워하고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일과 생활 사랑 등 모든 면에서 성공한다고 선생은 말한다. 요즘세대들은 책보다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 가상세계의 영상문화에 많이 빠져있는데 그런 영상문화의 실질은 눈으로 보고 머리로 떠올리고 손으로 감촉하는 책속의 문화더듬이에는 비할바가 못된다는것이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눈것 같다. 커피잔바닥에 조금 남은 커피는 언녕 식어있었지만 조룡남선생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오래된 옛 서책을 읽은듯 깊고 진한 문화적인 맛과 멋, 그리고 향기가 흐르는듯하다.

80세의 미수에도 문화를 담론하고 젊은 친구들을 더 반색하고 따뜻한 품과 깊이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우리 조선족의 원로 지성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선생님과 작별하고 그 널직한 층계를 걸어 내려오는데 선생님이 마침 외출해 돌아오는듯한 옆집 이웃을 보고 젊은 기자친구라고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 기자 친구?! 얼마나 신선하고 멋있는 부름인가? 누군가 조선생님을 영원한 문학소년이라고 한 말이 머리를 스쳐지나가면서 세월이 결코 인생의 영원을 결정하는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림신문 안상근 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2
  •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토템시문학의 개척자 남영전시인의 문화추천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남영전선생.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수상자로 일전 연길을 찾은 중국조선족 토템시문학의 개척자 남영전시인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문화산업시대를 맞이하고있는 중국조선족의 우세와 자세에 대해 낱낱이 견해를 ...
  • 2013-12-26
  • 중국조선족소년보사 기자부 주임이고 연변작가협회 시분과 부주임인 림금산시인의 동시집 《살구꽃 복사꽃》이 제6회 윤정석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는 시인이 자연의 품에 안긴 아이들의 티없이 맑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실감나게 잘 그려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전성호선생은 심사평에서 그의 시를 “아름다운...
  • 2013-11-28
  • 한동국리력 필명 방원(方圆) 1946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현재 룡정현)팔도구 출생 2005년 연변 작가협회 연변 문학원 수업 2007년 윤동주 문학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학관련상 수상 현재 연변작가협회 회원 “저는 지금도 작가가 아닙니다. 오직 영원한 독자일 뿐입니다. 굶주림에 허덕이면서도 ‘산진해미’...
  • 2013-09-29
  •  —"우리 민족 밑바닥의 삶의 현장을 절대 떠나지 않을것이다"    시골 농군의 후줄근한 옷차림에 작달막하고 여윈 체구, 학교때 별명이 '오태(误胎)'였다고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로인이 있다. 그가 가는 곳이면 그만의 특유한 해학으로 웃음소리가 넘치게 하고 걸쭉한 육담이 오간다. 그에 또 술 한잔까지...
  • 2013-09-09
  • 중국조선어문의 체계를 확립한 대학자 2012년 8월 9일, 교직종사 60주년 기념학술회에서 론문을 발표하는 최윤갑교수 중국조선어문 연구의 선구자, 대부로 불리우는 연변대학 원로교수이며 저명한 어학자인 최윤갑교수는 연변대학 조문학과 제1기 졸업생(1949년-1952년)으로 그해 10월부터 1993년까지 연변대학에 근무하면...
  • 2013-08-05
  • -중국조선족원로시인 김철의 문학인생 중국조선족원로시인 김철 중국조선족원로시인이며 중국계관시인(1991년 수상)인 김철은 중국조선족문학사에 굵직한 한획을 그은 저명한 시인이다. 청춘시절부터 시(詩)의 녀신과 백년가약을 맺고 올해까지 60년 시농사를 해온 시인은 우리 조선족문단의 자랑이며 조선민족의 자랑이라...
  • 2013-07-15
  • 중국조선족아동문학의 창시자-채택룡. 지난 2004년 6월 1일 연길공원에서 《채택룡시비》 제막식이 있었다. 그날 제막식에서 중국조선족아동문학평론가 김만석선생은 《채택룡은 우리 아동문학에서 동요, 동시, 동화, 아동소설을 제일 처음 개척한 에누리없는 중국조선족아동문학의 창시자이며 자격이 당당한 중국조선족아...
  • 2013-07-08
  • -57년간 민간문예 수집정리의 외길인생 걸어온 리룡득선생 1961년 8월, 당시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이였던 주덕해는 《소방대가 불끄러가는》그런 속도와 마음가짐으로 민간문예자료를 수집할것을 호소하였다. 민족문화를 계승, 보호, 발전시키기 위한데서 이보다 더 절박한 표현이 또 있을가?! 개혁개방이후 홍수처럼 밀려...
  • 2013-07-03
  •      여기, 고래희의 문인 한분이 있다. 본명인 림국웅보다는, 시인 한춘이나 평론가 산천으로 더 익히 알려진 그는, 중국 북방조선족문단의 태두요 중국조선족시단의 현대시 기수이다. 담배와 술과 사랑과 문학만을 고집하며 70 평생을 살아오신 그는, 요즘 암투병 중에도 시집과 수필집을 북경에서 펴내는...
  • 2013-06-28
  • 이 청명날, 고 박금룡기자를 그리며   박금룡 간력   1963년 11월 화룡현 팔가자진 하남촌 출생 1984년 화룡현 서성중학교 졸업, 연변대학 조문학부 입학 1988년 연변대학 졸업, 화룡시직업고중에서 공청단서기 력임 및 입당 1996년 연변공상보사 입사, 편집,기자. 1998년 연변일보사 입사, 경제부 기자 주임, 및...
  • 2013-04-04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