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90세 할머니 물구나무서기 척, 알고 봤더니 공훈 로전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8월14일 08시12분    조회:226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윤금선

장춘정월담공원 물구나무서기 다리찢기 척척 하는 90세 로익장 알고 봤더니 국내해방전쟁 항미원조 참가한 공훈 할머니

 

90세에 물구나무서기를 척척 하는 윤금선할머니.

 

장춘정월담국가삼림공원은 걷기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둘도 없이 적격한 장소다. 이른 오전 삼림공원 서쪽 숲속에 뺀 나무잔도를 따라 걷노라면 두 손을 꼭 잡고 오른발 왼발 한발이라도 차이 날세라 보조를 딱 맞춰서 걷고 있는 고령의 로부부 모습이 보기 좋게 눈에 안겨온다. 이렇게 로부부는 한참을 다정히 걷다가 멈춰서 나무잔도에서 내려 허리 굽히기 운동을 하기도 하고 등을 나무에 대고 가볍게 쳐주기도 한다. 할머니는 이제는 몸이 풀렸다 싶으면 본격적으로 물구나무서기도 척척 하고 다리찢기도 하는데 례사롭지 않은 그의 움직임에 모두들 입이 떡 벌어진다. 정월담국가삼림공원 서쪽동네에서는 이미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모두를 감탄케 하는 이 할머니가 바로 국내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에 모두 참가하여 포연탄우 속을 헤치면서 싸워 온 올해 90세에 나는 ‘공훈 할머니’ㅡ윤금선 로전사다.

격정세월, 국내해방전쟁에서 항미원조까지

"일본이 투항하고 16살을 먹던 1946년 우리 고장에 동북민주련군이 들어왔어요. 저는 오빠를 따라 입대하겠다고 함께 지원해 나섰어요. 그런데 나이가 어린데다 한집에 둘씩이나 동시에 군대에 가려고 하니 모집일군은 동의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해는 못가고 이듬해 또 응해 끝내는 가고 말았지요. 이렇게 집에는 부모님만 남고 우리 두 형제는 모두 군대에 나가 싸웠어요.”

1947년 2월 윤금선은 동북민주련군에 참군하고 단기강습을 거쳐 간호병으로 되였다. 그는 사평전역과 장춘해방전투에 참가하고 부대를 따라 료심전역 그리고 평진전역을 겪었으며 계속 남하하여 장강을 건너 도강작전 후 3대 전역으로 불리는 중남전역에 참가하였다가 모주석이 북경에서 새중국 창립을 선언하는 희소식을 접했다. 윤금선은 소속한 대부대를 따라 계속 서남으로 진군하여 광서를 해방하는 전투까지 치렀다. 포화의 시련을 거치면서 점차 성장한 윤금선은 1948년 11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간호병으로부터 간호 반장, 패장으로 승진하였다.

 

 

 

 

“중국해방전쟁에서 희생자와 부상병들이 수도 없이 나왔지요. 부상병들에게 수혈할 피가 없어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게 자신들의 피를 뽑아 그들에게 수혈하기도 하였지요.”

윤금선할머니는 료심전역중 금주를 해방하는 전투에서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키가 155센치메터밖에 안되는 그녀가 쓰러진 우리 부상병을 간신히 업고 포화 속을 뚫고 달려가는데 뒤에서 갑자기 총성이 울리더니 등에 업힌 전사의 인기척이 없다.

젖 먹던 힘까지 다 써가며 안전한 지대로 피해서 업었던 전사를 내려놓고 보니 이미 희생되고 윤금선의 등은 전사의 선혈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 내가 왜 구하지 못했지!" 너무도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고 군의는 “금선아, 너무 슬퍼하지 말라, 그래도 네가 목숨을 내걸고 우리 전사를 끝까지 업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느냐, 그 것만으로도 너는 대단한거야!”라고 하면서 위안해주었다.

격정세월의 국내해방전쟁에서 윤금선은 자신의 생사와 안위를 전혀 돌보지 않고 부상병들을 구했으며 그가 거느린 30여명의 간호병들은 대오에서 한명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여러 전투를 겪으면서 선후로 4차례에 거쳐 공를 세웠다.

“새중국이 성립되였지만 또 다른 전쟁이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1950년 조선전쟁이 발발하자 윤금선과 이미 포병련장까지 된 그녀의 오빠는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또 이 가렬처절한 전쟁에 참가하게 되였다.

 

일전‘8.1’절을 맞으며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에서는 윤금선할머니를 찾아 위문하고 감사패를 드렸다.

 

“군대에 입대한 후로 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번 오빠를 만났어요. 제가 국내해방전쟁에서 탄 메달을 조선전쟁터까지 가지고 온 것을 보고 오빠는 그렇게 기뻐하면서 ‘금선아, 너 대단하구나, 이 오빠보다 메달을 더 많이 탔구나, 참 잘했어!’라고 말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후 얼마 안돼 오빠는 희생되였어요. 이 몸은 다행스럽게 살아서 귀국했지만 오빠는 한장의 렬사증이 돼서 돌아왔지요.”

윤금선할머니는 전쟁의 그 아픈 추억들을 저 하늘나라까지 가지고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윤금선은 조선전쟁에서 하늘땅을 진감하는 포성에 고막까지 다쳤지만 마지막까지 부대를 따라 움직이다가 1953년에 귀국하여 선후로 길림성료양원과 장춘시 관성구 철남병원에서 근무하다가 1987년에 리직하였다.

“나이야 저리 비켜라”, 10대 체조선수의 유연한 몸매를 유지하다

두번의 전쟁을 겪고 나니 윤금선할머니의 건강상태는 몹시 나빠졌는데 하는 일은 비록 의사였음에도 십이지장궤양, 위궤양, 관절염, 목디스크에 흉막염, 간에도 이상이 생겨 몸은 그야말로 ‘종합병원' 신세가 되였다. 그는 아픔을 견지하면서 가까스로 일터를 지켰다. 그후 약물치료를 하면서 부지런히 양생운동을 시작하였는데 놀랍게도 기적 같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윤금선할머니는 수십년 동안 자신이 터득해 온 양생방법으로 건강관리를 꾸준히 견지해왔는데 지금 비록 90세의 고령이지만 10대 체조선수마냥 유연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물구나무서기를 척척 하는가 하면 다리찟기도 거뜬히 해내며 무게가 한참 나가는 훌라후프(呼啦圈)도 단숨에 저그만치 500개 씩이나 돌린다. 뿐만 아니라 아령을 두 손에 들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운동하는데 이 모든 동작이 90세 할머니가 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믿기지 않을 정도다.

 

 

 

10대 체조선수의 유연한 몸매를 자랑하는 윤금선할머니.

 

윤금선할머니는 지금도 매일 아침 3시가 되면 일어나서 가부좌를 하고 명상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을 간단히 든 후 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곧바로 정월담공원으로 가서 사람들과 어울려 운동하다가 11시에 집으로 돌아온다.

건강비결에 대해 윤금선할머니는 “전쟁터에서 우리는 좁쌀에 보총을 갖고 정신력으로 싸워서 승리했지요. 제대 후 사업에 참가해서도 정신력으로 일해왔어요. 정신력이 있었기에 소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저는 공부를 해서 간호원으로부터 중의사로 될 수 있었어요. 로년에도 역시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봐요. 내가 늙어서 이 것도 안되고 저 것도 못한다고 정신력을 놓아버리면 더 빨리 로화가 오는거지요. 늙어도 할 수 있다는 정신력 즉 의지를 가져야 해요.”라고 말한다.

두 로인의 나이를 합치면 저그만치 182세, 그럼에도 이들은 그 누구한테도 기대지 않고 오늘까지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원앙처럼 둘이서 오붓하게 ‘신혼살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겐 요즘 또 새로운 꿈이 있다. 윤금선할머니는 지금 살고 있는 정월담공원 근처의 아빠트에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계획 중이다. 그래서 얼마전에는 온천이 집까지 들어온다는 새 아빠트단지를 찾아가서 직접 알아보기까지 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얼마나 좋은가며 건강해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윤금선할머니, 주변 사람들이 “로인님 지금은 백세시대입니다. 이대로라면 백세는 거뜬히 넘길 수 있어요.” 라고 하자 “그러네요. 그렇다면 신체단련에 더욱 힘을 내야지요!”하며 동안의 얼굴에 해바라기 같은 웃음을 활짝 짓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길림신문 리철수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어렵고 힘든 첫 합작이 있었기에 》 -- 《력도산의 비밀》 연출 리주호씨와 만나] 일전, 기자는 첫 중조 합작영화 《력도산의 비밀》 조선말 대사록음을 마치고 최후 합성과 완성꼬삐 제작건으로 장춘에 온 조선연출가 리주호씨를 만나보았다. 일찍 조선영화대학을 졸업하고 모스크바영화대학에서 박사공부를 하며 연출가...
  • 2005-09-14
  • [《합작영화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조선영화회사 최영일사장 인터뷰 장춘영화제작소에 와서 첫 중조합작영화 《력도산의 비밀》 중문판을 보고난 최영일사장은 《영화 자체보다도 첫 합작영화를 만들어냈다는데 뜻이 깊습니다. 이제 이 영화가 씨앗이 되여 두 나라 영화 교류와 합작의 꽃이 만발할것》이라며 감개무량...
  • 2005-09-14
  • [중한 량국의 교량으로 거듭날터] [한국 (주)목우건설그룹 박주철 대표의 지성] 《중국에서 체류할 시간이 더 많을것 같습니다. 앞으로 중국건설업계에 관여할 시간이 더 많을것 같다는 이야기도 되겠지요.》 88올림픽 국내환경장식공사, 롯데백화점, 프랑스대사관, 현대백화점 등 한국 유수의 상가, 특수공사실적으로 1991...
  • 2005-09-14
  • [한류는 중한 두나라 비슷한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았다-한국 항일 노전사 윤경빈 광복회 전임 회장과의 인터뷰]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쑈전쟁승리 60주년 대회가 지난 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성대히 진행되였습니다. 중국 당과 정부의 지도자, 항일전쟁 노전사, 국제우호인사와 사회각계 인사 약 6천명이...
  • 2005-09-13
  • [관광산업은 21세기 경제장성의 동력입니다-한국관광공사 강광호본부장을 만나] 민속박람회 주최측의 초청으로 연변에 처음으로 온 강광호 한국관광공사 본부장은 《연변에 대해서 다소 알고있었지만 이번 민속발람회에 참가하고나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변형없이 유지되고있는데 대하여 놀라지 않을수 없습니다.더우기 어린...
  • 2005-09-10
  • [주강강병에 피여난 나리꽃] [광동모델경력 10년의 광동성 남해집신중학교 김매화학생] 5살에 광고를 찍기 시작해서부터 10년간 광고, 텔레비전 드라마 촬영경력을 가진 광동성 남해집신중학교(南海执信中学) 3학년의 김매화 학생, 한 떨기 싱싱한 나리꽃을 련상케 하는 미모의 조선족소녀가 있다. 타고난 감성...
  • 2005-09-08
  • [동포 위한 따스함이 가득한 애심] [연길시정부 미주통상대사 박현우시 《사랑한마당》에 1만원 후원] 연변일보《사랑한마당》에 실린 불우아이들의 가슴아픈 사연들을 읽고 연길시정부 미주통상대하인 미국적 한인 박현우씨는 생활의 어려움에 학업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불우아이들을 도우라면서 애심이 담긴 1만원의 성금...
  • 2005-09-08
  • 심양주재 한국총령사관 오갑렬총령사 인터뷰 인젠 한국 불법체류 통하지 않아 귀국자 한국재입국 절대 보장 일전 장춘동북아무역투자박람회 참가차로 장춘을 방문한 심양주재 한국총령사관 오갑렬총령사는 공식적인 행사가 많아 몹시 바쁜 와중에도 최근 한국과의 래왕에서 제기되는 화제들을 내용으로 기자와의 인터뷰를 접...
  • 2005-09-08
  • 김상진 훈춘시 시장 - 훈춘 국제물류기지로 건설할터 두만강류역개발이 새롭게 볕을 볼 조짐을 보이면서 훈춘시는 이번 박람회에서 언론매체의 초점으로 되였다. 이번 박람회 연변투자무역 소개회에서도 훈춘시정부 김상진시장은 훈춘시 투자환경소개 대표연설을 했다. 우선 훈춘은 지역위치가 독특한데다 우대정책이 많으며...
  • 2005-09-08
  • [주광주 한국총령사관 남상욱 총령사 인터뷰] [한국자본-눈길을 광동에 돌려볼 필요] [내수시장 겨냥한 투자증가세 주목] 중국 31개 성급 행정구역 중 GDP, 세수액, 외자유치 각각 1위 중국 전체 수출액의 30%이상 차지 가전, 통신기기, 완구, 시계, 신발 등 제조업의 세계 최대 생산기지,한국전체 경제규모의 90% 수준 중국...
  • 2005-09-0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