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애절한 새납소리 어찌 취하지 않으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3월23일 16시34분    조회:891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호윤
나의 새납도 새 주인 찾아야 할텐데.
문화예술이 빠르고도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그러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있다. 이제 누군가는 전통을 외면한다. 전통 자체가 현대인의 정서에 공감을 주지 못하기때문이란다. 또 누군가는 가슴 한가득 그 외면받은 전통을 그러안고 여전히 뜨거운 열정을 쏟아낸다.

 

“나는 새납에 미쳤다!”

여기, 이 빠른 시대의 변화에서 잠시 비켜선 한 새납연주자의 이야기로 우리의 전통악기인 새납이 만들어내는 가락에 귀를 기울여 본다.

연변가무단에서 장새납 연주자로 있는 김호윤(59살)씨는 자신의 40년 새납연주인생에 대해 매일매일이 “설렘”이라고 표현했다. 도대체 새납이 그에게 어떤 존재이기에 산전수전 다 겪으며 반세기 넘게 살아온 사람이 매일 설렜을가.

“그냥 놀러만 오세요. 아이고, 인터뷰는 안할래요. 새납 부는 사람이 새납만으로 말하면 됐지, 뭔 다른 할말이 있겠어요.”

인터뷰하려고 전화를 넣었더니 무작정 사양을 하던 그가 그의 작업실을 찾은 기자를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한다. 그가 꿈에서도 잊지않는다는 새납을 꼭 부여잡은채로 말이다. 거절은 했지만 전통악기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현실이 안타까워 뭐라도 해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차라 기자의 방문이 내심 반가웠던 눈치다.

고향이 왕청인 그의 새납인생 40년은 한번의 우연에서 출발했다.

그저 그의 고향으로 연변가무단이 공연을 왔던 그날, 지금은 고인이 된 김석산선생의 새납연주를 들은 그 한번이 그를 지금의 새납 “미치광이”로 묶어두는 “끈”이 됐다.

“그 수많은 악기가 내는 가락들중 오로지 새납소리만이 제 귀를 파고들었답니다. 날아갈듯 가벼우면서도 애절했고 또 신명나는 독특한 음색이였죠. 그 가락을 뭐라고 말할가. 피를 토하듯 외친다고 할가? 애간장이 끊어질듯 아팠다고 할가?”

그 이후부터 어린 김호윤은 기차로 왕청에서 도문으로, 도문에서 다시 연길로 오고가면서 새납을 배우기 시작하다 연변예술학교 대학반에 진학했고 졸업 후 바로 연변가무단에 몸을 담그면서 전국 방방곡곡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납은 오롯이 그의 삶이 되여 그동안의 세월을 견뎌왔다.

 

우리가 접하고있는 “장새납”

우리 민족의 전통새납은 “태평소”라고도 불리는데 목관부류에 속하며 리드를 가진 세로 부는 취주악기이다. “태평소”는 조선반도에서 주로 궁중음악에 쓰일 때 부르던 이름이고 민간에서는 “호적”, “새납”, “쇄나”, “철적”, “랄라리” 등으로 불리웠다.

지금 우리가 접하고있는 새납은 바로 장새납, 조선에서 개량한 새납이다. 초창기에 사용했던 전통새납은 음색이 예리하고 짙으며 음량이 크고 통제가 힘들었다. 전통새납은 음량이 큰 장점으로 인해 농악, 무당음악, 군악 등 실외음악에서는 빠질수없는 악기로 사용되였지만 실내에서는 다른 악기들과의 조합이 어려워서 독주곡을 제외하고 일반합주에는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

이러한 전통새납의 단점들을 극복하고저 1972년에 김석산을 위수로 한 민족예술인들은 12평균률로 조률되고 전통새납과 조선장새납의 장점을 보완하고 단점은 극복시킨 연변개량새납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연변새납은 리드가 크므로 공기량의 차이가 크고 또 악기의 음공도 크기때문에 연주에서 가까운 음들의 진행은 쉬우나 4도조약의 진행에서부터는 음의 정확도를 확보하기 힘든 문제가 존재했다.

그 단점때문에 연변새납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했고 현재 보급된 새납은 바로 날로 발전하는 현대음악의 수요에 의해 조선에서 1970년대에 전면적인 민족악기개량을 시작해 만들어낸 장새납이다. 장새납은 전통새납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개량악기로서 12평균률로 조률되였을뿐만아니라 음역도 크게 확대됐다.

우리 전통악기 대부분이 국가급, 성급 및 주급 무형문화재에 등록되여있지만 장새납은 개량새납이라는 리유로 등록이 거부됐다.

 

장새납의 미래는 청춘들에게

서양악기의 습격으로 우리의 전통악기는 이미 저만치 밀려난 상황, 서운함이 몰려올 때도 많다는 김호윤씨이다.

“전통악기중에서도 특히 새납은 불고싶어도 시장수요가 많지 않다보니 아무리 악기시장을 둘러봐도 제대로 된 새납 하나 장만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김호윤씨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우리 민속악기가 내는 소리에 공감할수 있는 정서를 가지고있다. 우리는 소리와 함께하는 민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새납연주자들이 설만한 무대가 점점 좁혀지면서 “밥벌이”도 안된다고 점점 외면을 받고있다.

현재 현역으로 뛰고있는 기성세대 새납연주자는 김효윤씨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전통을 이으려는 청춘들의 발걸음도 뜸해진지 오래다. 지금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새납전공을 선택한 학생은 단 3명뿐, 그들마저도 어려운 상황에 이길을 계속 걸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한다.

“우리 전통음악문화의 미래는 우리 청춘들이 얼만큼 관심을 갖고 이어가는지에 달려있어요. 전통을 잇기 위한 젊은이들의 노력이 이어져야죠.”

결코 소박하지 않은 김호윤씨의 바람이다.

그리고 이내 그는 혼자말을 하듯 나지막이 얘기를 이어간다.

“흐르는 세월은 어쩔수 없는거예요. 언젠가는 고음을 내던 내 새납소리도 점점 약해져 숨이 차 더이상 연주를 할수 없게 되는 날이 올거예요. 그때에는 분신처럼 따라다니던 제 이 새납이 새 주인을 찾아야 할텐데…”.


연변일보 글·사진 신연희 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44
  • 나의 새납도 새 주인 찾아야 할텐데. 문화예술이 빠르고도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그러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있다. 이제 누군가는 전통을 외면한다. 전통 자체가 현대인의 정서에 공감을&nbs...
  • 2017-03-23
  • “춤은 내 운명”, 습근평총서기께 장고춤을 선보인 23세 조선족 청년 지난 2월 24일,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제3채널 “무용세계” 프로에서 소고춤을 추는 한 청년의 무대를 우연히 접했다. 조선족인듯한 모습에 이끌려 자막정보에 따라 중앙민족대학교 무용학원을 찾았다. 그리고 취재중에 알게 된 또...
  • 2017-03-22
  • 제자를 가르치고있는 김성삼선생. 손끝이 선우에서 춤을 춘다. 둥기당당 둥당당… 아름다운 선률은 이내 공간을 가득 메운다. 15일, 국가급무형문화재 가야금전승인 김성삼선생(62세)을 만나 우리의 전통악기 가야금의 흥미로운 세계를 엿볼수 있었다. ■ 우리의 정서를 품은 악기 김성삼선생은 모든 민족악기가 그러...
  • 2017-03-16
  • -고 전청송화백의 유언을 두고  지난세기 90년대초의 고 전청송화백 일전 필자는 한국 《연합뉴스》 왕길환기자가 쓴 “24억원 아래로는 팔지 말라…기회가 되면 그림을 팔아 좋은 일에 써달라”는 제목의 고 전청송화백(1946-2013, 연변일보사 미술편집) 유작전시회 관련 기사를 읽었다. ...
  • 2017-02-28
  • [설날인터뷰]가수 백청강 “2017년 목표요? ‘인생곡' 만나고 싶어요” [미디어펜=정재영 기자] 2011년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 작은 체구를 가진 조선족 참가자가 등장했다. 중국 연변 출신이라는 그는 “노래하고 싶다”는 절박한 목표를 가지고 한국을 찾았다. ...
  • 2017-01-30
  • 함명철 감독, 동북3성 마지막 위안부 조선인 고 이수단 할머니 다큐제작 준비 10년전 함감독이 둥닝 양로원에서 이수단 할머니를 촬영하고 있다./함명철 제공   (흑룡강신문=하얼빈) 이수봉기자=올해 5월17일, 중국 헤이룽성 둥닝(东宁)시 양로원에 살고 있었던 동북3성 마지막 조선인 위안부 이수단 할머니가 사망을 했다...
  • 2017-01-04
  • 색 바래지 않는 예술인생 --- 저명한 음악가 김봉호선생님의 50년 창작인생을 더듬어 중앙인민방송국 조향란 제4편 식을줄 모르는 열정 – 애틋한 고향 정 선생님의 최근 모습 선생님은 1937년 조선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태여났고 1941년 부모님을 따라 길림성 화룡현으로 이주하였다. 선생님은1957년 화룡현 문공단 ...
  • 2016-12-14
  • 색 바래지 않는 예술인생 - 저명한 음악가 김봉호선생님의 50년 창작인생을 더듬어 80년대 선생님 모습 1974년 선생님은 길림성 문화국 부국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관직보다는 창작에 더 열성을 보였다. 연변을 떠나 장춘에서 근무하면서 선생님의 창작세계는 한차례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1979년 봄 어느...
  • 2016-12-07
  • 색 바래지 않는 예술인생---저명한 음악가 김봉호선생님의 50년 창작인생을 더듬어   들어가며 누군가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는 힘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음악은 유일한 합법적 마약이라고 했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그만큼 음악은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의 삶에서 막강한 영향력...
  • 2016-11-24
  • 제작 초기부터 화제가 됐던 공연 “아리랑쇼- 심청전”이 올 8월 27일 연길시 환락궁 아리랑극장에서 첫공연을 펼쳤다.   화려하지만 분명 절제된 조명아래 네폭의 다양한 색상의 막을 배경으로 펼쳐진 춤사위는 단숨에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갈하지만 화려하고 고전적이지만 현대적인 이중적인 아름...
  • 2016-10-15
‹처음  이전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