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06.02.05 21:30:50]
조국이 부르면 어디든지 가서 일해야지요. 남북간 활발한 교류와 통일을 위해 나름대로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3일 자정쯤 평양행 열차가 떠나는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 기차역. 주(駐)북한 러시아대사관 부대사로 발령받은 알렉산드르 마쩨고라(51)씨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 나와 얼굴을 분간하기도 힘들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이다. 마쩨고라 부대사는 러시아 외무부 내 대표적인 한국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는 평양주재 정무공사를 겸하게 된다. 특이한 것은 마쩨고라 부대사의 아들 세르게이(25)가 이미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자가 남북한의 러시아 대사관에서 각각 근무하게 된 것이다.
휴가를 얻어 모스크바에 와있다가 아버지의 평양행을 배웅하게 된 세르게이는 “남북한에서 일하면서 판문점에서 아버지와 만나면 되겠네요”라는 기자의 말에 “글쎄요, 서울에서 평양까지 고속도로가 생겨 아버지를 매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분단된 한반도 상황이 마쩨고라 부대사 가족을 남북이산 가족으로 만든 것이다.
이날 마쩨고라 부대사를 배웅에는 가족과 동료 등 7명이 나왔다. 열차 떠나기 직전 그는 보드카병을 들고 나와 모두에게 잔을 권했다. 러시아어로 이별주인 ‘빠?쑈ㄱ’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평양행 교통편을 비행기가 아닌 열차로 선택했다. 8일 동안 쉬지 않고 시베리아를 횡단, 중국 베이징을 거쳐 평양까지 가는 열차다. 그가 열차를 타고 평양으로 가는 것은 일종의 외교학습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언제든 기차를 타고 러시아를 방문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그때가 되면 김 위원장의 통역을 담당하게 될 것에 대비해서 일부러 고생길을 택했다.
(모스크바=정병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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