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9세인 리한우 할어버지가 프랑스 '문예기사훈장'을 수상해 화제에 올랐다.
2001년 리할아버지는 미술의 본고장 파리로 류학을 떠났다. 그때 나이 일흔넷, 류학생치곤 나이가 좀 많은 편이였다.
"내 작품에 대해 미술의 본고장에서 평가를 받고싶었어. 50년의 화가생활 끝에 얻은 나의 미술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이야기를 듣고싶었던거지."
리화백이 만년에 도달한 세계는 련작인 '아름다운 우리강산'. 즉 시골 마을의 풍경을 동양화적 기법으로 표현한 한국적 유화라는 평가를 듣는 작품들이다.
처음 파리에 도착해서 시내구경을 다닐 때였다. 그와 친구처럼 지내던 한 화가가 프랑스 상원이 있던 룩상부르공원을 지나며 그에게 말했다.
"상원에 오랑주리 미술관이 있는데 거기서 전시회 한번만 하면 소원이 없겠어."
그는 그냥 스쳐 들었다. '작은 화랑의 전속작가로 그림이나 그려볼 요량'으로 찾은 파리였기때문이다.
그런 그가 1년만에 파리생활을 접었다. 평생을 뒤바라지로 그의 '밑그림'이 되여온 안해 김두선(72세)씨가 병져 누웠기때문이다. 파리까지 와서 한국식탁을 차려 내던 안해의 병에 그는 눈물을 훔치며 "그만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렇게 로화가는 자신의 꿈을 접었다. 하지만 2002년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오랑주리 미술관으로부터 전시회를 열자는 통보가 온것이다. 엠베화랑에서 그의 작품을 보고 오랑주리 미술관전시회를 추진해보겠다는 한 재불동포에게 화집과 외국 전시회 소책자, 신문기사 등을 보낸 뒤 7개월동안 잊고지냈다.
그로부터 3년간 준비한 끝에 2005년 7월 13일부터 8월1일까지 전시회를 열었다. 대성공이였다. 미술관은 관람객들로 늘 붐볐다. 그림 500장이 이틀만에 다 나갔고 소책자 200개와 엽서 2만장도 모두 팔렸다.
올해는 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프랑스에서 매년 그해에 활동한 화가 가운데 한명을 선출해주는 문예기사훈장을 받게 됐다는것이다.
그는 지난 50년간의 화가 생애를 떠올리면서 눈굽을 적시였다. /권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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