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아코디언은 카바레나 밤무대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위 '딴따라 악기'가 아닙니다. 외국에서는 '원맨 교향악단'으로 불릴 정도로 클래식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가 있죠. 재즈나 탱고 음악 등 연주 분야도 무궁무진한 게 아코디언의 매력입니다."
아코디언 연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주석용(35) 씨는 국내 연주가 중에 유일하게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정도로 클래식 아코디언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주가다.
조선족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시절 아코디언에 입문해 중국 연변대학 예술학과에서 클래식 아코디언을 전공했다.
고등학생 때 중국 아코디언 전국대회에서 2차례 대상, 2002년 베이징세계클래식아코디언콩쿠르에서 은상, 2005년 동남아시아아코디언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로, 2005년부터 한국에서 연주회와 강습 등을 통해 아코디언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6일 부천의 연습실에서 만난 주 씨는 인터뷰에 앞서 귀에 익은 클래식 음악부터 들려줬다. 연주곡은 파블로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애잔하면서도 격정적인 멜로디로 바이올린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곡인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코디언이란 악기로도 손색없는 감동이 밀려오는 게 신비롭게 느껴졌다.
연주를 마친 주 씨는 "풍금처럼 공기를 불어넣어 코드와 건반을 통해 연주하는 아코디언은 모든 악기의 소리를 낼 수 있다 보니 역설적으로 오케스트라에 편성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도 독주와 협주 등 클래식 연주곡이 피아노곡처럼 많은 게 아코디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클래식·현대음악·팝 등 장르 구분 없이 대중적 인기를 누려온 아코디언에 대한 붐이 최근 한국에서도 일고 있다며 반겼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거쳐 얼마 전까지는 색소폰이 인기였는데 지금은 아코디언이 대세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어서 지방 중소도시마다 아코디언 동호회가 만들어지고 있죠. 우리 정서에 맞는 감성 악기라서 중장년과 노년층을 중심으로 배우는 사람이 늘어나 동호인만 어림잡아 1만여 명에 이를 정도입니다."
중국은 한국보다 아코디언이 많이 보급돼 있고 세계적인 연주가도 배출하고 있다. 주 씨가 처음 아코디언을 접한 건 초등학교 1학년 음악시간 때였다고 한다.
"중국은 사범대생에게 아코디언을 가르칩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피아노나 풍금 대신 반주 악기로 아코디언을 쓸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아코디언에 익숙해져 있는 데다 전공을 개설한 대학도 많고 공쿠르도 종종 열릴 만큼 인기가 있습니다."
이후 아코디언을 손에 달고 살았다는 그는 수시로 전문 연주가를 찾아다니며 배움을 청한 끝에 고교 시절 이미 '차세대 아코디언 연주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주 씨는 고교에 이어 대학 시절에도 국제대회서 입상하면서 악단 입단 제의도 받았지만 좀 더 큰 무대에 도전하려 아코디언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독일 유학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2005년 국제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돼 KBS의 방송 프로그램인 '예술극장'에 출연할 기회가 생겼다. 이어 고양시 어울림누리극장과 서울시 서초구민회관에서 독주회도 열게 되면서 행선지가 한국으로 바뀌게 됐다.
당시 한국에서 아코디언은 인기 있는 악기도 아니었고 공연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주저 없이 한국에 남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음악적 실험에 대한 자유로운 분위기"를 언급했다.
"아코디언에 대한 인식은 낮았지만 클래식에 대한 한국 관객의 수준이 무척 높더군요. 더욱이 여러 악기와의 합주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는 개방된 문화는 제게 충격이었죠. 클래식에만 매달려온 제 음악의 세계를 넓힐 기회다 싶었습니다."
당시 주 씨의 뒷바라지를 위해 한국으로 건너와 일하던 아버지가 "조선족으로 한민족의 문화와 예술을 본격적으로 접해보는 것이 너의 정체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격려해준 것도 한국행을 결정하는데 한몫했다.
한국에서 적극적으로 연주활동에 나선 그는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남산 예술극장 등에서 독주 및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 나섰고, 지방 순회공연도 다녔다. 아코디언을 알릴 수 있다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지금까지 수백 회의 크고 작은 무대에 섰다. 시장통이나 공터에서 약장수가 부는 것 정도로 알고 있는 아코디언의 참 매력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큰 무대에서 찬사를 받는 최고의 연주가가 되는 것만이 목표였는데 한국에 와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냥 무대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됐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서도 배웠죠.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가요나 재즈도 연주하게 됐고 공연 사례비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일도 늘어났습니다. 주변에서는 중국에 있을 때보다 제 음악의 빛깔이 더 다채로워졌다고 합니다."
독일 유학에 대한 미련은 없느냐는 질문에 주 씨는 "독일서 공부했다면 중국으로 돌아와 악단의 수석이 되거나 대학교수가 되었겠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며 "덕분에 정체성도 확실해졌고 음악적인 성취도 다양해졌다"고 만족해 했다.
그동안 후학 양성에도 힘썼고 가르친 제자만도 500여 명에 이른다. 대한민국 아코디언콩쿠르의 학생부와 일반부에 상위 입상자를 매년 배출하고 있으며, 2014년부터 대구TBC 방송이 주최해 온 생활음악경연대회서는 아코디언 부문 3회 연속 대상을 휩쓸기도 했다.
지난해 그는 제자들에게 더 많은 연주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9명의 아코디어니스트로 구성된 '호연 앙상블' 연주단을 만들었고, 올해 봄 안동과 대구에서 열린 자신의 공연에 합주자로 내세우기도 했다.
올가을에 대구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을 준비 중인 주 씨의 꿈은 세계클래식아코디언콩쿠르에서 한국인 입상자를 키워내는 일이다.
"세계대회는 70여 개국에서 연주가들이 도전하는 꿈의 무대인데 아직 한국인 참가자가 없습니다. 최근의 붐에 힘입어 경희대와 중앙대 실용음악과에 아코디언 전공이 생기는 등 저변이 점점 넓어지고 있어서 전망은 밝습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아코디어니스트가 나올 때까지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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