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전동차 기사에서 스케이팅 세계우승 계몽코치로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8월13일 14시42분    조회:387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박명자

[국경 70돍 특별기획] 제1자동차공장과 조선족건설자들(16)

"1981년 여름의 어느날 12년 동안 자동차공장에서 전동차를 몰던 저는 공장 소년궁에서 어린이들에게 스케이팅을 배워주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공장장을 찾아가 소년궁에 가서 어린이들에게 스케이팅을 가르치겠다고 졸랐어요."

사람들은 혹여 여태도록 전동차만 몰아오던 40대의 한 평범한 조선족녀성이 갑작스레 아이들에게 스케이팅을 배워주겠다고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공장장을 찾아갔다고 하면 "이 녀자가 왜 이래, 정말 제정신인가?"라고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야기의 주인공, 박명자가 자동차공장 전동차 기사이기전에 젊은 시절 길림성 스피트스케이팅(速度滑冰) 선수와 자건거 선수로 맹활약한 사실을 그리고 그가 국가체육운동건장 칭호를 수여받은 운동선수였다는 사실을 몰라서이기 때문이다.   

78세까지 출근한 동계운동종몽 세계 우승 계몽코치 박명자

1941년 3월 생으로 올해 78세에 나는 박명자는 그 때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내려갔다. "공장장은 저의 사연을 알고 일단 동의하는 눈치였으나 소년궁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싫어하는 태도였지요. 저의 요구가 하도 간절하니 마지못해 받아주는 것 같더라고요." 박명자의 중국 동계운동종목 세계 우승 계몽코치로 가는 드라마틱한 인생은 이렇게 뒤늦은 40살에야 어렵사리 서막을 떼게 되였다.

<전국체육붉은기학교>로 소문난 돈화시제2중학교에서 중학생시절부터 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했던 박명자는 1957년부터 3년간 돈화시체육훈련대에서 운동선수로 그리고 1960년 8월부터 1969년까지 9년 동안 길림성체육공작대에서 스케이팅과 자전거 운동선수로 있었다. 그는 선후로 전국 스케이팅과 자전거 경기에서 개인 동메달과 단체 1등을 따냈으며 국가를 대표하여 출국해 자전거친선경기에 참가하는 영예를 지니기도 하였다.

"1969년 '문화대혁명'으로 길림성체육공작대가 해산되고 나서 저는 갑작스레 제1자동차공장에 오게 됐지요. 그렇게 공장 운수처에 들어가서 전동차를 모는 로동자로 된거지요." 박명자는 제1자동차공장에 입사하게 된 이야기를 꺼내면서 화두를 12년 동안 전동차 기사로 일하던 때로 돌렸다.

자동차공장 운수처 전동차 기사의 업무는 주로 전동차를 몰고 각 생산직장을 돌면서 부품을 실어가고 나오는 불량품을 거둬서 회수하는 일이였다. 한여름철 뙤약볕 아래에서 덜커덩거리는 전동차를 하루종일 몰고 다니느라면 온몸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 물참봉이 돼있었고 삭신이 쑤셔나서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박명자는 한마디 힘들다는 소리 없이 어린 두 딸과 가정을 남편에게 떠맡기고는 자신이 반장을 맡은 작업반을 거느리고 앞장에서 일했다. 운동선수시절부터 워낙 일이라면 자신의 몸을 가누지 않고 돌진하는 성격인지라 전동차 기사로 있는 십여년 동안에도 그는 오로지 공장만을 위하여 한몸을 불살랐다. 그는 해마다 공장의 선진생산자, 기준병으로 장춘시선진생산자로 당선되였으며 그가 거느린 작업반은 전국선진작업반이라는 큰 영예를 따내기까지 했다.

1981년 8월 박명자는 40살에 스스로 자기를 추천해 자동차공장 소년궁에 와서 처음으로 소년아동스피드스케이팅팀을 세우고 훈련장소와 운동기구, 자금이 제한된 상황에서 모든 것을 령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체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선수권대회 쇼트트랙경기에서 수차 금메달을 따내고 1998년 일본과 2002년 미국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두번이나 은메달을 따내 이름을 날린 리가군(李佳军)선수를 기억할 것이다.

박명자 계몽코치와 동계올림픽에 두번 참가하여 은메달 2개를 따낸 리가군선수

 

 

박명자선생님이 가르치는 소녕궁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리가군

박명자가 바로 리가군선수를 빙상으로 이끌어준 계몽코치다. 리가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리가군의 아버지도 자동차공장의 로동자랍니다. 공구분공장에서 일했는데 손재간이 좋았지요. 제가 가군을 가르치기 시작할 그 때 나이가 일곱살 좌우로 기억됩니다. 총명하고 스피드가 좋았으며 선생님의 가르침에 잘 따르고 열심히 훈련하는 어린이였어요."라고 회억했다. 박명자코치의 엄격한 지도하에 리가군은 1985년 10살 되던 해에 전국 <새싹컵> 경기에서 1등을 해 소문났으며 그후 장춘시체육운동학교에서 요구하자 박명자는 그를 더 큰 꿈을 실현하라고 격려하면서 그 곳으로 보냈다.

박명자가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여 따낸 금메달만 100여개에 달하며 그의 손을 거쳐 간 우수한 선수도 100명 이상으로 그중에는 동계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해 우수한 성적을 따낸 선수도 수두룩하다.

1985년 자동차공장 소년궁팀을 거느리고 전국 경기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둔 박명자

(오른쪽 두번째, 첫번째 어린이가 10살 나는 리가군으로 그해 일등을 따냈다.)

박명자는 장춘시 우수지도교사, 선진사업자, 제1자동차공장 로동모범, 선진사업자, 우수보도원 등 수두룩한 영예를 따냈으며 1986년 국가체육운동위원회로부터 전국소년아동쇼트트랙교학선진사업자로 1989년에는 전국우수교사로 당선되였다. 1996년 국가체육운동위원회에서는 그에게 동계운동종목 세계 우승 계몽상을 수여했으며 2003년 국가체육총국 동계운동관리위원회에서는 동계운동종목 세계 우승 계몽코치라는 영예를 안겨줬다.

수많은 영예에는 박명자의 피타는 노력과 심혈이 들어있다. 살을 에는듯한 엄동설한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따듯한 이불 속에서 꿈을 꾸며 단잠을 자는데 그는 날도 채 밝기도 전에 자리를 벌떡 차고 일어나 첫사람으로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따로 없고 방학과 명절 휴식도 없었다. 집안의 모든 일은 남편에게 떠맡기고 전혀 상관하지 않았으며 그녀는 집에서 잠만 자는 '손님'이였다. 이렇게 집의 일이 뒤전이라면 반대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는데 그들의 가정형편을 환히 꿰뚫어 장악했으며 혹시 누가 훈련하러 나오지 않으면 집에다 전화해서 정황을 알아보고 그래도 안되면 직접 집까지 찾아갔다. 미래가 보이는 아이라고 판단되면 무슨 방법을 대서라도 훈련을 견지하게끔 이끌어주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로 몸을 내번지고 일만 일이라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1997년 퇴직을 한 후에도 박명자는 사업의 수요로 계속 자동차공장 소년궁에 남아서 어린이들을 가르쳤는데 명색이 퇴직이지 이전과 전혀 다를바 없이 계속 바삐 돌아쳤다. 이렇게 그는 퇴직 후에도 무려 22년을 더 출근했는데 78세에 나는 올해 3월에야 비로서 정식으로 '퇴직'하고 집에 돌아와 편안한 백성이 됐다. 후대양성에 78살까지 사업터에서 분투한다는 것은 실로 드물고 조련찮은 일이다.

/길림신문 리철수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옌타이 만보금속가공유한회사 최병만 대표 2012년에 설립된 옌타이 만보금속가공유한회사(최병만 대표)는 8년 동안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코로나 기간에도 오더가 끊기지 않고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어 화제다.   옌타이시 복산구에 위치한 만보회사 최 대표는 설비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직원들에 대한 신...
  • 2020-05-18
  • 다양한 사람, 다양한 삶을 만나보는  삶의 향기   조광범, 1983년, 길림성 도문시 출생   현재 호남사범대학 외국어학원 조선어학부에 근무       ○안녕하세요? 자아 소개 부탁드립니다. ●연변에서 태여나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하고 호남사범대학에서 조선어(한국...
  • 2020-05-15
  •       연변대학 예술학원 전춘애 교원        6살에 우연히 접촉하게 된 무용, 20여년간 함께 해오면서 이제는 뗄래야 뗄수 없는 령혼의 동반자가 되였다.   오늘 소개할 주인공은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부 전춘애 교원이다.       “가족중에 예술하는 분은 없...
  • 2020-05-14
  • “물류도 인젠 스마트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전통 모식으로는 우세를 확보할 수 없습니다.” 일전 청도류정공항 앞 물류창고에서 기자와 만난 청도파테크국제물류 서문수 대표가 물류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피력했다. 서문수(1982년생)씨는 대학졸업 후 한국의 국제물류기업에 취직,  대학에서의 전공은 의...
  • 2020-05-13
  • 연길시병원 간호장 오설화, 박명매의 ‘무한전역’ 이야기     요즘 연변의 산과 들에도 봄은 예이제없이 찾아와 산마다 진붉은 진달래 아름답게 피여 짙은 향기를 풍길제 영웅적 도시인 무한의 신종코로나방역 최전선에서 개선가 높이 부르며 무사히 돌아온 연변조선족자치주 호북 지원 의료팀의 녀전...
  • 2020-05-12
  • 삭바느질 하나로 서민갑부가 된 어머니를 회억하여 프롤로그   2020년 5월 4일, 23시 30분 경에 어머님께서 9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평생 학교문에 가보지도 못한 ‘까막눈’이지만 누구보다 생존철학이 뚜렷했던 어머님이,삭바느질 하나만으로 의령 남씨 가문의 가세를 일으켜세우신 ‘알부자&...
  • 2020-05-09
  •   류춘금 가수   금영노래방 노래검색 목록에는 '애절'이란 노래가 수록돼 있다. 곡번호 98017, 노래에 류춘진(劉春今), 작사‧작곡에 민태성으로 돼 있다.   안개 빛 가로등 아래 하얀 얼굴 되어 홀로 서면   어느새 울었던 눈물 뜨겁게 흐르네   소중하고 아름답던 추억들을 모두 안고서   나 지금 ...
  • 2020-05-07
  •     대경시 제4병원 호흡내과 류제성주임    대경시 제4병원 호흡내과 주임 겸 내과 교연실주임(2009.9)을 맡고 있는 류제성(51세, 흑룡강성 연수현 출신)의사는 꾸준한 노력과 분투를 통해 호흡내과 분야에서 대경시는 물론 흑룡강성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로 두각을 내밀고 있다.       목단강...
  • 2020-05-07
  • 연성전통음식유한회사 허향순 사장의 뭉근한 뚝배기사랑   사진: 허향순   그 세월로서는 흔치 않게 넉넉한 가정에서 고생이란 게 뭔지 모르고 자란 그녀는 1980년대초에 장춘상업전문학교 중약과를 졸업하고 연변의약공사에 배치받았다. 당시 의약공사 약제사라 하면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이였다.   ...
  • 2020-04-28
  • 꿈이 부푸는 곳-펌프커피문화체험공간   -무한 행복을 우려내는〈펌프커피〉최봉화 사장의 무한도전기     석사공부를 마치고 학교에 남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밀어젖히고 그녀는 안정적인 교직생활 대신 겁없이 창업의 길에 뛰여들었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썩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잔...
  • 2020-04-26
‹처음  이전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