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北 유도스타 계순희 '나의 결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06년4월7일 10시28분    조회:879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北 유도 영웅 계순희와 남편 김 철

"승리하고 돌아온 후 결혼하자."

북한의 유도영웅 계순희(27) 선수가 리명수체육단의 김 철(27) 유도감독으로부터 받은 프로포즈는 그야말로 유도의 한판승처럼 시원스러웠다.

계 선수는 최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와 인터뷰에서 "김 감독이 '사랑의 고백'을 한 것은 지난해 4월이었다"며 자신의 결혼기와 신혼생활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김 감독은 계 선수가 다닌 청소년체육학교(당시 청소년체육구락부) 출신으로 조선체육대학 졸업 후 리명수체육단에 입단, 2002-04년 3년 연속 '공화국선수권 남자유술 90㎏급'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졸업 후에도 유도선수로 활약했지만 다른 체육단에 소속돼 따로 만날 시간은 거의 없었다.

유도 대회가 열리는 4월(만경대상), 7월(보천보횃불상), 9월(공화국선수권) 등 1년에 3번이 그나마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여기에 계 선수의 '유명세'도 두 사람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김 감독이 볼 때 이미 유명 인사가 된 계 선수를 '독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설상가상, 계 선수에게 호감을 보이는 모란봉체육단 선수도 많았다.

그는 조선신보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순수 유술선수의 관계였다. 유술에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는 순희 동무의 정신세계에 존경이 갔다"고 말했지만 먼저 마음을 드러낸 것은 김 감독이었다.

지난해 4월 만경대상 유도경기가 열릴 당시 계 선수를 향해 "9월 이집트에서 세계유술선수권이 진행되는데 경기를 잘하라. 언제나 순희 동무를 응원하고 있다"며 '우승 후 결혼'이라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계 선수는 김 감독의 응원때문이었는지 이집트 대회에서 4경기 한판승을 뽑아내며 우승, 세계유도선수권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계 선수는 "절대로 질 수 없다고 마음을 굳게 다지고 싸웠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지도원 동지(김 감독) 생각을 많이 했다"며 자신도 김 감독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음을 밝혔다.

그런데 당연히 평양비행장에 나와 있을 줄 알았던 김 감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길거리 환영을 하는 10만 인파 속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계 선수는 "지도원 동지가 개별적인 일로 선수 육성에 지장을 줄 수 없다며 초소(훈련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며 "비록 마중을 받지는 못했어도 지도원 동지의 그런 성격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김 감독에게 마음이 끌렸는지 알 수 없다면서도 아테네올림픽(2000년)에서 동메달에 그쳐 자책과 고민에 빠져 있던 2001년 4월 만경대상 유도경기장에서 김 감독이 건넨 응원에 큰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어 "유술(유도)을 한없이 사랑하는 지도원 동지이기에 계속 유술을 하려는 저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해 주고 있을 것"이라면서 "지도원 동지는 제가 마음 속으로 바랬던 이상의 남성"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계 선수 부부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후 2세를 볼 계획이라며 "앞으로 태어날 자식은 남녀를 불문하고 무조건 유술선수로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자, 증손자도 모두 유도선수로 키워 '대(大) 유도가정'을 꾸리겠다는 계획.

조선신보는 김철.계순희 부부가 평양시 모란봉구역 북새동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린 후 "계 선수가 소속된 모란봉체육단 유술선수 중에는 장차 자기들도 유술선수와 결혼하겠다는 선수가 불어나고 있다"며 북한에서 '유도부부 바람'을 예고했다.

연합뉴스 / 함보현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광동지역 모바일 부품 선두주자 [심수 할루야전자 올들어 매출 실적 1억 2000만달러] 조선족 기업인 남화섭 총재(42세)가 이끄는 심수 할루야전자유한공사는 중국 최고의 모바일 부품 판매, 개발회사로의 비전을 꿈꾸며 이 분야에서 광동지역의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다. 고신기술 분야의 부품 수출입 무역이 주업인 이 회사...
  • 2005-09-07
  • [정의의 부를 위한 사업] —한국 '731부대죄증'연구소 소장 허유선생 인터뷰 '저가 중국에 오기전까지만 해도 731부대에 대한 료해는 교과서나 영화를 통해 약간 아는 정도였습니다. 1990년도 사업차로 중국에 왔다가 중국의 731죄증진렬관을 참관하게 되였는데 그때 일제침략군의 잔인무도한 폭행에 격분을 금치 못했...
  • 2005-09-06
  • 중국 문단에서 어색한 세대로 불리우는‘70후’ (70년대 생을 말함) 작가들은 상하 두 세대를 이어주는 군체로서 4년전부터 ‘미녀작가’로 불리는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였을뿐 실력파들로 불리우는 작가는 없었다. 그러나 ‘70후’작가군체에 ‘미녀작가’만 있는것이 아니라 실력파도 없지 않았으며 ‘미녀작가’속에서도...
  • 2005-09-06
  • 중국에서 한국어교육의 대표인물로 불리우는 강신도 교수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중국에서 한국어교육의 대표인물로 불리우는 강신도 교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과 이웃한 한반도는 예로부터 중국과의 내왕이 밀접했습니다. 그만큼 한국어의 위치도 두드러집니다. 일찌기 공화국이 창립되기 전인 1940년대에 이미...
  • 2005-09-05
  • 베이징 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 한국부 엄춘연과의 인터뷰 기자(이하는 기로 약칭함) 엄춘연(이하는 엄으로 약칭함) 기: 안녕하십니까? 엄: 안녕하십니까? 기: 바쁘신 시간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선 본인소개와 회사소개 부탁드립니다. 엄: 저의 회사는 베이징시 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 회사라고 하는데...
  • 2005-09-05
  • 기: 오늘의 문화현장에서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문예부 부장으로 다년간 활약하면서 많은 텔레비죤문예프로를 제작하셨고 또한 많은 훌륭한 음악작품을 창작하신 고창모선생님과 이야기를 자리를 함께 했다. 음악에 뜻을 두게 될 때는 언제부터였는지? 고: 집의 부친이 바이올린을 켰고 삼촌이 첼로를 켰다. 어렸을 때부터 ...
  • 2005-09-05
  • 베이징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 김영 지배인과의 인터뷰 [img count='1' width='350' img] 사회자: 개혁개방 20여년간 중국은 전통산업의 양적 팽창에 힘입어 눈부신 경제성장을 지속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국경을 초월하는 인터넷 산업에 대해 아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IT산업의 육성을 21세기초 국가의 중점산업 발...
  • 2005-09-01
  • 중앙민족대학 김명숙 선생님과의 인터뷰 기자:(이하는 전부 기로 약칭함) 김명숙(이하는 전부 명으로 약칭함) 기: 올해 7월이면 학생들이 졸업이잖아요. 현재 반급의 32명 학생들의 취직 방향은 어느정도 실현돼 가고 있습니까? 명: 취직은 학생들이 아직 자기가 취직한 자리를 공개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제 한두달 정도...
  • 2005-09-01
  • 중국기업문화촉진회 조선족연의회 김정섭 부회장과의 인터뷰 (기자)안녕하십니까? (사장) 안녕하십니까? (기자) 녜, 오늘 이렇게 바쁘신 시간을 내주시고 방송국까지 찾으시여 감사합니다. 백마강음식점 하면은 베이징에서 참 오래됐다는 인사을 받게 되는데요, 최초 영업을 시작한지는 언제지요? (사장) 백마강음식점은 19...
  • 2005-09-0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