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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하-우표와 맺은 일생인연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10월19일 14시46분    조회:6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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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와 특수한 인연을 맺은 전광하

1981년부터 조양천지구문화소,룡정시문화관 등 단위에서 사업하면서 많은 작품을 창작보급하고 군중문화사업의 진흥을 위해 보다 많은 기여를 하기에 최선을 다해온 전광하선생은 우표수집에도 남다른 정성을 몰부어 창작과 우표수집 두가지 분야에서 쌍풍작을 따내고있다.

억울함에 시달리던 나날

룡정시태생인 전광하(1942년생)는 소학교시절부터 작문을 특별히 잘 써서 학급담임교원인 리룡금선생님은 물론 남편인 김상은선생님의 사랑도 톡톡히 받았다.안데르쎈동화를 읽고 쓴 독후감이 우수작문으로 평의되여 학교에서 꾸리는 등사인쇄물에 발표되면서부터 장차 작가로 되여볼 목표를 세운 그는 이때로부터 시로 일기를 쓰면서 글쓰기재주를 의식적으로 키웠다.                
   
매일마다 책을 읽은 감상이며 주위에서 발생한 이러저러한 사건들에 대한 견해까지 시로 적느라 신경을 도사리는 그에게 또 하나의 애호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우표수집이였다. 

우표만 보면 얻어다가 깡깡 마른 조밥풀을 덕지덕지 발라서 책에 붙여두는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한심한 놈이라고 욕하면서 애써 모은 우표들을 몽땅 아궁이에 집어넣기까지 했다.그런데 고맙게도 담임선생님 부부가 《우표를 수집한다는것은 세계를 일주하는것이고 지식을 저장하는것》이라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다.두분이 아버지를 설복시켜준 덕분에 전광하는 소학교시절에 벌써 우표수집에서 전교 1등을 따내였고 룡정고중을 졸업할 무렵에 가서는 자기보다 키가 훨씬 큰 우표애호가들한테서 형님대접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보배처럼 간수해온 일기장과 우표앨범이 검은자료로 치부되여 억울함을 당하게 될줄이야?! 당시 전광하가 모은 우표가운데는 외국우표들이 퍼그나 있었는데 《반란파》들은 《국제간첩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여러 나라의 우표를 갖고있을수 있으며 자본주의복벽을 꿈꾸지 않고서야 어찌 자본주의나라의 우표를 보관할수 있는가?》라고 하면서 책이며 우표앨범을 몰수해서는 학교운동장에 무져놓고 불을 달았다.

이튿날부터 전광하는 한달동안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투쟁을 받고 로동개조를 하느라 숱한 고생을 하였다. 

필을 다시 들기까지

한동안 억울함을 당했어도 우표에 대한 집착을 털어버릴수 없게 된 그는 《문화대혁명》우표가 발행되자 또다시 비밀리에 우표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왕청현의 어느 시골에 가서 로동개조를 하고있는 리룡금선생님 부부를 찾아가서 조언을 받으며 우표수집에 정성을 쏟으면서도 글만은 다시는 쓰지 않는다고 맹세한 전광하가 다시 필을 들게 된것은 전국적으로 당중앙 11기3차전원회의정신을 관철시달하던 1979년 봄이였다.

그때 농촌에서 연길로 올라와 연변인민출판사의 부사장으로 부임한 김상은선생님이 조양천에서 우표수집에만 열심하고있는 전광하를 찾아와 《인젠 해동이 되였다》고 의미심장하게 말하면서 동년시절의 꿈을 실현해보라고 고무격려해주었다.
(그래,우표를 마음껏 모을수 있는 세상이 돌아왔으니 글을 써도 괜찮을거야!)며칠간의 고민끝에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전광하는 큰마음을 먹고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 그해 《소년아동》잡지에 발표한 동화 《개구리합창단》은 국경30돐맞이 우수아동작품으로, 《병신된 집오리》는 국경30돐맞이응모활동에서 우수작품으로 평의되였다.

이러는 가운데서 자신심을 얻고 작품창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 전광하는 1981년에 조양천지구문화소에 들어가 극본,재담,가사,삼로인 등을 본격적으로 창작보급하며 군중문화사업에서 한몫을 감당하였는데 그시기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는 소품형식의 삼로인 《손자타령》을 들수 있다.    

창작의 나래를 펼치여

1983년에 룡정시문화관에 전근된 전광하선생은 불타는 창작열정으로 많은 소품,재담,가사를 창작하여 룡정시예술단을 비롯한 여러 문예단체들에 제공하였다.이시기 선생이 창작한 소품 《누이를 준 값》과 만담 《〈내〉자타령》은 도문시예술단의 공연종목으로 되였고 재담 《내가 만약》은 룡정시예술단의 보류종목으로 되였으며 역시 룡정시예술단의 보류종목인 소품 《온돌전쟁》은 연변방송의 음력설야회에서 방송되고 삼로인 《출국전야》  등 작품은 《연변일보》에 발표되였다.

전광하선생이 가사를 쓴 음악무용종목 《룡정아가씨》는 국경40돐을 맞으며 펼쳐진 전주문예콩클에서 창작우수상을 수상하였고 소품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전 주 보험계통에서 조직한 문예콩클에서 창작우수상을 받았으며 가사 《주산알소리》는 전주은행계통문예콩클에서 창작우수상을 탔다.이밖에 선생이 작사한 노래 《초소의 풀피리》,《떡타령》 등은 연변방송의 매주일가로 방송되였고 《내고향 박우물》,《총각아리랑》 등은 연변텔레비죤방송의 매주일가로 시청자들과 대면하였으며 《들놀이 OK》는 연변방송에서 우수가요로 선정되였다.(3년간 방송된 매주일가가운데서 10수만 선정하였음) 

다년래 선생은 《소인의 눈에는 하늘도 좁다》,《현대팔이론(의사를 8가지 부류로 분석함)》,《서글픈 혼속(婚俗)》,《억새풀에 엉킨 사랑》을 포함한 여러편의 수필을 창작하여 《청년생활》,《연변녀성》,《로인세계》와 《일송정》(룡정시의 문화총서,연변인민출판사 출판) 등 간행물에 발표한외 《조선민족전통미덕이야기》대전서 16권중 《리상포부편》을 집필하였으며 리태수선생과 합작하여 지식동화집 《세계동물운동회》를 출판하였다.

룡정지명 100돐을 기념하면서 《세월속의 룡정》이란 책자를 출판한 선생은 또 《룡정시병원사》,《룡정시수도공사사》,《룡정시체육운동사》 등도 집필하였는데 많은 력사자료를 찾아보고 오랜 체육교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완성한 《룡정시체육운동사》는 1910년부터의 자료들을 까근히 수집한것으로 해당전문가들의 긍정을 받았다.

21년간 룡정시문화관에서 사업하면서 선후로 창작일군,부관장,관장,당지부서기로 활약한 전광하선생은 또 연변작가협회 회원,연변음악가협회 회원,연변민간문예가협회 회원 등 사회직무를 맡고 《길림문화》잡지에 《군중문화예술이 아동지력개발에 일으키는 영향》 등 론문을 발표하면서 민족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적지 않은 일들을 하였다.

 독실한 우표애호가

 개혁개방후 많은 사람들은 널직한 아빠트를 사놓고 현대화가전제품으로 집안을 장식하면서 보다 편안하게,보다 품위있게 살아가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느라 아글타글했지만 전광하선생은 로임의 20%와 전부의 원고료를 죄다 책과 우표를 사는데 소비하면서 정신적인 부자로 되는데 만족해왔다.

《자넨 진짜로 책과 우표에 미친놈이야.왜 우표한테 장가를 들지 않고 안해를 맞아들였나?》라는 악의없는 롱담에 《우표가 녀자였다면 진작 우표한테 장가들었을텐데…》라고 대꾸하는 선생이기에 친구들은 술 한병보다는 우표 한장이라도 더 들고오기를 즐겼다.

우표수집에 몸을 담은 45년래 많은 진귀한 우표들이 《화장》당하거나 도적놈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등 좌절을 여러차례 겪으면서도 언제 한번 흔들림없이 우표수집에 정진해오고 또 헤아릴수 없이 많은 우표를 수집한 선생은 이런 우표들로 작품을 창작하여 우리 민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타민족에게 소개하기도 하고 여러급별의 전시회에 내놓기도 하였는데 2007년에 창작한 《조선족민속풍정》은 길림성우표전시회에서 1등상을,전국우표전시회에서 3등상을 따내였다.

선배님을 통해 일본의 우표수집가인 히라다 사게쯔녀사를 알게 되고 그녀의 도움으로 《`88서울올림픽기념우표》와 한국우취련합에서 꾸리는 《우표》잡지를 얻으면서 처음으로 한국의 우표수집정황을 료해하게 되고 한국우취협회 회장 강윤홍선생님과 편지거래를 하게 된 전광하선생은 중한수교전인 1989년에 벌써 한국의 《우표》잡지에 《미친 사람의 자화상》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소문을 놓았고  《중국우표에서의 조선족동포》,《선구자와 룡정》 등 글을 통해 중국 우표수집계의 현황를 널리 선전하였다.

선생은 몇십년간 꾸준히 우표를 모아온 보람으로 연변 나아가 전국적으로도 이름있는 우표수집가로 인정받게 되였고 정년퇴직한 지금은 주우취인협회 부비서장,룡정우취인협회 고문,연변장백산우취인협회 회장,회지 《장백산》의 주필직을 맡고 2006년에는 연길에서 《중한친선우표전시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으며 2008년에는 한국수도 서울에서 개최된 《한중우표전시회》를 위해 교량작용을 놀았다.
일전에 기자를 만난 선생은 지난 9월 26일부터 28일까지 중국우취인협회 연변대표단 부단장의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중친선우표전시회》행사에 참석하는 기간 편지거래로 익숙해진 동인들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많은것들을 배웠다고 터놓았다.

올해에도 이야기로 엮은 청소년필독교양서 《미덕은 성공의 비결》을 출판하고 연변위생학교 맞은켠에 위치한 우취인협회사무실을 진지로 우취사업을 위한 여러가지 일들을 추진시킨 전광하선생은 앞으로도 창작과 우표수집에서 모두 성과를 따내면서 인생을 보다 다채롭게 보다 의의있게 꾸며갈 결의를 다져가고있다.                         


연변라지오TV신문 채선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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