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민요와 함께 한 외길 인생 50년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2월18일 09시00분    조회:587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전화자
임향숙, 박춘희, 신광호, 김순희, 최성룡… 연변에서 내노라 하는 가수중 알고보면 그녀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가 많다. 그녀가 바로 50여년을 하루와 같이 오로지 우리 민요만 고집하며 살아온 전화자이다.

이달초에 있은 연변조선족전통민요협회 설립식에서 처음 만난것이 인연이 되여 11일, 기자는 다시 전화자씨의 댁을 찾았다. 10년 넘게 살아온 집을 떠나기 싫어 4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계속 이사를 하지 않는다는 전화자씨, 집안 구석구석에는 평소 보여지는 그녀의 모습처럼 소박한 정취가 묻어있었다. 오래된것, 전통적인것들에 특별한 애착이 간다는 전화자씨, 그래서 우리 민요에 대한 그녀의 사랑도 남다르지 않을가?

선생님은 16살 앳된 소녀시절에 예술학교에 입학했다. 그때는 민요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그저 노래 부르기가 좋았다. 여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고향이 한국 강원도 양양인 전화자씨는 2살때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이 땅으로 이주했다. 6남매중 혼자 중국으로 건너온 어머니는 그 긴 시간의 외로움을 달래느라 자주 고향의 노래를 불렀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전화자씨는 커왔다.

“아무 생각없이 본 입학시험에서 덜컥 합격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여 전화자씨는 당시 료녕성 심양의 민간예인으로 예술학교에 초청받아 교수를 하는 김문자선생을 모시고 서도민요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16살의 어린 소녀에게는 그저 지루하고 재미없는 수업이였다. “후일 한국류학을 하는 동안에야 제가 얼마나 대단한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그분의 깊이와 기교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전화자씨의 민요외길인생은 이후 50여년간 쭉 이어졌다. 교원과 가수의 일인이역을 소화하면서 그동안 전화자씨는 400여곡의 방송노래를 록음했고 농촌연출, 가도연출 할것없이 무대에 헤아릴수 없이 많이 오르면서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에 우리 민요의 전통을 널리 알렸다. 1980년 상해음악학원 민족성악학부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는 언어에 맞는 발성법으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것을 깨닫고 민요창법에서의 발성법을 개혁하여 우리 민요의 발전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90년대에 한국 국립극안원에서 전통성악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 무엇보다도 젊은 제자들에게 배움을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제자들의 류학의 길을 터주었으며 그로 인해 김순희가 경기민요를, 최성룡이 서도민요를, 신광호, 박춘희가 신민요를 배울수 있었다.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여 돌아온 제자들은 현재 선생님의 뒤를 이어 열심히 후대양성사업에 몸을 바치고있다.

“이제는 시름이 놓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민요가 대를 이어갈수 있으니깐요.”

고래희를 훨씬 넘겼지만 전화자씨의 제자사랑, 민요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얼마전 설립식을 가진 연변조선족전통민요협회, 그 배후에는 전화자씨의 로고가 숨어있었다. 1년간의 자료준비과정은 물론이고 협회를 설립하는데 필요한 수순들을 모두 직접 발로 뛰였다. 주변인들의 놀라움에 전화자씨는 언녕 추진했어야 하는 일이라 하며 당연하다고 했다. 모든것이 사명감 그 하나로 할수 있는 일이였다. 현재 전화자씨는 협회의 명예회장을 맡고있다.

이처럼 우리 민요의 발전에 기여를 한 전화자씨이지만 살면서 딱 한가지 아쉬운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아들과 딸에게 좋은 어머니가 되여주지 못한것이라 한다.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전화자씨는 자식들에게 “제자들밖에 모르는 엄마”로 비쳐져 조금 안타깝다고 했다.

얘기중에 또 방안 곳곳에 걸려있는 전화자씨의 옛 사진들이 더러 눈에 띄였다. 아직 볼살이 통통한 귀여운 소녀도 있었고 아름다운 미소를 살짝 띄운 단아한 녀인도 있었으며 머리에 흰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할머니도 있었다. 사진마다 선생님의 지난 자취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있었다. 그 사진들을 바라보며 추억에 젖어있는 전화자씨에게 사진 한장 남기자고 청들었더니 쑥쓰러워 하며 사양했다.

그러면서도 고운 웃음을 띄고 “그럼 립스틱이라도 살짝 덧칠할가요?”라고 말했다.

“아닙니다, 선생님. 여전히 고우신 선생님의 목소리처럼 모습도 아름다우십니다!”

그날 미처 드리지 못한 대답이다.

글. 사진 박진화 기자

연변일보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1월 26일, 사단법인 한국기원의 초청으로 한국으로 떠난 연길시 중앙소학교 리철화 학생은 2006년 1월 5일 연길시 천재바둑도장에 입학, 7월 7일부터 연길시 천재바둑도장 김광재 원장한테서 바둑에 대한 재능을 체계적으로 학습하며 프로선수로 되기 위한 꿈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리철화 학생의 프로선수로 향한 노력은 ...
  • 2007-11-26
  • 일전 우리 나라 무용계의 최고상인 중국“련꽃상”민족민간무용콩클에서 연변무용가협회가 추천한 남성군무 “서혼”이 수많은 경쟁작품들을 누르고 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기자와 마주한 안무가 김희씨는 이번에 “련꽃상”을 수상하여 우리 민족 무용의 영예를 떨치는데 저그마한...
  • 2007-11-22
  • 2004년 20대후반 젊은 나이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되는 《중국농촌중개인사이트》를 개통하고 2006년에는 소가툰구공청단위, 시, 구농민경제인협회와 중국이동통신협회의 지원으로 자신의 사이트에 《성세금농》(盛世金農)이란 메시지폴랫폼(短信服务平台)을 개통하고 계속해 국내 200여개에 달하는 동류 협회와 기업들...
  • 2007-11-20
  • 2004년 해림시는 현을 성립한후 사상 최초로 해림시특등로력모범을 평선하였는데 많치않은 영예명단에 해림시조선족중학교 교장 정송학의 이름이 올랐다.  1996년 4월에 부교장에 부임하여 1999년 12월에 교장 겸 지부서기직에 있으면서 수년간 목단강시우수교육사업자, 민족단결진보모범, 우수교육사업자기준병, 해림...
  • 2007-11-20
  • 최룡수교수는 잊혀진 조선인혁명가들의 사적을 찾아 중국조선족사회 더 나아가 해외에 이들의 사적을 널리 알린 분이다. 최룡수교수는 미국기자 님.웨일즈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던 조선인혁명가 김산(장지락)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화가이면서 혁명가였던 한락연, 기동항일유격대를 이끌었던 주문빈(周...
  • 2007-11-19
  • 그 몇년동안은 조선말 문학잡지들마다에서 늘 그녀, 최순희의 글만 찾아읽었다. 그만큼 그녀의 수필은 수많은 작가의 작품속에서 유독 필자의 "사랑"을 독차지할만큼 언제나 녀자들의 일상을 잔잔한 유머로 엮어내군 하였다. 그리고 그속에는 늘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겪는 녀자들의 고민과 시끄러움, 아픔을 지혜...
  • 2007-11-16
  • 요즘과 같이 좋은 세월에 농촌에서 도시에 올라와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허다할뿐만 아니라 시내에서 농촌에 내려가 창업과 치부의 꿈을 키우는것 또한 아주 자연스런 일로 되였다. 내몽골 울란호트시 울란하다진 고성촌에서 젖소농장을 경영하고있는 현덕일사장이 바로 그들중의 한사람이다. 1993년 현덕일씨는 호르친우...
  • 2007-11-15
  • <<국제유가 100딸라(원유 배럴당 가격)는 오늘래일의 일뿐이다.>>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쉽게 받아들일수 없는 놀라운 얘기다. 하지만 고유가시대의 도래를 준비해 마른수건에서 물을 짜내듯 <<메마른 돌>>에서 기름을 짜내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연변에서  첫바가지의 기름을 퍼 올린 왕청...
  • 2007-11-15
  • 수도 북경의 교통체증해소 최첨단연구소의 책임자로 있는 중국북방공업대학 리정희부교장은 흑룡강 출신의 조선족이다. 근 두달여의 집요한 통화로 겨우 한시간의 인터뷰 허락을 받을수 있었다. 워낙 바쁘게 지내는 분이라 걸려오는 전화를 거의 받지 않는데도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터뷰가 끊길때가 많았다. 학교 사업에 대...
  • 2007-11-14
  • 일전에 기자는 제17차 당대회정신을 깊이있게 터득하고 룡정시의 실정에 근거하여 참답게 관철시달할 문제와 관련하여 룡정시당위 서기 차광철과 인터뷰를 가졌다. 차광철서기는 이번 당대회의 가장 큰 특점의 하나가 바로 백성들이 가장 관심하는 문제 즉 민생문제를 조화사회구축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다룬것이라고 ...
  • 2007-11-1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