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면 늘 오선보와 함께 한다는 조영룡씨.
연길시 소영진당위 조직위원 겸 당정판공실 주임으로 사업하던 조영룡씨가 진정부와 조직의 수요로 종합문화소 소장에 부임한것은 만 50세가 되던 2006년 3월이였다. 남들은 좌천이요 뭐요 하면서 수근거렸지만 어렸을 때부터 노래와 손픙금을 무척 좋아했던 그는 처음으로 직성에 맞는 일을 하게 되였다고 못내 기뻐했다.
농촌마을의 문예선전 지도사업을 잘하자면 우선 자신의 소질부터 제고해야 한다고 생각한 조영룡씨는 연길시문화관과 군중예술관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노래와 작곡 관련 전문지식을 배웠으며 연길시내 합창단과 업여예술단체들을 찾아가 직접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는 등 자각적인 자기개발에 과외시간을 할애했다. 그가 작곡한 노래 《우리부모》, 《백년해로 하자요》는 연변인민방송국 매주일가로 방송되였으며 그 자신도 각종 노래콩클에서 수차 수상의 영예를 지녔다. 그래서 《조위원》, 《조주임》으로 많이 불리던 조영룡씨는 소영진의 군중들로부터 재간 많은 《조소장》으로 불리게 되였다.
조영룡은 소영진 군중들의 정신문화생활을 풍부히 하기 위해 당위선전부와 진부련회와 손잡고 기층의 문화생활수요에 귀를 기울이고 문화사업의 영향력을 적극 발휘하여 다양한 문화사업을 전개하면서 농촌문화소의 면모를 일신시키기 시작하였다.
소영진에는 13개 행정촌(구역)이 있는데 10개 촌에서 이미 농촌문화마당을 건설하고 문화마당활동을 활발히 전개해가고있다. 조영룡씨는 농촌문화마당활동을 조직하고 지도하기 위해 연길시문화관과 군중예술관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농촌에 내려가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흙냄새가 나는 좋은 작품들을 발굴하고 그것을 무대화하고 보급하기에 힘썼으며 진내 퉁소애호가들을 집중하여 천년송퉁소협회를 설립하고 정기적으로 련습을 조직하고 공연행사에 참가하도록 주선해주었다. 조영룡씨는 또 진내 노래애호가들을 위해 진문화소에 노래교실을 설치하고 무료로 노래를 가르치고있는데 앞으로 이들을 기반으로 합창단을 꾸려보고싶다고 타산을 밝혔다.
농민들에게 문화공간을 마련해주고 문화활동을 조직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 호상교류하고 비기게 하는 무대를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조영룡씨는 해마다 《3.8절》을 계기로 전 진 《3.8절문예경연대회》를 조직하였는데 이미 6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촌민들은 소영진의 년중행사로 자리매김하다싶이 한 《3.8절문예경연대회》를 위해 몇개월전부터 팀을 뭇고 문예종목을 련습하기 시작한다. 이때면 설쇠러 고향에 돌아온 촌민들로 하여 한해중 농촌인구가 가장 많은 때이기도 하다. 각자 나름대로 선생님을 모시고 배우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동영상으로 배우기도 하며 열정을 보이니 덕분에 소일거리가 없던 농한기의 마을이 북적북적해진다고 한다.
경연대회가 열리는 소영진정부청사 3층 구락부는 말그대로 성시를 이룬다. 300여명의 공연진이 무용, 노래, 악기표현, 시랑송 등 30여가지 다양한 종목들을 무대에 올리고 호상 비기고 교류를 진행한다. 소영진당위 선전위원 겸 부련회 주석인 전홍은 올해 《3.8절문예경연대회》에는 상금 1만 2천원을 내놓았는데 이는 농촌문화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지와 농촌문화사업일군들의 노력에 대한 긍정이라고 소개했다.
전홍은 또 조영룡씨의 노력으로 연길시 및 연변주의 여러 문예행사들에 추천한 소영진의 문예 종목들이 연길시광장무용콩클 등 콩클에서 수상종목으로 선정되고 연길시아리랑방송,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등에 의해 특별프로가 제작되여 방송되는 등 문화사업성과의 단맛을 톡톡히 보고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다년래 농민들의 문화자질 제고와 무대공연 참여를 적극 고무격려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들을 통한 정신문명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조영룡씨는 광범한 군중들의 정신문화적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있으며 광범한 군중들로부터 사랑과 애대를 한몸에 받고있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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