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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군분구 전 부사령원 김문원씨의 인생스토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9월26일 08시08분    조회:7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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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일을 해야 한다이, 도시에서 여유있게 보내는것도 좋지만… 난 원체 농민의 아들이여서 시골에서 일을 하구싶구만.》

시골에서 태줄 묻고 자라 시골에 그루를 박은 군인 사나이. 초연이 자욱한 전장에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던 그 용맹이 아직도 서려있는 이 장년이 바로 연변군분구 전 부사령원 김문원( 57세)씨.  반백을 알리듯 희끗한 머리발을 날리며 구수한 함경도사투리로 시원한 목소리를 뽑는 모습이 외려실농군을 실감케 했다.

1969년 12월,  19살 어린나이에 안도2중을 졸업한 김문원은 안도현 량병태에서 감농군인 아버지 일손을 도와 농사일에 손을 댔다.

《그래도 남자는 군대에 가야지!》  언제부터인지 그는 이런 생각을 굳혀 이해에 훈춘시 모 변방부대에 입대해 오매불망 소원을 풀게 됐다.  학교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축구를 즐겨 순발력이 뛰여난 그는 부대에서 빼여난 기량과 쾌활한 성격으로 맡은 임무를  언제나 출중하게 완수했다. 특히 기포련에서 기술우위를 점했던 김문원이 미더워 부대에서는 1973년에 그에게 패장직을 맡겼다. 이때로부터 그는 군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제고에 박차를 가해 1977년에 기포련 부지도원으로 발탁하게 되였다.

부대의 기대에 보답하고저 항상 자신을 단속하고 전사들에게는 형님과도 같은 살뜰한 보살핌을 보내주던 그가 한차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게 된다. 새로 입대한 8명의 전사가 머나먼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과 형제들의 그리움을 잊지 못해 여가에 모여앉아 강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술이 과해 하나둘 취하기 시작했다.  취한 이들에게는 부대의 엄한 기률이 머리속에 있을리 만무했다. 드디여 서로 치고박고하는 싸움으로 번져지고야말았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김문원은 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아연실색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풀어놓은 들말이나 다름없는 이들이 입은 옷은 단정한 군복인것이 아니라 단추가 떨어져나가고 옷에 피가 묻어 누가 봐도 군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 싸움 그만둬! 》

김문원의 불같은 호령이 떨어졌지만 이미 리지를 잃은 이들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 내손 매운맛 좀 봐라.》

부대의 기강이 무너지는 한순간, 그는 더이상 참을수 없는 처지에서 전사들의 뺨을 후려쳤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대로 내버려두면 사건의 결과를 상상할수 없는 판국에 내린 벼락같은 결단이였다. 위기의 찰나, 담대하고 단호한 군인의 개성이 형국을 확 돌려세웠다.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전사들은 김문원의 앞에 무릎을 꿇고말았다.

《 사실 그때 손을 안댔더라면 어떻게 번져질지 모른다이…》

당시 정경을 회술하는 김 전사령원의 얼굴에는 근엄한 빛이 력연했다.

이 일로 해서 그는 한동안 부지도원직을 박탈당하는 파란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예이제이없이 실무에서는 남보다 뛰여난 실적을 올렸고 생활에서는 전사들을 동생처럼 사랑했다. 부대에서는 김문원의 표현과 지도력을 긍정해 이듬해 그에게 부련장을 맡겼다. 잠시 주춤했던 그는 또다시 성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1983년에는 부대수장들과 전사들의 두터운 믿음속에 영장으로 승진하게 되였다.

그해 8월,  드디여 챤스가 왔다. 중국군인지휘관의 최고사관학교로 불리우는 석가장고급륙군학교에 가 학습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업무시험을 통과해야만 입학할수 있었다. 김문원은  밤을 패가면서 책과 씨름했다. 시험날자가 다가왔다.  226명이 시험을 쳤는데 합격자는 겨우 16명, 그속에 유일한 조선족인 김문원도 속해있었다. 그것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지휘학부에 입학했다.

《운도 좋았겠지만, 공부를 죽기내기로 했죠…하니깐 되더구만》

김문원은 회억을 담배로 태워새기며 빙그레 웃었다.

배움에 목말랐던 김문원은 어렵게 차려진 배움의 요람에서 마음껏 자맥질해 우수학생으로 되였고 학교 축구대 대장으로 활약했다. 당시 이 고급륙군학교 생도들은 전군에서 뽑은 얼리트들이였는데 생사를 넘나드는 로산전선에서 김문원하면 모르는이가 없었다. 그만큼 공부도 잘했고 활약이 돋보였다.

이럴쯤인 1985년에 로산전선이 이 엘리트 군인들을 불렀다. 김문원도 선참 탄원해나섰다. 그는 67군 138사 414퇀에 배치받아  전선지휘소 작전참모로 임명되였다. 138사장이 바로 지금의 유명한 조선족 장군 김인섭중장이였다. 김문원이 이끈 전선지휘소는 윁남군과 불과 700메터 상거한 거리에 있었고 아열대림으로 이루어진 1500메터 고지에 윁남군 소분대가 둥지를 틀고있었다. 김문원이 거느린 부대는 아열대산림을 채벌하면서 길을 뚫고 제파공격으로 상대방을 압박했다.  생사선이라고 불리울만치 위험한 이 고지는 일명 《80년대의 삼감령》이라고 불리울만치 피로 얼룩진 요새였다. 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김문원은 전사들을 이끌고 직접 전투에 투입해야 했고 밤이면 쥐, 모기의 시달림을 받아야 했으며 적들의 야간습격에 목숨을 잃을번 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이 학교에서 전쟁에 탄원해간 100명 학생가운데서 5명이 전선 3등공을 획득했는데 김문원도 포함되여있었다. 김인섭사장이 김문원의 뛰여난 작전술과 지휘능력에 감탄한 나머지 김문원을 이 부대에 남을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연변군분구에서도 이런 뛰여난 지휘자를 놓칠리 만무했고 편지를 보내와 이미 배치를 해놓은 상태였다.  그가 돌아올무렵 김인섭사장은 친히 전선지휘용찦차에 개 한마리를 싣고와 개추렴을 같이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당신이 이 사단에 남아있으면 곧 승진해 장군 될지도 몰라, 참 아쉽네》
  
고향에 돌아온후 그는 예비역사 포병퇀 퇀장을 맡았다.  룡정시 백금향 산불진압에서 부총지휘를 맡은 김문원은 1998년에 2등공을 받은 뒤를 이어 3등공 5차례나 기입받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지휘자로 거듭나게 되였다. 그는 1994년4월에 군분구 참모장, 1998년에 연변군분구 부사령원 겸 예비역사 부사장으로 임명된후 지금까지 국방건설과 지역발전에 혁혁한 기여를 해왔다. 2004년에 그는 임기를 마쳤다.

《본신이 군인이다보니 뭘하겠수?! 자리를 냈으니 인젠 산지기나 해야지무.》

그는 사람좋게 이 억양을 낮춰 소탈하게 웃으며 산이 좋아서, 자연이 좋아서 이곳 대성골에 이사짐을 풀었다 한다.

《뭐 별게 있습네꺼.  뭔가 후대들을 위해 일 좀 해야 하지무. 그러자면 통이 크게 해재껴야 한다이….아직은 터를 닦았지만 명년부터는 걸싸게 할거유…》

명년이면 그는 군인으로서의 화려한 경력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김문원은 제2인생의 꿈을 바로 이 산골자기에서 소담하게 키워 이곳 농민들과 같이 한번 《 잘 살아보려》고 야망의 닻을 올릴 타산이다. 산에 나무를  심고 약재재배원을 만들고 ….  . 

군인의 기질은 어데가나 빛을 발한다. 그것도 농심에 젖은 마음에서였다. 석문진에서 경성촌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낡은 나무다리가 촌민들의 생명을 수시로 노리고있는 상황에 맞딱져 그는 가슴을 쳤다. 《여기에 돌다리를 못 놓으면 농민의 아들이 아니다.》 김문원은 사처로 뛰여다니며 23만원에  달하는 자금을 확보해 돌다리를 놓아주는 등 선행을 서슴치 않았다. 이 다리는 명실공히 마을의 혈맥으로 촌민들의 생활은 물론 치부에도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놀고있다..

당원으로서 그는 이곳 촌당지부를  찾아 농민당원들에게 정기적으로 당과학습을 조직하기도 했다.   농민들에게는 새농촌건설학습강좌도 해주군 한다.  촌민들의 상품경제의식을 전수하는 등 촌민들이 하루빨리 빈곤에서 해탈하게 하고저 올해 석문진 대성촌, 중평촌 등 마을에 검정귀버섯협회를 세우고 총고문으로 활약하고있다. 12만주머니에 달하는 검정귀버섯이 래년이면 결실을 거둔단다.

《너무 부지런해 걱정이죠》

초중동창이였던 안해 강씨는 미더운 눈길로 남편을 바라보며 푸념으로 은근슬쩍 자랑을 엮는다. 실로 시골에서 자라 시골에 돌아온 보기 좋은 진배없는 부부였다.

슬하에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매간을 두고있는데 아들 김희철( 28살 )이는 아버지의 혼을 타 부대의 작전참모로 활약하고있고 딸 김홍련( 20살 )이는 연변과기대 본과생으로 공부에 전념하고있다.

군인 김문원은  제2인생의 꿈을 초록빛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키워가고있다. 소담하게 진지하게…

김천 김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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