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동창림가족-행복한 미용성형외과 대가정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10월23일 15시33분    조회:826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행복한 미용성형외과 대가정

    몇년전인 2001년 4월 중국미용외과 창시인이며 권위인사로 인정받고있는 동창림선생은 홍콩에서 개최된 국제 미용성형외과 학술세미나에서 "중국 미용성형외과현황과 나의 체득","동씨융비술"이란 제마로 론문을 발표하여 대상을 받은적 있다. 대상받은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 보다도 더 재미있고 의미 깊은것은 "세계 유일한 미용성형외과 대가정"이란 칭호를 가지게 된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온 교수, 전문가들은 동창림가정의 소개를 듣고 한가정에 6명의 의사가 한 병원에서 전문 미용성형에 전력한다는것을 안후 국제에 없는 "미용성형외과 대가정"이라고 찬탄을 금치못했다.

      제 1 대

    198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 연길시에 "동창림미용외과병원"이란 간판이 눈에 잘 띄우지않는 자그막한 골목에 걸려졌다. 비록 수수한 간판이기는 했지만 숨도 바로 쉬지못하면서 가만히 숨어하던 미용성형수술을 해당부문의 비준을 거쳐 떳떳히 할수있다는것만도 천지개벽이였다.

    1960년 5월 1일 연변위생학교 의사전과반을 졸업한 동창림은 소학교부터 연변위생학교까지 줄곧 동창생인 지운숙녀사와 백년가약을 맺고 개산툰팔프공장 종업원병원에서 근무했다.

    외과를 전공한 동창림은 1973년 상해 제9인민병원에 가서 성형외과를 배울수 있는 기회가 차례졌다.연수를 마치고 병원에 돌아온 그는 일요일이면 남모르게 가만히 병원에 나가 미용외과 수술을 하군 했다. 당시 얼굴치장만 해도 수정주의 사조라고 마구  후려치는 때라 미용수술이란 엄두조차 낼수 없었다.

   그러다가 1980년 동창림은 연길방직공장 종업원병원에 전근하게 되였다. 일찍 개산툰에서 미용수술을 받은적있는 환자들 혹은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적지않았다. 여기서 신심을 얻은 동창림은 연길시 공원가에 "동창림진료소"를 꾸렸다.

    그때당시 9평방메터밖에 안되는 초가집 온돌에서 부인과 자식들의 도움으로 미용수술에 달라붙었다. 설비가 따라못가는 형편에서 전기밥가마를 소독기로 대체하기도 했다.

   꽃이 아름다우면 나비가 날아들고 꽃이 향기로우면 꿀벌이 찾아오는 법이다. 비록 초가집에서 해내는 수술이였지만 소문이 연길시는 물론 전국에 지어 외국에까지 파다히 퍼지면서 "동창림"이란 이름이 위상으로 떠오르게 되였으며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 시작했다.

   없던데로부터 있게되고 작던데로부터 크게 변모된 "동창림미용성형병원은 지금 호화로운 고층건물.현대화한 선진적인 설비,강대한 기술진영으로 무어진 병원으로 부상했다.

   이처럼 초행길을그리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창업해 온 동창림의 수상내역은 과연 화려하기만 하다. 그는 중화당대의학학회 부회장으로 임명받았으며 "국제 탁월한 의학학술상"과 "국제 연임 특별교수증서"를 수여받았다.그는 수차 한국에 가서 학술보고를 하면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동씨륭비술"론문은 금상과 국가전매특허권을 획득했으며 "국제 우수론문증서"도 수여받았다. 2000년 한국에서 열린 제2회장영실국제의학과학문화대상 수상식에서 동창림은 큐리부인상을 받은적 있는 미국의 엘렌야넬녀사와 함께 이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그는 세계 5명 수상자중 유일한 중국 공민이였다.  2001년 11월 동창림은 또 북경인민대회당에서   중국사회경제발전연구회로부터 14K금질 "중화성공인사 대금상"을 수여받기도 했다. 동창림의 업적은 "당대 세계 명인전","중국 당대 고급가학기술 인재 대사전" 등에 수록되였다.

     제2 대

    동창림선생의 두 딸 동련화,동춘희 그리고 아들 동권,며느리 리영옥은 모두 의학원 졸업생이다. 그들은 부모들한테서 10-20년간 미용외과 기술을 전수받아 인젠 저마다 미용성형외과 전문가로 불리우고있다.

   동련화,동춘희 자매는 한국 서울중앙병원에 연수가서 성형외과를 전공했다.지금 돌아와 부주임의사 직함을 따냈으며 "중국 우수미용외과전문가"책에도 올랐다.그들은 한국에 가서 새로운 선진미용기술을 인입하여 미용기술에서 능란한 솜씨를 보여주고있다. 아버지를 초과했다는 평판을 듣고있는 두 딸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서 5권의 대형미용외과 저서를 펴냈다.하여 우리 나라 성형미용오과에 관련된 서적이 없던 력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둘째 딸 동춘희는 "미용외과수술 기교"란 책을 편찬하였는데 지금 중국 미용외과 의사들의 중요한 참고서로 제공되고있다. 지금 그는 북경시에 "동창림미용외과병원"을 설립하고  높은 기술과 앞선 아이디로 조선족의 위상을 떨치고있다. 여기서 성형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돈을 아무리 팔아도 믿음이 있는 의사한테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들 동권이와 며느리 리영옥은 아버지와 함께 국내 여러곳을 다니며 선진기술을 배웠다. 리영옥은 지금 주치의사로 기술골간으로 막히는 일이 없다.한동안 북경에 있으면서 수술했는데 환자들로부터 평판이 무척 좋았다.그가 연변에 돌아온후 그를 찾아 연길에 와서 수술받고 간 북경환자도 있었다. 그는 말없이 소문놓고있는 미용외가전문가로서 수많은 미용애호가들의 호평과 사랑을 한몸에 지니고있다.

    아들 동권이는 연변대학 경영학과 대기업반을 졸업하고 한국에 가서 석사학위를 타고 일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동권이는 이제 전체 병원을 운영해 나갈 감목이다.

    제 3 대

   동창림의 손군들도 마치 푸른 소나무마냥 푸르싱싱 자라고있다.가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자기들의 독특한 사유와 애호인지 큰 딸 동련화의 아들 손경걸은 곤명의학원 미용성형외과 2학년생이고 들째 딸 동춘희의 아들 김진우는 하북성의학원 3학년 생이다.손경걸은 직접 미용성형외과를 전공하기에 방학이면 직접 동창림병원에서 실습하군 한다.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공부를 잘 하던 김진우는 임상과를 전공한후 다시 미용성형외과를 배우겠다고 하며 외국에 가서 석사,박사학위를 따겠다고 작심하고있다.

   "너 누가 시켜서 의학을 배우냐"는 물음에 김진우는 "아닙니다.저절러 의학길을 택했고 부모를 릉가할수 있다는 신심을 갖고 의학을 열심히 배우고있습니다."하고 오돌차게 대답했다.

    동창림선생은 "우리 병원이 이처럼 승승장구로 발전하게 된 비결은 기초를 튼튼히 닦은데 있다"고 말한다.그는 손군들마저 미용성형외과를 전공하는데 대해 더없이 대견스레 생각하고있다.

    이미 "세계 유일한 미용성형외과 대가정"이란 칭호를 띠고있는데 손군들마저 후계자로 나섰으니 할아버지로서 어찌 감개가 무량하지 않으랴. "샘이 깊은 물은 가물에 마르지 아니하고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는것은 아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만년을 더없이 즐겁게

   "사회에서 들어온 자금을 다시 사회로-"이는 동창림부부의 철석같은 신조이다.

   그들은 중국에 하나밖에 없는 조선족미용성형연구소를 세우고 20여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기쁨을 안겨주면서 각종 복리 사업에도 30여만원을 기증하는 등 사회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동창림부부는 세계 16개 나라를 방문할 때 선진국의 경험을 모색한후 사회 노인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저 300만원을 투자해 2000평방메터 면적에 4층 빌딩으로 된 백두락원을 건설하였다.값이 싸고 조건이 우월하기에 지금 노인들은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있다.외국인들도 이 백두락원을 참관하고는 엄지손가락을 내밀면서 연신 찬탄을 보낸다.

   동창림선생은 "우리 미용원이 거대한 발전을 가져오게 된데는 전적으로 안해 지운숙녀사가 지켜주고 받쳐주고 훌륭한 참모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군 한다.

   지운숙녀사는 남편이 전진로상에서 기진맥진하면 힘과 용기를 부여했고 험악한 길로 고집부리면서 사정없이 달릴 때 스도프를 시켰으며 성공의 길로 인도하였다. 이들이야말로 성공하고 행복한 부부이며 원앙부부이며 혼신의 열과 정을 바쳐온 부부이다.

   지운숙녀사는 지금 백두락원에서 원장직을 맡고 백두락원을 양로원보다 한차원 높은 단계의 락원으로 꾸리려고 "석양의 빛"을  발사하고있다.

   자연의 섭리는 어쩔수 없어 동창림부부는 어느덧 70고개를 톺아올랐다. 인생의 파란곡절과 경쟁의 치렬한 소용돌이속에서 얼굴엔 주름이 늘어나고 머리엔 언녕 흰서리가 내렸지만 그들의 가슴에선 청춘의 정열이 맥동하고 있다.한물결 한물결 더 힘있게 더 높이 솟아오르는 "동창림미용성형병원"의 미래 또한 필경 더없이 황홀할것이다.

    김명록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할빈공업대학 컴퓨터학원 다지능로봇연구센터 주임 홍병용교수를 찾아서로봇축구는 ‘자그마한 플렛폼우에서의 기술전쟁’, ‘인공지능을 발전시킨 리정비’, ‘로봇사회의 축도’등 미명을 갖고 있다. 세계적 범위에서 수많은 과학가와 기술일군들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할빈공업대...
  • 2008-08-09
  • "한국-중국 가교 역할에 힘든 줄 몰라요"프레스센터 한국어 통역 자원봉사 백미향씨 "중국과 한국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싶어요." 8일 저녁 개막하는 베이징 올림픽은 한국어가 공식 통역 언어로 채택된 첫 올림픽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전세계 기자들이 총집결한 메인프레스센터(MPC)에도 조선족 여...
  • 2008-08-09
  • 환자에게 시간은 곧 생명이다 "호흡이 곤난한 환자로부터 머리 다친 사람, 원인을 모를 갑작스러운 복통 그리고 심장이 멎어버린 환자까지… 언제 어디에서 어떤 환자가 실려올지 모르기에 응급과의 의사들은 항상 긴장된 상태에 처해있습니다. 환자에게 있어서 시간은 곧 생명이기에 응급과의 의사들은 가장 적...
  • 2008-08-08
  • "13만7000km성화봉송 그 자체가 드라마"중국동포 김련남 씨 중국80개 도시 돌며 동고동락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중국땅을 처음 밟은 것은 5월 4일. 하이난 성 싼야에 도착한 성화를 보고 그는 눈물을 흘렸다.“아, 정말 중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는구나.”그런 그가 8일 개회식에서 다시 눈물을 흘릴 것 같...
  • 2008-08-08
  • 무지개꿈 현실로 이루어지기까지북경대학입학생 엄소천과 그의 가정을 엿본다 ○ 김성철 금년도 룡정고중 졸업생 엄소천 학생의 가정에 경사가 났다. 엄소천 학생이 총점 648점, 전 주 문과류 7등의 성적으로 무난히 북경대학에 입학한것이다. 엄소천학생이 물론 아주 우수하지만 특별히 지력상수가 높아 리해가 남달리 빠른...
  • 2008-08-07
  •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누군가는 돈에서 찾고 누군가는 사람에게서 찾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바로 스스로가 희망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아니, 충분히 알고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17년 전 두 아들을 떼어놓고 한국행을 택했던 윤애자씨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말한다. 내 안에 희망이 있고 길은 거기...
  • 2008-08-04
  • 1929년에 4형제중 셋째로 태여나 일찍 조국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고 19살때 1급전투영웅 칭호를 수여받은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연길시에 사는 정관채﹙80살﹚로인이다.정관채로인은 13살나던 해인 1942년에 어머니와 동생을 조선에 남겨두고 형님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화룡현 이도구에 이사왔다...
  • 2008-07-30
  • (베이징=연합뉴스) 특별취재단 = "중국이 안방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종합우승을 했으면 좋겠어요. 또 같은 민족인 남북한도 좋은 성적을 올리기를 기대할께요" 2008 베이징올림픽에 한국어 통역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조선족 강혜옥(姜惠玉.22)씨는 신세대 대학생답게 자신의 생각을 거침 ...
  • 2008-07-29
  • 한평생 동심과의 “앵코”타기 청소년언론인, 아동문학가 윤정석 “앵코 앵코 난좋아요/ 앵코타고 솟아보면…”여러세대를 거쳐 우리의 동심을 습윤히 적신 동요이다. 이 동요의 작사가 조선족청소년언론인이며 아동작가인 윤정석(尹精錫)은1927년8월5일 연길현6구 장재촌에서 태여났다...
  • 2008-07-29
  • 우리 가락 날실로 엮어온 40년 예술인생 황창주씨는 올해까지 40년 동안 우리 음악의 외길을 고집해왔다.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우리 가락, 우리 음악과 함께 해온 인생이다.  황창주씨가 민악과 인연을 맺게 된것은 지난 세기 6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황창주씨는 연길에서 태여났지만 아버지가 화룡시공전소 소장으...
  • 2008-07-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