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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가의 대부' 정률성의 딸 정소제를 만나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9월4일 13시33분    조회:7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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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정소제

     정률성, 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나라 군가를 작곡한 작곡가이며 음악으로 무수한 중화 아들딸들을 고무시켜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중국 혁명음악의 대부이다. 최근 정률성의 딸 정소제 녀사의 북경 저택에서 80여년동안 전해내려온 불후의 명곡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와 ‘연안송’의 주옥같은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격정으로 불탔던 지난 세월을 회억해보았다.

 

정률성의 딸 정소제녀사.

  1933년 19세의 정률성은 항일의 꿈을 안고 조선반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왔다. 1937년 만강의 열정으로 연안으로 향했으며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바로 이 시기 정률성은 ‘팔로군 행진곡’ 후날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으로 확정된 군가를 탄생시켰다.

  정소제에게 있어서 정률성은 자랑스러운 아버지이다. 정소제 녀사는 아버지 정률성은 아주 평범하고 자애로운 분이였다고 하면서 자신의 이름 ‘소제’는 아버지의 소중한 바이올린으로 부터 지어진것이라고 말했다.

  정소제은 “저는 연안에서 태여났습니다. 제가 태여났을때 저의 아버지는 태항상 전선에 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혁명사업이 너무 다망하시였습니다. 당시 배고파 밤낮 울어대는 저를 위해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시던 바이올린을 팔아 양을 사서 저에게 양젖을 먹였습니다. 그 바이올린은 아버지가 갖은 고생을 하며 연안까지 갖고 온 목숨같이 아끼던 악기였습니다. 바이올린이 저의 생명을 구한셈이지요. 그후 저의 어머니 아버지는 그 바이올린을 기억하기 위해 저의 이름을 ‘소제’라고 지어주었습니다. ”고 말했다.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 작사가 공목선생은 생전에 쓴 회고록에서 정률성의 음악창작과정에 대해 “당시 연안에는 피아노도 없고 손풍금도 없이 고개를 저으며 흥얼거리기도 하고 손으로 박자를 쳐가며 곡을 만들었다”고 말했고 또 다른 전우는 “정률성은 동굴에서 그릇을 두드리고 무릎을 치며 박자를 맞추어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의 작곡을 완성했다”고 표했다.

 

 

정소제 어릴적 정률성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

  1938년의 어느날 초저녁, 정률성은 연안의 산등성이에 올라 석양이 비낀 하늘아래 한창 훈련중인 전우들이 위풍당당하게 구령을 부르며 군사연습을 하는 정경을 바라보며 계발을 받았다고 한다. 이 웅위하고 장엄한 경관은 한폭의 그림으로 펼쳐져 정률성의 마음속에 깊이깊이 새겨져 불후의 명곡 ‘연안송’을 탄생시켰다.

  정소제는 “연안에 가기 전 저의 아버지는 항일운동에 참가했고 조선혁명간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후에 상해음악전문학교에서 성악을 배웠고 연안에 와서는 로신문예학원 음악부에 다녔습니다. 그가 항일운동가에서 음악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것이 바로 이곳 연안이기 때문입니다. 연안은 씩씩한 젊은이들로 생기와 활력으로 차넘쳤고 도처에 노래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연안의 분위기는 그의 감성을 새롭게 일깨워주었습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한 노래 ‘연안송’이 발표되자마자 전선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침략자를 몰아내고 자유로운 땅에 행복하게 살아갈 그 날을 노래했던 연안송은 중국 항일운동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노래가 됐다.

  정률성이 창작한 노래는 우리가 익숙히 알고있지만 그가 직접 부른 노래를 들어본 분들은 많지 않을것이다.

  금방 들으신 이 귀중한 록음은 정률성 선생이 별세한 후 가족들이 그의 유물에서 발견한 록음테이프에서 흘러나온것으로, 정률성선생이 60세쯤 되던 해 친히 부른 아일랜드민가 ‘메기의 노래’이다. 시공을 뛰여넘어 들려오는 그의 소박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노래소리가 아직도 우리에게 친근하고 따뜻하게 다가와 감동을 주고 있다.

  정률성 선생은 노래 창작에 있어 생활체험을 통한 음악소재 수집을 아주 중시하였다. 그는 더많은 새로운 음악창작소재들을 찾기 위해 공장, 농촌, 변방 어디라 할것없이 조국의 방방곡곡을 찾아다녔다.

 

 

정률성 가족과 어머니가 찍은 사진.

  정률성 선생은 동북조선족 집거구와 현지 인민들과도 교류를 하였으 조선족 송가의 탐색자로서 그는 소박한 인민들의 삶을 노래에 담아냈다.

  정소제는 “아버지의 창작리념은 반드시 생활에 심입하는것이였습니다. 그는 늘 배속에 든것이 없으면 쓸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흥안령에서 ‘흥안령에 눈이 날린다’, 북대황에서 ‘행복한 농장’ 을 창작했습니다. 그는 또 연변에도 갔었습니다. 군인의 생활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군부에 찾아갔고 50세 나이에도 공군의 생활을 반영하기 위해 비행기에 직접 올랐으며 배사공의 노래를 쓰기 위해 배사공들과 한주간 함께 생활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동요를 쓰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령감을 찾았습니다. 현재 소학교 교재에도 실려있는 ‘우리는 행복해요’와 같은 동요들이 그렇게 창작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팔로군 행진곡을 창작할때는 앞부분 력도가 약한 것 같아 우리군의 힘찬 기상을 떠올리며 ‘앞으로,앞으로,앞으로’라는 음절을 처음 시작부분에 더 넣음으로써 훨씬 더 힘있고 기백이 넘쳐보입니다. ”

  우리 군의 힘찬 기상을 노래한 이 곡은 항일의 격전지에서 진군의 나팔처럼 전사들을 앞으로 나가게 만들어 연안에서 전국에 이르기까지 승리에서 승리로 이어갔다.

  습근평 주석은 문예사업좌담회에서 문예사업일군들은 자각적으로 인민과 호흡을 같이 하고 운명을 같이 하며 합심해야 한다고 하면서 모든 시대는 그 시대의 정신이 있고 문예사업일군들은 그 령혼의 공정사라고 말했다.

 

 

정률성이 학생들과 유쾌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 는 장면.

  예술가 개인의 성과와 시대정신은 국가의 운명과 민족흥망과도 긴밀히 련결되여있다. 섭이, 선성해, 정률성 등 음악가들을 놓고 볼때 이런 강렬한 력사적 사명감을 가진 예술가들은 음악의 형식으로 용감무쌍한 우리 군의 정신을 보여주었으며 예술의 감화력으로 많은 민중들을 이끌었다.

  정소제는 이 노래가 연안으로부터 전선 곳곳으로 퍼져나가 시대를 넘어 오랜 세월 우리들의 삶속에 살아있는것은 이 노래가 씩씩하고 기백이 넘치는 선률로 팔로군의 영웅적 형상을 잘 부각하여 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면모를 보여주었고 지금 현시대 우리들에게도 힘과 용기를 북돋아 줄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소제는 “군가는 민족의 혼입니다. 굴할줄 모르며 영원히 앞으로 향하는 민족의 혼은 전쟁년대에도 수요되지만 지금 건설의 년대에도 필요한 것입니다. 이 노래가 생명력이 강한 것은 전쟁년대 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적 힘이 될수 있을 뿐만아니라 지금 시대 사람들에게도 분발진취를 위한 힘과 용기를 줄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말했다.

  정률성, 그의 음악은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선사했다. 수난과 고통의 시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정률성, 이제 그의 음악은 평화의 상징으로 조국의 하늘아래 높이높이 울려퍼지고 있다.

  /중앙인민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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