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재단 이달의 추천인물
중국 13억인구에게 우리민족 음식문화 전파하는 김순옥 회장에게서 듣는다
- 음식문화로 우리 민족을 지키고 뿌리를 지키자!
대한민국 건국60년을 기념하는 제63주년 광복절 기념식장(경복궁 및 광화문 일대)에는 수만 명의 축하군중들이 운집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띠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재외공관의 추천을 받아 한국무역협회(회장 이희범) 초청으로 모국을 방문한 104명의 해외동포들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경축사를 귀담아 듣는 순간, 이들의 눈가에는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고, 가슴에는 심장박동소리가 마구 울렸다. 땡볕 아래 3시간 정도 걸린 경축식 행사가 자칫 지루할 수도 있었을 텐데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이 지구상에는 자기 나라가 없는 백성들, 자기 말과 자기 글이 없는 민족들이 수없이 많다. 그런데 이역만리 타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의 존재를 기억해줄 뿐 아니라 건국기념행사에 초청까지 해줬으니 하루하루가 너무나 짧게 느껴졌기 때문이란다.
OK TIMES에서는 광복의 8월을 맞아 모국을 방문한 104명의 해외동포 중에서 중국 13억 인구에게 조선족 음식문화의 위대성을 널리 알리고 있는 한 여성을 이 달의 표지인물로 선택했다. 연변조선족전통요리협회 회장이자 연길 에리스(愛麗思)호양원 원장인 김순옥(金順玉, 1961년생)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07년 세계한인회장대회, 세계한상대회 등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과의 인연이 계속되고 있다는 김순옥 회장. 금년 5월에는 한국음식업중앙회 정기총회에도 참석하여 2008년 서울국제음식산업박람회에 대한 정보를 서로 교환한 바 있다고 한다.
-이번에 한국에 오게 된 동기는?
건국 60주년을 맞아 한국무역협회 초청으로 오게 되었다.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5일 동안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하여 동원F&B 진천공장, 독립기념관, 통일동산, 임진각, 코엑스 등 국내 산업·문화시설들을 둘러보았다. 특히 8·15 광복절 아침에는 경복궁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경축사를 들었고, 점심에는 삼청각에서 한승수 국무총리의 축사를 들었으며, 16일 저녁에는 무역협회 이희범 회장의 환송인사말도 들었다.
-모두 몇 분이나 오셨나?
중국 36명을 비롯하여 독일 19명, 러시아 19명, 우즈베키스탄 15명, 카자흐스탄 14명, 키르키즈스탄 3명, 우크라이나 2명 등 모두 104명이 초청받았다.
-어떻게 초청받게 되었나?
자세한 것은 모른다. 심양총영사관에서 연락이 와서 참가하게 되었고, 대한민국발전에 기여한 해외동포를 격려하고 국내 기업인들과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무역협회에서 마련한 자리라고 들었다.
-이번 광복절에 대한 느낌은?
참석자들 중에는 몇십 년 만에 처음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경축사를 들으면서 많이들 눈물 흘렸다. 1960년대 한국이 못 살 때 달러 많이 벌어줬고, 항일투사들이 열심히 투쟁해서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는 대목에서 뜨거운 감동이 밀려왔다.
-지금 중국에서 하고 계신 일은?
사단법인 연변조선족전통요리협회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에리스호양원 원장과 조글로(조선족글로벌네트워크) CEO클럽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연변조선족전통요리협회는 어떤 동기로 설립했나?
누군가는 꼭 해야 하고, 언젠가는 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전통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민족성과 고유정서가 함축된 전통음식과 문화 지킴이로, 또 대중화를 위한 전달자로 서기 위해 지난 2006년 9월에 설립했다.
-중국에서 조선족이름이 들어간 단체를 설립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조선족이라는 이름만 붙어도 허가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대학 전공이 법학(上海 華東政法大學 졸)이고 법조계에서 25년간 근무했기 때문에 경력과 인맥을 통해 어렵지만 성사시켰다. 음식은 정치와 종교와 무관한 것이라는 주장도 일조했다.
-법학과 음식은 어울리지 않는데 특별한 동기라도 있었나?
어릴 때 꿈이 의사였다. 2003년에 퇴직한 후 뭔가 양심적이면서도 체질에 맞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음식과 건강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연길 모아산 기슭에 식이요법 요양원을 설립한 것이 오늘까지 오게 되었다.
-주로 어떤 환자들이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나?
요양원 주변에 삼림공원이 있다. 신선한 공기, 따스한 햇볕, 깨끗한 물, 울창한 소나무 등이 한데 어우러져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고 있어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들 외에도 장애인이나 각종 난치병환자들이 많이들 찾고 있다. 특히 각종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휴식과 요양하기에는 최적의 쉼터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병원과 가정의 중간형태의 시설로 보면 된다.
-식이요법 요양원 경영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을텐데,가장 기억 남는것은?
무엇보다도 음식으로써 사람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화요리나 서양요리가 아닌 김치, 된장 등 우리 무공해 음식들을 접하게 되면서 수많은 암환자와 성인병환자들이 저절로 치유되는 이상한 일(?)을 직접 체험했다.
-음식으로 병자가 나았다면 입소문이 만만찮았을 텐데?
물론이다. 음식을 통해 병이 고쳐졌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하나둘 요양원을 찾기 시작했다. 조선족 전통요리(한식)를 배우려는 중국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조선족 음식을 가르칠 수 있는 한식조리사 자격증 소지자가 중국에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 기본은 같으니까 조선족 전통요리도 금방 할 수 있다. 그런데 강사들을 모집했더니 지원자들마다 갖고 온 강사자격증이 중화요리자격증뿐이었다. 그래서 중국정부 노동부에 문의했더니 중국에는 한식조리사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조선족들보고 한식조리사자격증 심사표준을 하나 만들라고 했는데도 어느 누구도 관심을 안 보였다고 하면서 지금이라도 한국에 있는 한식조리사자격증 심사표준을 그대로 중국 노동부에 보고하면 그것을 표준으로 삼겠다며 담당자가 아이디어를 전해줬다. 조선족을 포함하여 재중국 한인의 수가 300만 명에 가깝고, 호텔과 시내에 그렇게 한식당이 많이 있지만 중국정부가 인정하는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조리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조선족 전통음식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전문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단체를 설립했다 해도 곧바로 한국요리를 가르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협회 설립 후 한식조리사 자격기준부터 세웠다. 그리고 한식조리사자격표준과 중화조리사자격표준 두 개를 작성하여 중국 노동부에 제출했다. 우리 음식문화를 전파하는 좋은 계기로 삼기 위해 규모는 작지만 조선족 전통요리교실(자격증 코스)도 개설했다. 그러자 한류 영향 탓인지 중국 각지에서 한국음식을 배우려는 중국인들이 몰려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교재가 문제였다. 중국어로 된 요리교재가 하나도 없었다. 중국인들이 한국책을 읽을 수도 없을뿐더러 식재료와 소스 관련단어들이 거의 영어식으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또한 조선족음식과 한국식음식은 맛이 좀 다르다. 그래서 1년 동안 수고를 해서 이번에『조선족전통요리』,『조선족전통김치』라는 책을 중국어와 한국어로 출간하게 되었다.
-조선족요리 전문서적을 직접 출간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조선족 음식제조규범(매뉴얼)을 발전시키자는 이유와 중국인들에게 한식문화를 보급하자는 이유. 조선족이 처음으로 조선족 자본으로 한식 관련 서적을 출판했다는 것을 중국 정부(길림성 민족자치위)에서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재외동포재단 한상팀에서 출판비용으로 5천 달러를 지원해줘서 매우 감사하게 사용했다. 중국에서도 조선족인구가 점점 줄어든다고 걱정들 많이 하는데 그건 다 쓸데없는 말이다. 우리 음식문화만 잘 지켜도 우리 민족과 우리 뿌리를 얼마든지 지킬 수 있다. 우리의 고급문화를 중국사람들에게 전파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한식에 대한 인기가 대단히 높아서 북경, 상해, 하얼빈 등지에서 우리 음식을 배우려고 많이들 찾아오고 있다.
-앞으로 남은 과제가 있다면?
일단 교재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그러나 앞으로 한식조리사를 양성하는 전문학교(학원)를 연길에다 세운 다음 한국말과 중국말 두 가지 모두를 구사하는 요리강사들을 배출하여 전국에 보급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우수한 강사들이 와야 한다. 또한 우리 조선족전통음식연구소나 박물관을 세워 후세들에게 우리 음식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다. 협회에서는 음식을 단순히 먹는 것으로만 보지 않고 우리 문화를 지키는 고귀한 유산으로 보고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편 그녀는 항일애국열사 집안의 후손이다. 1991년 대한민국정부는 그녀의 외조부(이경재)와 일가 4형제(이연재·이원재·이인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증조부(김봉학) 역시 항일운동가였다.
-외조부의 성함은 어떻게 되나?
외조부의 본명은 이경재(李景在)이다. 김정명씨의『명치백년사총서(明治百年史叢書)』제3권 358페이지, 강덕상씨의『현대사자료(現代史資料)』제28권 534페이지에 따르면 외조부께서는 중국 길림성 연길현(吉林省 延吉縣)에서 다액의 군자금을 모집하여 독립운동단체에 제공하는 등 항일활동을 하다가 1920년 11월 4일 경신참변 때 일본군에게 사살당해 순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이여재(李汝在)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런데 외조부는 이여행(李汝行)과 이병재(李秉在)라는 이름도 사용했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대한민국정부는 1995년 이병재에게 또다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한 사람이 두 개의 훈장을 받은 셈이다. 나머지 형제분들도 이름이 모두 두 개였다. 내 증조부(김봉학)는 러시아 일대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한 분이신데 1933년 일경에 체포되어 비참하게 살해당했다.
-이 사실을 언제 알게 되었나?
연변대학 역사학자의 강의를 듣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문화혁명 당시 입만 뻥긋하면 죽는 분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모두들 자신들의 과거사를 말하길 꺼려했다. 아버지(金永彬·83세)도 처음에는 우리 가족사를 남들에게 알리는 것에 반대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어느 정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서 길림신문, 연변일보 등에 우리 가족 관련 기사들이 실리기도 했다. 연변에는 나처럼 독립운동가 후손이지만 후손확인이 제대로 안된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한국정부에 바라고 싶은 점은?
1991년 한국정부가 외조부와 그 일가형제들에게 애국장을 추서하면서도 유가족의 소재를 확인하지 못했다. 진짜 이름을 몰랐기 때문이다. 한중수교 이전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1994년 국가보훈처에 가명과 본명 두 가지로 해서 유족을 확인해달라고 신청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진척이 안 되고 있다. 해당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문헌자료도 부족해서 일일이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포상한 지 17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후손확인을 해서 유족들에게 훈장 전수가 이뤄져야 한다. 또 당시 17명이 붙잡혔는데 그 중 두 사람(둘째 이수약, 넷째 이종란)은 구사일생 목숨을 건졌는데 이들도 함께 순국한 것으로 기록되어있어 포상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당시 살아난 사람은 살아난 대로, 죽은 사람은 죽은 대로 바로 잡아주었으면 한다. 이는 정부관계자가 현장에 나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아버지(김영빈)는 현재 83세 노인인데 외조부 묘소(연길현 이란구 소재)를 하루빨리 국내로 환국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아직은 정정하지만 내년을 장담할 수 없는 나이다.
“광복 63주년, 이미 포상이 내린 지도 17년이 됩니다. 하루 속히 역사사실을 바로 잡고 후손관계를 확인해주셨으면 합니다.” 가슴 찡한 김순옥 회장의 말 속에는 모국정부에 대한 고마움과 아쉬움이 함께 담겨 있었다.
-중국 조선족사회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문화대혁명 때는 중국조선족들이 너무나 고생했다. 한족들이 소수민족이라고 깔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이 경제·문화적으로 발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번 북경올림픽 때도 한국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니까 그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이 대단하다. 조선족 대부분은 한국 때문에 조선족들이 더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 사실 중국내 다른 소수민족과 달리 조선족들에게는 자기 언어가 있고, 자기 문화가 있고, 독립된 모국이 있다. 싫든 좋든 연변에서 먹는 것과 입는 것이 모두 한국제품이다. 한국문화가 모두 연변을 통해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한국내 조선족들의 재산규모도 모르기 몰라도 몇 십억 달러 이상 될 것이다. 북한에 있는 친척들을 알게 모르게 도와줄 수 있는 힘들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그리고 한국에서 돈만 버는 것이 아니다. 어깨너머로 기술도 배우고 관리자교육도 받고 그대로 카피해서 중국에다 수출하는 민간외교관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한국정부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난번 세계한상대회 때 왔을 때도 우리 조선족을 더 이상 무시하지 말라. 한국에 오면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1인당 1억 이상씩 한국제품을 사갖고 들어간다고 말한 적 있다. 조선족 불법체류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한국에 더 있으라고 해도 더 이상 있으려고 하질 않는 분위기다. 지난번 음식업중앙회 행사관계로 입국하려던 3명의 조선족들이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된다며 입국조차 시키지 않고 공항 출입국관리소에서 되돌려 보내는 일이 있었다. 신원확인이 정확하고 보증할 단체들이 있는데도 불법체류 가능성을 이유 때문에. 예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매우 좋아졌지만 자유왕래에 대한 기준을 좀 더 완화해줄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연변에는 항일투사의 후손들이 아주 많다. 특히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누워 있는 열사들이 너무나 많다. 1년, 2년 지나다보면 더 이상 후손을 찾기 어렵다. 과거 역사발굴과 함께 후손확인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써 달라. 일본자료에는 없지만 중국자료에는 나오는 사람들도 많다. 중국공산당활동을 한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항일공적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1921년 이전의 항일공적은 중국공산당에서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므로 이것도 바로 잡아 달라.
우리 민족문화를 지키려면 후손들에 대한 언어교육이 중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문자 교육 지원보다는 문화교육 지원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특히 음식문화 관련 교재와 강사확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달라. 21세기는 문화의 시대, 네트워크의 시대다. 국경 개념도 점차 없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민족이 하나가 된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남북한 모두 화합의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
작년 세계한인회장대회 참석차 모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내가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됐지? 나는 중국 사람인데… 왜 날 초청했을까?”하던 김순옥 회장. 그러나 모국방문 횟수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하나!’라는 것이 구호가 아닌 자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직 중국조선족들 가운데는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의식만을 갖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서 이들에게 한민족의 의식을 심어주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모습에서 그녀가 독립투사의 핏줄임을 재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독립유공자후손들에게는 이중국적을 특별히 허용해달라고 한국정부에 부탁할 것을 당부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끝으로 소개하면서 중국으로 떠나는 그녀의 발걸음에는 중국조선족의 당당함과 재중한인의 자부심이 함께 묻어나오고 있었다. 대담정리/황선구 월간해외동포 발행인
<연변조선족전통요리협회는 어떤 곳인가?>
조선족 민족문화이자 유산인 전통음식의 문화적·영양학적 가치정립, 맛과 영양의 고급화, 조리법의 다양화를 통해 국민건강과 보건향상에 이바지하고 회원 상호간의 화합과 권익을 증진할 목적으로 설립된 조선족음식업계의 유일한 대표단체(비영리 사단법인).
주요사업으로는 전통음식보급·발전을 통한 우리 민족 건강유지사업, 전통음식 관련 단체·개인 네트워크사업, 각종 애로사항 해소사업, 기능교육 및 우수인재발굴사업, 회원간 정보교류 및 해외견학조직사업, 전통음식 연구·개발 및 세미나사업, 향토음식재현·발굴 및 대중화사업 등이 있다. 회원은 단체회원과 개인회원이 있으며, 최고의사결정은 회원대회에서 한다. 조직은 회장, 상임부회장·비서장, 부회장과 연길·화룡·도문·돈화·안도·훈춘·용정·왕청 등에 지역조직이 있다.
주소는 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세기빌딩 937호실
(Tel: 86- 433-2515177, 2927575. Fax: 86- 433-2515177).
홈페이지는 http://www.jindalai.org이며, 이메일은 yjjinshunyu@hanmail.net이다
OKTIMES(월간 해외동포) 200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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