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입시에서 665점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전성조선족수험생 문과수석, 목단강시 문과수석을 차지한 녕안시 조선족중학교 고중3학년2반의 박미령학생. 소학교와 초중시절에 한낱 평범한 학생에 불과하던 그가 고중에 올라오면서 학습상 재질을 보이기 시작하여 오늘날 뭇사람이 주목하는 수석으로 우뚝 떠오른데는 어떤 비결이 있을가? 그는 흑룡강성 녕안시 와룡향 명천촌에서 태여났고 어린시절 농촌에서 자라났으며 소학교도 농촌소학교를 다녔다. 하여 그는 순박하고 끈질긴 농촌학생의 우수한 품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학급30여명 학생속에서 학습성적이 겨우 5등안에 드는 평범했던 소학생활을 마치고 녕안시조선족중학교에 입학한 미령이는 여전히 주위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초중 3학년까지 가장 훌륭한 성적이라면 학년 6등이였다. 그러던 그가 자기 존재를 선언하고 일로 상승의 스타트를 떼기 시작한 시간은 초중 4학년때부터였다. 그의 말로라면 우연하게 학년 1등의 보좌에 오르게 되면서 그 자리를 내줄수 없는 오기와 신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때부터 미령이는 더욱 진지하게 자신의 학습생활을 정시하게 되였고 더욱 효률적인 학습방법을 고안하면서 학습의지를 불태워가기 시작하였다. 무엇이나 깊이 파고들고 모르는 문제는 꼭 알고지나야 시름을 놓는 습관을 키우게 되였는데 때로는 한 문제를 두고 한시간 지어는 며칠씩 사고할 때도 있었다.
고중1학년에 진학하여서부터 미령이는 줄곧 학년1등의 보좌를 지키면서 훌륭한 학습상태와 실력을 과시하였다. 그는 하루 학습목표를 명확히 하고 그에 따른 학습계획을 착실히 집행하였다. 특히 수업시간 효률을 높였으며 의난문제는 교원을 찾아 제때에 해결하였다.이처럼 언제나 학습의 주동권을 장악하고 자기실제에 알맞게 학습시간을 과학적으로 배치하였기에 미령이는 타인으로부터 공부를 쉽게 하는 학생으로 인정받았다. 미령이는 종래로 남들처럼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하는 피로전술을 사용하지 않았고 규칙적으로 일과를 배치하였다. 매주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의 대부분 시간은 휴식에 돌려 친구들과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으면 음악을 감상하기도 하고 또는 신문잡지를 읽기도 하였다. 뿐만아니라 어릴때부터 즐기던 축구프로를 보기도 하였다.
입시압력이 큰 고중3학년 학습을 조직함에 있어 안정된 정서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학습방법을 검토하고 조절하는것이 관건이라고 한다. 대학입시직전의 제5차 모의시험에서 성적이 20점이나 내려가는 파동을 겪기도 하였지만 미령이는 적시적으로 교원을 찾아 마음을 나누고 문제점을 분석하였다. 교재를 토대로 한 기초지식을 공고히 하고 일부 전형적인 문제를 선택성있게 풀이를 하는것도 고3 최후 단계 학습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미령이는 자신은 성격이 외향적이라면서 말이 너무 많은것이 흠이 되여 친구들로부터 종종 ‘훈계’를 받는다고 한다. 동년배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스가요나 발라드를 즐기고 좋아하는 스타가 너무 많아 일일이 이름을 지적하기 힘들다고 하는 미령이의 모습에서 녀학생의 수다와 활기가 그대로 넘쳐난다.
초중 1학년때부터 학교주변에 세집을 맡고 미령이와 함께 동고동락을 한 어머니가 미령이에게 더없이 큰 학습동력을 부여하였다. 자상한 어머니는 미령이의 뒤바라지를 알뜰살뜰 잘해주면서 삶의 도리를 깨우쳐주었을뿐만아니라 인생진로의 방향도 제시해주군하였다. 또한 한국에 계시는 아버지도 전화마다 용기와 신심을 주는 동시에 인간됨됨이에 대하여서 가르쳐주군하였기에 미령이는 항상 자신을 단속할수 있었으며 사춘기도 무난히 넘길수 있었다.
북경대학 경제학부를 지망한 박미령학생은 전문경영인이나 경제학자가 되는것이 꿈이라고 한다. “할바에는 잘해야할뿐만아니라 제일 잘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아예 하지 말자”라는 말을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고 항상 자신을 채찍질해온 박미령학생은 대학교에서의 활약을 위해 현재 영어공부와 컴퓨터공부로 충전을 하고 있다.
2006/07/12 흑룡강신문 남영선, 라춘봉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