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서영빈-중국대외경제무역대학교수 인터뷰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8월29일 21시21분    조회:2081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문화현장, 오늘은 대외경제무역대학의 교수이며 중국 조선족문단의 이름난 수필가이신 서영빈선생님을 모시고 중, 한 양국 수필문학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아래는 그 인터뷰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적습니다. [img count='1' width=350' img] 기: 안녕하세요? 서: 안녕하세요, 저는 대외경제무역대학 한국경제문화연구회 소장인 서영빈입니다. 기: 네, 우선 중국조선족 수필문학의 발전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서: 중국조선족수필문학은 중국조선족의 다른 장르의 문학과 마찬가지로 백여년의 발전을 거쳐왔습니다. 하지만 다른 문학장르와 비길 때 90년대 이전에는 후진되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반적인 사회발전에 발 맞춰 변화를 가져왔고 다른 하나는 중한 양국간 문학교류가 형성되면서 한국문학의 영향을 받아서 중국조선족 수필문학이 새로운 전성기에 들어섰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에 와선 신화나 소설분야보다 수필이 더욱 환영을 받고 잠재력이 더 큰 문학장르로 발전했다고 볼 수가 있죠. 기: 중국 조선족문단에서 수필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떻게 평가되겠습니까? 서: 지금까지는 소설, 시 수필이 세가지로 나뉘어 발전했는데 21세기에 점차 정보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사회적인 시스템에 잘 어울리고 또한 시대적 발전상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장르가 수필이 아닌가 생각되며 또한 감히 21세기에는 수필의 전성기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기: 한국의 수필문학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서: 제가 한국에서 약 5년간의 생활을 하면서 한국의 수필문단에서 나름대로 활동해 왔습니다. 중국조선족 문단이 한국과 직접적으로 연계를 가질 수 있고 또한 중국조선족 문학이 한국문단에 진출할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을 가진 것이 수필이라고 생각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97년부터 시작해서 한국잡지에 수필같은 것을 발표했는데 지금 와 보면 한국문단에서 그때의 작품들이 상당히 큰 반향을 얻고 있고 한국문단에서도 소설, 시 수필 가운데 수필이 갈수록 환영을 받는 장르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기: 중국 조선족의 수필문학과 한국 수필문학의 공동점과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서: 제가 생각하기엔 한국의 수필과 조선족 수필은 문화적인 동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필의 총체적인 정서나 흐름은 동질성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 반해서 중국의 조선족 수필은 노신잡문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현실참회적인 수필이 굉장히 많습니다. 한국의 수필은 광복 후 순수문학을 주장하는 작가들이 문단을 장악하면서 한국 수필계는 자아반성적이고 인생을 관주하는 연수필로 가는 경향이 강합니다. 중국의 조선족 수필이 현실참회적인 정서가 짙다면 한국의 수필은 인생관주적인 정서가 짙은게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 수필문학이 최근 들어서 독자군층가운데서 부쩍 늘고 있는데요, 또한 수필이 소설이나 시에 반해서 독자들에게 더욱 잘 수용될 수 있고 큰 전망을 가질 수 있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서: 21세기는 ?빙시대입니다. 인간이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하나는 상상력의 문제, 진지성의 문제와 자유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 가지를 하나의 문학장르속에서 잘 소화해낼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수필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21세기의 전반 사회축은 이미 정보산업화 사회로 결정이 났다고 봅니다. 관건은 수필인들이 이 시대에 얼마나 적응할 수 있는 글을 써내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기: 앞으로 중, 한 간 문학교류에 대해서 어떤 기대가 있으신지요? 서: 중, 한 간 문학교류에 작은 문제점이 있었다면 이전까지는 주최자 중심의 행사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형식상의 교류를 떠나서 주최자는 교류의 장만 마련하여 멍석만 펴놓고, 굿은 이러한 활동에 참석한 작가들이 일 대 일로 얼굴을 맞대고 교류할 수 있는 진정한 교류의 장을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연구소측이나 저 개인적으로 양국간의 문화교류를 위해서 이러한 만남의 장을 좀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편집, 정리: 김민국) * 본 기사는 2005년 1월 31일 방송되였습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