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에 4형제중 셋째로 태여나 일찍 조국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고 19살때 1급전투영웅 칭호를 수여받은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연길시에 사는 정관채﹙80살﹚로인이다.
정관채로인은 13살나던 해인 1942년에 어머니와 동생을 조선에 남겨두고 형님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화룡현 이도구에 이사왔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살길이 막막했던 세식구는 서로 갈라져 지주집 머슴으로 들어갔다. 그후 아버지가 나무수레에 치여 허리를 상하고 몸져누웠지만 돈이 없어 약 한첩 쓰지 못하고 세상을 떴고 설상가상으로 형님마저 일제의 "근로봉사대"에 끌려가 목숨을 잃게 되자 정관채는 의지가지없는 신세가 되고말았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에 16살밖에 안된 정관채는 인민해방군에 입대했다. 나이가 어리고 키는 작아도 일에서 뼈가 굳어진 정관채는 부대와 함께 토비를 추격하며 매일 70~80리 길을 강행군했으나 대오에서 한번도 떨어진적이 없었다.
정관채는 선후로 원보산전투, 철가자산전투, 우라가전투 등 가렬처절한 전투를 수없이 겪으면서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1948년 7월,장춘해방전역을 앞두고 길동군구 영웅모범 표창대회가 열렸는데 동북인민해방군 사령부에서는 대공 5차 소공 2차를 세운 그에게 1급전투영웅칭호를 수여하고 동북민주련군 전투영웅메달과 공헌증서를 발급하였다. 그후 정관채는 1950년 항미원조 전쟁에 참가해서도 많은 전공을 세웠다.
연변력사박물관에는 지금도 그의 영웅사적과 그가 사용했던 군용장비, 그가 획득한 전투영웅메달 등이 전시되여 있다.
김광석기자 / 실습생 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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