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최룡길- 국경무역의 귀재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0월7일 14시52분    조회:1246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국경무역의 귀재 -제 10전국인대 대표, 동녕길신그룹 리사장 최룡길의 사적을 적는다 -서정옥- 흑룡강성 동남부 국경에 자리잡고있는 동녕현은 국경무역이 아주 활발하다. 동쪽으로 로씨야와 린접해있는 동녕현은 국경선의 길이가 139 킬로메터이며 로씨야 원동지구에서 가장 큰 도시인 해삼위, 가장 큰 철도역인 우쑤리수쿠시와 각기 153 킬로메터, 53 킬로메터 상거해있으며 로씨야의 10 월구와 30 킬로메터 상거해있다. 중, 로, 조 3국의 황금삼각지대에 위치해있는 동녕현은 명실공히 동북아국제 대통로의 중요한 교통중추지로 되고있다. 1990 년에 정식으로 국가 일급 륙로 통상구로 된후 15 년간 수출입총액이 35 억딸라나 되며 화물통량이 313 만 톤이나 된다. 지금 동녕현에는 국경무역에 종사하는 기업만 해도 140 개나 된다. 그가운데서도 동녕길신그룹[東寧吉信工貿(集團) 有限責任公司] 은 가장 성공한 기업의 하나로서<<훅룡강성 9 대 수출기업>&g! t;(2003년)으로 되었다 . 1992 년에 설립되여 처음에는 로씨야에 농산물을 수출하고 로씨야로부터 화학비료, 목재를 수입하던 자그마한 무역업체가 오늘날 총자산 1.8 억여원, 종업원 1,500 명인 이름난 그룹기업으로 성장한것은 이 기업의설립자로서 리사장이며 제 10 기 전국인대 대표인 최룡길의 뛰여난 솜씨, 피타는 노력과 갈라놓을수 없다. 그럼 아래에 <<국경무역의 귀재>> 최령길의 사적을 적어본다. 원래 동녕인쇄공장의 공장장으로 있던 최룡길은 1990 년에 동녕길신무역회사를 세우고 대로씨야국경무역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로씨야에 농산물을 수출하고 로씨야로부터 화학비료, 목재를 수입했다 . 이렇게 얼마간 밑천을 마련한후 점차 대외 가공무역분야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동녕통상구는 흑룡강성에서 대로씨야 무역에서 수송거리가 가장 짧고 통관이 가장 편리하고 빠른 황금통로이다. 지난 수년간 로씨야의 경제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다. 그렇지만 로씨야시장 역시 복잡하고 기회와 도전이 공존하고있다. 최룡길은 로씨야 경제발전의 흐름을 세밀히 분석하고 그에 알맞은 경영방식을 모색하고 시장을 다원화 하고 무역차원을 높이면서 그 규모를 부단히 확장해나갔다. 최룡길은 우선 대로씨야무역이서 기업체와 무역을 결합하는 길을 선택했다. 여러 가지 객관적인 원인으로 말미암아 대로씨야 국경무역은 극히 불안정성을 갖고있으며 커다란 리익이 있는 반면에 아주 위험부담을 안고있다. 치렬한 무역경쟁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기업체를 꾸려 무역의 위험부담을 최소화해야 하고 무역과업체 량자의 관계를 잘 처리하고 상호 보완되도록 해야 했다. 최룡길은 지리적우세, 인력우세, 인맥관계 등을 충분히 리용해 대로씨야 무역에서 호황기를 맞이해 무역액이 해마다 늘어났다. 특히 국가에서 제창하는 <<외향형>> 경제전략에 따라 국내외 시장을 목표로 무역과 업체가 일체화된 다국적, 다원화 기업을 일떠세웠다. 길신그룹은 구매, 겸병, 합병, 임대, 합작, 주식투자 등 령활한 방식을 통하여 과거의 <<유격대>>로부터 <<정규군>>으로 새롭게 편성괴였다. 지금 길신그룹 산하에는 국내에 길신목업, 길신경제무역회사, 길신빌딩, 길신려행사, 길신건축안장회사, 길신국제화물수송대, 길신동남목업유한책임회사 등이 있으며 로씨야에 과일채소도매시장, 우쑤리스크시 국제수송대, 우쑤리스크 길신목업가공공장, 우쑤리스크시길신신발공장, 이르쿠쯔크주와 빈해변당구의 4 대 목재가공공장 등 기업체가 있다. 그중 로씨야길신목업가공공장과 우쑤리스크시길신신발공장 등 가공무역항목은 국내 자원의 부족점을 미봉했을뿐만 아니라 국제시장의 시장 점유률을 확대함으로써 높은 경제효과를 창출함과 동시에 기업의 국제적 경쟁력을 대폭 증강시켰다. 길신그룹은 국내에서 반제품을 생산하여 해외에서 조립하거나 해외 원자재로 가공하는 <<길신모식>>을 독창적으로 개발하였는데 이는 성내외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전국전국적으로 널리 보급되였다. 최룡길은 국가에서 제정한 <<로씨야진출>> 정책과 흑룡강성 정부에서 제정한 <<남으로 련계하고 북으로 개척하는 (南聯北開)>>방침에 따라 새로운 경영방식을 모색했다. 그는 국내의 기술과 설비를 기초로 하고 로씨야의 자원에 의거하여 합작령역을 크게 개척하고 대로씨야 무역과 합작을 신속히 발전시켰다. 절강성 온주의 중소기업 기업주들과 합작하여 로씨야에 투자, 진출한것은 그중 성공적인 사례의 하나로 된다. 최룡길을 2002 년 로씨야시장에 대한 충분한 조사연구를 토대로 하여 로씨야시장에서 판로가 넓은 경공업제품을 로씨야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온주는 우리 나라 개혁개방의 전초기지로서 특히 신발류 제품을 가공하고 제조하는 기술과 관리에서 매우 큰 우세를 갖고있다. 그러나 국내시장이 거의 포화상태에 처해있어 국제시장을 개척하는것이 온주의 경제발전에서는 아주 필요한 선택이였다. 온주의 기업들은 로씨야시장으로 진출할 강한 의향을 갖고있었다. 일찍부터 로씨야시장에 대해 잘 알고있는 최룡길은 여러차례 온주를 드나들면서 당지의 신발제조업체와 손잡고 로씨야시장으로 진출할 방안을 반복적으로 토의했다. 그리하여 2002 년에 최룡길은 온주의 몇몇 기업체와 합작하여 9,600 만원을 투자해 우쑤리스크시에 려해용신발공장을 세웠다. 온주의 기업인들은 정보에 민감하고 적응력이 강한 특점늘을 갖고있다. 시장에서 어떤 양식의 신발이 수요된다고 하면 온주의 기업인들이 설계로부터 생산까지 불과 반달도 걸리지 않아 제품을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우쑤리스크길신신발공정에서 생산되는 려향용신발이 로씨야시장에서 신속히 판로를 개척할수 있었다. 그들이 생산하는 신발은 로씨야 원동지구는 물론 모쓰크바 등 지역에까지 판매되고있으며 로씨야와 중앙아세아 여러나라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고있다. 이전에 중국의 신발?! ┎걋? 로씨야로 수출할 때면 여러 가지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커다란 모험을 겪으며 정당한 신분을 갖지 못했지만 길신신발공장의 제품이 출시되면서부터 중국의 신발제품은 합법적인 신분을 갖게 되었으며 유럽의 유명 상표들이 로씨야 신발시장을 독점하던 국면이 많이 개변되였다. 우쑤리스크길신신발공장은 부지가 6 만평방메터로서 14 개 생산라인을 가지고있으며 구두,끌신, 려행용신 등 여러 가지 신발 년간 생산량이 1,300 만 컬레나 된다. 최룡길은 <<다국적 경영령역을 확장하고 대로씨야 경제무역의 차원을 높이는>> 면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경험을 쌓았다. 그는 중로 량국의 조건과자원의 상호보완성을 충분히 리용해 다국적 경영분야를 개척하고 로씨야의 자원우세를 빌어 다국적 목재가공기지를 꾸렸다. 로씨야의 광활한 대지에는 림업자원이 매우 풍부한바 삼림 피복률이 국토면적의 50% 나 되어 세계에서 1 위를 차지한다. 이에 반해 국내의 림업자원은 극히 제한되여있다. 최룡길은 국내의 선진적인 목재가공 기술, 설비와 인재우세, 시장수요에서 출발하여 목재가공업을 그룹의 새로운 발전목표로 삼고 2002 년에 1 억원을 투자해 동녕길신목업회사를 걸립하였다. 부지가 10 만 평벙메터인 이 공장의 년간 영업액은 2 억원에 달한다.그와 동시에 우쑤리스크시에 300 만딸라를 투자하여 중로 합자기업인 길신목재가공공장을 설립하였다. 그리하여 원래 원목만 수입하던데로부터 목재가공을 통하여 목재의 부가가치를 높였다. 2003 년부는 s로씨야산 백양나무로 창문틀을 새생산하여 미국으로 수출하는 할목을 시작하였다. 현재 이 기업의 집성재료 월간 생산능력은 약800 립방메터, 그 제품은 대부분 일본과 미국으로 수출되며 일본, 미국의 대령 목재기업들과 장기적인 합작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소량으로 가구도 생산하고있는데 지금은 주로 책상, 의자, 침대, 문 등 간단한 가구를 생산하고있다. 경영은 국내에서, 생산은 로씨야에서, 판로는 일본, 미국에 두는 경영방식을 <<두끝이 바깥에 있는 경영>>이라고 일컫는다. 길신그룹은 이미 채벌, 운수, 가공, 수출의 량성순환을 이룩했다. 최룡길이 처음 시작한 무역업은 주로 대로씨야 민간무역이였다. 그때 그는 개체경영을 하고있었기때문에 상품의 운반, 통관, 창고저장 등 여러 면에서 로씨야측과 련합체를 묶어 긴밀히 합작하지 않으면 않되였다. 그는 로씨야측과 합작하여 국제수송을 조직하고 집중적으로 세관 수속, 통관을 함으로써 돌파구를 열었다. 그후 그는 국내 중소기업들에 저장,구매, 수송을 대리해주고 저장, 수송, 통관 등의 원활한 서비스망을 구축함으로써 수분하, 할빈 등 지역의 국내기업에서 로씨야 등 외국으로 발송하는 화물이 년간 30 억원어치가 되는 물고를 터뜨렸다. 이런 조치는 국경무역기업들과 개체업주들에게 편리를 도모해주었고 통상구의 경제발전에도 기여하였다. 그는 또 40 만딸라를 투자하여 로씨야에 과일채소저장창고 6 개를 짓고 건평이 4 만평방메터나 되는 과일채소도매시장을 세웠다. 동녕통상구를 경유하여 수출하는 중국의 농산물들은 거의 다 길신그룹의 창고에서 다시 로씨야 전역에 도매되는데 년간 도매량이 6 만톤에 달한다. 쌀도매량도 3 만톤에 달하여 농촌산업의 외향성발전을 힘있게 추진했다. 현재 길신그룹은 국내의 각종 제품을 집결하여 대외로 무역을 하고 국제운수, 목재가공, 국외 시장, 관광, 부동산, 음식업, 봉사업 등이 일체화된 종합성 주식제그룹으로 발전하였는데 그룹으 등록자본만 해도 5 천만원이나 된다. 현재 그룹 산하 각 기업에 취직한 종업원은 1,500 명인데 그중 정리 실업자가 280 명이다. 지난 수년간 최룡길은 국외로 진출하는 길을 선택하고 외향성 경제를 발전시키는 경영방식을 모색함으로써 흑룡강성에서도 비교적 큰 민영 대외무역그룹으로 성장하였다. 지금 이 그룹은 기업화, 국제화 구룹화한 대형 다국적기업그룹으로 되는것을 목표로 내세우고있다 .현재 길신구룹은 세관의 A급 관리기업으로 평가되였으며 2003 년에 <<흑룡강성 9 대 수출기업>>으로 선정되였다. 또한 여러해 동안 련속 흑룡강성 민영기업<<외화획득 선진단위>>칭호를 수여받았다. 2004 년에 길신구륩의 올해 상반기 수출입 총액은 1.28억딸라에 달한다. 길신그룹의 올해 상반기 수출입 총액은 1 억딸라에 달하며 국가에 바친 세금액은 869 만원에 달한다. 현재의 발전추세로 보면 2005 년의 수출입 총액 2.5 억 딸라, 납세액 2 천만원이 무난할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룡길은 e또 제 10 기 전국인대 대표로 당선되여 인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고있다. 그는 자신이 세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국제무역의 망망 대해에서 파도를 헤쳐나가고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조선족청년작곡가 박광춘 신미디음악회가 10월 28일 연변TV방송국 스튜디어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박광춘이 최근년간 창작한 새로운 가요와 음악작품들을 신미디음악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담아 표현하였다. “세상은 우리것이야”“청춘스타트”“오아시스” 등 17수의 음악으로 구성되였고 열정 사랑 찬미 등 세 부분...
  • 2005-10-31
  • 광복 60주년을 맞아 올해, 덕수궁미술관에서는 8월말부터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보통사람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일제 강점기 중국 땅에서 화가이자, 고고학자, 나아가 혁명가로 활동하다 끝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 곳에 뼈를 묻어버린 한낙연(韓樂然)을 기념하는 ‘광복 60주년 기념 한낙연 특별전...
  • 2005-10-31
  • [원제:할빈시고려회관 안중근의거96주년기념좌담모임 소집] 2005년 10월 27일 10월26일 안중근의사 의거 96주년에 즈음해 할빈시고려회관은 안중근의사 기념좌담모임을 소집했습니다. 회의는 리민 전 흑룡강성정협위원회 부주석이 기증한 ,이란 글발의 휘호족자 두폭을 전달했습니다. 이날 모임에서는 안중근의사의 생애와 ...
  • 2005-10-28
  • 《퉁소마을》인 훈춘시 밀강향에서 태여나 자라 꾸준한 탁마로 중국 문화예술부상인 문화(文華)예술학원상 제2회민족악기연주콩클에서 1등상을 수상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최민(25살)이다. 1993년, 훈춘시문화관에서 《퉁소마을》조성을 위해 밀강향에 퉁소 100대를 지원했다. 어려서부터 마을 로인...
  • 2005-10-28
  • 효자효녀라 하면 사람들은 흔히 부모에게 효도하는 성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15세밖에 안되는 초중생이 학교로부터 '효자상'을 받았다. 그가 바로 상지시조선족중학교 초중 2학년 4반의 류춘길학생이다. 춘길학생은 학습성적도 우수하거니와 학우간에 우애단결하고 학교 각항 제도도 모범적으로 ...
  • 2005-10-27
  • 연형묵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조선 국방공업을 이끌어온 시세다.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태여난 연부위원장은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체코의 프라하공대를 류학한후 로동당, 정무원(현 내각), 국방위를 오가면서 조선 국방공업과 경제건설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항일빨찌산 유자녀로 김일성 주석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
  • 2005-10-26
  • 1983년. 중국작가협회 길림성 분회 부주석, 상무위원회 위원이던 그는 베이징으로 전근한다. 이어 중국 작가협회에서 발간하는 '민족문학'주필이 된다. 그때만 해도 조선족은 북경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 5년 만에 베이징 호적(시민)이 된다. '베이징 시민'은 특혜였다. 조선족으로는 처음 베이징 명예시민이 된 것이다. 등...
  • 2005-10-26
  • [원제:《천리를 말 한필로 달리다》호평속에 다카쿠라켄 장예모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제18차동경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오른 영화 《천리를 말 한필로 달리다》는 장예모감독과 다카쿠라켄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개막식에서 이 작품은 세계영화인들과 일본관중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편의 중국영화...
  • 2005-10-25
  • [원제: 중국조선족항일사 연구하는 만족당사학자-조문기] - 다련래 조선족항일사에 관한 저서, 론문 대량 발표 다년간 신빈현 당사지방사연구판공실 주임직을 담임했던 조문기(만족 57세)씨는중국조선족항일사연구에 조예가 깊어 중국조선족사회는 물론 한국에도 꽤 알려졌다. 조문기씨가 중국조선족항일사에 관심을 가지기...
  • 2005-10-25
  • 중국의 대표적인 음악가인 정률성선생(1914~1976)의 출생지와 관련, 현재 한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은 한국 광주남구의회 유 순남 의원이 지난 17일 정률성선생의 호적과 화순 능주소학교 제적부, 정률성아버지 정해업씨의 토지소유대장자료 등을 토대로 정률성선생의 출생지가 화순이라고 주장하면...
  • 2005-10-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