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우리 악기로 우리 소리 우리 정서를 담는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6년10월13일 10시07분    조회:892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민족악기설계공정사 김계봉 50년 민족악기 향한 일편단심

우리 민족의 원성태적인 소리와 정서를 가장 진실하게, 가장 투철하게 표현할수 있는 악기는 무엇일가. 물론 우리 민족악기가 아닐가싶다. 가야금, 거문고, 장고, 새납, 저대, 해금,북…력사기재에 따르면 우리 민족악기는 무려 80여종에 달하며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되고있는 악기는 20~30여종이라고 한다.

일년에 만여건에 달하는 민족악기를 생산하고있는 연길시민족악기연구소에서는 우리 민족의 문화를 사랑하고 민족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계승하는 책임감으로 멸종의 위기에 처한 고대 민족악기들을 발굴하고 회복하는데 최선을 다해 현재 40여가지의 민족악기를 회복발굴하고 생산하고있다.

연길시민족악기연구소 악기공정사 김계봉은 50여년간 일편단심으로 우리 민족악기의 연구, 제작, 발굴에 혼심을 다해온 장인이다.

어릴적 밥 한끼 배불리 먹기 어려웠던 세월에도 남달리 음악을 사랑했던 김계봉가족이였는데 부친과 형은 특히 악기를 만드는걸 좋아했다고 한다. 어쩌면 참으로 이상한 취미였는지도 모른다. 김계봉도 음악을 하려다가 악기를 만드는것부터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소학교 5,6학년 시절부터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만든것이 바로 부친과 큰형의 도움밑에 깡통으로 만든 해금이였다고 한다. 사실 김계봉 부친의 이작은 악기가공소가 바로 연길시민족악기연구소의 원시기초가 된것이다. 고중졸업후 교원으로 사업하던 김계봉은 그래도 대대손손 몸에 배인 그 끈끈한 고집과 취미로 단연 교단을 뛰여내려 1958년 한달음에 악기공장으로 달려갔다. 그때 그의 나이 21살, 그는 기능공들에게서 배우고 연변가무단의 연주가들한테 자문하면서 수요되는 악기들을 하나하나 체크해나갔다. 당시는 해방초기라 특히 조선족악기가 아주 희소하였는데 일제시기 우리 민족문화를 탄압하는 일제폭정으로 조선족악기들이 대부분 파괴당한 원인이였다. 해방후 중국공산당의 민족정책하에 민족악기를 다시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김계봉은 민족악기의 모양은 알고있었지만 그 구조의 정확한 비례는 모르고있었다. 지난 세기 60년대초 김계봉은 동북 3성을 돌면서 어떤 악기들이 수요되고있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조사하였다.

악기만들기를 좋아하는 가족의 혈맥을 이어받고 악기만들기가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가장 신나고 좋았던 리유 하나만으로 50년간 곁눈 한번 팔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오직 민족악기를 만들고 다듬고 연구해온 김계봉이다. 이젠 고래희의 70고개에 성큼 올라선 로인이지만 여전히 민족악기연구소의 업무소장이라는 중임을 맡고 아기자기하고 올망졸망한 기념품용 미니악기로부터 대형문화행사나 중국무대와 세계무대에서 사용되고있는 각종 민족악기들을 흠집하나 낼세라 알뜰히 다듬으며 만들고있다.

《사람들이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서양악기는 잘 알고있지만 우리 민족악기는 이름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참대에 구멍을 뚫어 사용하는 퉁소처럼 비록 원시적인 악기이기는 하지만 우리 악기는 세계에 으뜸가는 악기로 손색이 없다》고 우리 민족악기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고있는 김계봉은 우리 민족이 생존하는한 우리 민족악기가 존재하고 민족문화가 없으면 그 민족이 존재할수 없다고 하면서 민족악기제작에서 로선배들이 다 타계하고 현재 젊은 세대 후계자가 없는걸 매우 가슴아파한다. 또한 백성의 맘에 드는 악기라야 진정한 악기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악기는 악기가 아니라 공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김계봉은 민족에 책임지는 마음, 그리고 민족악기제작기술을 차세대들에게 전승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민족악기를 만드는 경험을 책으로 펴낼 예산이라고 한다.

현재 10여명 악기제작 로동자들이 작업하고있는 연길시민족악기연구소는 공장환경이 렬악하고 나이가 제일 어린 로동자라야 40대라고 한다. 민족문화를 중시하고 문화산업을 발전시키며 여러 가지 민속문화관광박람회 등 대형행사를 소집하면서 민족악기와 관광, 기념품용 미니악기에대한 수요가 전국, 나아가 국외로 넓혀지면서 요즘은 일년에 만여건에 달하는 민족악기를 제작하고있으며 적지 않은 제품이 해외로 수출되고있다.

우리의 고유의 소리와 우리의 정서를 담은 우리 악기, 이제 더욱 대중적으로 우리앞에 다가서고있다.

강정숙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근년들어 도문시의 교육은 전 주, 나아가서 전 성적으로도 충분한 인정을 받고있을뿐만아니라 인민군중의 긍정을 받고있다. 도문시의 교육이 이같은 승전고를 울릴수 있은데는 실정을 실사구시하게 파악, 분석하고 개혁의 좌표를 면바로 정해 파격적으로 사업을 내민 도문시교육국 김춘옥국장의 사업담략과 패기, 넘치는 열...
  • 2007-10-26
  • 글을 쓰려고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운다. 2007년10월16일 새벽4시50분, 연변의 웃음의 설계사 최인호는 뇌출혈로 고별하셨다. 향년 61세이다. 세상 뜨시기전 닷새전 나는 우연히 거리에서 최연출님을 만났다. 당금 점심시간이라 나는 식사하러 가자고 청들었다. 《지금 낚시협회 동료들이 차에 앉아 기다린다》고 하면서 다...
  • 2007-10-26
  • 올해 9월 새학기를 맞으며 림금순(47세)은 룡정시룡정실험소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였다. 25년간 그녀는 학급담임교원으로부터 교도주임, 부교장 등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온 교육자이며 수많은 우수교원과 학생들을 양성해낸 원예사이며 또 지구급, 성급, 국가급 영예들이 수두룩한 모범인물이다. 그녀 사전에는 《락후생》 《...
  • 2007-10-25
  • 청도 성양구에서 투자자문, 부동산개발 및 분양대리, 중개업소 인터넷개발사업에 진력하고있는 최대 부동산정보업체인 월드부동산을 이끌고 나가는 두 조선족 젊은이가 있다.  그들이 바로 양선모(24살)사장과 박학룡(24살)리사이다. 양사장과 박리사는 처음부터 부동산과 인연을 맺었던것은 아니였다. 리공학을 ...
  • 2007-10-24
  • 《중국은 저의 제2고향입니다…》 해마다 중국땅을 넘나들며 중국조선족청소년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면서 중국을 《제2고향》으로 간주하던 민홍기회장(72세, 중국조선족청소년장학회 회장)이 2년만에 또다시 중국땅을 밟았다. 지난해 1월, 심한 뇌경색으로 병상에 누워있으면서도 중국조선족청소년들에 대한 사...
  • 2007-10-24
  • 엄선된 량질콩에 남산지하수를 사용하고 서슬로 초를 뿌려 두부를 앗으면 구수한 전통입맛을 떠올리게 하는 재래식 남산두부가 만들어진다. 연길시장 곳곳에서 찾아볼수있는 남산두부는 크기부터 넉넉하고 하들하들하여 먹음직하고 군침이 돈다. 연변에서 가장 일찌기 규모화 두부생산기업을 꾸리고 《남산두부》라는 두부브...
  • 2007-10-23
  • 어제날 조선족촌의 빈곤한 농민의 아들 오늘날 경뇨도전립선절제술의 선두주자 현재 할빈의과대학 제2부속병원 비뇨기외과에서 활약하고 있는 리철훈(李哲勋,45세)의사는 뛰여난 의술과 후한 인심으로 의사와 환자들가운데서 인기가 많다. 1963년에 녕안시 향수촌의 평범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리의사는 1985년 녕안...
  • 2007-10-19
  • 연길시조선족문화예술중심 국가1급연주원 박미화는 당시 옥류금과의 만남이 실로 뜻밖이여서 꿈만 같았다고 한다. 1979년, 전 주 중학생음악콩클이 연길에서 있었다. 당시 왕청현의 한 중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한편 가야금을 열심히 익힌 박미화는 콩클에서 그간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당연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 2007-10-19
  • 지난 9월 13일 저녁, 은천시 녕하회족자치구대회당, 샨데리야불빛이 휘황한 장내는 우리 나라 소수민족구연예술의 축제한마당이였다. 제3회전국소수민족구연콩클시상식이 바로 이곳에서 거행되는것이다. 저명한 가수 장대위(蒋大为)가 수상자명단을 공포했다. 장대위가 《최우수배우상 세번째분, 조선족 장미...
  • 2007-10-19
  • 중국 최대 자동차부품생산기지의 하나인 장춘시에 신용과 기술력을 밑바탕으로 동업계의 선두를 향해 달리고있는 한 자동차부품생산업체가 있다. 장춘시동원플라스틱자동차부품공장, 이 회사는 조선족 기업가 최석원(58세)공장장이 1994년에 4만원의 종자돈으로 손수 일떠세운 회사로서 지금 장춘제1자동차그룹에서 생산되는...
  • 2007-10-1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