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실크로드에묻힌 조선족화가한낙연10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1월25일 09시54분    조회:1138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거리의 화가 어느 날 그는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 리옹의 주택가에서 인상적인 집을 찾아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이 완성될 즈음 주변을 산책하던 한 프랑스인이 걸음을 멈추고 그의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동양인을 별로 볼 수 없는 리옹에서 그것도 날랜 솜씨로 그림을 그리는 동양인이 꽤나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그림을 그리느라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그에게 노부부가 다가와 뭐라고 말을 건넸다. 아직 불어가 서툰 한낙연은 처음엔 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동문서답이 오간 다음에야 한낙연은 노부부가 바로 자신이 그리고 있는 집의 주인이란 사실을 알았다. “왜, 무슨 이유로 내 집을 그리죠?” “집이 하도 아름다워 저도 모르게 그렸을 뿐입니다. 저는 이곳에 도착한 지 며칠 되지 않는 중국인 화가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림을 그릴 때도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그게 아니고, 그림을 잘 모르는 제 눈에도 우리 집을 꽤 인상적으로 그려서 눈여겨봤습니다. 방해가 됐다면 사과드릴 게요.” 예상치 못한 한낙연의 당돌한 대답에 말문이 막힌 남편을 아내가 거들었다. “방해가 된 건 아닙니다. 다음부터는 허락을 받고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한낙연이 재치 있게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왕 그리는 것이니 우리 집을 예쁘게 그려주세요. 그럼….” 인사를 끝내고 돌아가던 노부부가 다시 걸음을 멈추고 다가왔다. “그림이 거의 다 그려진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할 생각이죠?” “그건 아직….” 할머니의 질문에 이번엔 한낙연의 말문이 막혔다. 무슨 특별한 생각이 있어 그림을 그린 건 아니었다. 다만 화가로서 인상적인 풍광이 있기에 그렸을 따름이었다. 그 뒤처리까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그림을 우리한테 팔 생각이 없소? 우리 집이 담긴 그림이라 우리에겐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기념이 될 텐데….” “그렇다고 너무 비싸게 부르지는 마시오. 보기와는 달리 우리도 빈털터리라오.” 남편이 아내의 말에 지원사격을 했다. 생각지 않게 그림은 노부부에게 팔렸다. 노부부에게는 푼돈에 불과했지만 그야말로 빈털터리인 한낙연으로서는 며칠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돈을 받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간 그는 우선 주린 배부터 채웠다. 사실 주머니에 돈이 좀 남아 있기는 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아침부터 쫄쫄 굶은 참이었다. 다음날부터 한낙연은 일자리를 찾는 대신 그 주택가 거리로 출근하다시피했다. 이후 그 동네는 한동안 그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만들어주는 화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화풍과 다른 그의 그림은 그 동네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간 모양이었다. 덕분에 한동안 그는 생계의 위협에서 벗어나 마음껏 그림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를 채우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온 것은 아니었다. 빨리 학교에 입학해 그림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학교에 등록할 돈이 필요했다. (계속)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