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렴청화 연변특파원= 완연한 여름이다. 가는 곳마다 꽃이 보이니, 그야말로 꽃의 계절이다. 꽃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모멘트에는 온통 꽃사진들이다. 숲을 자주 찾을수 없는 요즘 사람들은 좀 더 가까이에서 자연을 느끼고 싶어 꽃을 가꾼다. 거기다 세상이 각박하니 꽃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은 더 커져가는것 같다. 그래서 꽃으로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직업이 각광받는 요즘이다.
일명 플로리스트. 사전적 의미로는 꽃, 식물 등 화훼류와 다양한 소재를 리용해 목적별로 보기좋게 디자인하는 사람을 뜻한다.
리나(30세, 연길)씨도 그중 한사람이다.
꽃은 ‘열정’이다
꽃을 꾸민다하면 습관적으로 ‘우아함’을 떠올리지만, 실상은 고된 육체로동의 반복이다. 리나씨가 아침의 여유를 꽃시장에 반납한지도 어언 1년. 사들이는데서 시작해 꽃을 다듬고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꾸며내기까지 쉬운 과정은 없다.
전업주부의 우울함을 털어버리려 나선 산책에도 동네꽃방을 찾아 꽃 한다발씩 안아오던 그녀였다. 남편은 별종이라 놀렸지만 꽃이 좋았던 리나씨는 마냥 행복했다. 어린 새댁으로 시작해 독박육아만 7년을 견뎠다. 그러다 서른을 맞는 이른바 ‘아홉수’에 문득 생각이 많아진것이다.
“나는 누굴까.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뭘까.”
삶의 무게가 록록치 않음을 배워가던 무렵, 리나씨는 꽃 만지는 일을 시작했다. 무작정 체험반에 등록해 불철주야 열정을 불태우면서 배우고 또 배웠다. 그러다 늘 꿈꿔온, 자기만의 ‘꽃이야기’를 연것이 작년이다. 그후에도 배우려는 일념 하나로 한국에 날아가 화훼분야의 엘리트들을 만나는 등 주기적인 학습을 이어왔다.
체험반에 등록할 때도, 항공편 티켓을 끊을 때도 리나씨는 용감했다. 생계 걱정은 안해도 좋으니 육아나 내조에만 전념해주길 바라는 집안분위기가 물론 부담됐지만 집념을 꺾을 이는 없었으니 그녀에게 꽃이란 실로 열정 그 자체였던 셈이다.
꽃은 ‘기억’이다
한국의 원빈·리나영 커플이 치렀던 극비결혼식을 상기한다. 남자의 고향, 그중에서도 다산과 결실의 상징으로 되는 밀밭이 버진로드(신부입장시 걷는 길)로 선택됐다. 명품도 카메라 세례도, 그 흔한 주례마저도 생략된 이들의 결혼식에서 들꽃으로 옹기종기 엮어진 화관이나 부케가 단연 돋보였었다. 이처럼 꽃은 그 자체로 긍정과 화합 그리고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으며 요즘 류행하는 스몰웨딩은 꽃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단적인 례로 된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 들린 한 꽃방, 플로리스트가 남자인데다 손놀림이 너무 빨라 무척 신기했던 리나씨. “어렵지 않냐”고 물었단다. “어렵다니? 되게 쉽다. 그저 정해진 격식대로 똑같이 만들면 된다. 힘만 있으면 된다.” 그 말을 들은 리나씨는, 이것이 우리가 늘 접해온 꽃문화의 단면으로 느껴져 어쩐지 슬펐다고 한다.
“격식만 생각하면서 꽃을 똑같이 만든다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플로리스트라면 단순히 꽃을 꾸미는게 아니라 저마다의 감각을 살려 독창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나 행사의 성격에 맞도록 꽃을 변화시키고 의미있는 형태로 연출해내는게 우리가 할 일이다. 조화를 늘 념두에 둬야 한다. 쉽게 말해 손끝에 령혼을 실어야 하는것이다.” 리나씨는 받는 이의 취향이나 마음을 념두에 두지 않는 기계적인 테크닉은 싫다고 말한다. 이는 그녀가 한국에서의 체험반 성료에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리유이기도 하다.
욕세례를 받은적도 있었다. 소통에 문제가 생긴것. 손님은, 주문한건 꽃바구니인데 보낸건 왜 꽃다발이냐며 노발대발했다. 아침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리나씨는 의기소침을 떨치고 꾸역꾸역 꽃을 만들어 손님에게 손수 배달해줬다.
“꽃은 조만간 시든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꽃을 찾는건, 그 순간의 행복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손님의 기대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난 꽃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조신함속에 숨겨진 그녀의 강단이 느껴졌다.
꽃은 ‘나’다, 나는 ‘꽃’이다
‘꽃이야기’는 처음 몇개월 동안은 아무런 광고도 하지 않은채 조용히 주문만 받았지만 후에 입소문이 나면서 작은 규모의 체험반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막상 오픈하고나니 꽃방 운영에서 단지 꽃을 만지는 테크닉만 필요한게 아님을 실감했고 그렇게 시도한 체험반에서 수강생들을 응대하면서 얻는게 더 많았다고 한다.
애초에 리나씨는 부대낌이 싫어져 자기만의 공간을 꿈꾸며 꽃을 배웠다. 하지만 일상은 꽃으로 인해 더 분주해졌다. “‘꽃이야기’는 나만의 작은 섬이고 성소이다. 지친 삶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서 혼자 조용히 잠수하려 했다… 그러나 혼자라는 홀가분함이 어쩐지 좋지만은 않았던 때에, 내 공간에 물밀듯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도몰래 안도했다. 참 모순된다.” 섬이란 타인이 없어야만 하는 유토피아임과 동시에 타인이 있어야만 하는 디스토피아란 말이 있다. 그녀 역시 21세기의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보단 부대끼는 삶에 더 만족을 느끼며 살고있었다.
그러면서도 ‘플로리스트’라는 부름에는 어쩐지 송구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자신이 가진 그릇에 비해 그 호칭이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서 그저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쯤하여 한국 리해인 수녀의 ‘꽃과 나’라는 시가 떠오른다.
예쁘다고 예쁘다고 내가 꽃들에게 말을 하는 동안 꽃들은 더 예뻐지고,
고맙다고 고맙다고 꽃들이 나에게 인사하는 동안 나는 더 착해지고,
꽃물이 든 마음으로 환히 웃어보는 우리는 고운 친구...
그렇게 리나씨는 세상의 수많은 꽃들이 어떤 계절에 피고, 어떤 감촉과 향을 가졌고, 어떤 배경과 잘 어울리는지를 배우고 익히는 한편 자신의 일상을, 삶을 어떻게 영위할지를 결정하면서... 자기만의 꽃길을 만들어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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