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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떼떼’에서 중견예술인으로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12월31일 09시55분    조회:4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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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떼떼’에서 중견예술인으로

 
리아
 
 


김광철

중국 조선족사회에서 ‘떼떼가족’은 한 세대를 주름 잡은 코미디문화의 대명사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배우들의 본명은 몰라도 예명을 모르면 아쉬울 정도이다. 과거에는 물론 현재에도 복고풍이 불 때마다 등장하는 연변소품에서 늘 볼 수 있는 정겨운 모습들이다. 급속히 변화하는 현시대 속에서 이들을 한물 간 과거인물로 다루는 시선도 없지 않지만 그들이 문화사업에 바치는 투혼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필자는 최근년간 소품구연업계의 중임을 짊어진 ‘작은 떼떼’ 김광철을 만나보았다.
 
현재 소품배우로 명성을 날린 김광철은 어린시절에는 악기연주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이였다. 학교에서 문예위원을 담당하고 여러 문예활동에서 손풍금반주를 담당할 만큼 연주실력이 좋았다. 당시 방음시설도 없을 때라 이웃들에게 소음 피해를 줄가 봐 김치움 속에 들어가 련습을 할 정도로 악기를 배우는 데 열정적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가로서의 꿈에 대한 열망이 크지 않았던 것은 TV에서 소품을 보는 것이 그에게 더 큰 즐거움으로 다가와서였다. 당시 일요일마다 〈요청무대〉에서 한편식 방영되였던 소품을 보기 위해 누구보다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고대하였다. 그러다보니 악기연주가보다는 소품배우로서의 꿈이 더 절실했고 TV 속 인물의 대사를 흉내내면서 스스로 꿈을 키워나갔다. 특히 1987년, ‘떼떼부부’ 리동훈과 오선옥의 〈통졸임사건〉을 보고 나서 소품배우가 되고 싶은 욕망이 더욱 커졌다. 오래동안 귀감으로 그의 마음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리동훈의 ‘떼떼’ 형상에 매료되여 그의 말투를 흉내내기도 했는데 과도한 련습 때문에 진짜로 말을 더듬기도 하여 아버지한테 야단 맞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떼떼가족(오선옥, 김광철, 리동훈)

당시 리동훈이 소속되여있던 연길시조선족구연단의 순회공연은 김광철의 고향인 왕청에서도 여러차례 펼쳐졌다. 그 때마다 김광철은 공연이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기 아쉬워 배우들을 태운 뻐스가 떠나는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언제면 나도 저 뻐스에 앉아서 공연하러 다닐 수 있을가?’ 하는 생각에 빠져 뻐스가 사라지도록 못 박힌듯 서있군 했다. 
 
배우라는 꿈은 록록치 않은 현실 앞에서 쉽사리 펼쳐지지는 않았다. 그후 김광철은 왕청현 중안소학교에서 음악교원으로 교편을 잡기도 하고 어릴 적부터 쌓아온 악기연주실력으로 행사나 공연장에서 반주를 맡아하기도 했다. 생계로 바삐 돌아치면서도 그는 배우의 꿈에 쏠리는 열망을 깨버릴 수 없었다. 어느 날엔가 무작정 리동훈과 만나서 자신이 그동안 독학으로 쌓아온 구연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갈마들었다. 하지만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결국 공중전화로 114에 그의 련락처를 문의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리동훈’이란 다소 흔한 이름 때문에 동명이인이 수두룩이 등장하는 바람에 한집한집 전화를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몇번의 시도 끝에 전화기 너머로 “여보세요.”라는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였다. 대사를 련습하면서 수없이 흉내내보던 너무나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그 순간 엄습해온 긴장과 떨림으로 말문이 막히면서 수화기를 내려놓고 말았다. 그는 부근의 상점에서 술을 사서 마신 후 술기운을 빌어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늦은 밤시간에 걸려온 취기 어린 말투에 리동훈은 장난전화인 줄 알고 한번만 만나고 싶다는 그의 부탁을 거절해버렸다. 그래도 김광철은 단념하지 않고 진심을 담은 간절한 청탁공세를 들이대여 결국 이튿날에 만나기로, 절대 술을 마시지 않고 만나기로 약속을 받아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만남으로 리동훈에게 그동안 갈고 닦아온 자신의 구연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아직 미숙하였음에도 그의 끈질긴 의력과 소품배우에 대한 열정에 감복한 리동훈은 그를 구연단에 소개시켜주고 무대경험을 쌓도록 순회공연에도 데리고 다니며 연기를 가르쳐주었다. 
 


화룡시 동성용진 흥성촌에서 열린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 혜민공연에서 재담을 표현하고 있는 김광철(왼쪽)

1996년, 김광철은 리동훈과 합작한 소품 〈칼 가는 사람〉에서 ‘작은 떼떼’ 형상을 성공적으로 부각하여 관객들에게 인상 깊은 눈도장을 찍게 되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그토록 긴장해본 적 없는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소품의 시작부분에 있는 짧은 독백대사마저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가장 큰 문제는 관객석을 볼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관객들과의 소통은커녕 무대가 끝날 때까지 상대역인 리동훈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다행히 그후 여러차례 무대경험을 쌓고 나니 무대울렁증은 점차 나아졌고 나중에는 소품이 끝날 때까지 관객의 박수소리가 몇번이나 울렸는지 세여볼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게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닦을 수 있게 되였다. 
 


소품 <철 없는 가정>의 한 장면

1998년, 〈철 없는 가정〉에서 ‘떼떼부부’ 리동훈과 오선옥의 아들로 등장하면서부터 이들 셋은 ‘떼떼가족’이 되였다. 이 때 맺어진 ‘가족’인연은 중국 조선족 코미디문화업계에서 만만치 않은 명성을 남겼다. 〈누구를 속이요〉, 〈철 없는 가정〉, 〈부모는 거울〉, 〈샅샅이 뒤져라〉 등 ‘떼떼가족’이 출연한 명작들은 크고작은 콩쿠르에서 줄줄이 상을 거머쥐게 되였다. 1998년, 〈칼 가는 사람〉으로 길림성 제14회 이인전 신극목(新剧目)심사평의보급회 및 제4회 희극소품콩쿠르에서 표현 2등상을, 제3회 연변희극소품콩쿠르에서 표현 1등상을 수상하였다. 2000년, 〈누구를 속이요〉로 길림성 제15회 이인전 신극목심사평의보급회 및 제5회 희극소품콩쿠르에서 표현 1등상을, 제4회 연변희극소품콩쿠르에서 표현 1등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 길림성 제1회 이인전, 희극소품예술절에서 〈철 없는 가정〉으로 표현 1등상을 받았다. 또한 〈즐거운 잔치날〉로 2004년, 제2회 전국소수민족곡예전시공연 1등상을, 2005년 제5회 중국곡예절 표창상을 받았다. 2005년, 길림성 제2회 이인전, 희극소품예술절에서 〈부자지간〉으로 표현 1등상을 받았고 2007년, 길림성 제3회 이인전, 희극소품예술절에서 〈샅샅이 뒤져라〉로 표현 1등상, 감독 2등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오래오래 앉으세요〉로 제3회 전국소수민족곡예전시공연에서 2등상을 받았다. 그리고 〈황혼로맨스〉로 2009년, 길림성 제4회 이인전, 희극소품예술절에서 표현 1등상, 감독 1등상을 받았고 2010년, 제4회 전국소수민족곡예전시공연에서 표현 2등상을 받았으며 2020년, 〈우리네 마을〉로 제9회 연변진달래문예상을 받았다. 김광철은 ‘떼떼가족’과의 인연을 20여년이 흐른 오늘도 굳건히 이어오면서 강산이 두번 변해도 여전히 변치 않는 끈끈한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소품 <칼 가는 사람>의 한 장면

본명보다 더 많이 알려지고 불려진 ‘작은 떼떼’란 타이틀과 ‘떼떼가족’들은 김광철이란 사람을 세상에 알리고 인생의 전성기를 가져다주었다고 그는 단언한다. 그는 성공길에서 절대 제외할 수 없는 은인이 두번째 부모라 할 수 있는 ‘떼떼부부’라고 짚는다. 당시 이미 소품계에서 이름을 날린 두 선배배우의 아들로 등장하니 신인배우임에도 관객들은 까다롭지 않게 후한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떼떼부부’가 재밌으니 ‘떼떼가족’도 재밌을 것이라는 관객들의 믿음은 그에게 무한한 자신감과 에너지로 다가왔다. 물론 그 본인의 피타는 노력도 빠뜨릴 수는 없다. 김광철이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 빛 좋은 참살구로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고심한 노력 그리고 구연에 대한 애착과 갈라놓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발전뿐만 아니라 조선족구연계의 발전을 위해 정열과 심혈을 쏟아부었다. 현재 그는 길림성구연가협회 부주석, 연변구연가협회 주석,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 부주임 및 구연부 부장 등 주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 다년간의 노력과 헌신으로 제10회 길림성 장백산문예상 새별추천상(新星提名奖, 2011년)을, 연변TV방송국 음력설문예야회 창작평의활동에서 특등상과 ‘웃음의 별’ 칭호(2012년)를, 연길시 제18차 민족단결진보표창대회에서 선진개인상(2016년)을 받아안았다. 
 
김광철은 남을 잘 도와주는 따뜻한 심성으로도 유명하다. 타지 공연을 위해 새벽 같이 길을 떠나야 할 때 후배들의 아침밥을 챙겨주는 등 일상생활면에서의 도움은 물론이고 그들이 빨리 발전할 수 있도록 좋은 기회를 쟁취하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2013년, 제1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 ‘떼떼가족’을 포함한 조선족 소품배우들이 중국 대표로 참가하게 되였다. 세계 각국의 코미디업계에 대해 료해하고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김광철은 본인이 초청 받은 것도 기뻤지만 그보다 후배들도 함께 참가하여 그들의 배우인생에 큰 도움을 주고 싶어 주최측 초청인원이 엄격히 제한되였는데도 루차의 교섭 끝에 두장의 초청장을 추가로 얻어내게 되였다. 그렇게 로배우들과 신인배우들이 함께 참가한 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서 일본, 독일, 말레이시아 등 여러 국가 배우들의 다채로운 코미디공연을 볼 수 있었고 그들도 소품 〈뻥치기〉를 선 보여 중국 연변의 코미디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었다. 
 
배우의 길을 걸은 지 20여년이 된 현재, 김광철은 여전히 관객의 웃음과 박수갈채에 목 말라하고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도 대사 수정을 멈추지 않는 초심을 간직하고 있다. 대본을 한 글자라도 틀릴세라 달달 외우던 신인배우에서 상황에 따라 즉흥적 연기도 재치 있게 선 보일 수 있는 베테랑 배우로 성장한 김광철은 현재 후대 양성과 구연의 보급, 전파 사업에 앞장 서는 중임을 떠메고 있다. 2009년부터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 혜민공연의 총책임자 신분으로 공연대오를 거느리고 연변의 8개 현, 시를 종횡무진하며 해마다 30여차의 혜민공연을 조직하였다. 또한 연변구연가협회의 새시대 ‘붉은 진달래’ 문예지원봉사활동에도 아낌없이 정열을 쏟고 있다. 
 


후배 배우들에게 구연을 가르치고 있는 김광철

현재 김광철은 ‘변해버린’ 관객들 때문에 고민이라고 한다. 21세기,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세대 속에서 관객들의 문화적 시야와 흥미도 시대의 급류에 합류하면서 그들의 취미에 맞춰 공감과 호응을 얻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자 시련으로 나서고 있다. 20세기말에 데뷔해 조선족의 전통문화와 민족적 심미관이 슴배여있는 작품들을 연기해온 그로서는 급행렬차를 타고 떠나버린 관객들을 두 발로 따라잡지 못해 뒤처진 듯한 위기감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신이 고수해온 조선족 특유의 코미디문화 풍격을 버리고 맹목적으로 시체를 쫓아갈 생각은 없었다. 천명의 독자가 천명의 햄리트를 만들어내듯이 무작정 관객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시야를 넓히고 다문화적인 문화소양을 키워 그것을 작품 속에 녹아들게 한다면 자신이 고수하고 있는 구연풍격으로 충분히 다양한 계층의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장수배우로 오래동안 무대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게 그의 배짱이다. 
 
《예술세계》 2021년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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