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연변대학 미술학원에서 석사생지도교수로 있는 그는 다년간 연변의 산과 물을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사생작품을 그려가는 화가이다. 왜 꼭 연변일가. 대부분 화가들이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전국 나아가 외국까지 방방곡곡을 누비며 작품의 근거가 될만한 풍경을 찾아다니지만 그는 굳이 연변에 남아 이곳의 산과 물을 그린다. 무엇보다 그의 작업은 민족의 전통감수를 그림에 담는 일이며 언제 사위여 꺼질지 모르는 민족의 풍경을 기록하는 일이다.
사실 이 같은 사생작업의 시작은 30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연변대학 미술학원에 재학중이던 박청운화가는 학급의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두만강 천리 사생”을 떠났다. 연길- 도문- 삼합- 화룡- 장백산을 코스로 하여 4개월의 일정을 마무리하니 200여점의 사생작품이 탄생했다. 30년이 지난 뒤 홀로 그 길을 다시 걷고있는 박청운화가의 가슴에는 씁씁함이 없지 않다.
“많은것들이 변했습니다. 옛날의 높고 푸르렀던 산을 보기 힘들었고 세찬 강물의 흐름소리도 들을수 없었습니다. 물줄기가 말라버린 곳도 많았고 비여있거나 허물어진 집들도 많습니다. 대부분의 옛날 초가들이 지금은 벽돌기와집으로 변했는데 생활형편이 나아진것만큼 잃은것도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문에 더구나 잃어져가는 조선족들의 생활을 그려야겠다는 생각들이 어떤 사명감처럼 그의 머리속을 채웠다. 조선족화가로서의 생명력은 오로지 자신의 뿌리를 지켜낼 때만이 가장 푸르게 빛을 발할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연변의 자연풍경을 그리는 일은 가장 연변적인것이다. 그렇게 지난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근 300여점의 작품이 모아지게 되였다.
모든 작품이 연변의 산수를 그렸다하지만 그 어느것 하나 닮은것이 없다. 닮았다면 그속에 묻어난 화가의 감수와 필치가 닮았을뿐. 특히 인상에 남는것은 화가가 룡정 오봉산의 아래 마을에서 그린 늙은 량주가 살고있는 하얀 집의 모습이다.
이날 화실에 걸려진 “하얀 집”의 그림은 모두 두장이였는데 한장은 가을에, 한장은 겨울에 그린것이였다. 박청운화가의 소개에 의하면 이 집은 100년도 더된 집이다. 하얗게 회칠을 한 벽과 구새 먹은 통나무로 세운 굴뚝, 가을에는 빨간 고추다래가 벽 한켠에 가득히 쌓여있었고 겨울이 되니 두묶음으로 나뉘에 각각 처마에 매달려있다. 울바자에 기대여 곱게 피였던 노랗고 빨간 꽃들이 겨울이 되니 가지만 비쭉 남아있었으며 집뒤로 보이는 산자락과 지붕에 잔설이 남아있는 모습을 제외하고 가을에 비해 겨울의 모습은 여전히 고즈넉함이 묻어있다. 마당에서 여유작작하게 모이를 쫓고있는 닭들의 모습도 정겨웠다.
박청운화가가 이 그림을 완성하는데 걸린 시간은 두시간 정도, 화가가 느낀 그 한순간의 감수가 화가의 머리속에 주입되였다가 다시 캔버스에 옮겨진것이다. 박청운화가는 사생의 묘미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한다. 할머니가 걸어가는 모습, 닭들의 움직임은 화가의 특유한 감수성과 느낌으로 붓을 쳐 형상화되며 일부러 부각해냈다면 오히려 그 자연스러움이나 생동감을 잃게 될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붓의 효과외에도 박청운작가는 또 사생을 할 때의 조형이나 색감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테면 한붓에 나올수 있는 닭의 형상을 위해서는 전반 화면에 어울리는 색을 한붓에 담아 순간적으로 그려내야 한다는것이다. 물론 이것은 깊이 있는 내공을 필요로 한다.
많은 풍경중에서도 박청운화가는 가을과 겨울의 풍경을, 특히 겨울풍경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눈으로 덮힌 하얀 백설세계, 오로지 흰색과 회색으로 그려야 하는데 고난도의 작업을 필요로 한다. 한겨울 추위와 싸우며 그려낸 한점한점의 작품에는 경이로운 자연과 그 자연이 뿜어내는 거대한 에너지가 그대로 보여진다.
“사생은 자연에서 얻은 자기 감수를 자신의 예술기초를 통해 드러내보이는 작업입니다. 머리속의것을 모두 비우고 오로지 자연에만 몸을 맡긴채 대자연에 대한 감오로 작품을 내와야 합니다. 때문에 자연을 통해 얻는 화가의 감수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수년이 지난후에 어쩌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지워질지도 모르는 연변의 력사 그리고 산과 물을 그림으로 남겨놓는 그의 사생작업은 요즘처럼 시장으로 내몰리는 우리의 예술현장에 더구나 가슴 따뜻한 풍정을 그려준다.
연변일보 박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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