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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 피여난 한송이 진달래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8월2일 08시42분    조회:7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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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전사 최경애할머니의 참군일기에서 

산골마을에서 참군한 처녀

1946년 4월초 연변의 봄은 일찍도 찾아왔다. 마을 앞산에는 진붉은 진달래가 떨기떨기 피여났다. 로투구 마을밖에는 전선으로 떠나는 청년들을 전송하는 마을사람들로 분비였다. 두 오빠와 같이 전선으로 떠나는 경애는 꼭 공을 세우고 돌아오리라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때 경애의 나이는 19세였다. 미혼부인 신만규씨는 반년전에 입대하여 마을을 떠난 뒤였다.

고향을 떠나 조양천교도대에 가입한 경애는 1년간 정치학습과 간호원학습 그리고 군사훈련을 마치고 군인으로 되였다. 군인이 된 경애는 라자고전투를 비롯한 많은 전투에 참가하면서 한 평범한 농촌처녀로부터 직업군인으로 되였다.  1948년 여름 당의 호소에 따라 조선전선으로 나간 경애는 평양에서 조선인민군 후군대대 위생부의 간호원으로 되였고 일년후에는 강호장으로 되였다. 

모안영을 만나다

1950년도 경애는 인민군 후근부 간호대대 소대장으로 승진했고 우연하게 모안영을 만나게 되였다. 소련류학을 마치고 조선전선으로 나온 모안영은 비록 모택동의 아들이였지만 생활이 소박하고 언제나 병사들과 어울려 허물없이 지냈다. 가렬처절한 전쟁마당이였지만 때때로 안녕이 찾아와 저녁이면 경애는 몇몇 친구들과 같이 모안영의 숙소로 찾아가 이야기도 듣고 소련노래도 배웠으며 오락회도 열군했다.

1950년 11월 24일 지방에 내려가 부상병을 구급하고 주숙지로 돌아오던 경애는 미군의 폭격에 휘말려들었다. 고개를 넘어 주숙지를 내려다 보던 경애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주숙지가 미군의 폭격에 풍지박산이 났던것이다. 경애와 전우들은 쏟아지는 탄우를 헤치면서 천방지축주숙지에 도착하여 무너진 벽채를 들어내고 희생자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모두 6구의 시체를 파낸 경애네는 이미 화염에 그을러 모습을 분간하기 어려운 시체를 놓고 눈물만 흘리다가 한 남자 시체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소련제 손목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희생된 사람은 분명 모안영이였던것이다. 거인으로 안겨오던 모안영의 죽음은 경애에게 받아안기 어려운 충격이였다. 전우를 잃은 고통에 모대기던 경애에게 또 하나의 불행이 닥쳐들었다. 미혼부인 신만균씨가 중상을 입고 국내에로 이송되였다는 소식이였다. 당금이라도 미혼부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경애는 군인의 직책을 저버릴수 없었다. 경애는 중국에서 보내 온 미혼부의 자기목까지 싸워달라는 절절한 부탁이 담긴 편지를 받고 목숨을 받쳐서라도 조선인민과 조국을 위하여 영예를 떨치리라고 다짐했다. 

불구름 자욱한 조선의 싸움터에서 경애는 한 병사로서의 직책을 다 하기 위하여 자기 청춘의 불타는 정열을 몰부었다. 부대에서는 경애에게 중국으로 돌아가 미혼부를 돌보라고 휴가를 주었지만 경애는 전우들이 매일같이 전장에서 피를 흘리는데 자기가 개인 사정으로 중국으로 갈수 없다며 다시 전선으로 달려나갔다. 조선에 있는동안 경애는 군공메달 2매, 국기훈장 1매,  8.15군공메달 1매 수여받았고 김일성장군의 접견까지 받았다.

미혼부의 한쪽다리가 되여

조선전쟁이 끝나자 경애는 미혼부가 있는 심양시군인병원으로 달려갔다. 경애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도 참혹했다. 침대에 누워있는 미혼부의 한쪽다리가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경애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것은 미혼부의 돌변해버린 태도였다. 신만균씨는 자기는 이미 경애를 사랑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자기를 너무 사랑하기에 불구자가 된 몸으로 경애에게 평생 불구자로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사랑을 거부하는 신만균씨 앞에서 경애는 자기가 미혼부의 한쪽다리가 되여 인생길을 걸어가라리라고 작심했다. 경애는 가정과 친구들의 반대에도 마다하고 그해 가을로 신만규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경애는 결혼하던 날부터 불구자가 되여 성질이 괴벽하고 까다로운 남편앞에서 인자한 웃음으로 대했고 남편의 손발이 되여 오손도손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아들이 태여나고 몇년후에 딸까지 있게 되였다. 무럭무럭 커가는 자식들과 경애의 사랑에 감동된 남편은 성질도 점차 온화해지고 불편한 몸으로도 경애의 일손을 도와나섰다. 경애네 부부간은 조용할 때마다 지나간 세월 전쟁의 나날을 회억했고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을 그리면서 회포를 나누군 했다. 1997년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나던 날 남편은 경애의 손을 꼭잡고 '내평생 당신에게 고생만 시키고 가는구만' 하면서 손을 놓을줄 몰랐다. .

20대 꽃나이에 전선으로 나갔던 한녀인이 지금은 80고령의 로인으로 되였다. 세월은 그동안 반세기가 흘러갔다. 지금도 청명이나 추석이 오면 집에서 간단한 음식을 장만하여 가지고 교외로 나가 인적이 드문 강가에서 남편과 전우들을 위하여 술을 붓고 애절한 추억속에 살아가는 할머니, 남편과 전우들의 생각이 날때마다 오늘까지 간직하고 있는 군복을 입고 밤을 보낸다는 최경애할머니이다.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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