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90세 할머니 물구나무서기 척, 알고 봤더니 공훈 로전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8월14일 08시12분    조회:236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윤금선

장춘정월담공원 물구나무서기 다리찢기 척척 하는 90세 로익장 알고 봤더니 국내해방전쟁 항미원조 참가한 공훈 할머니

 

90세에 물구나무서기를 척척 하는 윤금선할머니.

 

장춘정월담국가삼림공원은 걷기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둘도 없이 적격한 장소다. 이른 오전 삼림공원 서쪽 숲속에 뺀 나무잔도를 따라 걷노라면 두 손을 꼭 잡고 오른발 왼발 한발이라도 차이 날세라 보조를 딱 맞춰서 걷고 있는 고령의 로부부 모습이 보기 좋게 눈에 안겨온다. 이렇게 로부부는 한참을 다정히 걷다가 멈춰서 나무잔도에서 내려 허리 굽히기 운동을 하기도 하고 등을 나무에 대고 가볍게 쳐주기도 한다. 할머니는 이제는 몸이 풀렸다 싶으면 본격적으로 물구나무서기도 척척 하고 다리찢기도 하는데 례사롭지 않은 그의 움직임에 모두들 입이 떡 벌어진다. 정월담국가삼림공원 서쪽동네에서는 이미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모두를 감탄케 하는 이 할머니가 바로 국내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에 모두 참가하여 포연탄우 속을 헤치면서 싸워 온 올해 90세에 나는 ‘공훈 할머니’ㅡ윤금선 로전사다.

격정세월, 국내해방전쟁에서 항미원조까지

"일본이 투항하고 16살을 먹던 1946년 우리 고장에 동북민주련군이 들어왔어요. 저는 오빠를 따라 입대하겠다고 함께 지원해 나섰어요. 그런데 나이가 어린데다 한집에 둘씩이나 동시에 군대에 가려고 하니 모집일군은 동의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해는 못가고 이듬해 또 응해 끝내는 가고 말았지요. 이렇게 집에는 부모님만 남고 우리 두 형제는 모두 군대에 나가 싸웠어요.”

1947년 2월 윤금선은 동북민주련군에 참군하고 단기강습을 거쳐 간호병으로 되였다. 그는 사평전역과 장춘해방전투에 참가하고 부대를 따라 료심전역 그리고 평진전역을 겪었으며 계속 남하하여 장강을 건너 도강작전 후 3대 전역으로 불리는 중남전역에 참가하였다가 모주석이 북경에서 새중국 창립을 선언하는 희소식을 접했다. 윤금선은 소속한 대부대를 따라 계속 서남으로 진군하여 광서를 해방하는 전투까지 치렀다. 포화의 시련을 거치면서 점차 성장한 윤금선은 1948년 11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간호병으로부터 간호 반장, 패장으로 승진하였다.

 

 

 

 

“중국해방전쟁에서 희생자와 부상병들이 수도 없이 나왔지요. 부상병들에게 수혈할 피가 없어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게 자신들의 피를 뽑아 그들에게 수혈하기도 하였지요.”

윤금선할머니는 료심전역중 금주를 해방하는 전투에서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키가 155센치메터밖에 안되는 그녀가 쓰러진 우리 부상병을 간신히 업고 포화 속을 뚫고 달려가는데 뒤에서 갑자기 총성이 울리더니 등에 업힌 전사의 인기척이 없다.

젖 먹던 힘까지 다 써가며 안전한 지대로 피해서 업었던 전사를 내려놓고 보니 이미 희생되고 윤금선의 등은 전사의 선혈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 내가 왜 구하지 못했지!" 너무도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고 군의는 “금선아, 너무 슬퍼하지 말라, 그래도 네가 목숨을 내걸고 우리 전사를 끝까지 업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느냐, 그 것만으로도 너는 대단한거야!”라고 하면서 위안해주었다.

격정세월의 국내해방전쟁에서 윤금선은 자신의 생사와 안위를 전혀 돌보지 않고 부상병들을 구했으며 그가 거느린 30여명의 간호병들은 대오에서 한명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여러 전투를 겪으면서 선후로 4차례에 거쳐 공를 세웠다.

“새중국이 성립되였지만 또 다른 전쟁이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1950년 조선전쟁이 발발하자 윤금선과 이미 포병련장까지 된 그녀의 오빠는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또 이 가렬처절한 전쟁에 참가하게 되였다.

 

일전‘8.1’절을 맞으며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에서는 윤금선할머니를 찾아 위문하고 감사패를 드렸다.

 

“군대에 입대한 후로 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번 오빠를 만났어요. 제가 국내해방전쟁에서 탄 메달을 조선전쟁터까지 가지고 온 것을 보고 오빠는 그렇게 기뻐하면서 ‘금선아, 너 대단하구나, 이 오빠보다 메달을 더 많이 탔구나, 참 잘했어!’라고 말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후 얼마 안돼 오빠는 희생되였어요. 이 몸은 다행스럽게 살아서 귀국했지만 오빠는 한장의 렬사증이 돼서 돌아왔지요.”

윤금선할머니는 전쟁의 그 아픈 추억들을 저 하늘나라까지 가지고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윤금선은 조선전쟁에서 하늘땅을 진감하는 포성에 고막까지 다쳤지만 마지막까지 부대를 따라 움직이다가 1953년에 귀국하여 선후로 길림성료양원과 장춘시 관성구 철남병원에서 근무하다가 1987년에 리직하였다.

“나이야 저리 비켜라”, 10대 체조선수의 유연한 몸매를 유지하다

두번의 전쟁을 겪고 나니 윤금선할머니의 건강상태는 몹시 나빠졌는데 하는 일은 비록 의사였음에도 십이지장궤양, 위궤양, 관절염, 목디스크에 흉막염, 간에도 이상이 생겨 몸은 그야말로 ‘종합병원' 신세가 되였다. 그는 아픔을 견지하면서 가까스로 일터를 지켰다. 그후 약물치료를 하면서 부지런히 양생운동을 시작하였는데 놀랍게도 기적 같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윤금선할머니는 수십년 동안 자신이 터득해 온 양생방법으로 건강관리를 꾸준히 견지해왔는데 지금 비록 90세의 고령이지만 10대 체조선수마냥 유연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물구나무서기를 척척 하는가 하면 다리찟기도 거뜬히 해내며 무게가 한참 나가는 훌라후프(呼啦圈)도 단숨에 저그만치 500개 씩이나 돌린다. 뿐만 아니라 아령을 두 손에 들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운동하는데 이 모든 동작이 90세 할머니가 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믿기지 않을 정도다.

 

 

 

10대 체조선수의 유연한 몸매를 자랑하는 윤금선할머니.

 

윤금선할머니는 지금도 매일 아침 3시가 되면 일어나서 가부좌를 하고 명상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을 간단히 든 후 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곧바로 정월담공원으로 가서 사람들과 어울려 운동하다가 11시에 집으로 돌아온다.

건강비결에 대해 윤금선할머니는 “전쟁터에서 우리는 좁쌀에 보총을 갖고 정신력으로 싸워서 승리했지요. 제대 후 사업에 참가해서도 정신력으로 일해왔어요. 정신력이 있었기에 소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저는 공부를 해서 간호원으로부터 중의사로 될 수 있었어요. 로년에도 역시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봐요. 내가 늙어서 이 것도 안되고 저 것도 못한다고 정신력을 놓아버리면 더 빨리 로화가 오는거지요. 늙어도 할 수 있다는 정신력 즉 의지를 가져야 해요.”라고 말한다.

두 로인의 나이를 합치면 저그만치 182세, 그럼에도 이들은 그 누구한테도 기대지 않고 오늘까지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원앙처럼 둘이서 오붓하게 ‘신혼살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겐 요즘 또 새로운 꿈이 있다. 윤금선할머니는 지금 살고 있는 정월담공원 근처의 아빠트에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계획 중이다. 그래서 얼마전에는 온천이 집까지 들어온다는 새 아빠트단지를 찾아가서 직접 알아보기까지 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얼마나 좋은가며 건강해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윤금선할머니, 주변 사람들이 “로인님 지금은 백세시대입니다. 이대로라면 백세는 거뜬히 넘길 수 있어요.” 라고 하자 “그러네요. 그렇다면 신체단련에 더욱 힘을 내야지요!”하며 동안의 얼굴에 해바라기 같은 웃음을 활짝 짓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길림신문 리철수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잡지 《좋은 아침》 조선족인물렬전 코너의 장식때문에 많은 조선족 유명인사들을 만나 취재하면서 과학기술분야에서 성공한 민족의 과학자들이 그렇게 많은 분야에 골고루 많음에 실로 긍지를 가지게 된다. 특히 기업인들은 개혁 개방의 무드를 타고 짧은 시일에 부를 이루고 그를 바탕으로 사회에 공헌을 한 유명인들이라...
  • 2007-12-12
  • 년초 약속대로 6꼴을 뽑아 다소 마음의 안위가 된다는 문호일. 올해 팀이 뽑은 16꼴(페널티킥 3꼴 포함)에서 14껨 출전으로 6꼴을 뽑으며 250만원의 몸값으로 자리 지킴을 하고있는 문호일을 일전에 만났다. 언제봐도 소탈하고 꾸밈이 없는 그는 외지생활의 힘들었던 에피소드들을 말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우리 말이 통...
  • 2007-12-11
  • 해남성 삼아시 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 상거한 '전원몽과수농장'은 산기슭을 따라 주위 어디를 둘러보나 한폭의 거대한 수묵화를 방불케하는 록색의 바다이다. 과수가지에  매달린 무수한 열매들은 수확의 계절이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준다. 1998년 관광팀을 따라 해남의 삼아에 왔던 김용선씨는 1주일 체류기...
  • 2007-12-11
  • 지난 11월 27일 저녁 여섯시 20분경, 중앙인민방송국 조선말방송에서는《고향소식》프로가 라지오전파를 타고 흘러나오고있었다. 《신빈현정부에서는 새농촌건설에서 향진간부들의 봉사성역할을 향상시켜 착실하게 새농촌건설을 추진하고있습니다…》 이런 변화발전하는 고향소식을 육성으로 지구촌에 전한 주인공이 ...
  • 2007-12-06
  • "고객 한명의 뒤에는 10명, 100명, 1000명 지어 거대한 시장이 있을수 있습니다. 한명의 고객을 잃으면 하나의 시장을 잃는셈이지요." 정리실업이후 생활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창업에 나서 1000여만원의 자산을 이루어낸 룡정시삼신전자업종 김인길경리의 경영리념이다. 1980년, 부대에서 제대한 김인길씨는 룡...
  • 2007-12-05
  • —연변무용가협회 최은희비서장의 조직행보  제6회 전국무용“련꽃상”,  “대지의 춤”컵민족민간무용콩클의 16명 회원평심위원중 유일한 조선족평심위원이 있었다. 귀주위성TV를 통해 생방송되는 콩클공연에서 평심을 당당하게 소화해낸 이가 바로 중국무용가협회 리사이며 연변무용가...
  • 2007-11-30
  • 김경훈씨에 "한민족 정체성 확립 노력" 인정(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중국 연변대학교 조선언어문학학부 김경훈(47.조선족) 교수가 23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민족청년회의가 주는 제5회 한민족청년상을 받았다.한민족청년회의 김정기 회장은 이날 시상식에서 "김 교수는 한민족 후대양성과 민...
  • 2007-11-27
  • 올시즌 연변팀서 가장 무서운 잠재력을 보여준 선수다. 1989년 8월 21일생, 신장 174센치, 포지션: 미드필드. 연변팀서 가장 나어린 선수다. 년초 고훈감독이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선수는 천부적인 자질을 갖춘 선수”라고 극찬하던 장담이 시즌을 경과하며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어린 나이에 비해 경기를 ...
  • 2007-11-26
  • 축구라면 발벗고 나서서 돕는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연길남해목욕쎈터 리호산경리다. 다년간 직업적으로 사우나를 경영해온 연길남해목욕쎈터 리호산경리는 축구선수들한테 매우 필요한 목욕장소를 무상으로 제공해 호평이 자자하다. 특히 연변에서 그 수준이 정평이 나있는 조기축구팀인 연길앞으로축구팀은 리호산경리에 ...
  • 2007-11-26
  • 연길시 하남소학교에서 학습하고 있는 리규한 학생, 이번 사단법인 한국기원 초청으로 한국행을 하게 된 또 한명의 행운아다. 리규한 학생 역시 2006년 3월 연길시 천재바둑도장에 입학, 7월 7일부터 김광재 원장한테서 바둑재능을 익히면서 올해까지 1년 푼한 기간 주와 시 및 길림성 바둑경기에서 수차나 상을 받아안은 바...
  • 2007-11-2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