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무용이 삶의 전부이고 락인-리신자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6월4일 23시23분    조회:558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무용은 저의 삶의 전부이자 또 유일한 락입니다. 저는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없이 그저 제가 좋아하는 무용을 위해 혼신을 살라왔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리신자의 “수기”가운데서 옮겨온 한구절이다.그랬다. 60여년의 그의 인생행로를 펼쳐보면 무용이란 두글자를 빼고보면 정말 말그대로 바지저고리뿐이였다.

리신자(1946년 8월생. 1964년 연변예술학교 무용부 무용전공)는 1965년 5월 “선종”을 사회생활의 첫 작품으로 선보인 뒤를 이으면서부터 그의 파란만장의 인생행로에 단조로운 무용그라프선이 그려진다.

무용 “민속혼례”,  “접시춤”, “민무”,  “원앙무”, “수건춤”, “캄춤” 등등… 부동한 사회력사적인 배경에서 세상에 고고성을 울린 무용작품들이지만 안무가의 고매한 덕성과 민족무용의 얼을 지켜 이 세상에 배달민족의 재치와 운치를 한껏 자랑하려는 리신자의 각골의 노력이 슴배인 작품들이 국내외의 무대에 쟁쟁히 떠올랐다. 그동안 그는 100여개의 무용을 수집정리창작하여 무대에 올렸는가 하면 동북 3성과 전국적인 조선족무용콩클에서 받은 국가급상만 하여도 72개, 성, 주의 금상, 은상은 그야말로 부지기수였다.

국내뿐이 아니였다. 한국, 미국, 조선, 로씨야, 카나다 등 나라에 가서도 10개 종목의 무용을 공연하여 대환영을 받은적도 한두번의 일이 아니였다.

단지 무용뿐만아니였다. 다년간의 무용안무실천과 해박한 무용리론지식은 또한 그의 수많은 저서와 론문에서도 그 향기를 물씬 풍기고있다. 《중국조선족무용창작의 오늘과 래일》,  《중국조선족무용창작의 형성과 그 특점》, 《중국의 소수민족과 조선족의 민간무용》 등 저서들과 《남이 입었던것은 싫다》, “민간무용창작실기” 등 론문들을 수십편 발표하였다.

그러면서도 그에게는 어쩐지 석연치 못한 그 무엇이 마음 한구석에 늘 앙금으로 남아있었다.국가1급 안무가의 명예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창작해낸 쟁 소리나는 무용작품들, 금후 민족무용사업의 창달에 밑거름이 될 저서와 론문들, 한 무용가의 생애에 있어서 이제 더 바랄것은 없는듯 하였다.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삶의 빈약함을 느꼈다.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해옴을 느꼈다.

“이제 내가 무얼 더 해야 하나?”문득문득 뇌리를 스쳐가는 의문들이다.그것은 지난 세기 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부터 더욱 집착스레 마음에 와 닿았다. 변방의 이름없는 오지의 산골현소재지 훈춘에 천지개벽의 변화를 불러왔다. 각항 각업이 모두 개혁개방의 급물살을 타고 새록새록 피여났다. 민족무용 역시 그러하였다.

당시 훈춘시가문단에서 예술실주임직을 담당하고있던 리신자에게는 이것이 바로 민족무용발전의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짚어졌다. 당해 연변예술계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리신자는 조선민족무용인재의 결핍이 너무나도 안타까왔다.  리신자에게는 진정한 민족의 무용인재를 양성해보려는 일념이 굴뚝같이 솟았다.

목표가 정해지고보니 이제 남은건 행동에 옮기는것이였다. 그러나 말이 쉽지 내밀면 맨주먹뿐인 그에게는 모든것이 시련으로 그의 앞에 들이닥쳤다. “10년 마일검(十年磨一分剑)” 이라는 고사가 바로 리신자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였다.건교자금, 학생입학, 경영관리, 학생진료 등은 리신자로 볼 때 하나하나가 모두 넘기 어려운 장벽들이였다.

남들의 경험을 배우기 위하여 그는 가녀린 몸을 추스리며 동북3성을 전전하면서 때로는 기아와 추위에 시달리면서 눈 덮인 이름 모를 산길에서 무주고혼으로 될번할 일까지 겪으면서도 초심을 버리지 않고 학교설립에 집념하였다.

피타는 노력은 결국에는 꼭 결실을 맺게 되는 법, 10년 동안의 고심한 준비끝에 세계적인 무용예술가인 최승희선생님의 뜻을 계승한 3년제 무용전공중등전문학교인 훈춘시동아무용학교가 세상에 고고성을 울리게 되였다.때는 바로 2003년 9월 3일 자치주창립 51돐을 맞는 경사스러운 날이였다. 경사에 경사가 겹치라고 택한 날이였다.

녀자 나이 57세이면 집에서 손군들이나 봐주고 남편과 자식들의 뒤치닥거리에도 겨운 나이였건만 리신자에게 있어서 그것은 한낱 사치한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13세로부터 17세 사이의 애된 소년소녀들이라 한창 심신발육의 고봉기에 처한 “햇강아지”들이였다.  학생 자체의 자질이 고르지 않았고 많은 애들은 부모가 곁에서 관리해주지 못하다보니 말그대로 “들강아지”이기도 하였다.

“무용을 배우기에 앞서 인간이 되라.” 리신자의 교수리념이였다. 고매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무용가는 그 재간이 아무리 뛰여난다 해도 결국 속된 춤쟁이로밖에 안된다는 그의 신념이였다.그는 교수의 중점을 학생들의 인격수양에 두고 여러가지 형식의 교양활동을 벌려 학교에 대한 응집력과 흡인력을 증강하고 내적감화를 받게 하였다. 하여 학생들은 점점 학교에 믿음을 붙이고 학교를 자기 집으로 여기고 수련에 고심하였다.

리신자는 학생들이 지식분야를 넓혀주고 민족무용사업을 뛰여나게 수행해나갈수 있도록 교수과목선택에도 특별이 신경을 썼다. 어학, 정치, 력사, 일본어, 컴퓨터, 음악리론, 피아노, 서예 등 과목을 설치하여 학생들의 다재능을 부추겼으며 제한된 시간에 보다 많은 지식을 장악하도록 배려를 돌렸다.

리신자는 세계 4대 무용가의 한 사람인 최승희가 창조한 “조선민족무용기본”과 발레기본을 전수하고 겸하여 라틴댄스를 가르쳐주었다. 그는 학생들이 직접 공연에 참가할 기회를 적극 창조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공연실천속에서 자기를 단련하게 하였다. 3년 동안 이 학교에서는 20여개 무용종목을 자체로 안무하고 공연하는 한편 국가 및 성, 주에서 조직하는 대형문예공연에 40여차례 참가하여 세인의 인기를 한몸에 끌기도 하였다.

2004년 두만강지구를 대표하여 광주중신대학 창립 40돐 경축활동에 참가하여 절찬을 받았다. 2005년 12월, 중앙텔레비죤방송국에서 주최한 양력설문예야회에 참가하여 국가지도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자치주력사상 처음으로 중앙텔레비죤방송국 문예야회공연에 참가하는 영광을 누리였다.

그들은 또 중국,   조선,  로씨야 3국 새봄맞이 친선공연임무를 원만히 수행했고 자치주 첫  “진달래절” 경축공연에 참가하여 지대한 절찬을 받았으며 연변가무단과 함께 막하비행장착공식 대형공연에 참가하였는데 경축행사에 참가하러 온 중앙지도자들은 그들의 무용표현에 절찬을 금치못하였다. 지난해에는 특별초청으로 조선평양 “4월의 봄” 국제예술축전에 참가하여 영예의 은상을 받아안았다.

수년간의 엄격한 학습훈련과 대형문예공연을 통하여 학생들의 사상문화자질과 무용수준은 현저한 향상을 가져왔다. 이 학교 첫기의 19명 졸업생은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는데 일본, 한국 류학,  연변가무단,  국가무용대학 등 좋은 진로가 트이였다. 이 학교는 련속 2년간 훈춘시우수민영학교로 평의되였으며 리신자 본인도 “10.5”로력모범으로 당선되였다.

학교의 지명도가 높아짐에 따라 운영규모도 날로 확대되여 지금은 일본, 로씨야에서도 류학하려는 지원서들이 날아들고있다. 이미 환갑나이를 넘긴 리신자건만 예술탐구의 길을 중단한적 없이 여전히 청춘의 본새로 뛰고있다.

“꽃이 곱다는것을 알기전에 꽃이 되기까지의 아픔을 알아야 한다.” 바로 자기의 수기에  쓰다싶이 그는 시련과 고통의 몸부림속에서 피여난 봄의 천사-꽃으로 되여 백의민족의 무용이 세계만방에 널리 알려지기를 축원하는 리신자, 그는 오늘도 민족무용의 창달에 혼신을 담고 억척스레 일해가고있다. 글/ 사진 박득룡기자

사진/채수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 진수하녀성 어린 꿈나무를 키우면서 사회에 기여 연길시 북산가두 단산사회구역에 사는 진수하(59세)녀성은 자학으로 서법을 익혀 끝내 성공하여 지금은 전국로년서예가협회 회원으로 활약하면서 사회를 위하여 붓으로 자기의 인생가치를 실현하고있다.화룡시의 한 보통 로동자가정에서 태여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
  • 2008-10-22
  • 독립운동가 후손 "전통음식은 문화유산"  "조선족 민족문화이자 유산인 전통음식을 보급하고 발전시켜 후세들이 뿌리를 찾는데 도움을 주겠습니다."  비영리단체인 중국연변조선족전통요리협회 김순옥(47) 회장은 19일 연합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앞으로 전통음식 관련 교재 출판과...
  • 2008-10-20
  • 우표와 특수한 인연을 맺은 전광하1981년부터 조양천지구문화소,룡정시문화관 등 단위에서 사업하면서 많은 작품을 창작보급하고 군중문화사업의 진흥을 위해 보다 많은 기여를 하기에 최선을 다해온 전광하선생은 우표수집에도 남다른 정성을 몰부어 창작과 우표수집 두가지 분야에서 쌍풍작을 따내고있다. 억울함에 시달리...
  • 2008-10-19
  • 재외동포재단 이달의 추천인물중국 13억인구에게 우리민족 음식문화 전파하는 김순옥 회장에게서 듣는다- 음식문화로 우리 민족을 지키고 뿌리를 지키자! 대한민국 건국60년을 기념하는 제63주년 광복절 기념식장(경복궁 및 광화문 일대)에는 수만 명의 축하군중들이 운집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띠는 사람들이 있...
  • 2008-10-13
  • 리영근선생의 연극인생-저명한 표연예술가 리영근선생의 연기생활을 뒤돌아본다 장장 60년간 표연예술의 외길인생을 살아오면서 우리 민족 연극소품의 대명사로 불리울만큼 대중들과 익숙해진 국가1급배우 리영근선생,1991년 리직휴양한후에도 연기생활을 멈추지 않은건 물론 주정협위원, 연변주문련 고문,연변연극가협...
  • 2008-10-12
  • 간질환예방에서 전파경로차단 최우선과제연변대학부속병원 부원장, 연변대학 림상의학원 부원장, 연변대학 운동의학연구소 소장직무를 력임한 경력이 있고 지금 연변대학부속병원 감염과주임을 담임하고있는 오룡인교수는 감염병 특히 각종 간질환에 대한 진찰이 능해 자타가 공인하는 주 및 길림성의 저명한 감염병학과 간...
  • 2008-10-10
  • 연변국제무역빌딩유한책임회사 리사장인 최정금은 치렬한 경쟁에서 이름도 없던 작은 상가를 오늘날의 상업, 가공업, 모아산민속관광 등을 일체화한 대형종합성상업기업으로, 경영품종이 10여만가지에 달하는 대형상가로 탈바꿈시켰다. 회사도 선후로 국가 "AAA급 기업", 성, 주 급 "소비자만족단위", ...
  • 2008-10-09
  • 최명세옹은 어떤 분? 현재 연변에 생존해있는 의용군출신의 항일로전사는 두분, 그중 한분이 올해 91세 고령인 최명세옹이다. 기자는 국경절을 계기로 연길시 하남가두 신광 33조에 거주하는 최명세옹을 찾아  그의  근황과 흘러간 발자취를  더듬어보았다. 최옹은 현재 부인 박경자(1934년 생)녀사와 ...
  • 2008-10-08
  • 연길시연세보건미용병원 원장1인 조미화는 23년간 경제효익과 사회효익을 모두 중시하면서 미용업계를 위해 5400여명의 미용 관련 학생을 양성했고 그들의 취업문제를 해결해주었다.그는 또 "고객을 중심으로 모든것은 고객을 위해 봉사한다"는 봉사원칙을 가지고 성실신용의 경영태도로 광범한 고객들의 신임을 ...
  • 2008-10-07
  • 올해 35살에 나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과 교연실주임인 김영화는 다년간 무용리론, 교학, 창작, 표현 등 면에서 고심연찬하면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업적을 쌓았다. 2005년 그가 참여하여 연구한 "조선민족무용전업과정체계의 개혁과 실천"과제는 국가급교학성과 2등상을 수여받았다. 2002년 김영화가 창작...
  • 2008-09-2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