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당의 민족정책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10월8일 10시28분    조회:182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장현환(1943.5-2021.4)은 료녕성민족사무위원회 주임, 료녕성인민대표대회 민족교무외사위원회 부주임 위원, 료녕성경제문화교류협회 초대리사장을 맡고 당의 민족사업을 위해, 성내 민족지역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 로심초사하고 전력투구하여왔다. 특히 높은 정치의식과 강한 민족심으로 료녕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를 정열적으로 이끌왔는바 조선족사회 발전에 불멸의 족적을 남겼다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일찍 료녕성 법고에서 태여나 조선족 백년부락인 료녕성 철령현 우의촌에서 자란 장현환은 현지에서 소문난 ‘대학생 여섯 남매’중 넷째였다. 그의 부모는 지난 세기 50년대~60년대말까지 근 20년 동안 가난과 싸우며 자식 여섯을 모두 어엿한 대학생으로 키웠다. ‘쌀팔아 소팔아 공부시켜준’ 부모 덕분에 그는 도시에서 고등교육을 받았고 국가간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1965년 7월, 심양농학원 원림학부를 졸업한 그는 성위 조직부에 의해 2년제 '청년간부양성반'에 파견됐고 이듬해에 입당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그는 기층학교에 전근되여 근 10년간 일할 수밖에 없었으나 열심히 일하여 학교 당지부 서기, 혁명위원회 주임을 맡으며 점차 두각을 내밀었다.

  

1977년말 장현환은 철령지위(현 철령시위) 통전부 간사로 자리를 옮겼고 1980년 철령지구 민족사무위원회가 설립되면서 판공실에 배치받았다. 1983년에 철령지구 민족사무위원회 부주임으로 발탁되고 1984년 1월에 철령지위 통전부 부부장으로, 1984년 9월에는 료녕성민족사무위원회 부주임으로 취임한다. … 7년 만에 학교 교사에서 부청급 간부로의 승격은 '초고속 승진'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뒤에는 물론 중청년간부를 대거 발탁하는 당시 시대적 배경도 있었거니와 더 중요한 것은 당의 민족 정책과 리론에 대한 터득과 많은 기층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쌓은 사업실적, 두터운 신망 그리고 높은 책임성과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2년 9월, 료녕성민족사무위원회 주임으로 임명, 장현환은 재임 10년간 창의적 사고와 강한 리더쉽으로 성 소수민족지역 경제발전을 이끌어왔는바 료녕 소수민족사업의 ‘개척자’라 불러도 손색없다.

  

당시 료녕성에는 40여개 소수민족, 600여만명 소수민족 인구가 있었다. 8개 민족자치현, 2개 민족자치현 대우 현급시, 139개 민족향(진)은 전체 면적의 38.7%를 차지하여 성의 사회경제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반복적인 조사연구에 기초해 그는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민족단결진보를 주제로, 사회 안정 수호를 책임으로' 하는 사업 사로를 내놓으며, '대군단(大兵团) 작전' 모식으로 각 지역 민족사무위원회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고 통일된 사업목표·임무·실시방안을 제정했다. 그중 소수민족군중 치부항목 지원을 골자로 하는 '1355' 치부시범공정, 농업 산업화와 과학기술 진보를 촉진하는 민족과학기술시범향(진)·민족과학기술시범촌 창건, 민족지역상품기지 조성, 소수민족자치현 탈빈곤 지원 등이 대표적 사례다.

  

"새로운 형세하에 민족사업이 어떻게 당의 중심사업에 더 잘 복무할 것인가 하는 지도사상을 체현했다." '1355' 치부시범공정에 대한 당시 부성장의 높은 평가다. 성정부는 민족지역에 대한 성민위의 전면적인 조사보고에 기초해 '9번째 5개년 계획'과 '2010년 전망목표'를 제정할 때 '민족지역 경제사회 발전'을 단독 조목으로 내와 민족사업에 중요한 의거를 제공했다.

  

"민족학교 분포를 합리화하고 적당한 규모를 유지해 교육질을 보장해야 한다." 편벽한 조선족마을에서 어렵사리 공부했던 장현환은 민족교육 발전에도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성민위는 해마다 성내 250명 소수민족 빈곤학생들에게 조학금을 전달했고 성민위의 주선으로 몇년후 성정부는 '료녕성민족교육전문자금'을 특별 설립하고 해마다 200만원을 투입했다.

  

료녕성민족사무위원회의 단독 청사를 마련한 것도 장현환의 큰 성과중 하나다. 청사가 없어 모 부대의 병사(营房)를 빌려 사무를 보다보니 근무환경이 렬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여러 부문을 찾아다니며 자금과 정책 지지를 쟁취했다. 3년간의 공사 끝에 1997년 료녕성민족사무위원회 청사가 드디어 준공됐다. 그는 새 청사 입주를 계기로 기관건설을 전면적으로 강화해 민족사업일군들의 사기와 전투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2003년 3월 성민위 주임직을 리임한 그는 료녕성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 민족교무외사위원회 부주임으로 있으면서 산재지역 소수민족 권익 보장 법률을 내오기 위해 끊임없는 조사연구와 보고 작성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2004년 "민족단위 행정책임자는 반드시 해당 소수민족 공민이 담당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료녕성산재소수민족권익보장조례>가 채택됐다.

  

정현환은 료녕성 '조선족수장'으로 있으면서 성내 조선족사회의 장구적인 발전에 많은 심혈을 기울여왔다.

  

료녕성 조선족사회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오는 료녕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현 료녕성조선족련의회)가 바로 그가 성민위 사업기간 창설한 것이다. 협회는 지난 1991년에 장현환, 우철희 등 조선족간부들과 조선족 성인대대표들의 공동 노력으로 성정부의 비준을 거쳐 정식 설립됐으며 장현환은 1991년부터 2015년까지 24년간 리사장 직을 맡았다.

  

조선족의 특수한 해외관계 우세를 충분히 발굴해 료동반도의 개혁개방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 상급의 요구에 걸맞게 협회는 경제방면 민영기업을 부축하고, 조선족기업인들의 언어와 해외관계 우세를 발휘해 민간차원에서 중조, 중한 경제교류와 한국투자 유치에서 중요한 선봉장과 교량 역할을 했다. 항상 조선족기업인들을 조선족사회 발전에서 엘리트와 같은 존재라며 조선족기업인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문화방면 조선족 민간단체가 자기 민족적극성을 발휘하여 다경로로 민족전통운동을 전개하는 데 큰 의미를 두었다. 전 성적인 조선족민속축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해 민족단결진보와 군중문화 사업의 건강 발전에 이바지하고 민족 전통문화를 적극 발굴, 전승하는 동시에 중한 문화교류에도 적극 나섰다.

  

교육방면 료녕성민족사무위원회, 료녕신문, 료녕성기초교육교연양성센터, 료녕민족출판사 등 단위와 함께 료녕성조선족중소학생글짓기콩클를 개최하여 조선족학생들의 사고능력과 글짓기수준을 제고시킴과 동시에 자기 민족 언어와 문자를 사랑하고 전통문화를 전승하도록 이끌었다.

  

조선족촌 발전도 협회의 중요 사업으로 간주했다. 수차례 료녕성조선족촌간부좌담회를 소집해 조선족 중심촌 건설사업을 지도했고 ‘조선족농민들의 토지를 보호하고 토지를 합리적으로 사용할 데 관한 조치’도 적극 연구했다.

  

조선족 민간단체들에 대한 관심과 지도를 아끼지 않았다. 성 시, 현 조선족사회단체 사업좌담회를 소집하여 성내 조선족사회단체를 위한 교류 플랫폼을 마련했고 단체들의 힘과 마음을 한 데 모아 동반성장을 이끌었다. 협회의 전력 지지로 료녕성조선족애심기금회가 지난 2012년에 발족됐고, 조선족애심기금회는 현재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로 탈바꿈해 조선족 뿐만 아니라 기타 민족의 불우이웃도 적극 도와주는 등 료심대지에서 민족단결과 애심문화의 꽃을 피우고 있다.

  

장현환은 성 '량회'기간 조선족 인대대표, 정협위원 좌담회, 조선족농촌발전좌담회 등을 갖고 성내 조선족사회의 경제, 문화, 교육 발전에 대해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했다. 성내 유일 관영 조선글신문 《료녕신문》의 발전을 위해 해당 부문에 어려움을 반영하고 지지를 쟁취해주었으며 조선족사회에서 적극 도와나서도록 이끌었다.

  

민족사회, 민족간부, 민족단체에 관한 장현환의 생전 주장들은 우리에게 갚은 사색과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민족간부 양성의 필요성에 대해서 그는 "경제평등은 잠시적인 것이나 정치평등은 장원한 것이다. 정치평등은 참정, 의정과 정부사무의 관리에 참가해야 이룰 수 있으며, 경제문화 제반사업의 발전도 촉진할 수 있다. 민족 정치권리의 대변인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민족간부 양성을 제도로 추진하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선족민간단체의 역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조선족사회가 발전하자면 반드시 주류사회에 적극 개입하여 그 속에서 자기의 위치와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우리 민족'이라는 작은 울타리 속에서 '자화자찬'할 것이 아니라 타민족 특히는 주류민족과의 조화 속에서 우리 민족의 합법적 권익을 도모해야 한다.

  

조선족민간단체로서 정부에 곤난과 문제를 적극 반영하고 지지를 쟁취하면서 민간단체가 민족사업의 발전에 유리한 일을 하고 기여를 한다면 사회의 지지를 받게 되고 응집력이 생긴다. 사회가 발전하는 만큼 조선족민간단체들의 활동 양식, 품위도 따라 발전해야 하고 우리 민족사회에서 부딪친 문제들에 대해 사고하고 조사연구를 하고 민족교육, 민족간부양성 같은 구체적 문제들을 각급 당위, 정부에 반영해 그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장현환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사업에 대한 강한 책임성과 헌신적 정신, 생활에 대한 락관적 태도, 동지와 친인에 대한 진지한 우애는 사람됨의 본보기로, 배울 본보기로 남아있을 것이다.

 

장현환 프로필

  
  장현환(1943.5.3-2021.4.8), 남, 조선족, 료녕 법고현 출신, 심양농학원 원림학부 졸업, 1966년 중국공산당에 가입.

  1965.8-1966.7 중공료녕성위 당학교 청년간부양성반 학원

  1966.8-1968.4 중공개현현위 선전부

  1968.5-1970.5 료녕성철법광무국 1광중학교 교원

  1970.6-1977.10 철령현요보중학교 당지부 서기, 혁명위원회 주임

  1977.11-1984.10 철령지위 통전부 간사, 철령지구 민족사무위원회 사무실 주임, 령지구 민족사무위원회 부주임, 철령지위 통전부 부부장

  1984.11-1992.8 료녕성민족사무위원회 부주임

  1992.9-2003.3 료녕성민족사무위원회 당조서기 겸 주임

  2003.4-2008.2 료녕성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 및 료녕성인민대표대회 민족교포외사위원회 부주임위원

  1991-2015 료녕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리사장

 

 
2004년 제8기 전국인대 민족사업 간부 양성반에 참가한 장현환(좌2)
 
 
료녕성 시, 현 조선족사회단체 사업좌담회
 
 
조선족기업가들에게 감사패 발급
 
 
기업 방문
 
애심조학금 발급
  
료녕성조선족촌부녀주임좌담회
 
료녕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료녕성조선족기업가협회 2009년 총화대회에서
 
료녕성조선족민속축제 개막식에서 연설
 
료녕성조선족민속축제에서
 
2015년 12월 26일 료녕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기바꿈대회에서

료녕신문 최동승 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뉴질랜드 동포사회에서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축구심판이 돼 화제가 되고 있다. 뉴질랜드 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을 맡고 있는 우성철씨의 아들 우정구(15)군은 최근 오클랜드 마누카우 축구연맹(FAMS)이 주관한 축구 심판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14일 동포신문 코리아타임스가 전했다. 우 군은 "아버지가 심판으로 그라운드를 누...
  • 2006-04-15
  • MBC가 중국 후난TV와 '현대판 대장금' 격인 한ㆍ중 합작드라마를 제작한다. MBC는 13일 "드라마 '대장금'을 방송했던 중국 후난TV와 손잡고 미니시리즈 '사랑의 요리사(가제)'를 공동 제작한다"고 밝혔다. 70분물 16부작으로 제작될 '사랑의 요리사'는 여성 성공 스토리의 무대를 세계로 넓힌 이야기로 장나라가 여주인공 공...
  • 2006-04-14
  • ——— 목단강시민족종교사무국 김광범국장의 사업에서 우리 민족의 발자취가 력력한 목단강 대지는 개혁개방과 더불어 민족사회가 활기띠며 도약의 나래을 펼치고있다. 도합 12만명 조선족이 살고있는 목단강시는 흑룡강성 조선족사회에서 중요한 지역임에 틀림없다. 목단강시의 민족사업을 말할라치면 목단...
  • 2006-04-13
  • '2005년 중국 10대 걸출한 법관'으로 '금법추상(金法槌奖)'을 받은 녕안시 동경성 인민법정의 조선족 법관 김계란(녀)의 선진 사적이 화극으로 개편되여 무대에 오르게 된다. 최근 목단강시 평극단은 선진 인물 홍보 사업의 일환으로 김계란의 선진 사적을 생동하고 형상적으로 묘사한 화극 '김계란'을 창작했다. 목...
  • 2006-04-12
  • 北 유도 영웅 계순희와 남편 김 철 "승리하고 돌아온 후 결혼하자." 북한의 유도영웅 계순희(27) 선수가 리명수체육단의 김 철(27) 유도감독으로부터 받은 프로포즈는 그야말로 유도의 한판승처럼 시원스러웠다. 계 선수는 최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와 인터뷰에서 "김 감독이 '사랑의 고백'을 한 것은 지...
  • 2006-04-07
  • 조선족 고고학자 김태순 연구원 "고고학자" 하면 영화에서 나오는 거대한 피라미트와 그 속에서 미이라와 싸우며 보물을 캐내는 사람들을 련상하게 된다. 어쩌면 당신도 고고학자가 되여 시공을 헤가르는 랑만적인 꿈을 꾸어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변의 고고학자가 말하는 잃어버린 세계속의 생활은 그냥 영화만이 아...
  • 2006-04-07
  • 180명 편친 무부모 자식 포근히 감싸준 손인숙교장 하늘같은 엄마의 사랑으로 정에 굶주린 편친, 무부모 아이들을 180명이나 한품에 그러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뜰히 보살피고 다듬으며 반생의 향기와 빛을 발산하는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룡정시《사랑의 집》의 손인숙교장(53살)이다. 3월 30일, 기자가 《사랑의 집...
  • 2006-04-05
  • 《농민이 잘 살아야 연변이 산다.》 기자의 인터뷰를 접하며 뗀 첫머리 말이였고 인터뷰전반에 쭉 깔려져있는 대담의 핵이 농민이였다. 량화자, 북경화근과학기술유한회사의 리사장. 등을 돌렸던 고향 연변 땅을 10여년만에 부푼 가슴으로 다시 밟으면서 고향 농민들에게 크나큰 선물을 주겠다는 애향심을 다시 불태우는 철...
  • 2006-04-04
  • "연변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기에 선뜻이 나선것이다." 연변팀홈장입장권을 도급맡은 연변아리랑매체발전유한회사 박준덕리사장은 1일, 연변팀 홈장입장권도급동기를 이렇게 솔직하게 밝혔다. 작년 11월, 연변에서 처음으로 중국 10대 우수기획인(중국기획협회 선출)으로 당선된 박준덕리사장(42살)은 기획에 재치가 있...
  • 2006-04-03
  • 전국로력모범 장흥의상제조유한회사 한경애리사장의 창업이야기 시대가 영웅을 낳고 영웅이 시대를 빛낸다고 지금 수많은 민영기업가들이 전민창업의 시대적환경에 힘입어 다년간의 창업과 분투로 자기들의 보잘것 없던 《새우》급기업을 업종, 업계의 룡두주자급기업으로 키워가고있다. 연길장흥의상제조유한회사가 바로 그...
  • 2006-04-0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