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오까대학 리련화부교수
리련화부교수 |
지난 7월 10일, 스케줄을 몇번이나 조절한 끝에 겨우 만나게 된 리련화씨는 TV에 비추는 포근한 눈길보다는 강직한 눈길의 소유자이고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줄 아는 능력자이자 재녀(才女)로 인상이 깊었다.
《내가 일본류학길에 오른것도 우연이고 내가 사회보장전업을 선택한것도 우연입니다.》리련화는 이런 화두로 지나온 걸음을 재생시켰다.
그녀와의 대담은 실로 《노력의 뿌리는 쓰고 노력의 열매는 달다》를 경청하는뜻 깊은 인생체험 과당이였다.
그녀를 마중한 우연은?
리련화는 1975년 흑룡강성 목단강시 녕안현 성동향 우장촌에서 태여났다. 련화는 소학생시절부터 중학교 교원인 부친의 바램으로 책과 동무하며 배움에 열중했다. 한데서 1994년 우수한 성적으로 녕안시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하고 북경대학 경제학원에 무난히 입학하였다.
졸업을 앞둔 1998년초의 어느날 일본경제를 가르치는 교수가 일본 명문대학인 와세다대학에서 아세아태평양연구과(대학원)를 새로 설립하였으니 학생모집 관련서류를 제출해 보라고 했다.
그때까지 련화는 졸업후 북경에서 취직하려고 이미 모 회사와 계약까지 맺은데서 무심코 제출한 신청서류가 생각밖으로 통과되였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그것도 160명 신청자중 조선족 1명, 한족 2명이 합격됐다는 비범한 소식이였다.
마음속으로 아무 준비도 없던 련화는 이 우연한 소식에 남처럼 기뻐서 퐁퐁 뛸 대신 학자금문제로 한동안 고민하다가 일본에서 2년간 석사공부를 하고 중국에 돌아올 생각만 했다. 그때까지 그는 별로 흥취없었던 일본류학 길에 올랐다.
《연구테마를 정하는것도 일종 운명입니다…》
또다른 화두로 련화씨는 자기의 원래 흥취는 발전도상국의 근대화였는데 대학원을 다니면서 고령화에 따른 일본사회의 년금 등 사회보장제도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연구테마를 사회보장으로 잡게 되였다며 일본서 만난 두번째 우연을 풀이했다.
17년전에 그가 대학원공부를 하던 때 일본은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했기에 사회보장문제가 사회의 주요 문제로 여론계에 올랐다. 게다가 1997년에 발생한 한국의 IMF로 하여 동아시아의 사회안전문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와 경제를 연구하는 류학생은 많지만 사회보장문제에 대한 연구자는 희소했다.
우연하게 일본에 가게 되고 또 우연하게 정한 연구테마는 련화씨로 하여금 령부터 시작으로 우연과 도전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게 됐다.
새로 설립된 와세다대학 아세아태평양연구과(대학원)의 학비는 엄청나게 비쌌다. 재학생의 다수가 가정경제실력이 상당한 학원들이였고 가정형편이 딸리는 조선족으로 학업을 견지한다는것은 그야말로 《당나귀가 대형트럭을 끄는 격이였다.》 련화씨는 말짼 몸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2년간 견지한것을 돌이켜 생각해 봐도 스스로 믿어지지 않는단다.
《항상 절벽의 가장자리에 서있는 느낌과 각오로 생활하고 오늘에 이어 래일의 보장이 없었는데 남친이 오면서 조금이나마 숨을 돌리게 되였습니다. 박사과정은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학업에 집중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2002년에 조선족 남친과 결혼하고 지금은 10살짜리 아들을 가진 어머니로 되였다는 련화씨는 우연으로 이어지는 인생스토리를 계속하였다.
박사과정 재학중인 2004년에 출산한 후 1년을 휴학하고 2007년에 끝내 학위를 취득하고 동경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종종 시간강사를 했고 시가(滋贺)대학에서 2년정도 부교수로 프로젝트연구에 종사하기도 했다.
2014년 리련화는 국립시즈오까대학(靜岡大學) 인문사회과학부 경제학과 부교수로, 일본방송대학에서도 강의를 하게 되였다. 노력의 뿌리는 쓰지만 노력의 열매는 실로 달콤했다.
《나의 오늘은 조선족이라는 우세가 만들어냈습니다!》
《조선족이였기때문에…》를 곁들이는 련화씨가 또 다른 말문을 열었다.
1997년 IMF가 터지면서 한국, 일본, 대만 등 나라와 지구에서까지 사회보장제도를 중시하게 되였다. 그에 따라 련화씨도 연구테마의 폭을 일본 사회보장연구로부터 동아세아 사회보장에로 넓혔다.
동아세아사회보장연구는 새로운 연구분야이기에 상대적으로 연구자가 적다. 이방면의 연구는 중, 한, 일 3국을 대상하기에 특히 언어문제로 하여 아무나 선뜻이 나서지 못했다. 련화씨의 우세는 조선족에 있었다. 그가 중, 한, 일 언어와 문자에 능하기에 대만과 한국을 마음대로 나들면서 자료를 찾고 연구하기에 무난하였다.
《아세아태평양연구과를 다니면서 나는 아세아를 한눈에 통째로 보는 시야를 넓히게 되였습니다.》
자신 만만한 화자의 웃는 모습에 청자도 당당한 웃음으로 적극 응원했다.
가장 기뻤던 일, 가장 아쉬웠던 일이 무엇인가는 물음에 이렇게 화답한다
《아쉽던 일은 잘 모르겠는데 인상이 깊은 일로는 졸업, 출산, <3.11>지진과 쓰나미가 한데 덮쳤던 <전투>의 나날이고 취직으로 중국이냐 일본이냐로 갈등할때였다.》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것은 중일관계가 좋지 않거나 지진으로 인해 부모님이 이 딸을 근심걱정할때이다.》
《내가 다른 나라에서 살면 부모님들이 이런 근심걱정은 없겠는데 하는 죄책감이 있었다.》
《홀로서기가 효도입니다》
필자는 련화씨의 연구전업에 비춰 가정, 효도, 사회복지, 고령화사회에 력점을 두고 대화를 나눴다.
부모부양의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는 물음에 련화씨는 가족부양에서 점차적으로 사회적 부양으로 바뀌여야 한다고 말한다. 자식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효도는 사회적으로 자립하는것이고 자립의 기초우에서 부모들의 그리움을 달래드리며 가족간의 정신적 련대감을 잇는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효도문제는 단지 문화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와 사회제도화 차원의 문제이다》고 리련화는 말한다. 《전통적인 가족주의로 로인들의 삶을 보장할수 없다. 일본이나 한국도 그전에는 가족의 책임을 많이 강조했지만 지금은 가족보다 사회,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다.》
련화씨는 중국이나 한국에 가면 일본에서의 장기생활이 자기의 가치관을 많이 변화시켰음을 느낀다고 한다. 금년봄에 아버님의 병환으로 귀국하였을 때도 대가족안에서 자기의 책임을 중시하는 친언니와 개인주의, 합리주의적인 자기와의 인식차이를 실감했다는 련화이다.
중국은 아직 사회복지 관련제도가 상대적으로 불충분하기에 오직 가족만을 믿어야 한다. 언니와의 차이는 사회복지제도가 잘 되여있는 일본사회와 제도구축이 한창인 중국사회와의 차이였다.
가족주의가 약해지면 가족간의 정신적 련대감이 상실된다고 근심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유럽이나 미국이 오히려 동아세아보다 가족관계가 더 깊고 만나는 차수도 빈번하단다.
사회복지란?
《더불어 함께 사는것이 사회복지다.》
국민들이 안심하고 지탱할수 있도록 하는것이 사회복지인데 사회(나라)에 따라 층차가 다르단다.
리련화는《사회복지는 국가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생명은 생명보험을 통해서 보장되여야 한다. 일본은 의료, 로인 복지가 잘 되여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병에 대한 근심이 거의 없다. 지난번에 중국에서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보니 먼저 돈을 내야 하고 급진실의 치료비가 하루에 만원, 일반 병실에서도 매일 평균 5000원씩 들었다. 그러니깐 일단 무슨 일만 생기면 매우 불안할것이 당연한 일이다.》고 말한다.
가족에 대한 일가견은?
녀성주의자가 아니라는 리련화이다. 그들 부부는 아이출산부터 서로간의 몫을 서로가 담당하는 동지적인 관계였다. 부부간이 사회활동이 많다보니 항상 서로 스케줄을 조정해야 한다고 한다.
《일때문에 집을 비우는 경우도 많지만 남편이 애를 잘 돌봐주었기때문에 여기까지 올수 있었다. 가정마다 상황이 다르니 어떻게 말할수는 없지만 가정에서 서로간 인격을 존중해야 서로 도와주기 위해 존재하는 평등관계로 될수 있다.》이렇게 말하면서 리련화는 《일본은 남녀격차가 심한 나라이다. 과거에는 전업주부가정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남자의 소득만으로는 가정을 운영하기 힘들다. 효도뿐만 아니라 남녀간의 성별역할에 대한 가치관도 급속하게 변하고있다.》고 했다.
세상에는 나름대로 멋진 사람이 많다. 많은 멋진 사람들중에서도 필자의 눈에는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을 쏟는 사람이 가장 멋진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 사람은 그가 특별히 나서지 않아도 어쩐지 그사람한테 존경의 마음이 쏠리게 된다.
우연과 도전하며 하나하나의 우연을 필연적인 결실로 맺는 과정에서 쏟아온 리련화의 노력과 수고, 이는 여러 사람들에게 표본이 되겠다는 느낌과 함께 멋진 녀성을 인터뷰한것으로 필자는 마음이 자못 뿌듯하였다. / 오기활
필자와 함께 있는 리련화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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